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Do You Love Me?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3/3/c/33cd9c3857b27b844cab72a81d3b90ab.gif)
[루민] Do You Love Me?
W. 아카시아
“네?”
민석이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표면을 문지르며 다시 물었다. 제 이름값이야 한다지만 프렌치차이즈 일반 커피 전문점과 별 다른 차이점을 모르겠다. 맛이 덜하면 덜한 거지, 더한 건 아닌데. 스틱커피로 바꿔놔도 모를 거 같은데, 왜 값은 두 배 이상인지. 스타벅스 용기 표면에는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민석씨랑 나랑 사귀자구요.”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 묻기에는 루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한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스트로를 물고 아무렇지 않게 아메리카노를 쏙 빨아들이는 게 어찌나 얄미워 보이던지. 루한이 아메리카노를 입 안 가득 물고 방긋 웃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그 얼굴을 마주보기에는 심장이 너무 힘들었다. 너무 잘생겼고, 잘생겼다기 보다는 살짝 예쁘장한 여자아이? 아, 이건 아닌가.
“…왜요?”
“내가 민석씨를 좋아하니깐요.”
아니, 아, 그렇다 쳐요. 근데 팀장님이랑 나랑은 남자 아닌가요?! 저런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거지? 게이인가… 마치 유년시절 동네 친구가 같이 피시방갈래? 하는 거 같이 어색하지 않다. 그래, 루한은 우리 부서 중 나와 같이 유일한 남자다. 입사 동기인 지현씨도, 신아씨도 미모로는 꿀리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 사람들을 다 제치고 저를 선택 하신거에요. 팀장님.
“안 들어가?”
“아, 가요…”
나이가 같더라도 고백하고 불쑥 말을 놓아버리면 저는 어떻게 불러드려야 하나요. 정녕 저의 대답은 듣지 않고 가는거에요? 민석이 푹푹 꺼질 듯 한 한숨을 쉬자 루한이 방긋 웃으며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먼저가요. 민석씨.”
“아, 예…”
뒤에서 낮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팀장님, 파일이 깨진 거 같은데 이것 좀 봐주시면 안돼요?”
“민석씨가 안 바쁘면 봐줄 수 있나?”
나 무지 바쁜데… 엑셀 표도 채워야 하고, 파일 연결해서 다 옮겨놔야 하고, 전송된 자료 복구도 해야 하고, 또… 평소라면 잘 말하겠다만, 상황이 이상해 그냥 네, 라고 말했다. 깨진 파일을 복구하고 완벽하게 처리하는데 까지 한 시간 넘칫 걸렸다. 아까운 내 시간. 나 놀리려고 일부러 장난친 건가? 하긴, 부서에 여자밖에 없으니 심심할 만하겠다. 근데, 나도 잘 있잖아…!
“오늘 회식할래요?”
“정말요, 팀장님?”
“그럼 거짓말해요?”
웃을 때 눈가가 곱게 접히며 동그란 광대가 올라갔다. 아, 오늘 집에서 맥주 마시려 했는데, 저 얼굴 보면 회식하다가 체할지도 몰라. 잡다한 생각에 민석이 어물쩡거리니 루한이 성큼성큼 다가와 민석의 어깨를 감쌌다.
“민석씨는 갈 거죠?”
이건 장난이에요, 반 협박이에요? 입사 동기인 지현이 제 일인 것 마냥 더 입을 놀렸다. 민석씨도 같이 가요! 아니요, 지현씨. 제가 오늘 이 사람한테 고백을 받았다고요…
남자가 남자한테, 같은 염색체를 가진 남자가 남자한테, 신체 구조가 똑같은 남자가 남자한테. 고백을 받았다고요…….
*
고기가 입으로 넘어가는 건지 코로 넘어가는 건지 모르겠다. 꽤 값이 나가는 특급 한우임에 불구하고 이게 돼지고기인지, 닭고기인지, 내가 지금 뭘 먹는 건지. 민석이 깨작거리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안 먹어요. 민석씨?”
