화살의 향수 03
내 세상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세상은 빠르고 평화롭게 흘러갔다.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하루하루 전정국에게서 도망치듯 살았다.
술래잡기도 아니고 난 그만 보면 미친 듯 눈을 피했고 쫓아오지도 않는데 빠른 걸음으로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나길 반복했다.
등신 같으니라고, 나한테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 거지같은 말은 당당하게 잘도 지껄여 놓고선 왜 지금은 마주치지도 못한단 말인가.
어디서 머리박고 뒤지고 싶다 그냥
그리고 학교에 단 1분도 더 있기 싫은 내가 전정국 때문에 방과 후에 하는 동아리까지 신청했다.
이정도면 진짜 마주치면 뭐 죽는 그런 수준 아닌가?
그런데 그도 딱히 저번처럼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내가 피하면 피하는 대로 놔둘 뿐.
그래… 아무래도 그런 소릴 들었으니 마음이 야박해 질만도 하지, 뭐 상관없다. 그게 나에게 더 편하기도 하고
“아… 너무하잖아 탄소야”
“내 앞에 앉질 말던가, 꼴 뵈기 싫은 짓을 하질 말던가.”
오늘의 점심은 콩밥이었다. 여느 때처럼 혼자서 밥을 먹는데 김태형이 자기 무리와 떨어져 희희낙락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곤 대답해주지도 않는 내 앞에서 열심히 혼자 말하고 열심히 콩밥에 있던 콩을 골라 옆으로 모아놓고 있기에 친히 다시 젓가락으로 휘저어 줬다.
김태형은 잔뜩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콩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편식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라고 물으려다 또 신나게 자기혼자 떠들 것 같아 말았다.
“너 그건 알아야 돼 네가 먼저 친구하자고 했잖아”
“그럼 또 내가먼저 말할게, 절교하자 우리”
“넌 애가 왜 그렇게 못됐냐? 절교는 어? 쉽게 하는 거 아냐”
“난 쉽던데”
“……어?”
김태형이 당황한 기색으로 날 쳐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동자를 이래저래 돌렸다.
그러게 나 왜 이렇게 못됐냐? 난 그저 미련 없이 떠날 사람처럼 굴고 있는 것뿐이다.
요즘은 더욱이나 하루하루를 살아남는다는 느낌으로 버티고 있으니 누군가에게 호의적이게 될 수 가 없다.
친구를 사귀어도 배신만 당하고 소중한사람이 생겨도 이별해야하는 처지였으니.
이젠 그게 악연이든 인연이든 피하고만 싶었다.
그때 보건실에서 말했던 건 정말 농담이었고 순간의 웃음에 취한 실언이었다.
그래도 내생에 본 사람 중 가장 특이한 김태형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사실 귀찮음과 고마움 그 사이였다.
상처받을까 이렇게 내색하지만 어느 순간 안보이면 섭섭할 것 같은. 그런 존재
참, 나도 못됐다. 그래서 더 내치는 걸지도 모른다. 솔직해지지도 못할 거 너 같은 애를 곁에 둬서 뭐하니.
“넌 왜 자꾸 나한테 오는데?”
“…재밌어서”
“그게 다야?”
“친해지고싶어”
“간다.”
“가지마 아직 다 안 먹었잖아!”
자리에 일어나려 하다가 따라오려는 것처럼 같이 일어나는 김태형에 그냥 다시 앉았다.
“그럼 말 시키지 마”
“너 근데 동아리 들었더라?”
“…아”
“거기 나있는 덴데! 잘됐다”
“그거 지금 신청 취소 할 수 있냐”
“안되지! 오늘부터 동아리 시작하는 날 인데. 우리학교는 동아리도 정규수업으로 치는 거 알지? 빠지면 결석이야”
“짜증난다.”
“이따 봐 탄소야”
학교 존나 좁네. 멍청하게 하지만 약 올리듯이 함박웃음을 짓는 김태형에 머리가 죄이는 것 같다.
내가 전정국 하나 피하자고… 아 몰라 생각 하지 마
탄소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곤 유유히 급식 실을 빠져나왔다.
이 학교는 동아리 자체가 체육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건 없고 오직 테니스, 육상, 축구, 수영 이런 몸에 무리를 요하는 주제 투성이었다.
그중에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왠지 만만해 보이는 승마를 선택했고. 오늘이 그 동아리 첫 시간이었다.
가기 싫다. 미쳤지 미쳤어 차라리 전정국이랑… 아, 그건 또 아닌가.
수업에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턱을 괴고 창가를 바라봤다.
지금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있는 반은 전정국이 있는걸 보니 딱 봐도 3반이었다.
뭐하는 거지? 눈을 비비고 봐도 저 본새는 피구였다. 감히 왕자의 존체에 공을 맞추겠다는 거지 지금?
