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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

*희애→민아

 

 

 

승현아? 세상에, 얘가 정말 달라져서 돌아왔네…”

승현은 집까지 어떻게 찾아온건지 생각조차 못한 채로 자신을 일깨우는 엄마의 얼굴을 멍하니 응시했다. 바뀐 집도 집이지만, 엄마 역시 세월의 흐름에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승현은 그녀의 뺨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줄기를 닦아주며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엄마….”

“얼른 들어와, 얼른.”

승현은 터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엄마의 따듯한 손을 꽉 잡았다. 그래, 집이야. 집에 돌아온거야. 그러나 그는 그대로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오빠!”

분명 한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한나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눈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시야에 들어와있었다. 승현은 소파에 앉아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TV에만 집중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쇼트머리가 낯설었다. 군복은 더 낯설었다. 승현은 억지로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한나의 옆에 앉게 됬다.

“아빠는 잠깐 어디 나가셨어. 오빠, 나 반갑지?”

“어… 어?”

“상태 왜 이래? 지용 오빠랑 인사는 했어?”

승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모든 게 낯설다. 어지러워. 승현은 가까스로 고개를 흔들었다. 한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승현의 손에 들린 곶감 선물세트를 낚아챘다.

“이건 내가 엄마에게 전해주도록 하지.”

“가시나… 달라진 게 없구나, 넌.”

가까스로 정신을 잡은 승현이 작게 대꾸하자 한나는 샐쭉 웃으며 부엌으로 뛰어갔다. 승현은 고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엄마와 한나의 목소리를 그리워했다. 분명히 집에있고, 모든것이 채워졌을 텐데, 왜 항상 그리워했는데…. 승현은 주먹을 쥐고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회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 청중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옆에서 희미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승현이 눈만 굴려 옆을 바라보았다. 군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열리는게 보인다.

“많이 달라졌지?”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목소리였다. 한 층 굵어진 목소리에 승현은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워왔다. 나에게 건네는 말이 맞는걸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의심한 뒤, 승현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군대….”

“응.”

“제대했어?”

“곧.”

승현은 터질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며 옆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도 날카롭던 옆선이 더 날카로워져있었다. 여전히 자신보다 잘생겼고, 자신보다 멋있었다. 머리가 무척 짧고, 멋도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엇비슷하게 눈이 마주쳤다. 갈색 눈동자가 승현의 표정을 살피듯 분주하게 움직인다. 승현은 억눌렀던, 그러나 차오르는 분노에 몸을 약간 떨었다. 그래서 시선을 돌리고, 브라운관을 노려보았다.

“졸업은.”

“졸업하고 군대간거야. 나도 서울에 있었어.”

서울에 있었다고? 티내진 않지만 승현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런 얘기 못들었는데.”

“그렇겠지….”

넌 내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없었을테니까. 쌕 웃는 지용의 눈동자가 스크린 화면으로 물들어졌다.

“야, 김민아랑 이승현이랑 사귄단다!!”

승현은 걷잡을 수 없이 학교로 퍼져나가는 소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주변에서 쏟아져 내리는 부러움과 질투를 즐겼다. 그도 그럴 것이, 민아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제일 예쁜 아이였다. 예전부터 좋아했었던 여자애가 이젠 내 여자친구라니. 괜히 몸이 경직되고 아랫배가 뻐근하게 당겨왔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승현은 학교를 마칠 때까지 민아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다녀왔습니다.”

거무죽죽한 저녁 하늘에 비까지 내려 더욱 어두컴컴해 보이는 거실은 어딘가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승현은 집에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마음 놓고 화장실로 들어가 교복을 벗었다. 비도 오는데 샤워나 하고 일찍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이 왠지 모르게 들었다. 한참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는데, 대문이 열리는 쇳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노래까지 부르며 샤워를 하고 있었기에, 괜한 쪽팔림에 승현은 재빨리 씻은 후 욕조에서 나왔다.

거울에 하얗게 핀 수증기를 물로 닦고 뒤처리를 다 한 뒤, 얼굴만 빼꼼 내밀어 밖을 바라보자 현관에 누군가가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신발을 힘겹게 벗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빠인가? 엄마나 한나는 아닌 것 같은데. 아, 권지용인가. 승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화장실을 휘 둘러보았다. 손에 쥔 수건 외에는 몸을 가릴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교복은 이미 세탁기에 넣은 후였다.

