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SAT 며칠 전부터 한솔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불안하다, 이럴 아이가 아닌데. 초조해진 효상은 괜히 입술만 잡아뜯고 있다. 한솔이 어디로 갔는 지도 알 수가 없다. 분명 집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솔에게 연락이 닿았을 때, 휴대전화 너머로 어렴풋이 차 소리가 들렸었다. 분명 어디론가 간 것은 맞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일전에 한솔과 함께 갔던 곳은 이미 다 가봤지만 어느 곳에도 한솔은 없었다. 한솔의 흔적도, 기척도, 하다못해 닮은 사람 조차도 없었다. 한솔이 사라진 지 4일, 한솔을 찾아 해메인 지도 3일 반.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한솔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효상은 결국 한솔에 대한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또 다시 하루를 흘려보냈다. -04.5.MON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나쁜 생각 하지 마」 그토록 걱정하던 한솔에게서 온 문자였다. 효상은 바로 한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솔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효상의 전화를 받아 주었다. -형, 잘 있었어? "너 지금 어디야." -나 보고싶지? "김한솔," 효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구는 피가 말리는 기분인데 지금 그걸 말이라고 물어보나. "보고싶어. 보고싶어서 미칠 지경이야." -안돼. 나쁜 생각 하지 말랬잖아요. "어디야, 지금?" -모르겠어. 좀 있다 갈 거야. "빨리 와. 보고 싶어." -나도.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효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안도인지 걱정인지 모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쁜 생각 하지 말라던 한솔의 문자와 방금 전 통화. 사라지기 전 한솔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탁하게 풀린 눈, 무표정한 얼굴. 마치 혼이 나간 듯한 모습에 이따금씩 의미 모를 말을 한번씩 제게 건네고는 했다. 효상은 모르는, 또 너무도 여린 한솔이 견뎌내기엔 벅찬 일이 있었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효상은, 한솔에게 화를 냈었다. 왜 무슨 일인지 말도 안해주냐고, 내가 너에겐 유령이냐고. 그렇게 한솔에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순간에도, 한솔은 탁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그 조그만 손으로 제 손을 잡으며, 미안하다는 말만 끊임없이 되풀이했고, 마지막에는 한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이 한솔이 사라지기 전 날 밤이었다. 효상은 종이를 꺼내들었다. 무작정 펜을 들고, 아무 생각이나 다 끄집어 내 종이위로 옮겨냈다. 그러다가 종이를 부욱 찢고 새 종이를 가져와서는, 1부터 100까지 무작정 세로로 길게 써내려갔다. 그 숫자들 옆에 다시 하나하나 무어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종이를 꽉 채우고, 효상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한솔이 사라진 지 6일, 효상이 한솔을 찾아 해메인지 5일 반. 또 시간은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갔다. -04.09. Fri 그 이후로는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았다. 어디를 갔을 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답답함만을 느꼈다. 괜시리 책상만 탁탁 손끝으로 두드리다, 이따금씩 한숨을 땅이 꺼져라 푸욱 내쉬다, 그러면서 한솔을 기다리고 있었다. '♩♪♬-' 실로 오래간만에 효상의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효상은 혹시라도 전화가 끊길 새라 재빨리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효상씨, 그때 실종신고 접수하셨던 분을 찾기는 찾았거든요? "찾았어요? 어디에 있어요?" -그게.. 문제가 생겼어요. "무슨..문제요?"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불안함이 커진 걸까. 효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오래지 않아 휴대전화를 붙잡고 있던 효상의 손끝으로 번져나갔다. -일단 서로 와서 이야기 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언제 가면 될까요?" -시간 될 때 오세요. 조금... "그러면 지금 갈게요." -아, 네에..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김과 동시에 효상은 긴 한숨을 내쉬며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쌌다. 서에 가서 들을 이야기가 무엇이든 효상은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들어야 할 일이다. 효상은 집을 나서 일전에 한솔이 사라졌노라고 신고를 했던 경찰서로 향했다. 한솔이 사라진 지 9일, 효상이 한솔을 찾아 헤메인 지 8일 반. 효상에게는 이 모든것이 그저 지옥으로 느껴질 뿐이다. -04. 17. SAT "한솔아, 잘 잤어?" 바닥도 벽도 시리도록 흰 병원. 효상은 눈을 꼭 감은채 누워있는 한솔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새 많이 수척해진 듯 한 한솔의 모습이 효상의 마음을 더 아파오게 만들었다. 한솔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즐비한 기계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지금의 한솔이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알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효상은 남은 손을 뻗어 한솔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해 주고는 다른 손으로 잡고 있던 한솔의 손을 감쌌다. 