“입맛이 없네요.”
“이거 민석씨 주려고 사는거에요.”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부담스럽잖아요. 익은 고기마다 족족 민석 앞에 놓아두니 그게 또 신경 쓰였다. 지현씨랑 신아씨도 드세요. 민석이 말하니 민석씨도 많이 먹어요! 밝게 답한다. 평소 회식 때라면 저 둘이 루한 곁에 양 사이드로 앉아 수다 꽃을 피우고 민석은 가만히 제 앞에 익은 고기만 집어먹다 먼저 일어났을 것이다.
엄마, 저 남자한테 고백받았어요. 어떡하죠?
“저 먼저 일어날게요.”
“어머, 민석씨 벌써 가게요?”
“일이 좀 생겨서.”
신아씨, 원래 제가 가도 별 신경 안 쓰시잖아요. 조용히 가게 해주세요…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일어서자 무슨 일이요? 루한이 묻는다. 샐쭉 웃으면서. 예쁘게. 아주 예쁘게.
“친구가 잠깐 만나자고 해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입사 동기지만 다른 부서로 배치된 찬열이 박대리님의 주정이 듣기 힘들다며 민석에게 도움을 청한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여자친구?”
“아니요, 남자요.”
“민석씨 찬열씨 만나러 가는 거죠!?”
네, 맞아요. 신아씨. 누가 보면 평소에 찬열이 밖에 친구가 없는 줄 알겠네. 평소 같으면 기분 좋게 만나러 가겠다만, 내가 왜 이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찬열이를 만나야해…? 민석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루한도 따라 일어났다.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아니요. 안 그러셔도 되요.”
“민석씨 차 있어요?”
뚱한 표정의 민석이 주섬주섬 안전벨트를 맸다. 두리번두리번 차 내부를 살피던 민석이 입을 꾹 다물고 정면을 보았다. 차 내부는 깔끔하고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값을 하기에. 한 달 월급쟁이가 팀장님만 할까요. 그래도 어디 가서 이름대도 기죽는 회사는 아니잖아요? 집이랑 회사가 가까우니깐 차의 필요성을 못 느낀 거지.
나중에야 일이지만 이 차가 민석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벤츠라는 것은 정말 나중에야 알았다. 지금으로부터 먼 후에.
“민석씨는 어디 살아?”
“그냥 가까이요.”
“그러니깐 어디, 신사동?”
“뭐 그쯤…”
왜 이렇게 호구조사 당하는 기분이 드는 걸까. 신호가 걸리자 루한이 여유롭게 핸들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건반 치듯 희고 가는 손가락이 움직인다. 오늘따라 도로가 막히는 건 지금 이 어색한 공간 때문에 나만 그렇다고 느끼는 건가?
“도로가 막히네, 일찍 가야해요?”
“아니요.”
내 기분 탓이 아니라 차가 막히는 게 맞구나.
차에서 내린 민석을 따라 루한도 행선을 옮겼다. 얼핏 가게 입구만 봐도 찬열이네 부서 박대리님이 좋아하실 것 같은 돼지가 그려져 있는 순댓국밥집 간판이 보였다. 여기서 회식한데? 루한이 운을 띄우니 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서 한다네요. 우리랑 참 다르게.
순댓국밥집 문을 여니 돼지의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상관없다만 괜히 나 때문에 옷에 냄새 배겼다고 뭐라 하면 어쩌지, 비싸 보이던데. 민석은 루한의 눈치를 보다 괜한 생각이라며 먼저 걸음을 서둘렀다. 찬열의 외모야 어디서든 튄다만, 박대리님에게 잡혀있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제발 나 좀 여기서 꺼내줘.’ 라고 말하는 듯 한 간절한 눈빛. 민석은 작게 웃었다.
“민석씨 이거 회식 맞아?”
“그냥 박대리님하고 찬열이 둘만 회식이에요.”
