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요?
찬열은 무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최 이런 말을 묻는 의도가 뭔지 궁금했다. 여전히 찬열은 속을 간파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답도 안 나오는 그 모양새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백현이 결국 고개를 떨궜다. 명절 때마다 부모님께 듣는 얘기였고, 주변 친구들에게서부터 청첩장도 날아오는 터라 이쪽으로 아예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이 밀린 척, 기억 속에 묻어놓았던 것에 답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또 왠지 지금은 어떤 여자건 마음에 들어차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찬열에겐 제 상태를 밝히기 민망했다.
슬금슬금 고개를 들어 혼쭐 난 강아지처럼 눈치 보길 몇 번째, 입술만 벙긋거리는 백현을 한숨과 함께 가로막고서 찬열이 다시 물었다.
동성애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뜬금없이 동성애자 쪽으로 대화 주제가 넘어갔다. 그 전보다는 조금 더 쉬운 질문이긴 했지만 여전히 엉뚱하기 그지없다. 대답을 채근하는 것 같은 표정에 백현이 서둘러 답했다. 어,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는 없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움직인다. 오늘따라 팀장님이 영 이상한 것 같다. 백현이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 뭐냐는 듯 눈썹을 까딱이는 모습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무슨 질문을 이렇게 폭풍으로 하셔? 그래도 (격하게) 혼날 때 빼고는 이렇게 오래 대화하는 일이 거의 드물었다. 탁자 위 거의 비워진 에스프레소 잔을 타고 다리로, 또 가슴팍으로 시선을 옮긴 백현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두 주먹을 올려놓고서 힐끔댔다. 많이 물어보시는 거 신기하다. 원래 싫어하는 사람한텐 도통 관심도 없는게 사실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 팀장님이.. 맘 속에 물음이 내던져졌다. 백현은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다, 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추측이 기정사실화 되가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찬열에게서 아무 말도 듣지 못했고, 확신만 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곧장 맘 한 구석에서 찬열을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매달고 있던 추가 떨어지며 가벼워졌다. 한참 입술을 들썩이던 백현이 설레임에 메인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저 안 싫어하셨어요?
..?
웬 질문들을 이렇게나 많이..
아, 하고 탄식했다. 찬열이 그동안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했었나보다. 뭐, 눈치없는 변백구라면 귀여워서 괴롭히는 행동도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찬열 딴에는 백 보 양보해서) 생각했다. 그런데, 원래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으면 바로 딱딱 연결되지 않나. 데굴데굴 변백현 뇌 굴리는 소리가 다 들리길래 모른 척 해줬더니 고 머리통으로 깊게 삽질을 하고 앉아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부려먹을까 생각하면 가슴 속이 터질 듯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어쩌나, 백치에 둔탱이를 좋아하는 제가 참아야겠지 싶었다. 찬열은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저는 귀여운 사람 좋아하는데요.
이건 또 무슨 뜬금포같은 소리야.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찬열은 말을 어렵게 하는 재주를 타고난 것 같았다. 하지만 백현이 말뜻을 이해하기 전에 벌써 찬열의 직구가 날아왔다.
백현씨, 사귑시다.
예? ...예?
여기서 퇴짜 놓으면 저도 회사 올라가서 보고서 매일 퇴짜 놓을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두번째 문장의 '매일 퇴짜'라는 말에 뜨악한 표정으로 먼저 넋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팀장실에 들어가기는 커녕 회사 나오기도 벅차 할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공과 사 철저하시던 우리 팀장님께서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계시는거지? 하지만 백현의 귓바퀴를 스쳐지나간 그 이전의 말이 느리게 머릿 속을 파고 들어오며 경악시켰다. 이 모든 상황은 그저 꿈 같았다. 난데없는 폭격이라도 맞은 양, 머릿 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내가 아는 사귀자는 말이, 아, 그게 그게 아닌가? 우리 팀장님은 분명 인사과 변백현을 무지막지하게 미워하고, 싫어하던 분이신데. 갑자기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받아주면 뭐, 타자를 엉망으로 쳐오던 간에 슈퍼패스 시켜줄게요.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설렜다.
밖 춥습니다. 데려다줄게요.
몇 십분 후, 발그레한 모습의 백현과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대화하던 찬열의 표정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손에는 방금 다 비워진 에스프레소 잔이 들려있었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 심기가 불편해보인다. 팀장실 안에서의 백현처럼 또 찬열의 눈치를 보며 날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바로 코 앞에 들이밀어지는 손바닥 위로 조심스레 손을 올려놓자 꽉 옭아매는 마디가 매섭다. 단단히 화가 났나.. 후에 물어보니, 쓴 건 잘 못 먹는 타입이었더란다. 그럼에도 에스프레소를 고른 건 백현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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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