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O: Moonlight 1악장
세훈은 무용 동으로 향했다. 한예종 반 연습실에는 지금 자신의 거의 유일하지싶은 친구 종인만이 있을 것이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과탑의 자리에 오르고 한예종 수석 입학을 목표로 여전히 노력하는 종인은 천재성을 타고났지만 자신의 길에 흥미가 없어 보이는 세훈을 가끔은 동경했고 가끔은 시샘했다. 그러나 실력에 있어서 세훈과 자신은 비교할 것은 되지 못했다. 애초에 분야부터 다른 걸. 대신 종인은 세훈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것만으로도 종인은 성공적이라 느꼈다.
웬일이야?
문에 삐딱하니 서서 종인이 하는 양을 바라보던 세훈을 발견한 종인이 땀을 닦아냈다. 세훈은 손을 들어 화답했다.
혼란스러워.
뭐가?
누군가 나의 이면을 보았어.
이면?
뉴에이지를 다루었어.
뉴에이지. 종인의 얼굴이 굳었다. 종인은 잘 알고 있었다. 세계적인 클래식 거장이신 세훈의 부모님은 클래식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모차르트, 헨델, 베토벤이 그분들에겐 선생이었고 신이었다.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세훈은 달랐다. 세훈에게 모차르트란 이루마였고 히사이시 조가 이상이었다. 세훈은 클래식보다는 뉴에이지였다. 그런 세훈을 부모님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부모님의 구속과 혹독한 연습, 이상에 대한 갈망은 세훈을 뒤틀려놓았다.
Spring을 치고 있었어.
...그래.
들켰다는 게 싫더라.
......
그래서 월광을 쳤어.
나의 절망, 나의 갈망, 우울함. 이것이 나의 본모습이야. 알겠어? 봄은 내가 아니라고.
조금은... 놀란 것도 같았어.
......
루한. 루한이었던 것 같아.
루한?
악보를 들고 있었는데.
악보라...
뭐, 상관없어.
어차피 그 역시도 날 되돌릴 수 없을 게 분명해.
그럴바엔 헛된 기대 않는 게 좋아.
그의 곡을 치지 않을 거야.
종인이 푹 숙인 세훈의 백발 머리를 살짝 어루만졌다.
대체 무엇이 널 그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는거니.
대체 사흘 동안 어디 있었던거야?
민석이 루한에게 타박을 주었다. 연락도 없이 삼일 간 잠적을 타버린 루한이 괘씸했다.
곡을 썼어.
담담하게 말하면서 [콘체르토의 역사]를 덮는 모습에 민석은 잠시 루한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루한이 곡을 쓸 때면 곡에만 집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민석이었다.
무슨 곡인데?
피아노.
협주곡?
아냐. 그냥 피아노 곡. 뉴에이지 풍.
민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루한은 피아노 솔로 곡은 쓴 적이 없었다. 더더욱이 클래식만 고집하던 루한이 뉴에이지 풍의 곡을 쓴 건 혁명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피아노 곡을 썼대.
소나타?
변주곡.
나 주려구?
장난스레 민석이 꽃받침을 하고 루한을 바라보며 애교있게 물었다. 루한이 민석 쪽을 흘끗 바라보고는 넓디 넓은 민석의 이마를 밀어버렸다.
아!
까불지마. 네 거 아냐, 주인 따로 있어.
오~ 여자친구?
...아니.
외로운 천재. 듣고 싶은데 오래 걸릴 것 같아. 루한은 웃음으로 대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간다. 루한이 떠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던 민석은 헛웃음을 흘렸다. 비밀도 많아요. 고개를 흔들었다.
루한은 스탠드를 켜고 앉아 연필을 물었다. 탁, 탁. 손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히사이시 조의 Spring과 베토벤의 월광. 애석하게도 점잖고 부드러운 봄의 세훈도, 절망과 우울함에 뒤섞인 밤의 세훈도, 완전히 대립적인 둘임에도 불구하고 세훈에게는 둘 다 제 옷인 양 잘 어울렸다.
이건 미스테리야.
루한은 제 습작 파일에 있던 [Piano: Peace of Melody]를 꺼내들어 피아노 동으로 달려갔다. 아직은 문이 열려 있을 것이다.
세훈이 있던 그 연습실, 염치 불구하고 루한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악보를 펼쳤다. 루한의 손이 피아노 위에 조심스레 올려졌다. 루한의 가슴이 뛰었다. 심호흡 한 번 하고,
Peace of Melody는 정말 단순했다. 항상 모차르트처럼 꾸밈음과 세기를 빈번하게 조절하던, 꽤나 까다로운 곡이었던 이때까지의 작품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다. 주제, 제 1변주, 제 2변주... 변주가 더해갈수록 루한은 세훈의 모습을 상상했다. 총 10변주로 되어있는 Peace of Melody의 제 7변주 즈음, 세훈의 월광이 생각났다. 루한은 소스라치게 놀라 연주를 멈췄다.
월광은, 오세훈이 아니야.
다 쳤으면 좀 나오지.
멍하니 악보를 바라보던 루한의 귀에 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팔을 꼰 채 세훈이 문에 기대고 있었다. 루한이 악보를 수습해 일어섰다. 세훈을 스치면서 그를 흘끗 보았다. 머뭇, 그러나 말았다. 체념하고 연습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거 안 쳐.
냉랭한 목소리가 루한을 멈춰세웠다.
루한. 그건 나한테 안 어울려.
루한이 뒤를 돌아보았지만 미련 없이 연습실의 문이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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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써내려가려는데 그러다보니까 분량이 똥망이네요 흡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세루 행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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