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여주]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8/d/2/8d21b5e1ac7014c996703a143fe810a2.jpg)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1
ㅍㄼ (노잼 주의)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내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집념이 대단했다. 지치지도 않는지 끊길 줄을 모르고 머리 맡에서 계속 울리는 진동에, 나는 짜증스레 눈을 떴다. 내 꿀잠을 방해하는 게 어떤 새낀지나 어디 한 번 보자 하는 심보였다. 붉다 못해 새빨간 색의 머리카락이 내 뒤척임에 따라 함께 부석거리며 흔들렸다.
휴대폰 액정에 수놓인 이름 석 자를 본 나는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따라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만, 그게 다 오늘 아침부터 김민석의 히스테리에 시달릴 것이라는 경고였나 보다. 그냥 전화를 받지 말까? 진지하게 망설이던 그때, 진동이 잠시 끊기고 메시지가 도착했다.
- 우리 좋게 좋게 해결하자. 나는 내 팀원 해고하기 싫어.
잠깐만 이 인간이 지금 뭐래? 해고래? 고작 잠 때문에 하루아침에 내 일터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김민석이 정이고 뭐고, 얄짤없는 성격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손가락을 바삐 움직여 김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이어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얼마 안 되어 김민석이 전화를 받았다.
“예. 존경하는 팀장님. 무슨 일이에요?”
“그건 됐고. 시간이 몇 신데 이제 깼냐.”
“뭐요. 별일 없으면 끊죠? 일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전화야?”
“꼭 무슨 일이 있어야 전화하나?”
아리송한 말이다. 김민석과 내 사이가 그저 일터에서의 동료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인간이 그냥 안부 묻자고 전화할 인간은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고쳐 잡자, 곧 휴대폰 너머로 김민석의 음성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응, 별일 맞아. 일 생겼어.”
“......”
“김종대 보냈으니까 이쪽으로 와.”
“..아니, 오빠? 갑자기 왜?”
“오는 길에 염색은 좀 풀고.”
그럼 끊는다. 그 말을 끝으로 김민석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뚝 끊어냈다. 그나저나 내가 염색한 건 또 어떻게 안 걸까? 이 정도면 진지하게 김민석이 우리 집에 CCTV라도 설치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귀신같은 김민석 같으니라고.
나는 이불을 걷어 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래 누워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한 것이 괜히 기분 나쁘다. 침대 앞 놓여 있는 전신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자유분방하게 뻗친 머리를 보던 나는 도끼빗을 집어 들었다.
그건 그렇고 김민석 지가 뭔데 나한테 염색을 풀라 말라야? 머릿결을 포기하고 숱한 탈색을 통해 힘겹게 얻은 색인데 도대체 무슨 권리로? 툴툴대며 엉킨 머리카락을 빗어내고 있는데 도어록 눌리는 소리가 집 내부에 울러퍼진다. 누구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나 말고 또 누가 알아?
당황스러운 나머지 도끼빗을 움켜쥐고 거실로 숨죽여 걸어 나갔다. 누가 겁 없이 내 집을 들어와?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걸리면 도끼빗으로 후려 맞을 줄 알아! 그리고 현관에는,
“자기야! 오랜만이다 그치?”
“......”
편안한 차림의 김종대가 있었다. 오랜만에 봐서 반가운지 나를 보고 손을 방방 흔드는데, 그게 또 너무 자연스러워서 같이 손을 흔들어 줄 뻔했다. 활기찬 김종대의 종대에 덩달아 집안 분위기까지 소란스러워졌다. 아 맞아.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건 김종대가 아니다.
“..종대야. 비밀번호 어떻게 알았어?”
“아 그거, 내가 너 보고 싶다고 몇 번 왔었잖아.”
“응. 그래서?”
“니가 안 만나 주니까 그냥 비밀번호 땄지.”
“아, 그랬구나.”
“응! 너 잘 때 한 번씩 와서 보고 가고!”
사건을 하나 처리하면 팀원들에게는 개인의 시간이 주어진다.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지겹게 보는 동료들을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만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기 때문에 별다른 일이 없는 이상 그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다.
그리고, 그것을 제일 못마땅히 여기는 팀원이 김종대다. 뻔히 내가 만나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집 앞에 찾아와 생떼를 피운다. 딱 내 얼굴만 보고 가겠다는 둥, 지금 못 보면 상사병에 걸릴 것 같다는 둥. 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녀석을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인 게 수십 번이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몇 주 동안은 정말 녀석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마음 약해지지 말자. 저 문을 열어주면 너는 오늘 하루 그냥 날리는 거다. 자기 최면을 걸어가며 말이다.
아직까지도 내 앞에서 손짓 발짓을 다 해가며 뭐가 그리 좋은지 해맑게 자신의 무용담을 털어놓는 김종대는 곧 저에게로 드리울 죽음의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잡고 있던 도끼빗의 둥근 부분으로 녀석의 등짝을 퍽퍽 때렸다.
너, 그, 변태야? 왜 몰래 들어와서 봐?
“너 자는 거 동영상은 안 찍었어! 진짜야!”
“..사진 찍었지?”
“......”
“씨발..어쩐지 자는데 셔터 소리가 들리더라니.”
맞아도 싸! 넌 더 맞아야 돼!!