어… 보고 있자면 참 재밌는 곳이다. 학교는.
그 순간 누군가 왕자를 맞췄고 선생님부터 온 아이들이 우루루 왕자에게 몰려들었다.
“푸흡!”
기어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저 상황에서 머쓱하게 웃는 왕자도, 몰려드는 아이들도 너무 웃겼다.
아 너무 웃기면 숨도 안 쉬어지고 소리도 못 내고 웃는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김탄소”
그리곤 수학 쌤의 불호령에 웃음을 싹 멈추고 앞을 바라봤다. 내 웃음소리가 좀 크고 이상했나보다.
이렇게 모든 아이들과 선생님까지 똥 씹은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보는걸 보면.
“죄송합니다.”
“수업에 집중해라, 17번 문제는 네가 나와서 풀어봐”
“넵”
탄소는 칠판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쉬운 문젠데 아까 전정국이 생각나 웃겨서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
***
“탄소야!”
승마복을 입고 멀리서 걸어오는 김태형은 생각보다 구리지 않았다. 흠씬 말똥냄새를 들이킨 탄소는 체념하며 근처 벤치에 앉았다.
“네 할일해라”
“이거 내 할 일 맞는데? 부장이 신입 데려오래”
그렇게 말하고도 내 눈치를 보는 김태형을 한번 째려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로 가면되는데? 하자 그가 멀리 마구간을 가리킨다.
저긴 아마 여기보다 말똥 냄새 배로는 더 날거라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저 멀리 뛰어 다니는 말을 보니 좀 타보고 싶기도 하다. 승마체험 어릴 때 한번 해봤는데.
“넌 왜 뒤로 걸어”
방정맞게 날을 바라보며 뒤로 걷는 김태형에게 진심으로 궁금해 물었다.
곧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네가 여기 있는 게 신기하고 좋아서”
“아직도 하냐? 친구놀이”
“친구놀이라니!”
“뒤에”
“응?”
어엇! 하고 기어이 넘어졌다. 몰랐는데, 참 피곤한 애다.
탄소는 고민하는가 싶더니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빨리”
“…고마워”
고맙다며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헤 웃는 김태형이 안쓰럽기도 하다. 너도 참 너다.
그리고 마구간에 발을 디디자 생각보다 냄새는 그리 지독하지 않았다.
내 코가 적응이 된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그저 놀라운 건 내 앞에 있는 부장이라는 작자였다.
“신입?”
“동물병원 오빠 아녜요?”
“뭐?”
여름과 가을이 오락가락 하던 날, 집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이상한 땡감을 먹고 쓰러져 그 새벽에 동물병원을 급히 찾았었다.
그리고 난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그곳에서 유일한 내 안식처이자 내 마음을 주던 아이였으니 죽으면 따라죽자는 생각밖엔 없었다.
감이 지나치게 떫어 잠시 목이 막혔던 거라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고 그냥 정신도 온전치 않았다.
어떡해요, 어떡해요 만 반복하며 울어재끼던 등신이었다.
지금생각해도 창피한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때의 내 모든 진상을 받아줬던 사람 되시겠다.
그 동물병원 알바생. 내 눈물콧물을 닦아주며 손에 강아지 장난감, 간식을 쥐어주던 알바생 이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울지 좀 마 인마, 누가 보면 애 죽은 줄 알겠다.
약만 먹으면 금방 일어날 거라니까? 너 내일 눈 부어서 학교 못가겠다. 등등
가끔씩은 시시콜콜한 농담을 띄우며 나를 달래려 애썼다.
거의 동물병원에서 자다 시피 그 새벽을 보내곤 나중에 그나마 정신이 온전해 지자 그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전했었다.
창피한 마음보단 고마운 마음이 크지 암.
“여기서 보내요 같은 학교일지는 꿈에도 몰랐네.”
“아, 너 그 땡감 먹고 실려 온 강아지 주인이냐? 울고불고하던 어린애”
“초코예요 저는 김탄소고요, 그땐 고마웠어요.”
학교만 좁다고 생각했는데, 세상도 좁구나.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김태형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는 사이? 알긴 아는 사이지. 생각해보니 내가 온전한 만남을 한 사람도 있었네.
“어 뭐 조금”
여기부장이름이 뭐였더라, 민윤기였던가. 여튼 그와 무척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난 못 알아보겠던데, 그땐 우는 얼굴만 봐서 이렇게 제대로 눈뜰 수 있는지 누가 알았겠어.”
“잊어줘요 앞으로 많이 볼 건데, 창피하게”
민윤기는 슬쩍 고개를 올려 탄소를 쳐다보곤 입으로 끼고 있던 장갑을 벗었다.
그리곤 옆에 있던 김태형에게 펜을 빌려 명단에 무언가 적는다.
