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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히비



한 포스팅에 두개의 글을 실었습니다.혹시 모르니 스압주의!


[05]





" 괜찮아? "
" 네,조금 나아졌어요... "



꿀물을 마시며 시계를 쳐다본다.술을 그렇게 많이 마신건 절대로 아니였다.눈치보며 홀짝거리는 사람이 어떻게 많이 마실 수 있을까.쓰린 속을 달래려 배를 쓰다듬으며 한창 한가한 시간에 자리에 앉아 꿀물만 두 컵째 홀짝이고있었다.


" 성유야,이게 이거 맞지? "
" 아...네.맞아요. "


귀찮아 죽겠는데 왜 말 걸고 난리야.고개를 숙여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쓰린 속에 짜증까지 더해져 짜증이 점점 절정으로 걸어가기시작했다.사장이 팔을 꾹 찌르자 고개를 든 성규가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 너 아는사람 아니야?거래처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
" ...네? "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자 뒤돌아있던 몸이 앞으로 몸을 돌렸다.꿀물을 여전히 입에 대고있던 손이 바닥으로 추락할뻔한 순간이였다.윤두준이 어째서 이 곳에 서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제 꿀물을 보며 병을 툭툭 건드리곤 입을 연다.속 많이 안좋구나.어쩌라는 식으로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자 실실 웃으며 한발짝 성규에게로 다가갔다.한층 더 가까워진 거리에 침을 삼키고서 가만히 서 있었다.꿀물을 뺏어들고 한 모금 목에 털어넣자 성규가 당황한 듯 두준을 밀쳤다.아,아파.아픈 듯 울상을 짓는 얼굴에도 아랑곳않고 입을 열었다.


" 너 뭐하는거야,빨리 가! "
" 나 섭섭해,성규야. "
" 뭐,여기선 그렇게 부르지 마! "


알았어.샐쭉 웃으며 옆에있던 쓰레기통에 병을 던져 넣고는 두준이 성규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불안한 기운이 엄습해오고있었다.시선을 어디로둬야할지 몰라 가까스로 고개를 숙이자 두준이 말했다.




" 너 누나모습으로 이러는거 싫지? "
" 당연하지! "


고개를 치켜들자 머리가 살랑거렸다.재빨리 목 뒤를 매만져 점을 가리는 모습을 보고선 호탕하게 웃는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성규가 입술을 달싹였다.불안해하는 모습은 누나와 매우 상반되는 모습이였다.그것에 바람빠지게 웃자 성규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 그럼 내가 안 말하는 대신에 조건이 있어. "
" ...말 해봐. "


들키는 것보단 낫겠지.그런 생각을 하고있을즈음,제 앞으로 내밀어지는 휴대전화를 보고서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여전히 두준은 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풀며 말했다.



" 가끔씩 나랑 놀자.김성유 모습 말고,김성규 모습으로. "
" 뭐...? "



마른 입술을 꽉 깨물자 금방이라도 터질것처럼 아려왔다.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전화번호좀,말하는 두준에 전화기를 받아챈 성규가 손가락을 움직여 제 번호를 찍어냈다.이걸로 어느정도 들킬 위험은 줄어들었지만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누나와 무슨 관계였을까,아직도 의문점은 피어오른다.순간 가게안에있던 사장을 떠올리고는 성규가 두준의 어깨를 밀어냈다.


" 빨리 가! "
" 응,일 열심히 해.성규야,이따 문자 봐. "
" 성규라고 부르지말라고! "


알았어,성규야.저를 비웃는것처럼 행동하는 두준에 기분이 나빠진 성규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종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린 사장이 입을 열었다.애인이니? 그 말에 기분이 더 나빠져 손과 머리까지 흔들어대며 극히 부정한 성규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분 나쁘게하는데엔 선수야.