사람은 무력에 무릎 꿇기 마련이다. 하물며 짐승들도 폭력을 행사하면 순종하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김종대는,
“왜!! 예쁜 걸 어떡해!!!”
꺾이지를 않아.
* * *
한바탕 매 타작을 한 뒤, 살기 어린 분위기 속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됐고. 김민석 왜 그래?”
“팀장 형 여친한테 차였대.”
“잘 됐다. 여자가 아까웠어.”
“응. 그건 그래.”
오늘따라 히스테리가 더 심한 듯 한 김민석에게도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팀의 조장을 맡고 있는 김민석은 정말 그 성격과 어울리지 않게도 여자가 끊이지를 않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얼마 지나지 않아 김민석의 그 무심한 성격에 질린 나머지 알아서 나가떨어지고는 했다.
일단, 우리 팀원들에게 있어서 김민석이 연애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개 같은 성질머리가 조금 누그러진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에 김민석의 연애를 죽자 살자 반대하지는 않았다. 반기는 편이라고 치자.
여하튼 여자도 인상이 서글서글하니 꽤 괜찮아 보였고, 이번에는 꽤 오래간다 싶었는데, 역시 명불허전 김민석. 일 년을 못 지나고 깨지는구나.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랑은 관련 없는 일이다. 내게 있어서 솔로는 곧 천국이요 커플은 곧 지옥이니.
“그래서 히스테리 장난 아니야 지금.”
“그래도 나보고 염색을 풀라고 지랄은,”
“욕하지 말자? 안 풀면 되지.”
“안 풀면 나 사표 써야 될지도 모르는데?”
내 말에 김종대는 싱긋 웃으며 매고 있던 백팩을 뒤적 거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자랑스러운 듯 무언가를 꺼내 든다. 김종대가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이며 당차게 내민 것은 바로 일회용 염색 스프레이였다.
“이거 봐. 내가 사 왔어!”
“......”
“나 잘했지?”
내가 옅게 웃자 김종대는 나를 따라 웃으며 스프레이를 가볍게 흔든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제 머리를 살짝 내 쪽으로 기울인다. 칭찬해 달라는 듯한 그 행동에 내가 김종대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자 녀석은 답지 않게 두 손으로 저의 얼굴을 가리며 수줍어한다.
“..고맙긴 한데.”
“고마울 것 까진 없어, 자기야!”
“......”
“우리 사이에 뭘..!”
조증이라도 왔는지 계속 웃어댄다. 입가에는 함박웃음을 머금고서 내 얼굴을 흘끗거리며 쳐다보는데,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김종대 정신 차려. 소중한 팀원의 정신 상태를 위해, 김종대의 정강이를 한 대 걷어차주고 입을 열었다.
“이걸 언제 다해?”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강이의 고통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힘겹게 낑낑대던 김종대는 보다 현실적인 내 물음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내 허리까지 내려오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을 훑는다.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도 일이지만, 머리가 워낙 길어서 몇 번 뿌리면 바닥날 것 같다. 그리고, 미처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김종대는 나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그러니까,“
“......”
“한 땀.. 한 땀..”
* * *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예로 한 번 뱉은 말 또한 되돌릴 수 없다. 김종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 강조하던 한 땀 한 땀까지는 아니었으나, 어찌 되었던 김종대는 스프레이를 손수 내 머리카락에 뿌려 주었다.
고단한 염색 작업이 끝난 후에 거울을 들여다보니, 머리는 꽤나 꼼꼼하게 잘 물들어 있었다. 본래의 짙은 붉은 색을 띤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단정한 흑발만이 남아 있었다. 어느 한 군데 빠진데 없이 말이다.
꽤나 의외였다. 내게 있어서 김종대는 워낙 덤벙거리는 녀석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박혀 있었기에 더더욱 그리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우연히 발견하게 된 녀석의 새로운 면모에, 나는 집에서 나와서 김종대의 스포츠카에 오를 때까지도 김종대와 섬세함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심도 높은 고찰을 해야만 했다.
“..어?”
“왜? 안전벨트 안 매?”
“아. 내가, 내가 맬게.”
내 쪽으로 허리를 굽히는 김종대에 화들짝 놀라 몸을 홱 뒤로 빼자, 김종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왜? 안전벨트 안 매? 몇 번을 불렀는데 대답이 없길래.
내가 생각해도 지나친 과민 반응이었다. 내가 맬게. 김종대를 살짝 밀쳐내고 그리 말하자 김종대는 머쓱하게 웃는다. 어째 손끝 마디 마저도 붉어진 것 같다. 민망함에 붉게 물든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며 안전벨트를 매자, 김종대는 마치 내가 벨트를 다 매기 만을 기다렸다는 듯 그제야 조용히 차를 출발 시켰다. 잠깐의 침묵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김종대는 입을 연다.
“너 완전 빨개.”
“시끄러. 운전이나 해.”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진 결론은 이러했다. 김종대는 섬세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종대는 우리 팀의 스나이퍼이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민감한, 섬세해야만 하는 저격수기 때문에.
김종대는 내 지시대로 충실하게 운전에만 집중했다. 덕분에 그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상황, 어색함으로 잔뜩 얼룩져 버린 스포츠카 안에서는 외국 가수의 절절한 사랑 노래가 울러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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