“김탄소 지각”
“허”
“내가 원래 그렇게 유한 편은 아니거든”
마구간 청소부터 시작해. 그 말을 끝으로 민윤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동물병원에서 봤던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지? 수 만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속으로 삭혔다.
“괜찮아 탄소야 나도 처음엔 청소부터 시작했어!”
저건 저게 위로라고…
***
심하게 피곤하다. 육체적 노동까지 더해진 오늘은 정말 심하게 피곤했다.
여러 잔소리와 여러 말을 하며 반겨오는 송하댁에 대충 반응한 뒤 방에 와 뻗었다.
하지만 몇 분이나 뻗어있었을까, 생각해보니까 저녁때가 다되어 세수만하고 거실로 나와 앉았다.
왜 요즘은 방에서 드시지 않고 거실에 다 같이 모여서 드시자고 하시는 건지, 왕자가 온 뒤 큰어머니의 속마음은 너무나 훤했다.
그건 그렇고, 큰어머니와 왕자의 관계는 뭘까.
친어머니도 아니고 그렇다고 진짜 큰어머니도 아니다.
그저 이집의 주인마님, 이 나라에서 손에 꼽는 재벌… 그 외의 것은 모르겠다.
내가 위험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걸까 아니면 이 집안이 이상한 걸까.
더군다나 중전마마와는 길례 전에 잠시 인사를 올린게 다인 만남이었다.
멀리서 왕자가보였다. 난 급히 탁자위에 놓인 음식들로 시선을 돌렸고 내 옆으로 와 앉는 전정국을 곁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곤 큰어머니가 오시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 제일 어색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새아가, 동아리활동은 힘들지 않니?”
“괜찮습니다 큰어머니. 재밌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곤 괜히 눈치를 살폈다.
전정국은 뻔히 내가 자기를 피해 동아리에 들었다는 걸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지각하셨던데요 부인”
물을 마시다 코로 뿜을 뻔했다.
저걸 어떻게 알았는지 보다 전정국의 입에서 나온 ‘부인’ 이라는 낯설고 소름 돋는 두 글자 때문에 곧 사례 들리기 직전이었다.
“아하하, 저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네요.”
“그 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혹 아는 사람이 민윤기입니까?”
“아닌데 퍽 찔리시나 봅니다.”
“그럴 리가요? 그보다 저하께서도 오늘 반 사람들과 피구를 하시더군요.”
피구라는 말에 큰어머니의 표정이 한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아, 괜한 말을 했나 싶었지만 옆을 보니 조금은 당황한 듯한 전정국의 표정에 마음이 뿌듯하다.
“왕자, 피구는 과격한 놀이 아닙니까. 밖이라도 존체를 소중히 해야지요.”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저 놀이인데요 뭐, 심려마세요.”
맞았으면서 저렇게 뻔뻔하게 말하는 왕자를 보니 미치도록 웃음이 새어나왔다.
막아보려 입을 가려도 눈이 웃고 있는 건 가릴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합방은 언제가 좋겠습니까?”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머리로 아무 사고가 되지 않는 건 또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내 위치는 여기였던 것이다.
반항을 할 용기는 안 나고, 그렇다고 체념하기엔 가슴이 답답해 터질 지경이었다.
“왕자가 돌아왔는데 언제까지고 부부가 각방을 쓸 순 없는 법이지요. 안 그러니 새아가?”
“네?”
당황하며 아무 대답도 못하는 나를 보곤 전정국은 한숨을 흘렸다.
그리곤 서툰 손짓으로 탄소의 어깨부분을 토닥였다.
“지금은 이른 감이 있으니 천천히 정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부인도 놀란 듯 하니 오늘은 그만하시죠.”
“빨리 정해 알려주세요. 언제까지나 둘이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게 보기 싫으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식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내가 밥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 샌가 그 식탁에는 나와 전정국 밖에 남지 않았고 긴 정적만 흘렀다.
난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어떡할 거예요. 이 상황”
“모두가 자연스래 예상하고 있던 상황인데 부인은 아닌가봐”
“그전에 이혼하려고 했습니다.”
“그 얘긴 나중에 하기로 했는데”
“지금 그딴 소리가…”
“걱정 하지 마, 걱정할 상황 안 만들어”
“…믿을게요. 저하”
“……”
“믿겠습니다.”
쾅, 화를 삼키며 문을 큰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닫곤 탄소는 방으로 돌아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정국은 제 입술을 잘근 깨물며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안 그래도 미치도록 자신을 피하며 극도로 적대적인 그녀인데,
큰어머니가 꺼내신 합방은 너무나 갑작스러웠고 부담이었으며 심하게는 혐오를 조장 할 수도…
하…
그는 연신 마른세수를 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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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소중히 읽고있어요ㅠㅠ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모두감사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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