" 오늘은 도시락 싸와서 전 안사먹을래요. "
" 그래?그럼 가게 좀 잠깐만 봐줘.나 먹고올게. "
" 네. "


도시락통을 꺼내 젓가락을 들자 테이블이 진동했다.손을 더듬거려 휴대전화를 집자 배경화면에 떠있는 문자에 젓가락을 입에 물고서 확인을 누른 성규가 크게 실망했다.
우현인 줄 알았건만 모르는 번호였다.문자가 하나 더 도착하자 성규가 다시 눈을 반짝였다.


[ 나 윤두준이니까 저장해 ]


" 뭐야... "


[ 이번주 토요일에 놀자 ]



끝까지 윤두준이였다.한껏 실망하며 자판 위에서 손가락을 움직인 성규가 답장을 보내고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 어 ]







*





해가 뜨자마자 눈도 따라 뜨였다.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자 처참한 몰골이 비춰지고있었다.볼일을 보고나서 방으로 들어와 본능적으로 누나의 옷을 꺼내어입었다.휴대폰을 보자 토요일을 알리고있음에 성규가 당황하며 의자에 앉아있는 제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이미 누나의 옷을 입고 단장을 한 모습이였다.꿍얼거리며 한커풀씩 옷을 벗어내다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섬거리며 주워들었다.



" 아! "



갑자기 떠오른 두준과의 약속에 성규가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내가 걔를 만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거야.궁시렁거리면서 이미 붙여버린 가짜 머리칼을 떼어내며 침대에 주저앉았다.시계를 바라보자 약속시간과는 너무 먼 숫자를 가리키고있었다.완전한 직장인이라도 되어버린 듯 몸이 일어나는 시간은 정확히 6시를 기억하고있었다.몸이 기억하는 시간대로,그리고 그 시간대에 하는 행동을 몸에 베어버리자 저도 모르게 누나의 옷을 갖춰입고있었다.


침대에 앉아 발장난을 치다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성규의 시선이 온통 휴대전화로 쏠렸다.벨소리가 울리자 몸을 움찔거린 성규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여보 아닌데요.
" 김명수! "
- 뭐 해?
" 나,그냥 눈이 일찍 떠져서.너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
- 오늘 출근 좀 일찍해야되서.



그렇구나.오랜만에 듣는 명수의 목소리에 성규의 얼굴에 미소가 떠다녔다.그동안 누나 행세만 하느라 제대로 만나지도못하고 꽤나 보고싶었는데 전화라도하니까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었다.발을 위아래로 흔들며 말하던 성규가 갑자기 멈춘 상대편의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명수야,불러도 대답이 없는 반대편에 의아해하고있을 즈음,다시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 아...미안.신호가 안좋아서.
" 아냐,괜찮아!나 약속있어서 이만 끊을게! "
- 약속?
" 응,끊어! "



전화를 끊은 성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욕실로 향했다.통화를 종료하기전에 약간 웅얼거리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하고선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 되게 늦으셨네요. "
" 헉,헉... "



땀을 흘리며 분수대 근처의 벤치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시계를 한번,힘들어하는 그를 한번,번갈아본 두준이 입을 열었다.정확히 5분 늦었어.안 그대로 땡볕더위에 길까지 헤매서 무작정 뛰어오자니 등 뒤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아침에 회색을 입을까 검정을 입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검정을 입은 성규의 선택이 이번만큼은 매우 딱 들어맞았다.

후우,고개를 젖히며 목 부분을 잡아당겨 바람을 쐬던 성규가 옆에있던 두준의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아프다며 엄살을 피우는 그를 보고서 제 엄지와 중지를 한번 후,분 성규가 말했다.



" 5분 늦은거가지고 되게 늦었다니.나 여기 길 헤매다가 뛰어온거란말이야! "
" 네네.남자가 되가지고 쪼잔하게. "
" 쪼잔한건 너 아냐? "



피곤하다.손 부채질을 해도 더위는 가시지않았다.결국 나무그늘 밑에서 잠시만 쉬기로 한 둘이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가자마자 벤치에 털썩 앉은 성규가 두준을 쳐다보았다.앉지않는 그가 약간 이상했는지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어번 치자 그제서야 앉기 시작했다.


