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초침이 그 다음으로는 분침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커다란 시침이 흐른다.
탁상 위의 달력의 종이장은 여러번 넘어갔으며, 몇번이나 여러번의 계절을 맞이했다.
그리고 또다시 실컷 땀 흘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 맞이함.
하루종일 뙤양볕이 내리찌던 것의 열기를 머금은 물방울들이 하늘에서 쏱아져내렸다.
가방 깊숙한 곳에 아침에 챙겨넣은- 아니 챙겨넣어진 핑크빛 우산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이내 잠시 고민에 빠졌다.
딱히 성별에 따른 색깔론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 남자는 무슨 색을 여자는 무슨 색을 뭐 이러한 것들..
첫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는 음.. 무채색이 아닌 그러한 색을 지니고 있는 것이 드물었기에 그랬을 것이고
두번째는 그것을 챙겨넣은 이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자의 이유 때문에 그가 느끼고 있는 '부끄러움'은 창피함과는 정 반대의 개념이었다.
내 가방에 우산을 챙겨넣어준 이의 발갛게 달아오른 양뺨이 떠오르니 나 또한 그 이의 마음에 동하여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그것을 내 가방 안에 넣어주면서 한껏 수줍은 목소리로 내게 잘 다녀 오라며 배웅을 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 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손바닥으로 발갛게 물들어 부푼 한쪽 뺨을 감싼 뒤,
검지로 살짝 ' 쿡 ' 하고 찔렀다.
그러자 그녀는 놀란 눈망울로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런 그녀의 웃음을 짧게 입술로 훔치고는 집 밖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나는 가방 안에서 핑크빛 우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나는 우산을 힘껏 펴올렸다.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지하철 입구가 다다를 때까지 우산을 접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더보기 |
소나기는 그쳤다. 그리고 다시 뜨겁게 태양은 대지를 데우며 물기를 머금은 콘크리트 바닥은 습한 수증기를 내뿜는다. 그리고 다시 맑게 개인 하늘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는 우산을 쓰고 걷는다. 맑게 개인 하늘 만큼이나 남자의 얼굴도 밝다. 그를 맞이할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