솔직히 말하자면, 효상은 한솔이 미웠다.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연락도 없다가 한참만에 제게 보여준 모습이 고작 이런거라니. 그동안 한솔도 많이 힘들었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딘가에서 울컥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내리누르기에는 한솔의 모습이 영 말이 아니었다.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 고운 얼굴에, 효상을 향해 달려오고 효상과 함께 걸었던 두 다리에, 효상의 손을 맞잡고는 했던 두 팔과 손에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깨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며, 설령 한솔이 깨어난다 해도 상태가 좋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의사는 비웃는 듯한 어투로 한마디 말을 뱉어놓고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간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 간호사가 들락거리긴 하지만, 일주일 내내 밥도 잘 먹지 않고 그 일인 병실에서 한솔의 옆을 내내 지키고 있는 효상이었다. 한솔 만큼이나 효상도 야위어 가고 있었다. "오늘도 계속 여기 계시는 거에요?" "네. 걱정이 되서.." 조용히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간호사 한명이 한솔의 상태를 보다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네." 효상은 자리에 앉아 다시 한솔의 손을 꼭 잡았다. 방금 전에 비해 조금 차가워진 것 같은 한솔의 손에 효상은 괜히 불안해졌다. 사실 일주일동안 아무 일 없이 한솔이 그저 누워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몇번 불안했던 적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큰 불안감이 효상의 마음속에 자리잡아 빠르게 커져가고 있었다. 효상은 한솔의 손을 더 꽉 잡아쥐었다. "한솔아, 아니지, 응?" 효상의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한솔이 떠나도록 해 주기에는 못나게도 효상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한솔에게 해줬어야 했던 말, 해주고 싶었던 일, 함께 가고 싶었던 곳, 이런저런 것들이 효상의 머릿속에 한가득 차올랐다. "한솔아, 들리지? 그치? 아직 가면 안돼, 너 이렇게 가버리면 진짜 나쁜애야." 다급해진 마음에 효상은 어찌 할 줄 모르고 자꾸만 자꾸만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효상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한솔이 이대로 저를 떠나가 버릴까봐 무서웠다. 그런 효상의 마음을 더욱 갉아먹는 것은, 이 순간 효상이 한솔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곁에 있어주는 것을 빼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저주스러운 현실이었다. -04. 18. SUN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솔의 손은 예전처럼 다시 따스해졌지만 효상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하루를 꼬박 지새우고 난 효상의 상태는 영 말이 아니었다. 어제 한솔의 모습이 불안하고 위태로웠다면 오늘은 효상의 모습이 훨씬 더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다. 한솔이 사라지고, 믿을 수 없는 일을 겪고, 그렇게 돌아온 한솔의 곁에 있어주는 2주라는 시간동안 효상은 너무 많이 약해졌다. 효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효상은 자신이 없었다. 한솔이 제 품으로 돌아온다는 확신도 없었다. 어쩌면 한솔은 이미 효상의 곁을 떠났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효상의 기대-한솔이 다시 웃으며 제 손을 꼬옥 맞잡아줄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한솔을 보내지 않고 억지로 붙들어 잡아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효상의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효상은 한솔의 손을 잡고, 한솔이 누워있는 침대 빈 공간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이따금씩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는, 효상이 그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 - "그리고?" 그렇게 작은 키는 아니지만, 옆의 남자 때문에 괜히 작아보이는 체구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정리하며 옆의 키 큰 남자에게 말을 붙였다. "그 한솔이라는 사람은 죽었고.. 효상씨는 어디서 뭐하는지 몰라. 사건 종결 되고 나서는 연락을 잘 안했으니까." "왜? 살릴 수 있었다며." "모르겠어, 그래서 미제사건이기는 한데.." "뭐야.." "뭐가," "혹시 그 사람 최근 사진 있냐?" "그나마 가장 최근이..여기 있다. 이거." 효상의 최근 모습이라며, 큰 남자는 조그마한 사진 한 장을 작은 남자에게 건넸다. "뭔가 이상한데? 그 한솔이라는 사람 죽은거 맞아?" "응. 진료기록도 있는데?" "어...아니, 근데 뭔가 이상한데?" "뭐가 또. 나 밥먹으러 간다?" "갔다 오던가." 홀로 남겨진 남자는 사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한솔은 분명 죽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분명히 효상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으리라. 남자는 한숨을 옅게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한참동안 들여다 보던 효상의 사진을 올려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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