음료수를 사온 두준을 바라보며 건네받은 성규가 캔을 볼에 가져다대었다.누나와 어떤 사이였을지는 몰라도 지금만큼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스쳐지나갔다.김성규란걸 들켰을 때의 그 밤과 비슷한 느낌의 시원함이였다.옆에서 제 짧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감탄하던 두준을 째려본 성규가 두준의 허벅지를 때리며 옆으로 밀었다.




" 아! "
" 머리는 왜 만져. "
" 그냥...신기해서.어떻게 이렇게 짧았던 머리가 길게 변신할 수 있는거야? "
" ...궁금하면 너도 여장해봐. "
" 싫어!나는 누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
" ...쫑알대지마,입 틀어막기전에. "



박력있다-,옆에서 놀리는 투의 말에 성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있는 두준의 앞에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섰다.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흥미롭다는 감정이 가득 차올라있었다.



" 어디 갈건데? "
" 아,맞아. "



성규를 따라 저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두준이 성규의 팔목을 잡았다.



" 사격장! "




그 말을 끝으로 말 없이 무작정 팔을 이끌고 달리는 두준에 성규가 힘 없이 끌려가며 헉헉거렸다.아까 뛰어오느라 체력을 다 소비한지 오랜데,다시 또 뛰자니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한다.덥지도 않은지 땀도 많이 흘리지않는 두준을 바라보며 성규가 간간히 두준의 손등을 꼬집으며 뛰었다.얼마 안가 도착한 건물 앞에서 기대 숨을 내쉬는 그를 보며 두준이 성규를 이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헉,헉.힘들어... "
" 삼촌!저 오늘은 친구 데리고왔으니까 싸게해주세요! "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기지못하고 뒤에있던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성규가 의자를 끌고 가 두준의 옆모습이 보이는 위치로 기어가듯 의자를 질질 끌며 앉았다.어린애같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진지한 모습만이 남아 집중하며 사격하는 두준을 바라본 성규가 생각했다.



아까까지만해도 '어린애=윤두준'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고있었는데 지금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성인 남성이였다.그런 두준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성규를 알아챈 것인지 두준이 갑자기 총을 내려놓고서 그를 일으켜세웠다.갑자기 일으켜세워진 몸에 당황할 새도 없이 총을 쥐어주는 두준에 성규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 너도 한번 해봐. "




그 말에 성규가 총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사격하기 시작했다.두준을 구경하면서는 분명 쉽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손에 쥐고있자니 땀이 차올라서 쉽게 미끄러졌다.바지에 손바닥을 벅벅 문지르고나서 계속 사격을 이어나가도 맞추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결국은 헛발이였다는 것이다.그런 성규를 바라보며 웃은 두준이 총을 쥐고 성규의 자리에서 그대로 사격했다.하는 것마다 모두 다 정확히 맞추는 모습이 제법 남자다웠지만 심통이 난 성규가 씩씩거렸다.



" 이거 재미없어,다른거 하자! "
" 괜히 지가 못하니까. "
" 아냐,나 완전 잘하는데 따분해서 그래! "


귀 끝이 살짝 벌개진 성규를 보며 크게 웃은 두준이 성규에게 이끌려 건물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하고싶은거 있어?두준의 물음에 당황했다.딱히 하고싶은걸 생각하고 무작정 나온게 아니였다.그저 사격을 너무 잘하는 두준을 보며 괜히 심통이나서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끌고 나온건데 저렇게 물어보니 할 말이 사라졌다.아무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던 성규가 시야에 잡힌 인형뽑기를 발견하고서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저,저거! "
" 저거? "
" 응.나 인형뽑기 하고싶어! "



다 큰 놈이 인형은 뭐야.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인형 기계로 다가가자 두준이 성규를 멈춰세웠다.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자 갑자기 성규를 잠시 옆으로 밀더니 동전을 넣고 말했다.



