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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좋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바랐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별로 놀랍지 않았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그런 끼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TV 프로그램은 파워레인저였고, 난 거기서 레드에게 호감을 느꼈었다. 그것이 무려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성적 호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엔 거의 10년이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난 초등학교 시절부터 또래아이들에게 '뽀뽀귀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틈만 나면 볼에 뽀뽀를 하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기묘했던 것은 여자에겐 뽀뽀를 하지 않고 남자에게만 뽀뽀를 했었다는 것이었다. 난 본능적으로 여자를 거부하고 있었다.

캐릭터 티셔츠가 까만 교복으로 바뀌던 해, 나는 처음으로 내가 게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허나 그 감정이 정확히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그 때 당시엔 알 길이 없었다. 그 아이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괜시리 숨이 가빠졌지만, 이것이 사랑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옆에 있기만 해도 몸이 뒤틀리지만 그렇다고 싫지는 않은 기분, 조금 더 다가가고 싶지만 내가 부끄러워 물러나는 기분. 그것이 사랑이었다. 우습게도 14살 소년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풋풋했던 감정이 한 순간에 싸늘하게 식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어느날부터인가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그 '게이 신드롬' 때문이었다. 친구와 손을 잡아도 게이, 껴안기만 해도 게이, 같이 밥을 먹어도 게이. 별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들을 붙이며 옆반 누구가 옆옆반 누구랑 씹을 떴네, 누구가 남자의 좆을 빨았네라며 낄낄대는 아이들을 보며 난 충격에 빠졌다. 그들이 그렇게 욕하고 비웃는 그 '병신 쓰레기 호모새끼'가 바로 나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욕하는 아이들 중에 내가 그토록 짝사랑했던 그 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나를 나락에 빠트렸다. 게이새끼들 존나 더러워. 죽여버리고 싶어. 안 그러냐? 그 날로 난 그 아이와 멀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게이라는 것이 그렇게 족쇄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그냥 똑같은 사람일 줄 알았건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때문에 난 누군가를 좋아하더라도 마음 속으로만 끙끙대며 삭혀야만 했다. 좋아했던 남자애가 나에게 찾아와 사랑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난 웃고 있었다. 네 덕분에 그 여자애와 사귄다며, 넌 내 둘도 없는 친구라며 날 껴안을 때에도 난 웃어야만 했다. 그게 내 방식이니까. 그게 내 표현의 방식이니까.

또래들이 어떤 여자애는 가슴이 크네, 어떤 여자애는 걸레같네라며 낄낄거리며 농담을 칠 때마다 난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헤벌쭉 웃고만 있었다. 남자애들이 정보 시간마다 비키니 사진을 보여주며 얼굴을 붉힐 때도 내 눈엔 사진 속 여자의 이마에 난 여드름밖에 들어왔다. 자괴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난 게이니까. 여자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 게이니까.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난 처음으로 자위했다. 그 느낌은 놀라웠다. 달아오른 온 몸이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침대 위에 멍하니 누워 시꺼먼 천장을 바라보며 난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더러운 옷을 벗고 다른 내의로 갈아입을 때 내가 무엇을 생각하며 자위했는지가 떠오르자 난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평소 좋아했던 친구의 얼굴이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니었다. 난 게이였다.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였다. 그 사실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었다. 차라리 나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로 태어났었다면. 차라리 나도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로 태어났었다면. 말하며 후회해도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누굴 원망하던 소용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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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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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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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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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글 너무 잘 쓴다! 신알신 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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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신알신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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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왠지 이거 비슷한 느낌을 어디서 봤었는데... 향수를 일으키게 하네요. 응원할게요. ㅎ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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