그래, 뭐 어때. 같은 남잔데. 승현이 굳은 얼굴을 풀고 알몸으로 밖을 나왔다. 싸한 공기가 승현의 몸을 훑고 지나가자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승현은 고갤 틀어 현관을 바라보았다. 지용은 그 자리 그대로 꼿꼿이 서서, 승현만큼이나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갈색 눈동자로 승현을 묘한 눈초리로 훑고있었다.

뭐야, 대체 왜 저러고 서 있는 거지? 입술을 꽉 깨물며, 승현은 왠지 모를 수치심을 느꼈다. 곧 신발을 다 벗은 지용은 난데없는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후 승현을 향해 중얼거렸다.

“조심 좀 하고 살아라.”

뭐? 저게 뭐라는 거야. 승현이 차마 뭐라 하기도 전에, 지용은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승현은 지용의 태도보다, 자신의 방에 걸칠 옷들이 있다는 게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 존나… 불편해.”

이를 바득 갈며 속으로 온갖 욕들을 해댔다. 방문을 열어젖히자 젖은 교복을 하나하나 풀어헤치고 있는 지용의 뒷모습이 보였다. 문 여는 소리에도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승현은 서랍에서 속옷을 꺼내 입고, 티셔츠와 바지를 마저 입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속으로 볼멘소리를 해대며 승현은 이부자리로 들어가 뒤돌았다. 잠이 들락 말락 할 때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씻으러 갔나보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승현은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

승현은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민아를 바라보았다. 내가 언제 학교까지 왔더라…. 생각을 하면 할수록 버퍼링에 걸린 화면같이 되돌아가는 장면 때문에 승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권지용의 뒷모습에서, 모든 기억이 멈춰버린 것 같은 찝찝한 기분. 걱정스러운 민아의 표정을 살피며 승현이 애써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벌써 점심시간이야?”

“너 어디 아파 보여. 나, 너랑 밥 먹으려고 너네 반까지 찾아온 건데.”

“메슥거려서….”

“….”

“…못 먹겠어.”

민아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도시락을 들고 일어섰다. 승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비 내리는 교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죽죽 내리는 비들은 창문에 달라붙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진짜 어디 아픈 건가, 나? 승현이 목의 따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센 기침을 내뱉자, 민아가 놀란 표정으로 승현의 어깨를 잡았다.

“진짜 아픈가 보네?”

“그럼 거짓말일까?”

“아니, 그게… 미안. 나 오늘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시락 싸온 건데…. 조금 짜증 난다고 생각해버려서. 그리고 오늘 등교도 같이 못했잖아.”

승현이 미안한 표정으로 민아의 손을 살며시 건드리며 쌕 웃었다. 민아의 표정이 풀어지며 이내 뭐야, 하며 싱겁게 웃는다.

“미안, 응? 날씨 좋을 때는… 그래, 우리 롯데월드 가자!”

“광주에서 무슨. 서울까지 올라가려고?”

“그래도, 거기가 제일 핫 플레이스라던데.”

“어머, 영어도 쓰냐?”

배웠어. 승현이 민아와 낀 손깍지를 내려다보며 소리 죽여 웃었다. 그리고 한동안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갑자기 민아가 승현의 뺨 가까이에 다가갔다. 승현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부끄럽게 웃어댔다. 민아의 입술이 맞닿은 곳이 불이라도 덴 듯이 화끈거렸다. 승현이 민아를 올려다보자 그녀 역시 만만치 않게 붉어진 얼굴이었다.

“감기 꼭 나아.”

승현은 민아를 배웅 한 뒤 책상에 누웠다. 머리에서 미열이 느껴졌다. 별 일 아니겠지, 생각 했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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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앙 재미쪙 재미쪙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재밌어요 작가님 아 싸랑해여 진짜 와나 이런 분위기 겁나 좋아하는데 취향저격 제댜로 당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승현이는 샤워하고나서 실오라기 하나 안걸친건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 이놈짜식 그래 ㅈ조심 좀 해라 나중에 어떡할라고...ㅇㅅㅁ 으흥♥ 아 다음편이 시급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꿀잼허니잼딸기잼
9년 전
자유의여신상
감쟈함미당 ! 제 소설을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걸 보니까 기분이 저도 너무너무 좋아요 (ㅠㅠㅠㅠ) 앞으로 더 좋은 글 쓰도록 노력할게요..♥
9년 전
독자2
헐!!!조심안하면...!! 완전분위기 짱이에요ㅠㅠ 계속다음얘기 궁금해죽겠어요ㅠㅠㅠㅠ흐엉
9년 전
자유의여신상
감사합니다..♡♡ 흐엉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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