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눈 앞이 아른 거렸다. 마치 까만 도화지에 하얀 물감을 뿌려 놓아 흐려지듯이 말이다. 추웠던 몸은 이제 따듯히 되어 가고 있었고 죽을 만큼 아팠던 심장 발작은 잠잠해졌다. 학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먼저 드는 기분은 따듯함 이었다. 바로 앞에 벽난로 안의 불들이 마치 물처럼 넘실대듯이 흔들렸다. 손에 잡히는 담요자락을 보면서 학연은 상체를 일으켰다. 주변을 둘러보니 마치 중세시대를 보는 듯, 아름답고도 화려한 장식과 넓은 집 안 공간이 보였다. 그러자 이유도 모르고 공격 당한 어제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밀려드는 불안감에 학연은 바로 목에 손을 갖다댔다.
"...아.."
이상하다. 상처가 없다. 매끈한 감촉에 학연은 자신을 구해준 남자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머리가 아파왔다. 숨이 끊어지는 고통에 눈 앞도 안 보였으니까.. 목소리는 미성이었다. 아른하게 머릿속에 그려진 남자의 얼굴은 명확하지가 않았다. 이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오르골의 소리에 학연은 화들짝 놀랐다. 곧 바로 오르골에 시선을 옮겼다. 벽난로 위 가운데에 놓여져 있었다. 거울도 보였다. 담요를 벗어 일어난 학연은 벽난로 앞에 걸어가 섰다. 온갖 보석들이 박힌 오르골에는 빨간색의 투명 수정이 천천히 회전하며 잔잔한 멜로디를 내고 있었다. 그걸 만지려고 하는 순간 학연은 저도 모르게 거울을 쳐다봤다.
"..."
두 눈이 빨갛다. 원래 피부가 까만 편인 학연은 더 하얘진 자신의 모습에 놀라 입을 작게 벌렸다. 학연은 내가 아닌 것 같을 정도로 인정하지 못할 만큼 몸의 곡선들은 더 아름다워졌고, 분위기며 생김새도 퇴폐적이며 섹시해졌다. 오르골을 만지려던 손은 천천히 자신의 볼에 갖다 댔다. 아까의 따듯한 기분은 벽난로 때문이었구나. 손에는 느껴지는 건 차가움이었다. 그러자 핏빛 두눈에 슬픔이 가득 차 올랐다. 그리고 인간 학연은 죽었다.
"차 학연."
뒤에서 들려오는 미성의 목소리에 학연은 멈칫했다. 바로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른거리던 기억에 얼굴의 형상이 선명해지지 않은 학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천천히 뒤를 돌자 그제야 퍼즐을 맞춘 듯 명확하게 기억이 났다. 완전한 뱀파이어의 모습을, 학연보다 유난히 더 하얀 피부의 택운은 가만히 학연이의 핏빛 두 눈을 쳐다봤다. 울지는 않지만 슬픔에 잠긴 두 눈동자에 택운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뱀파이어가 됐다고 말이다. 그리고 인간계에 뒤에서 많이 봐왔지만 뱀파이어가 된 학연이의 모습은 치명적이었다. 학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정 택운."
"..전 누구에요.."
"나와 같다."
"....."
Vampire. 라고 말하는 정 택운. 냉정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목소리인데도 학연이의 마음에 날카로운 바늘이 콕콕 박히는 것 만 같았다. 울고 싶었지만 참았다. 학연은 조금 더 용기내어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학연이의 행동에 택운은 고개를 들어 학연이를 바라봤다. 왜 그러냐는 눈빛에 학연은,
"당신의 볼, 만져봐도 되나요...?"
"...."
택운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연은 손을 들어 택운이의 볼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갑자기 묘한 기분도 든 동시에 아, 하고 짧은 탄성이 나왔다. 차가웠다. 자신과 같은 체온이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금빛 두 눈동자에 빨려들 것만 같은 느낌에 아찔하게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택운은 손을 들어 자기 볼을 만지고 있는 학연이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갑자기 택운이의 돌발 행동에 품에 안겨버린 학연이었다. 놀라서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아직 무리하면 안돼. 네 몸에 아직도 뱀파이어의 피가 불안정하게 자리 잡고 있어. 편하게 기대."
신기하게도 편한 기분이 물 밀듯 밀려왔다. 그리고 또 들리는 미성의 목소리.
"좀 이따 많이 아플텐데."
"..왜요..?"
"완전한 뱀파이어가 되려는 거지."
"안 아프게..하면 안돼요..?"
택운은 고민하더니 피식 웃었다. 참 신기했다. 자신이야 태어날 때 부터 뱀파이어라서 크게 상관은 안 했지만, 인간에서 뱀파이어가 된 학연은 뱀파이어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어 할 줄 알았는데 학연은 어쩔 수 없는 것이란 걸 빨리 깨닫고 적응 하려는 거였다. 아직은 슬픈 감정이 휘몰아쳐도 말이다. 택운은 학연이의 말에 답해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내 피를 마셔야 안 아프지."
"...."
뭔가 조금씩 타들어가는 갈증과 택운에게서 풍기는 향기와 두눈을 보자니 묘한기분을 느끼는 학연이었다. 제 품에 아직도 안겨 핏빛 두 눈동자인 학연을 본 택운은 속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일 때도 예뻤지만,
"규율이 있어."
"...그것도 있어요..? 뭔데요..?"
" '서로 약혼자로써 서로의 피를 나누는 것, 그로 인해 영원한 고통은 없으리라.' 라고."
뱀파이어계에는 규율이 있다. 결혼하기 전 두명의 약혼자의 피를 나눠 마시는 것, 학연은 순간 저도 모르게 택운이의 목덜미를 바라봤다. 매끈하게 빠진 목선과 목덜미에 손을 갖다대어 쓰다듬었다. 마시고 싶다. 강렬한 충동이 확 몰려왔다. 그제서야 학연은 몸속에 고통의 증상이 나타난 걸 느꼈다. 다급하지는 않았다. 가지고 싶은 충동이 세게 일었다. 정 택운. 당신을 가지고 싶어. 학연의 말이 끝나자 택운은 학연을 끌어 안았다.
"앞으로 후회 안한다면.. 마셔도 돼.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인간일때도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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