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
only * point of view 정택운
「저 구석에 있는 얘는 왜 말을 안해?」
「방송하기 싫으면 아이돌을 하지 말든가」
「방송 태도 진짜 싸.가지없다.」
방송을 하면 할 수록, 혹은 빅스가 알려질수록 각종 미디어에서 나는 비난과 그에 비례하는 욕을 먹었다. 모두들 그런 것은 아니였지만 나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랬다. 미디어뿐만이 아닌 트위터에도 쏟아지는 비난에 잠시 폰을 들었다가 다시 껐다. 예전부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해본적도 별로 없고 워낙에 내성적이라 낯도 많이 가린 탓에 방송을 하는것도, 카메라가 내 앞으로 오는것도 너무 낯설었다. 그래서인지 웃음도 어색해서 곧 표정을 굳혔다. 늘 항상 그랬다. 어제도, 지금도 매일 한결같이.
"야,야!! 빨리와! 리허설 하러 가야돼!"
"아니, 엔 형! 저 마이크 제대로 안돼요! 랩 해야하는데!!"
"오또카지 나 머리 아직도 안했는데!!"
멤버들은 하나 같이 스텝들과 정신없이 움직였고, 난 준비를 마친 터라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정신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 눈에 가득 찼다. 갑갑하지 않을까, 힘들지는 않을까, 안식처는 있을까, 상처는 없을까. 마음에 무거운게 내려앉았다.
“스탠바이!”
나는 평소와 같이 익숙하게 무대를 오른다. 멤버들과 함께 무대 준비를 하며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나는 늘 무대에만 올라서면 느껴지는 오묘한 감정을 익숙한 듯 되새겨봤다. 심장은 두근거리지만 한편으로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살짝 눈으로 관중들 속에 빼곡이 서있는 별빛들을 쳐다봤다. 모두 다 하나 같이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우리에 대한 기대감과 감동, 마치 설레임을 느끼듯이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면서 순수하게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의 꿈, 나의 꿈을 이루어준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들, 그리고 그 사이들로 보이는 다른 사람들의 냉담한 표정이나 궁금한 표정들도, 행복하지만 한편으로 드는 두려움에 내색을 안 했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됐다.
-
거친 숨과 함께 동시에 흘러내려오는 땀들. 닦을 것이 없어 급한 대로 손등으로 땀을 닦았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건지 숨이 가빠와 말을 못하겠다. 방금 무대를 마친 뒤라 그랬다. 나는 늘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만큼은 지켰다. 무대는 나의 꿈이고 직업이다. 욕심을 부리지 말되 최선을 다하자고. 계속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면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뒤에서 원식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굳이 일부러 하지 않아도 버릇처럼, 나를 부르는 소리라 뒤돌아봤다.
“택운형! 우리 둘만 빼고 다 스케줄 있대요. 같이 숙소에 가도된다는데?”
“...아..응.”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나는 원래 스케줄이 없는 날이 있으면 불안 했었다. 그만큼 일을 좋아하고 꿈을 위해 노력을 더 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따라 내 몸이나 마음이나 무거웠다. 발걸음을 옮겼다. 멤버들은 이미 스케줄 간 뒤였다. 뭔가 시선이 느껴지는 느낌이 있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원식이었다. 평소와 다르게 표정이 가라앉아있었다. 가만히 쳐다봤는데 원식의 눈동자가 나를 꿰뚫는 듯한 느낌이었다.
“형.”
“응.”
“숙소 가서 이야기 할게 있어요.”
원식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뭇 진지한 표정의 원식이를 보면 짐작이 가기도 했었다. 자작곡이 막혀서 도와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고민을 들어달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의 예상이 단번에 깨졌다는 걸 느꼈다. 나의 예상이 틀려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누가 내 머릿속에 하얀 도화지를 바꾸고 간 것처럼. 원식이의 입에 나온 말은 충분히 나를 흔들리게 했다.
“감추지마요.”
뭐를? 의문을 던지기도 전에 원식은 빠르게 내게 물어왔다. 암묵적인 뜻이 담겨져 있는 듯한 원식이의 말인데도, 심장은 크게 쿵 내려앉았다.
“이유를 말해줘요. 형은 아무리 무표정으로 감춘다 한들 환하게 웃는 미소를 왜 매번 감춰요.”
“...내가 무표정인 이유는.”
아찔했다. 나보다 어린놈이 이렇게 까지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말을 끊었다. 그리고 먹먹해졌다.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말이 안 나오는 상황에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원식은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듣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눈동자. 결국 내 생각과는 달리 입은 그대로 내 마음을 고했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그리고 그제서야 날 향해 웃었다. 원식은 진심 어린 미소를 짓더니 나를 안아줬다. 어린아이를 엄마가 달래 주듯이.
“그러지 마요. 상처는 입어야죠. 그래야지 운만큼 그때 비소로 많이 웃잖아요.”
“....”
“성격을 그대로 존중하지만 형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내비쳤으면 좋겠어요. 진심 어린 환한 미소로.”
그 날 나는 원식에게 기대 엄청 서럽게 울었다. 창피하지도 않았다. 원식이도 내 마음을 이해해줬다. 그 이후로 나는 멤버들에게 솔직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럴 때 마다 멤버들의 반응이 새로웠다. 방송에서도 여전히 웃음이 나올땐 고개를 숙이지만, 더 많이 웃었고 조금은 더 말을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빅스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많아져 내 성격을 그대로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상처를 받아도 안 아팠다. 특히 소중한 팬들 앞에서는 더 웃었다. 조금씩 마음의 안식처가 만들어져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무표정이어도 행복한 무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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