" 뭐 가지고싶어? "
" 어? "
" 내가 뽑아줄게.나 이거 완전 잘해. "
" ...그럼,저기 마시멜로 인형. "



알았어.자세를 잡은 두준이 성규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인형 뽑기에 온 신경을 쏟아부었다.분명 뽑는것은 두준인데 어째서 자신이 손에 땀이 나는것인지 모르겠다.따라 숨 죽인 성규가 조용히 인형을 바라보았다.



" 뽑았다! "
" 와! "


너 진짜 잘 뽑는다.새삼스레 감탄하는 그를 보며 인형을 덥석 품에 안겨준 두준이 말했다.이젠 내가 해보고싶은거 괜찮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 보이던 오락실로 이끌려 들어갔다.시끄러운 게임소리가 들려오고,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오자 성규가 약간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던 중 제 미간을 문지르는 두준에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두더지 잡기 부스 앞에 와있었다.

이미 뿅망치를 들고 열심히 두더지를 두들기는 두준을 보며 성규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애=윤두준' 이라는 공식이 다시 성립한다고 생각한 순간이였다.두더지가 나왔다,들어갔다를 반복했다.이 순간에도 갑자기 누나가 생각나서,그리고 남우현이 생각나서 스스로 뺨을 때리자 두준이 열심히 움직이던 팔을 멈췄다.



" 왜 그래? "
" 조금 어지러워서. "


사실이였으니까 거짓말은 아니였다.누나가 고등학생 때 숙제로 그려내던 두더지 그림이 기억나서 기분이 약간 가라앉았다.누나는 그렇다고쳐도,남우현은 그렇다고 칠 수 없었다.갑자기 그가 왜 생각난건지 알 수 없었다.기분이 오묘해지자 얼굴이 잠시 붉어졌다.얼굴에 열시 몰리는걸 느끼고서 손부채질을 하며 열을 식힌 성규가 옆에있던 펀치기계로 걸어갔다.



" 김성규,어디 가? "
" 나 이거 할려고. "




누나랑 오락실 오던게 몇년 전일까.심호흡을 한 성규가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쳤다.딱히 높지않은 점수에 실망을 하자 옆에서 두준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비웃었다.


" 고작 점수가 이거밖에 안나오냐? "
" 배고파서 그런거거든? "
" 창피해하는거 봐. "
" 아니야! "



그럼 밥 먹고 다시 이거 쳐서 점수 보자.두준의 말에 오기가 생겨 고개를 마구 끄덕인 성규가 오락실을 나서서 보이는 돈가스집을 가리켰다.저거 먹고싶어.두준이 성규를 데리고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고있을 때,물을 마시던 두준을 바라보며 성규가 생각에 잠겼다.어떻게 나를 알고있었을까,물어보고싶다.생각을 곧바로 실천에 옮겨졌고,그것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 우리누나랑 어떤 사이였어? "
" 와,너무하네.나 기억 못해? "
" 기억 안 나. "


두준이 물컵을 내려놓고 포크를 챙기며 말했다.




" 나 김성유 불알친구야!여자애한테 불알친구는 좀 그런가. "
" 너랑,우리 누나랑? "
" 그리고 전 애인. "



건네는 포크를 받던 성규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다.제 앞에 있는 남자가 누나의 애인이였다.조금,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놀라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전 애인이라면 우현을 만나기 전의 애인이란 소리일까.그러면 우현은 그 사실을 모르고 윤두준하고 이렇게 잘 지내고있었던 걸까.조금 떨리는 입술을 매만지며 태연한 척 다시 포크를 꺼내들자 두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 너 어릴때 나 되게 잘 따랐어.너 7살때 나 9살이였으니까.7살까진 너 나 잘 따랐다. "
" 근데...왜 내가 기억 못하지?"
" 나 이사가고 미국 다녀와서 그럴걸. "



전 애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더 받기도 잠시,그때 보았던 앨범속의 꼬마가 두준이였다는 걸 깨달은 성규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여러모로 충격적인 사실에 머리가 잠시 혼란스러웠다.더욱 어색해지려던 순간에 희망줄처럼 나타난 돈가스에 성규가 억지로 웃으며 포크를 쥐었다.더 이상 어색한 기운을 만들고싶지않아 재빨리 돈가스를 입에 넣으려던 성규에게 두준이 말했다.




