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꺼야
-어린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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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대체 내가 무슨 일에 발을 들인거지. 생각과 걱정이 한데 뒤엉켜 주먹질을 하는 머릿속과는 다르게 발걸음은 이미 문지방을 넘어선지 오래였다.
한치의 망설임조차 없이 가볍게.
동영의 집은 예상보다 훨씬 단출했다. 아니, 단출하다 못해 썰렁했다. 하얗게 칠해진 벽면 한쪽에 별다른 시트가 씌워지지 않은 침대를 기점으로 작은 책상 하나, 냉장고, 그리고 옷장. 그것들이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퍽 삭막해진 분위기를 감지한건지, 동영이 헛기침을 했다. "음... 되게 별거 없지?" 민망한 듯 뒷머리를 매만지는 동영에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우리 집.... 도 별거없는데, 뭐."
우리 집.
입안에서 그 단어가 어색하게 머문다. "배고프지? 뭐 좀 먹을래?" 동영의 물음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답을 예상하기라도 한건지, 이미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잼을 가져온 동영이 멋쩍게 웃어보인다. "내가 원래 좀 간단하게 먹는걸 좋아하는 편이라." 빵에 잼을 바르는 데에 온 신경을 들이부은 듯, 동영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됐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운 동영이 반으로 접힌 식빵을 들이민다. "그래도 네가 먹어본 샌드위치 중에 제일 맛있을 걸." 동영의 말이 맞았다. 입안을 향긋하게 덮쳐오는 잼이 너무 달아 목이 따가웠다.
마치 저처럼, 삼킬 엄두조차 나지 않게 달큰했다.
"그럼 약속은 지킨거네?" 내 물음에 동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점심, 같이 먹기로 했었잖아." 잼으로 끈적해진 책상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하는 내 모습에 동영은 아- 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했었지, 둘이서만 먹기로."
둘이서만-. 느려지는 동영의 목소리에 침을 숨을 들이쉬었다. 달그락 하는 소리를 내며 잼을 휘젓던 동영이 이내 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럼 앞으로 여주 좀 많이 도와줘야겠다." 난 지금 너무 좋거든. 턱을 괸 채 웃어보이는 그 낯이 눈에 담지 못하리만치 벅차다. 짤그랑- 동영의 말 한마디에 떨림을 주체 못하던 손목이 기어코 숟가락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괜찮아?" 놀란 표정을 하며 반대편으로 넘어온 동영이 옷에 묻은 잼을 손으로 닦아냈다. 흰 손끝에 묻은 붉으스름한 점액을, 제 입가에 가져다댄다.
한순간에 주변의 온도가 올라간다.
잼을 머금은 그 입술도 같은 맛일까,
아니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더 달까.
"일단 내 옷 줄게, 갈아입어." 옷장을 뒤적거리며 동영이 제것으로 보이는 흰 티를 건넸다. 어... 어떡하지? 제 옷을 들고 멀뚱하니 서있는 내 앞으로 동영은 한참을 쩔쩔매다 이내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옷 다 입으면 불러!" 문 밖으로 외치는 동영에 웃음을 터트렸다. 문은 도대체 왜 잠구는거야. 내 물음에 대답 않던 동영의 귀는 일전의 딸기잼과 같은 붉은 빛을 띄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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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으로 두 갈래의 연기가 이내 하나로 합쳐져 매캐한 도시의 공기 중으로 섞여들어간다. "처음엔 네가 담배의 담, 자도 모를줄 알았어." 내 말에 동영이 한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는다. "그건 나도 그런데." 그의 대답에 입안을 채우던 연기를 뱉어냈다. "궁금한게 너무 많아." 뜬금없이 꺼낸 그의 한마디가 어색한 모양새로 공기중을 부유한다. "뭐가 궁금한데?" 내 물음에 동영은 담배를 긴 숨으로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뿜었다. "집은 어딘지, 뭘 좋아하는지, 왜 잘 웃질 않는지, 형제는 있는지, 그리고..." 어느덧 손가락 마디보다 짧아진 담배꽁초를 응시하던 동영이 그것을 빠른 손놀림으로 튕겨냈다. 창문 밖으로 곤두박질 치는 저의 부산물을 눈동자로 따라가던 동영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다 궁금해." 현기증이 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누군가 나에 대해 궁금해 했던 적이 있었던가.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인 양, 웃는 가면을 쓰고 입을 닫아버리는 그 일상에 익숙해져버린 내게, 동영의 얼굴에 퍼지던 그 표정이 선명하게 박혀들었다. "궁금해 해줘서... 고마워." 목울대를 타고 넘어오는 뜨거운 덩어리를 삼키며 동영에게 웃어보였다. 아무말 없이, 동영은 그런 내 어깨를 천천히 그러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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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집까지 안 데려다줘도 괜찮아?" 걱정스러운듯 미간을 좁히며 묻는 동영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어차피 재현이도 주변이래.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동영의 표정이 한순간에 굳어졌다.
