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헤어질까 우리."
한 달 만에 만난 오세훈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학교 다니랴, 아버지 밑에서 일 배우랴 바빴겠지. 만나지 않은 그 한 달 동안 그 녀석은 연락 한 통이 없었다. 아마 너와 나는 서서히 끝을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새 녀석은 더 잘생겨졌다. 턱선이며, 새로 산 듯한 시계며. 오늘도 역시 넌 내 스타일이구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녀석과 마주하고 있었지만 실은 아주 떨렸다. 잘난 저 머리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바라보는 저 눈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 속으로 스쳐 지나가던 찰나, 그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러던가."
그러던가. 2년 넘게 만났던 우리가 고작 '그러던가' 이 한 마디로 끝낼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헤어질 수 있을까. 내 뱃 속에 애기는? 적어도 이유 정도는 물어봐라 좀.
"응, 잘 지내고."
내 생각과는 다르게 우리는 끝이 났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고 미련도 없이.
그렇게 카페를 빠져나왔고 19살의 그 녀석과도 마지막 만남이였다.
뱃 속에 애기.. 그리고 나, 앞으로 어떻게 감당하지.
* * *
오세훈과 헤어진 뒤로 5년이나 흘렀다. 눈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고, 그 새 바뀐 것이 참 많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더라. 두려운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간 날, 1cm도 안 되는 윤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던 그 날부터 내 인생은 남들과 조금은 달라졌다. 남다른 책임감을 느꼈고 바로 알바를 시작했다. 몸은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주로 앉아있는 편의점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그리곤 집에 돌연 가출 선언을 했다. 물론 등짝을 한 대 크게 후려 맞았다. '아, 애 떨어져!' 이 말 한 마디에 집 안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 엄마에게도, 옆에서 날 병신같은 눈초리로 보는 남동생에게도 할 말이 없었다. 침묵은 암묵적인 긍정이랬던가. 그대로 나를 안방으로 끌고가 이것저것 캐물으며 나중에는 눈물을 보이던 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내 손을 잡으며 '지우자' 하셨던 엄마에게 나는 확고한 목소리로 '키울래'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몇 달간 엄마와 울고불며 실랑이 하고 계속된 나의 설득(혹은 고집) 끝에 엄마도 결국 백기를 드셨다. 그렇게 나는 19살에 예비 엄마가 되었고, 현재 5살 윤이의 엄마가 되었다.
"니 애가 밥 달란다 이년아. 밥 먹어 얼른!"
조금은 태평해 지던 요즘, 어느 때와 다름 없이 엄마한테 한 대 얻어 맞았다. 말로 하면 될 것을, 이 엄마는 아픈데 왜 자꾸 같은 곳만 때려?
요즘 조금 쉰다고 고새 눈 밖에 났나 보다. 보던 티비를 끄고 윤이를 안아 식탁으로 가 앉혔다.
"우리 윤이 밥 먹자. 아."
"엄마 나 아이스크리임.."
"씁. 밥 먹고."
식탁에 엄마가 차려준 음식들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아, 맛있겠다. 하지만 우리 윤이 먼저. 밥을 푸고 위에 불고기 한 점을 올려 윤이에게 먹였다. 윤이가 태어난 뒤로는 엄마든 나든 윤이를 먼저 챙기기 바빴다. 내 옷보다는 윤이 옷, 나 먹을 것보다는 윤이 간식이나 장난감 등에 더 관심이 갔다. 엄마가 윤이를 많이 돌봐주는 덕분에 나는 얼마 전에 일자리도 얻었다. 의류업에 관련된 직종으로. 의류업 쪽에서는 꽤 큰 회사였다. 애가 있다는 에로사항이 있는 나에게는 합격 소식이 굉장히 큰 기쁨이였다. 소식을 듣자 마자 엄마와 윤이를 부둥켜 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오예! 엄마 딸 백수 탈출했어요! 윤아 엄마가 장난감 많이 사줄게! 아싸!!!
***
"엄마, 나 다녀올게! 윤아 할머니 말 잘 듣고!"
첫 출근 날인데 지각하게 생겼네. 아, 택시는 왜 또 안 와. 내가 택시 잡을 때만 택시가 없는 것 같지 왜? 배도 고파 죽겠는데.. 아이씨. 멀리서 빨간불을 켜고 달려오는 택시를 두손으로 멈추게 했다. 급하게 타고는 회사 이름을 말하니 곧 출발했다. '아저씨, 좀 빨리 가주세요.' 라는 부탁도 잊지 않고. 택시는 부지런히 회사로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도착한 회사 앞에서 잠시 멈춰섰다. 숨을 가다듬고는 속으로 혼자 파이팅을 외쳤다. 잘해보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래저래 바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합격 통보가 왔을 때 그냥 3층 디자인1팀으로 출근하면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3층으로 올라가서는 말씀하신 디자인1팀을 찾았다. 3층 디자인1팀.. 3층 디자인1팀.. 어디지? 여긴가? 호수만 적힌 유리문에는 설명이 없었다. 안을 슬쩍 보니 이곳저곳 서 있는 마네킹과 널려있는 샘플들이 보였다. 디자인 팀에 있을 법한 물건들이니 대충 여기 같기는 한데. 여기가 맞나? 아, 디자인 1팀이 아니면 어떡해. 앞에서 서성이다 괜히 안에서 나오는 누군가와 마주치면 불편할 것 같아 엘레베이터 앞 쪽으로 발걸음 돌렸다. 역시 물어보고 들어 가는 게 나을라나. 물어볼 만한 사람이? 음..
어, 저기 있다.
"저기요."
엘레베이터 앞에 서 있던 남자의 팔을 슬쩍 잡으며 물었다.
"디자인 1팀이 저긴가요?"
엘레베이터를 보며 엘레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리던 그 남자가 뒤돌아보던 그 순간,
회사에 들어오기 전 파이팅을 외쳤던 것이 물거품이 됐다. 진짜 시발, 세상 좁기도 하지.
날 보고는 내심 놀란 눈치인 듯 살짝 움찔했지만 이내 곧 제 원래 표정을 유지하며 나에게 더 깊게 눈을 맞춰오는 듯 했다.
"오랜만이야."
시발 오랜만은 개뿔. 얘를 여기서 만나고 지랄이지 왜.
나 인생 최악의 순간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최악의 순간이였다.
오세훈,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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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연재해 보려고 합니다!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여주 이름을 뭘로 할까요 김여주? 김징어? 김블리? 뭐가 좋을까요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머리 위로 하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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