" 나 너희누나 장례식도 다녀왔어."



정적이 생겨났다.전 애인의 죽음을 맞이하고 전 애인의 모습을 한 동생을 보았다.그 사실마저 알아차린 성규가 한 없이 불쌍해지고 초라해져보이는 두준의 모습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경험해본 적 없는 애인의 죽음이였지만 공감 할 수 있었다.사랑하는 이가 죽었다는 사실은 그에게도,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였기에.


갑자기 안타깝게보이는 모습에 아파왔다.아픔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가까운 관계의 사람이 죽을수록 자신의 생마저 조금씩 사라져가는 그 느낌을 혼자서 끌어안으며 견뎌야만했다.계속 웃고있는건,아마도 누나와 연인이였기때문이겠지.항상 웃는걸 좋아하던 누나는 언제나 웃었다.영정사진에서도,활짝.


누나의 전 애인마저 알아차렸는데,우현이 알아버리면 어떻게 될까.원망하고 비난하겠지.그 생각을 하며 마저 돈가스를 씹어먹던 성규가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슬퍼지는 생각에 코 끝이 찡해왔다.이미 알아차린 거였으니 어차피 말할 시기는 성큼거리며 다가와있었다.그리고,오늘은 그 날이였다.




" 나 왜 누나 행세하면서 남우현 속이는지 알아? "
" 어? "
" 누나가 유언했어.남우현한테 자기 죽은거 알리지말라고.난 아직도 누나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



말하면서 조금은 목소리가 떨려왔다.곧 우는 소리로 바뀔 것 같아 두준이 무작정 성규의 고개를 들어올렸다.눈에 눈물을 담고있는 성규의 모습에 손으로 그것을 닦아준 두준이 입을 열었다.



" 글쎄...난 알 것도 같은데. "
" 뭐? "
" 밥이나 드세요. "


어린 아이에게 꾸짖는 것처럼 말하는 두준에 꼬리를 내린 성규가 다시 돈가스를 먹기 시작했다.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휴대전화를 꺼내자 명수에게서 와있는 문자에 성규가 반갑다는 듯이 웃으며 문자를 확인했다.



[ 고개 옆으로 돌려봐 ]



당장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유리로 된 가게 벽 밖으로 명수가 보여와,성규가 손을 흔들었다.그런 그를 보며 따라 돈가스를 먹던 두준이 갸웃거렸다.



" 뭐 해? "
" 저기 밖에 내 친구 있어서. "


딸랑,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뒤이어 명수가 성규와 두준의 앞에 다가왔다.얼핏 사나워보이는 인상에 두준이 인상을 찌푸렸다.쟤 지금 나 노려보는거야? 두준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았다.





[06]




문이 열리고 발걸음이 가까워졌다.테이블 앞에 서서 앉아있는 둘을 번갈아보다가 자연스럽게 성규의 옆자리로 앉는다.계속 입에 무언가를 우겨넣으며 먹던 그가 손을 뻗어 갈라진 앞머리를 정리했다.머리카락이 우스스 흩어지다 정갈해졌다.

어째선지 씩씩거리는 느낌의 명수를 보며 성규가 돈가스 하나를 명수의 입에 구겨넣었다.갑작스레 들어온 음식에 놀라기도 잠시,다정하게 물어오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 화났어? "
" ...아니. "


여자친구가 남자친구 화 풀어주려고 일부러 애교부리는 느낌이다.그러자 갑자기 부끄러워지는 기분이 들어 얼굴을 살짝 붉히다 고개를 저은 명수가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많이 먹어.



