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에 저녁약속있어. 기다리지말고 먼저밥먹어' 길지도 그렇다고 다정하지도않은 너의 문자에 오늘도 고민을 한다. 오늘도 먼저먹어야할까? 어제 먹다남은 김치찌개는 차갑게 식어버려 제 맛의 기능을 잊어버린지 오래고, 언제 밥을 지었는지도 가늠할수없는 차가운밥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먹기라도해야하나... 그러기엔 날씨조차 우중충해 지금 씻고나가서 밥먹기에도 어색했다. 할수없이 냉장고와 찻잔을 뒤적뒤적 거리다가 발견한 핫초코스틱하나. 여름과는 어울리지않는 음식이었지만 나는 머그컵에다가 핫초코를 타서 먹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달게 느껴져서 그마저도 먹다가 싱크대에 흘려보내버렸다. 기다리는게 무료해서 무료영화를 틀어보고 웹서핑을 한지 두시간째, 아직도 너에게서 오는 연락은 없다. 시계를 보니 자정에 가까워져간다. 너에게 문자를 한통 보내려고하다 이내 휴대폰을 닫아버렸다. 오래된 2G폰. 낡아버려서 코팅이 벗겨져 여기저기 흠집도 나고 빛바래져 원래 색깔이 흰색인지 검은색인지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손때가 탄 휴대폰. 한동안 쳐다보다 밖에서 차시동 소리가 들리길래 고개를 빼꼼 내미니 차에서 내리는 너와 누군지모를 여자가 웃고있었다. 좀있으면 너가 올라오겠지? 조용히 내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너와나의 권태기끝에 w. 허니쨈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조용히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던 너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의 정적. "...미안, 조용히 입는다했는데 깨버렸네." "아니, 괜찮아. 오늘따라 좀 일찍가네." "어, 그렇게됬어." 가방까지 말끔히챙겨든 너는 이내 갔다올게. 라는 짧은 말과 함께 문뒤로 사라져버렸다. "...잘갔다와 찬열아."
너가 가버린후 배고파서 부엌으로 들어가 먹을것을 찾다가 어제 마땅히 먹을게없어 핫초코를 타먹던 기억이났다. 그럼 너역시 아침을 챙겨먹지않았겠지. 고민을하다 간만의 외출을 하기로했다. 마트가서 장도보고 산책도 좀 해야겠다 싶으면서. 씻고난후 오랜만에 화장대에 앉아 얼굴을 관찰했다. 윤기나지않는 피부, 선명함을 잃어가는 눈빛, 땅으로 떨어져버린 입꼬리. 무표정에 완벽한 나는 거울을보며 이상할만큼의 평온을 느꼈다. 아 이게 바로 권태기구나. 간단한 화장을하고 립스틱을 꺼내 바르려고하는데 생각보다 스틱부분이 잘 올라가지않아 애먹었다. 겨우 머리부분이 올라온것을보고 입술에 칠하는데 문득 립스틱을 보니, 예전에 내 생일이라고 너가 사준 립스틱이었다. 도대체 얼마만에 쓰는건지 잠깐 그시절이 생각나 푸흡- 하고 소리냈지만 웃지는 않았다. 아파트를 지나 근처 산책로를 걸으며 여러 커플들을 보았다. 뭐가 그렇게 재미난걸까 둘이 손을 꼭 마주잡으며 앞뒤로 흔들흔들 거리는게 보기나쁘진않았다. 우리도 저랬던 적이 있었겠지? 무심코 구두 앞코로 돌멩이를찼다.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서로에게 냉담해진걸까. 연애초기에는 우리가 뭘했더라? 아 맞아, 서로 밀당하기에 바빴던 걸로 기억한다. 먼저 온 문자한통에 어찌나 그리 설레이던지 오자마자 답장은 바로 썼으면서 보내는건 5분후에. 기념일도 꼬박꼬박 챙겼었던것 같다. 카페를 빌려서 친구들과 함께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준 너와 그걸보고 감동받아서 어쩔줄 몰라했던 나. 조금 시간이 더 지나서 하루라도 떨어져있으면 불안하다는 너에 고민을 하다 동거를 시작했었다. 눈뜨자마자 내얼굴을 보며 행복해죽겠다는 네표정. 부엌에서 밥차리고있으니까 우리 꼭 신혼부부같지않아? 하며 뒤에서 안아주던 너. 그러고보니 우리가 사귄 횟수가 몇년이더라. 낡은 휴대폰을 꺼내어보니 벌써 7년째다. 생각해보니 이 휴대폰도 우리가 사귀고나서 맞춘 커플폰이다. 커플요금으로 매일 전화 몇십분씩 하던 너와 나였는데. 추억에 젖어 한동안 서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보니 내주위에 있던 커플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고보니 지금 너가 쓰고있는 휴대폰은 뭐였지? 아, 너는 최신휴대폰으로 바꾼지 오래였구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마트에 와서 이것저것 장을보고 난후, 생각보다 너무많이 사버린맘에 어떡하지 끙끙 고민하다 택배로 붙이기로했다. 여유로워진 두손에 뭐할까하다 오랜만에 작업실로 가기로했다. 약간 두근거리는 맘과 함께 작업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사람이 있었는지 내가 열은 문소리와 동시에 고개가 돌려졌다.
"OO언니...? 언니 오랜만이야! 몸 아픈건 이제 다 나았어?" "어? 응..." "아 잘됬다 정말! 안그래도 계속 언니가 안와서 병문안 갈려했던참인데! 근데 아직도 얼굴빛이 안좋은것같애." "아냐, 많이 괜찮아졌어. 그나저나 선영이 너는 웬일이야?" "아, 언니 지금 휴식기라고말해도 언니가 워낙 일을 잘해서 지금 곡써달라고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몇일전에는 케이블방송에서 언니를 게스트로 섭외하고싶다는 작가도 왔었어!" "정말?" "응응, 그래서 내가 단호하게 얘기했지! 안된다구" "으이구, 잘했어" "흐흥, 그건그렇고 할일이 쌓였는데 곡 쓸 수있겠어?" "응, 이제 일해야지?" 그럼 내가 녹차라도 타올게 잠깐만기다려 언니!하며 쪼르르 나가는 선영이다. 예전부터 내가 롤모델이라며 쫄래쫄라 따라오는 조그마한 고등학생이었는데 언제 저렇게커서... 흐뭇하게 엄마미소를짓다가 내자리에 풀썩앉아버렸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인가 어지럽기도하고. 한숨을 쉬다가 선영이가 들고온 녹차를 마시면서 한겹의 피로를 씻겨내렸다. 그리고 선영이가 나머지한손에 들고있던 리스트를 건네주었다. 뭐가 이렇게 많이 밀렸대 어후.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주욱 훑어보았다. 제법 인지도높은 아이돌부터 대세라며 이름떨치고있는 솔로, 드라마ost까지. 아직은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이 있구나싶어 양쪽에있던 우울함덩어리가 조금 사라진 기분이다. 아, 오늘은 밤새야겠다.
박찬열 (26). 대기업회사원.
김OO (25). 작곡가 겸 프로듀서 우울증. @안녕하세욥@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EXO/찬열] <너와나의 권태기끝에> 01 9
11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신입이 출근때마다 아메리카노 손에 들고 출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