"그래, 그럼..."
천천히 고개를 떨구며 제 집으로 향하는 동영의 뒷통수를 보며 한숨을 삼켰다. 언제쯤이면, 아무런 계산 없이 너에게 대답하는 날이 올까. 손가락으로 헤아리기엔 너무도 긴 시간에 애꿎은 옷자락을 구겼다. "여주야!" 꽤나 거친 모양새로 잡힌 손목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 짧은 거리를 뛰어 돌아온 듯 숨넘어갈 정도로 헉헉거리는 동영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아까 말하려던거, 안끝났어." 토해내듯 말을 내뱉은 동영이 이내 숨이 찬 듯 잘게 숨을 헐떡였다.
"너에 대한거라면 뭐든 다 궁금해. 그치만 그중에서도 제일 궁금한건,"
"너도 내가 좋아? 너도 나만 보면 벅차서 숨이 안쉬어져? 너도, 나랑 함께 있는 시간만 상상하다 하루를 다 보내?"
동영의 눈동자 너머로 벙찐 표정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맑개 갠 표정으로 웃던 동영이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을 하며 두 손으로 내 양 어깨를 그러쥐었다. "대답은 천천히 해도 돼. 내가 더이상 너에게 물어볼 게 없어지고, 너도 더이상 나한테 물어볼 게 없어지면, 그때 대답해주면 돼." 그 말과 함께 동영은 여태 본 중 가장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없을만큼 빛나는 얼굴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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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진짜 운도 좋다." 재현이 짧게 눈을 흘겼다. "그러게 누가 이민형이랑 같이 등교시키래?" 지지않고 돌아오는 내 대답에 재현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어떻게 보스 돌아오시기 한시간 전에 왔으니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진짜...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재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담임한테 전화온건 태일이형이 받아서 잘 해결했으니까 너도, 이민형도 이 일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마." 내 앞으로 삿대질을 하며 신신당부하는 재현에게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근데 왜 태일오빠가 전화를 받아?" 재현이 내 물음에 새삼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보스 다음으로 태일이형이 보호자로 제일 그럴싸한 사람이니까?" 대학병원 의사가 어디 그냥 갖게되는 직업이니. 재현의 대답에 말같지도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럴싸한 사람을 찾을 이유가 뭐 있어. 유타만 거쳐가면 범죄자도 목사님으로 만들어주는데 뭐."
"그건 그냥 서류상이잖아. 보호자로 적어내는데 되도록이면 사실에 근거해서 써야하지 않겠니."
꼴에 유식한척이라도 하려는 듯 안쓰던 말까지 섞어가며 대답하는 재현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래서 내 가족관계 증명서도 그렇게 사실에 근거해서 썼던거구나." 저를 비꼬는 대답에 재현이 인상을 찡그리며 내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너만 그렇게 쓴거 아니고 나도, 이민형도 다 그렇게 써냈거든?" 오랜만에 오고가는 유치한 장난에 재현의 머리를 헝클었다. "심부름은 잘 하고 왔어?" 난데없는 질문에 재현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뜬금없이 웬 걱정?" 그의 물음에 재현은 대답없이 방으로 들어가는 내 뒤꽁무니를 강아지마냥 쫓았다. "오늘 김여주가 기분이 좋구나?" "제~발 보스 오실때도 그 기분 유지하길 빈다." 끝내 제 면전에 대고 닫히는 문 앞에 대고 소리치는 재현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침대로 누움과 동시에 코끝으로 스치는 바람에 동영의 향취가 드리운 것만 같았다. 일전에 잠시나마 입고있었던 녀석의 옷 때문이었을까.