" ... "



무슨 애인이냐.심드렁한 표정으로 식어가는 돈가스도 무시한 채 알아서 자기들끼리 잘 놀고있는 모습에 왠지 모를 소외감아닌 소외감을 잠시 느끼고있을 즈음,고개를 돌리자 가게 밖으로 보이는 우현에 두준이 당황했다.
여전히 서로 떠들고노는 성규에게 두준이 손을 뻗어 성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작작 놀고 빨리 숨어,남우현 밖에있어! "
" 뭐? "



포크를 입에 앙,문 채로 몸을 구부정하게 숙이자 뒤에서 받쳐오는 팔에 성규가 몸을 기대었다.안기다시피하는 꼴에 얼굴이 붉어진 명수가 조금만 더라는 식으로 그를 가득 끌어안았다.우현이 지나가자 셋 다 안도감에 빠졌다.그 안도감에 허우적거리기도잠시,뒤이어 딸려오는 종소리에 두준이 고개를 뒤로 돌리자 우현과 함께 들어오는 서너명의 무리에 두준이 당황하여 입을 뻐끔거렸다.

차마 말을 꺼낼 상황이 아니였다.고개를 빼 지켜보자 다행히도 조금은 멀다고 느껴질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명수가 제 모자를 매만졌다.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지 자꾸만 제 품에서 빠져나가려는 성규가 내심 섭섭하기도하였지만 우선은 숨겨주는게 먼저라고 생각이 드니까,결국 고민없이 머리를 감싼 제 검은 모자를 벗어 성규에게 씌우곤 입을 열었다.



" 여기 남우현 들어왔어. "
" 진짜? "
" 작게 말해. "


맞다.저 혼자 입을 틀어막다가 손을 뗀 성규가 허리를 숙였다.그런 그의 어깨를 잡아 허리를 피게하자 성규가 눈치를보며 시선을 아래로 바꾸었다.



" 내 모자 쓰고 먼저 나가.나랑 이 사람은 뒤따라갈게. "
" 응.고마워. "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자를 푹 눌러쓴다.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우현의 기분이 오묘해졌다.모자를 눌러쓰며 나가는 뒷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해서,손을 뻗을뻔한 본능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아,우현아.다른 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한껏 팔리려고 한 정신이 되돌아와 고개를 돌려 어색하게 미소지었다.자꾸만 신경이 쓰여 곁눈질을 해보고 아예 고개를 돌려보기도했지만 그는 이미 이 공간에 남아있질않았다.공기와 함께,가게 밖을 나선 지 오래였다.




" ... "
" ... "



어서 자리를 뜨고싶은 분위기였다.아니,사실은 명수에게만 적용되는 기분일 수 도 있다.서로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둘만 남자 미묘한 기류가 흘러내렸다.그럼에도 태연스럽게 음식을 입 속에 집어넣는 상대방을 보며 인상을 약간 찌푸린다.이미 가게 밖을 나선 성규의 음식은 조금씩 굳어가고있었다.그리고 그것을 따라 포크로 음식을 찍어내던 명수의 표정도 굳어가기 시작했다.


금방 뒤따라가겠다고 분명 말했지만 아직 할 말은 남아있었다.명수가 입을 열었다.



" 성규랑 아는 사이예요? "
" ...성유랑도 아는 사이고,성규랑도 아는 사이지. "
" ... "
" 성규가 나한테 들켰거든. "


자기가 누나행세하는거.그 짧은 말에 짧은 순간이 얼어붙었다.충격을 잔뜩 품은 그는 입을 벌리며 놀라하고있었다.입영통지서를 받고 하루종일 눈물을 쏟아부었던 그 날과 마찬가지로 가히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헤엄치는 그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 성유 누나랑 알고있었어요? "
" 당연하지.소꿉친구야.전 애인이고. "
" ..."


