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빅, 삐비빅, 귀가 찢어질듯한 알람소리에 너무 심하게 부어서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간신히 뜨며 일어났다. 손을 들어 책상에 올려놓은 알람을 끄고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나서야 내 몰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술을 죽도록 퍼마시고 산에서 자고온듯 한 모습이었다. 일단 틀어놓은 물을 끄고 씻을 준비를 했다. 문득 드는 이상한 기분에 일단 변기에 앉았다.
"..." 분명,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고 밤에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았다.
꼬마아이, 승희, ...내 뒤에서 달려들던 괴물들, 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생생했던 꿈인지라 금방이라도 뒤에서 괴물이 덮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샤워기를 최대한 세게 틀어놓고 불안해진 감정을 억눌렀다. "미치겠다,"
하도 끔찍한 생각을 하니 끔찍한 짓을 하는구나. 옷을 그대로 입고 샤워를 해버렸다. 머리를 헝클이며 젖은 옷들을 천천히 벗었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나왔다. 시간을 보니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6시 20분, 간당간당하게 학교에 도착 할 시간. 일단 교복부터 입은 뒤에 불안한 마음으로 집을 나갔다. 아침이라 그런지 학생들로 북적이는 버스에 간신히 탑승하고 목적지인 학교에 도착하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학생들에게 치여서 버스에서 내렸다.
"하, 더워 죽겠다.."
분명 가을인데도 이렇게 버스를 한 번만 타도 와이셔츠가 온통 땀에 젖어버린다. 가을에도 이 정도인데 여름은 어떨지 상상이 갔다. 혀를 끌끌차면서 겨우겨우 교실 앞까지 걸어왔다.
"김성규!!"
"어, 왜."
오자마자 반장이 나를 찾아 다니고 있었다. 뿔테 안경을 쓱 올려 쓰고 나에게 말을 거는 방장이다.
"너 담임이 찾아."
"날 왜?"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가보던지."
"..."
말없이 뒤통수를 노려보자 뒤를 휙, 돌아본 반장에 눈을 내리 깔고 교무실로 갔다. 반장은, 겉모습만 모범생이었지 날라리 였다, 날라리. 담배도 피고 꾀병으로 야자 빠지고 클럽다니는 전형적인 날라리. 담임이 알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나때문이라 보복을 당한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친구가 없거나 그런건 아니었지만 저 놈한테 깝치다간 그때 처럼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조심 하는 편이었다.
"저, 선생님."
"어? 성규 왠일이니?"
"네? 선생님께서, ...아, "
그제야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왜그러니?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에 속으로 반장을 욕하며 교무실을 그냥 나와버렸다.
"이새끼가, 아..."
망할, 수학시간. 분명 반장새끼가 나를 골려주려고 한 짓이다. 학교에서 존나게 무섭기로 소문난 수학선생한테 걸리면 이유조차 듣지도 않고 깨질텐데.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교실쪽으로 걸어가는데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했다. 왠지 분위기가 꿈과 같은 쪽으로 흘러 가고 있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떨리는 다리를 움직이며 교실문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
"...아, 저."
평소 같았으면 복도에 있을때부터 울려야할 떠드는 소리가 없이 조용했었다. 수학이 화났나? 하면서 수학선생의 얼굴을 살펴봤지만 평소와 다르게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리에 가서 앉으라고만했다. 기분이 영 찝찝해 애들을 보니 다들 이상하게 책을 보는아이, 공부하는 아이들 천지였다. 떠드는, 딴짓하는 아이 하나도 없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 연필을 쥐었다. 잠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익숙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꿈속에서 봤었던 승희.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쾅, 소리를 내며 일어나 버렸다. 분명 화를 내야 할 수학선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동생인가보네? 나가봐,"
"네? 선생님, 지금."
"나가보라니까."
끝에 약간 섬뜩한 웃음을 짓는 수학에 소름이 돋았지만 일단 밖으로 나가봤다.
"...너 혹시,"
"오빠!!"
"하, 저기, 승,희 맞지."
"어?! 오빠가 어떡해 알아? 나알아?"
"승희야. 오빠 지금 수업시간이야."
"이리와봐 오빠."
꿈속에서처럼 나를 강한 힘으로 이끄는 아이의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갔다. 설마, 지금은 현실이야. 괴물같은거 나올리가 없잖아. 하면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아이를 따라갔다.
"저, 잠시만, 오빠가 마음의 준비를...아, 승희..."
또 다시 승희가 사라지면서 그때의 일이 오버랩 됬다. 아, 제발.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였다. 옆건물로 통하는 다리 끝자락까지 와버렸다. 아까 수학한테 가는 것과 차원이 다르게 다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이 다리를 다 건너고 나면 난, "아아, 제발. 제발," 그냥 내 교실로 돌아가면 되지만, 내가왜 여길 가려고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왠지, 가야만 할 것같은 마음이 들었다. 눈을 꼭감고 옆건물 다리 끝자락의 유리문을 열었다. 그러자 눈을 감고있어도 하얀 빛이 느껴 질 만큼 환한 빛이 나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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