기분이 좋았다.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온 재현의 몸에서 나는 피내음이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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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 어렴풋이 뜬 눈 위로 제 손을 얹으며 태용이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괴롭히지 말고 방에 가서 자." 내뱉은 말에 책임질 생각없이 눈을 감으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머리 위로 제 턱을 얹으며 태용이 기분 좋게 낮은 소리로 웃었다. "못 봐서 힘들었어." 희미하게 칭얼거리며 그가 귓바퀴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는 좋았는데." 의도된 나의 악담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숙여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댄 채 웃음을 터트렸다. 온 몸으로 퍼지는 야살스런 떨림에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또, 어디까지 가서 누굴 죽이고 왔어?" 내 물음에 그는 대답없이 자세를 바로하고선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술을 들이켰다. "어차피 네 인생에서 한번도 마주칠 일 없었을 것들이야." 눈을 감으며 힘에 겨운 듯 한숨을 쉬는 그의 턱을 쥐어 내쪽으로 돌렸다. "네가 왜 그걸 정해. 내 인생은 내가 정해." 단호한 말투에 어이없다는 듯 태용이 옅은 웃음을 뱉어냈다. "널 너무 예쁘게 키워서 그런가. 고마워해야 할 때를 도저히 모르네." 빠른 손놀림으로 내 손을 내친 뒤 몸 위로 올라탄 태용의 눈동자가 나의 것에 파고들었다. 절망적인 색으로 까맣게 타버린 그의 눈동자에 투영된 나의 처지가 꼭 늑대의 눈에 들어온 사슴과도 같다. "잘 들어. 그들이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것은, 곧 네 죽음과도 같아." 일순간 온몸에 힘을 푼 태용이 힘없이 내 위로 쓰러졌다.
"난 그걸 절대로 버텨낼 수 없어."
연신 더운 숨을 몰아쉬는 그의 뒷통수를 마치 한 손에 담아내려는 듯 그러쥐었다. 품에 안으려니 마치 모래처럼 흩어져 내 곁을 떠났고, 놓아주자니 공기처럼 끝없이 내 곁을 맴돌았다. 그런 네 존재, 그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나는 의미없는 잡기놓이를 반복하며 어지러워 속을 게워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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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냈어?" 모든 것들이 흰 색을 띈 채 유유히 빛난다. 아, 이건 분명 꿈이다. 끝내 입밖으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하고 숨을 내뱉는 모습에 내 앞에선 그의 눈이 곱게 접힌다. "미안, 너무 바빠서 자주 못 들렀네." 아니야, 아니야. 연신 고개를 저으며 끝내 눈물섞인 대답을 토해낸다. "누나가, 누나가 미안해." 언제 다시 내 꿈에 찾아와줄까. 공연한 생각 끝에 나오지 않는 해답에 급한 말들을 쏟아낸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퍽 엄한 목소리와 손길로 그가 내 어깨를 토닥인다. "내가 미안해. 내가, 내가 누나를 지켜내지 못해서. 힘들게 해서. 아프게 해서." 흐느낌 섞인 목소리와 점점 흐려지는 공간에 그의 팔을 붙잡는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놓아주지 않겠다는 양. "사랑하게 될거야. 누나도 결국 사랑하게 될거야." 부서지듯, 내 앞에서 형체를 잃어가는 그를 잡으려 허공에 손짓을 하며 소리친다. "누구를, 도대체 누구를..." 끝내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큰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식은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베개에 묻고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막는다.
바람을 타고 흩날리던 네 갈색 머리.
동그랗게 딱 떨어지던 뽀얀 귀.
그 위 어딘가,
고운 손길로 얌전히 자리잡은 그 쯤.
성스러운 나만의 공간을 관통한 쇠붙이의 무게가 등골에 얹힐 때마다 주저앉아 막혀오는 숨을 꺽꺽 쉬어댔다.
내가 그 모든 수모를 당했어야 했다.
총알이 관자놀이에 박힌 쪽은 나였어야 했다.
어찌되었건 내 동생을 지킨 사람은 나였어야 했다.
내 어깨를 부여잡으며 단단히 맞춰오던 네 눈빛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조금만, 딱 그만큼만 기다리면 돌아올테니까 밥 꼭 잘 챙겨먹고 건강하게 있어야 해."
제노야.
너는 왜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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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산다 김동영편.... 오늘은 굵직한 일들이 터져서.. 5P 올려봤읍니다... 이번편에서 여주의 동생이 누군지 밝혀졌으므로 다음편부터는 성은 이씨로 고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