애인이라.성규의 모습에 충격 받았겠지.명수가 침을 삼키며 나긋한 두준을 쳐다보았다.연인의 죽음을 아무렇지도않게 보고 그 행세마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있는 모습까지 모두 안쓰러워져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테이블 밑으로 떨구었다.
흥미롭게 쳐다보며 웃는 두준은 확실히 즐거워보였다.성규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재미있었고,마음껏 당황하는 그 모습도 재미있었기 때문이였다.두준이 닫혔던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 그리고 성규랑은,"
" ... "
" 곧 애인사이가 될거고. "



아까완 다르게 말이 없어졌다.단번에 그것을 알아채고서 턱을 괴고 고개를 약간 살랑거리던 두준이 말했다.너 김성규 좋아하지? 명수는 답이 없었다.답이 없는 그가 답답한지 옆에있던 물컵을 들고 물을 한번에 마셔대는가 하면,그의 휴대폰을 보기위해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달려드는 모습도 보였다.

왜 말이 없어.반포기상태의 두준을 노려보던 명수가 말했다.






" 네,좋아하니까 애인이네 어쩌네말아주세요.선은 지키셔야죠. "
" 그런가? "
" 좋아하지도않는 사람가지고 노는게 얼마나 쓰레기같은 짓인데. "



침착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극도로 흥분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침착한 척,자신은 어린애가 아니라는 척의 옷을 뒤집어쓰고서 정작 속껍질은 매우 흥분해있었고,감정하나 조절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였다.자신의 모습을 대강 알 것 같았지만 알지않기위해 명수가 제 모습에서 고개를 돌렸다.

아주 추하게 그에게 대하고있는것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않아왔다.참을 수 없는 웃음을 결국 밖으로 쏟아내버리자 명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 근데...그런 쓰레기짓하고있는건 성규 아냐? "


명수의 눈이 어지러운 듯 느릿히 감겼다 뜨였다.참아,머릿속으로 참으라고 속삭이는 성규에 명수가 결국 제 분에 이기지못하고 거칠게 일어났다.



" 성규는 제가 데리고 집 가겠습니다. "


제법 많이 화난 듯 뒤도 안돌아보고 그대로 나가버리는 명수를 보고 두준이 미소지었다.화나는건 너만이 아니다.나도,


" 전 애인이 죽었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나겠어. "


중얼거리는 두준이 손을 경련하듯 떨었다.너도 내가 그 아이를 농락해서 화나잖아,나는 아직도 슬픈데 너는 나를 이해 못하잖아.연인의 죽음이 아니니까,너는 그저 내가 싫은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뿐이잖아.


" ...어리네. "



나도 집이나 갈까,기지개를 키며 자리에서 일어난다.얼핏 보이던 얼굴이 약간은 우는 모습으로 보였다.





" 김명수,왜 이래! "



나오자마자 팔을 잡아끌어 집으로 향하는 길로 걸어가는 명수의 팔을 세게 때린 성규가 걷던 다리를 멈췄다.모자를 벗어 다시 원래 주인에게 씌워주자 제 자리를 찾았다는 듯 푹 눌러씌워졌다.모자때문에 가려져 잘 보이지않았지만,모자를 씌워주기 전 얼굴은 분명 화난 얼굴이였다.


" 왜 그래,명수야.두준이는 어딨어? "
" ... "


갑작스레 말이 없어진 모습에 살짝 주춤거리자 모자를 벗어 손에 쥐고는 웃는 얼굴을 보였다.아까와는 대조되는 얼굴이였다.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들었다.왜 그러냐고 묻고싶었지만 물어보지말라고 잔뜩 방어하고있는 느낌에 결국 열려던 입을 꾹 닫는다.