대리님 취향이 워낙 올드해서, 저쪽도 우리 팀처럼 남자가 둘이거든요. 찬열이만 데리고 왔으니 회식이 맞겠지요.
“대리님, 저 이만 민석이 와서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벌써?”
“사모님이 걱정하세요.”
제 아버지뻘 되는 대리님과 주일에 두 번씩은 술을 마셔야 하는 찬열이 안쓰러워 보인다. 안녕하세요, 옆에 서있던 루한이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박대리님에게 다가갔다. 저런 피부색을 인터넷에선 술색이라고 하던데. 루한의 피부가 워낙 하예서 그런지 박대리님의 벌건 피부색이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
“루한, 너도 한잔해!”
“아니에요. 집에 가셔야죠.”
술에 절은 떡. 술떡. 사람이 술을 진창 마시면 떡이 된다고 하던데. 저런 건가. 어찌할줄몰라 가만히 서있자니 찬열이 루한과 민석의 팔을 이끌고 문 쪽으로 끌었다.
“내가, 하… 대리님!!!”
동물이 포효하듯 소리 지르던 찬열을 본 루한은 웃음을 참기위해 입술을 꾹 짓이겼다. 이 상황이 웃긴 게 아니라, 잔뜩 일그러진 찬열이 억울함을 토해내는게 웃겨서.
“찬열씨랑 민석씨 먼저 들어가요.”
“예?”
찬열이 묻자 다시 샐쭉 웃는다. 아… 그렇게 웃지 마요. 참 오래 보기 힘든 얼굴이다. 민석은 땅만 바라보았다.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 민석씨는 내일 회사에서 보고.”
이럴 땐 받아들이는 게 맞겠지?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루한이 푸스스 웃는다. 왜, 왜 웃는 거야…?
“연락할게요.”
하지 마요. 부담스러우니깐. 애써 올라오는 말을 꾹 삼켰다.
*
“찬열아”
“응.”
“나 고, 아, 아니다.”
“뭔데.”
“놀라지마.”
“응.”
나 팀장님한테 고백 받았어. 잠시 큰 눈을 깜빡이던 찬열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말 놀라지 말라고 안 놀라다니. 박찬열답다. 소파에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는데, 다른 이유로 늘어진 떡 같다. 대리님에게 시달린 가래떡.
“너네팀장 게이였냐? 사람은 좋아 보이던데.”
“몰라…”
“돈 많아 보이던데, 넌 맨날 소고기나 돼지고기 먹잖아.”
하긴, 순댓국밥보단 낫지. 그래서 돈 많으니깐 만나라는 거야 뭐야, 갑갑하게 목을 조이던 타이를 느슨하게 푸르니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 이게 다 루한때문이야. 김민석 너 전화 왔는데? 애니팡을 팡팡! 터트리던 찬열이 말했다.
“여보세요?”
[나 이제 집 가고 있어요.]
아, 팀장님이라고 써있더라, 찬열이 덧붙였다. 진작 말해주던가. 그럼 무음이었다하고 안 받아도 됐잖아!
“아, 그래요?”
[응. 그래요.]
“저도 집에 도착했어요.”
[방금?]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해봤어요.]
원래 이런 말 안하시던 사람이었잖아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것처럼 발끝부터 올라오는 소름에 민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네, 일찍 주무세요. 응. 민석씨도. 통화를 마친 민석이 골이 당기는 듯 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적응 안 돼.
“민석씨는 아메리카노?”
“네.”
루한이 햇살을 머금은 미소로 웃는다. 얼굴 좀 치우지, 민석은 애써 외면하며 프로세스 창을 켰다. 지워야할 파일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시계를 보던 민석이 십분 남칫 남은 시간에 서둘러 커서를 눌러댔다. 일 많이 바빠요? 나른하게 묻는데, 팀장님은 이게 안 바빠 보이시나요. 스트로를 물고 얼음이 동동 뜬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는데, 그의 웃는 얼굴이 심히 거슬린다. 검은 바탕화면으로 비춰지는 하얀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 집중 안 되게. 민석이 창을 크게 띄우자 루한이 쿡쿡 낮게 웃었다.