" 두준이? "
" 아까 그 사람... "
" 아... "
" ... "
" 그 사람이 먼저 가봐야한다고 우리보고 먼저 가래. "



고개를 끄덕이는 성규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당연히 거짓말이였지만 알게모르게 조금 걱정하는 투의 그 말이 싫어 거짓말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한 없이 유치하고,어린아이같고,촌스럽다.오묘한 감정들은 공기중에서 떠돌아다니다가 충돌하여 서로에게 스며들어 다시 머릿속으로 뛰어들어왔다.질투일까,여전히 성규의 팔을 이끌고 가는 명수의 몸짓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머릿속으로는 큰 변화가 오락가락하고있었다.


나는 김성규를 좋아하지않는다,좋아한다.부정하려고하는 감정들이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있었다.점점 한 쪽으로 기울어지던 감정이 결국은 한 쪽에게 넘어져 항복하였다.'좋아한다'가 승리했다.


정신을 돌려보기위해 마침 사람이 별로 없던 공원으로 가 성규를 공원 의자에 앉힌 명수가 입을 열었다.나 음료수 사올게,기다려.


빨리 다녀오라는 그의 말에 명수가 달렸다.달리자 심박수가 증가하였다.순전히 달리고있어 증가한 심박수임을 알기에도 불구하고 아까의 마음이 크게 온 몸에 배어있어 명수가 옷을 펄럭거리며 생각했다.


내가,김성규를,진짜로 좋아하는건가?


모자를 머리에쓰고 음료수를 두 손에 쥔 채 공원으로 달려간 명수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까보다 조금 더 붉게 보이는 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김성규,음료수. "
" 오,감사. "



손으로 음료수를 받아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성규의 옆에 딱 달라붙어 몰래 곁눈질하던 명수가 들고있던 음료수를 꽉 쥐었다.



[ 보고싶어 - 자기 ]



내용은 보고싶어,발신자는 남우현.허탈한 마음에 바람빠지게 웃자 성규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왜 그러냐고 분명 걱정해주고있음에도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느낌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 김명수? "
" 아... "



정신을 차린 명수가 고개를 들고서 걸었다.뒤따라 움직이는 성규에 명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성규야. "
" 왜? "
" 너...그...윤두준 좋아? "
" 두준이?미쳤냐?"
" 그래,그럼 됐고. "



갑자기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힐긋 쳐다보고선 누구냐고 묻자 거리낌없이 웃으며 말하는 성규의 모습에 명수가 당황했다.



" 응,남우현이 영화보자고해서 시간나면 가려고."
" ...그래? "


답장까지 보낸 성규가 옆에있던 명수를 올려다보았다.그러나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였다.


분명히 남우현을 싫어하는 걸로 알고있었다.보고싶단 한 마디에 얼굴이 붉어지고,영화보자는 말에도 웃고,자신이 알고있는 성규가 품는 우현에 대한 감정이였다.언제 바뀐것인진 몰라도 이미 상당히 불쾌하고 미간이 좁혀졌다.내가,김성규를,진짜로 좋아하나? 소년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물음에 고민도 없이 답할 수 있었다.


내가,김성규를,진짜로 좋아한다.




" 성규야,오늘은 못 데려다주겠다.나 먼저 갈게. "
" 응...알았어.잘 가. "


아픈가?성규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제 집으로 들어왔다.화창한 낮임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힘 없이 걸어가는 김명수는,소년은 이미 비가 내려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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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히비
작가입니다.깜빡하고 암호닉을 쓰지못하였습니다ㅠ~ㅠ죄송합니다.

암호닉 - 남나무

9년 전
독자1
재밌게 잘보고 가요ㅋㅋㅋㅋㅋ그리고..이말거슬릴수 있으실것 같은데 신경 쓰여서요..으음..암호명이 아니라 암호닉 아니에요? 둘 다 같은말 이긴하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신경쓰여서 말해보아요
9년 전
W.히비
제가 자꾸 명이라는 말로 하다보니까 습관이 되어버렸네요ㅠ~ㅠ 솔직히말해서 암호닉이 더 맞는 말이긴하죠.다음부턴 암호닉으로 쓰도록하겠습니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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