“내 얼굴 보기 싫어요?”
그런 거 묻지 마세요. 대답하기 곤란하니깐… 등 너머로 따가운 두 여자의 눈초리가 닿아 식은땀이 흘렀다.
“민석씨, 여자 소개 받으실래요?”
지현의 말에 손을 놀리던 민석이 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능력도 민석씨보다 좋을걸요? 지현이 스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그런 좋은 사람 있으면 팀장님이나 소개시켜주세요… 저가 가질 수 없다면 남 주기는 싫은 못된 심보를 가졌군요. 능력도 나보다 좋은 건 맞지만, 지현씨도 저랑 연봉이 같은 걸로 알고 있는데…?
“민석씨 애인 있어요.”
“에? 민석씨 여자 친구 생겼어요?”
“아…뭐.”
루한이 반짝반짝 웃는다. 웃는 이유는 두 가지로 나뉘는 거 같다. 내가 민석씨 도와 준거에요. 다른 하나는, 내가 민석씨 애인이니깐요. 아, 후자는 생각하기도 싫으니 전자로 해두자.
“팀장님은 여자 사귀실 마음 없으세요?”
제 속이 훤히 들어나는 질문에 루한이 낮게 웃었다. 동그란 광대가 눈언저리에 닿았다. 없어요. 사귈 마음. 짜게 식어가는 지현의 표정은 안 보이는지 루한은 스트로를 물고 스툴에 기대 연신 아메리카노를 홀짝인다. 지현씨 화나면 저한테 자꾸 도와달라한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 아메리카노 제꺼 아닌가요…….
“민석씨 오늘 나랑 저녁 먹고 가요.”
“저, 오늘 속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요?”
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찬열의 피치 못할 부탁으로 박대리님의 비위를 맞춰가며 점심을 먹은 게 화근이었다. 점심 메뉴는 곰탕이었다. 사리곰탕의 그 곰탕. 가뜩이나 고양이 혀라 뜨거운 것을 빨리 먹지 못하는 민석에게 쌀뜬 물 같이 뽀얗고 펄펄 끓는 곰국은 고역과 마찬가지였다. 저가 한입 떠먹을 때, 박대리님은 세입을 떠먹고, 먹을 때 입을 다물지 않아 첩첩거리는 소리 또한 묘하게 거슬렸다. 밥을 빨리 먹자니, 말은 해야겠고. 말을 하자니, 박대리님은 돌솥을 비워져가고. 먹으랴 말하랴 멀티기능을 실행하던 민석은 결국에 소화가 안 되고 속이 좋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
“체한 거 같아요.”
“밥은.”
“안 먹을려구요.”
그럼 안돼요. 제가 해줄게요. 아님 죽 사줄까요? 한없이 다정하게 묻는다. 아아, 속이 메스꺼워졌어. 이상해.
“집에 갈게요.”
루한은 민석의 어깨를 감싸며 친히 문까지 열어 민석을 앉히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민석은 이제 익숙하게 안전벨트를 맸다. 벌써 루한이 고백한지도, 루한의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것도, 보름이 지났다. 조금 다정해진 거 빼고는 그 전과 다른 점을 모르겠다. 어쩜 저렇게 태연한지. 처음에는 ‘장난치신 거죠?’ 라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저희 집 이쪽 아닌데요…”
“우리 집 가는거에요.”
루한은 백미러로 흘끗 민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민석은 체념이라도 한건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귀엽네. 루한이 작게 미소를 뗬다. 왜 속이 안 좋아요? 루한이 묻자 민석이 미간을 좁히며 웅얼웅얼 입을 열었다.
“찬열이가 일이 밀려서 대신 박대리님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불편해서 체한 거 같아요.”
“아… 아직도 많이 아파요?”
“조금.”
루한이 핸들에 팔을 괴고 웃는다. 순대국밥 먹었어요? 묻는 말이 얄미워 민석이 루한을 흘겨보았다. 곰탕이요, 라고 말했더니 곰탕? 하며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다. 네, 곰탕이요. 하얀 곰탕.
“곰탕이 하얀 건가?”
“네, 하얗고 김이 펄펄 나는 거요.”
“민석씨 뜨거운 거 잘 못 먹는구나.”
“잘 먹진 않아요.”
중국에 살다 와서 그런지 곰탕을 모른단다. 루한은 기어를 바꾸고 악셀을 좀 더 세게 밟았다.
루한의 집은 차만큼이나 넓고 좋았다.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루한을 닮은 듯 값이 나가 보이고 깔끔했다. 여기 잠깐만 앉아있어요. 루한이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 집안을 힐끗힐끗 둘러보던 민석은 엉거주춤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얼마안가 부엌에서 침을 돋구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민석씨 무슨 죽 좋아해요? 루한은 죽을 만드는 것 같다. 아무 거나요.
“맛있어요?”
루한이 방긋 웃는다. 저 아직 안 먹었어요… 루한이 장조림을 꺼내러 냉장고로 가자 그제야 민석이 호호 불어 참치 죽을 한 숟갈 떠먹었다. 음식을 많이 가리는 편인 민석이지만, 루한의 죽은 정말 맛있었다. 우물우물 볼을 씰룩이며 죽을 먹는 민석을 본 루한은 아예 테이블에 턱을 괴고 바라본다. 아, 보지마세요.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민석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찬열’ 민석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민석아 너 우리 부서에 유진씨 알지?]
“알지.”
[유진씨가 너한테 관심 있다던데 소개시켜줄까?]
통화 내용이 얼핏 들려와 루한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민석은 어색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아니, 난 괜찮은데.”
[나도 유진씨한테 부탁받은 거라, 밥 한번이라도 먹어.]
“한번? 음… 알겠어.”
[어. 집에서봐.]
밥을 먹겠다고? 한번? 그러다 두 번 먹고 세 번 먹고 계속 먹게 되다가 연락한다는 걸 모르나?! 루한은 화를 참지 못하고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통화를 마친 민석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죽을 떠먹는데… 그래, 죽을 맛있게 떠먹었다.
“민석씨.”
“네.”
“여자 만날거에요?”
뭐, 밥한 번 정도면. 민석이 어물정어물정 답한다.
“죽 맛있어요?”
“네…”
왜 이렇게 내가 눌리는 거 같지, 민석이 루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다시 죽을 떠먹었다. 아니, 이 상황에서 죽이 넘어가!?
“민석씨, 내가 죽 먹여드릴까요?”
“네?”
민석의 말이 끝나자 숟가락을 가로채 죽을 떠 입에 문 루한이 민석에게 입을 맞췄다. 아랫입술을 물고 빨고 늘어지다 벌어진 입속으로 방금 전까지 맛있게 먹었던 죽이 들어왔다. 죽과 함께 말캉한 혀의 이질감까지. 죽 때문에 자꾸 미끄러지는 민석의 혀가 답답한지 루한이 민석의 머리를 감싸고 제 쪽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목으로 넘어오는 죽을 삼키랴, 깊숙이 들어오는 루한의 혀를 받아내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민석은 퍽 괴로운 듯 인상을 썼다. 말캉한 혀가 입안 여린 살을 쓸고 민석의 치열을 골고루 훑어 남아있는 죽까지 모두 민석의 목으로 넘겨준 후에야 루한이 입을 뗐다. 다른 사람의 혀가 어금니까지 올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민석의 입술 가에 묻어있는 죽이 보여 다시 한 번 쪽 하고 입을 맞춘 루한이 민석의 볼을 쓸어주었다.
“나 민석씨 만나는 거 좋아요.”
“……”
“민석씨는 나 안 좋아해요?”
고백한 다음부터 우리가 만나고 있던 건가? 다시 다가오는 긴 속눈썹이 보인다. 그 얼굴이 숨이 막힐 정도로 잘생겨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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