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마지막 통신이 끊겼어. 나무문을 열고 들어온 찬열이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했던 일상부터 아주 어렸을 적의 이야기를 했다. 모래를 반추하는 듯한 대화는 대개 잔잔히 흘러갔고, 누군가가 들썩이며 울면 가만히 침묵이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위로를 했다. 백현이 내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쇼파를 가운데 두고 나와 김준면, 도경수가 앉고 그 밑에 백현이와 종인이가 앉아있었다.
"…누나는요?"
"응?"
정신을 차려보니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방안에서 뭘 하던 세훈이가 나오면서 물었다. 미안.. 딴생각 하고 있었어.. 바부. 서 있던 찬열이가 내 머리를 마구잡이로 손댔다. 아앗. 뭐라고 했지? 누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세훈이가 쇼파 옆에 앉아 팔걸이에 머리를 기대며 내게 말했다. 응…. 중학교 때. 아빠가 집을 나갔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에 남아있던건 말라 비틀어진 사과 하나였지. 기억나네. 텅빈 집. 하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익숙했던 것 같아. 항상 외로웠었거든. 그렇게…. 온갖 감정으로 칠해진 사과를 한입 베어물었어. 음, 그리고 고등학교를 올라가 너희를 만났을 때 반짝인다고 생각했어.. 그런건 처음이였거든.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너희와 흩어졌을 때 집에 다시 아빠가 돌아왔어.
종인이는 내 발 끝에 키스하며 눈을 감았다. 따듯한 침묵이 눈가를 시큰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했더라…. 예쁜 우리 딸. 좋은 옷 사입혀야지. 그러셨나. 근데 안돌아오셨어. 트럭에 깔렸다고 했나 무단횡단을 했다고 했나. 하하. 그리고 나는 말을 마쳤다.
"……."
"난 말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갔어."
눈을 감고 있던 김종인이 입을 열었다. 낯선 곳에서 최고가 되기란 정말 어려웠어. 이곳에 있을 때 보다 열배는 더 노력했던거 같아. 정신을 차려보면 연습실이고, 춤추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리는 그런. 그런데 리허설이였나. 메인 댄서가 되어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몸이 바닥으로 쳐박혔어. 무대 조명이 떨어졌대. 한국으로 돌아와서 계속 잠만잤어. 그런데 어느날 어깨가 간지럽더라고. 그 이후로부터 몇시간을 걷고 걸었더니 학교에서 십분거리에 있던 공원에 앉아있었어. 혼란스러웠어. 정신을 차리니 길거리의 모든 곳에서 지구 종말을 예견하고 있더라고. 다시 공원으로 돌아와서 평온한 하늘을 보고있었지.
"거기서 만났어. 찬열이형."
"응."
우리는 모두 찬열이가 데려왔다. 내가 맨 마지막이였는데, 지구 종말을 전하는 비현실적인 소리와 무기력함에 빠져 달동네 옥상에 멍하니 앉아있을 때 였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 짐을 챙겨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떠난지 오래였다. 교회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졌고 거리는 한산했다. 무릎을 감싸 앉고 숨죽이고 있을 때 골목 어귀에서 까만 점을 보았다. 까만점의 남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본 것 같았지만 이윽고 사라졌다. 나는 다시 무릎에 고개를 쳐박았다. 두 번쯤 해가 떴다 진 다음날이였다. 역시나 하늘을 보고 있던 내게 누군가가 이름을 불렀다. 사실 나는 그때 내 이름이 뭔지도 잊어먹고 있었다. 그저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군복을 입은 남자가 총을 들고서 웃고있었다. 약간 눈이 축축한 것 같기도 했다.
"나랑 가자."
"박찬열?"
박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딱 맞는 군복에 흙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렇게 찬열이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 때 나는 숲속에서 아담한 통나무 집을 발견했다. 내가 살던 도시와는 다른 평화로움이 가득했다. 찬열이는 내게 문을 열라는 듯 쳐다보았지만 내 손을 보더니 열만큼 힘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이 문을 열었다. 안을 본 나는 울고 말았다. 살면서 만났던 모든 기쁨들이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었다는게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는 모두 최대한 말끔한 옷을 입고 생활했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각자 스스로 정리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곳에 온지 삼일쯤 되어서야 엉엉 울었다. 그제서야 몸에 모든게 와닿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찬열이와 만났다던 세훈이가 내 등을 쓸어주었다. 누나. 저도 무서워요. 공포에 질려 헐떡이는 내 눈을 보는 세훈이는 정말로 눈에 슬픔이 가득했다. 그래도. 그래도…. 모두를 만나서 괜찮아요. 그제서야 나는 울음을 멈출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처럼 내 뱉고 난 후에야 우리는 모여서 시간을 함께 공유했다.
=
찬열이는 처음엔 믿지 못했지만 지구에서 발견되는 온갖 종말을 예고하는 증상들에 입을 다물고 빠져나와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쥐고서 모든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우리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있던 세훈이를 찾고 다음날 김준면과 변백현을 찾았다. 몇일 뒤 도경수를 찾았다. 종인이와 나는 모두들 찾는 것을 체념했었다고 했다. 이 난리통 속에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년만에야 우리는 모두 만났다. 온갖 감정이 뒤섞여 침묵으로 변했다. 속으로 간직하는게 좋다고 생각했었나.
방 안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만약에. 오늘이 끝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더 나은 빛나는 미래가 주어진다면…. 길거리에서 주어온 삐라의 뒷면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했다. 단정한 교복을 입고서 입학식을 안내했던 김준면과, 실장이였던 도경수. 동아리에서 만난 변백현과 짝지였던 박찬열. 항상 교실로 찾아왔던 오세훈과 김종인을 떠올렸다. 나의 사과가 가장 달콤했던 시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긴 몇장의 편지가 완성되었다. 편지는 비밀로 하자. 내일 열어 볼 수 있도록. 나는 책상 서랍에 편지를 가지런히 보관했다.
심호흡을 하고 창문을 보았다. 황금빛 석양을 언덕 위에서 보고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문을 닫고 거실로 나오자 책을 읽고있던 김준면이 나를 보았다.
"괜찮아?"
"응."
손에 쥔 책을 조심히 내려놓은 준면이 나를 보고 웃었다. 옷 매무새를 만지고서 가까이 다가와 나의 손에 입을 맞췄다. 답례로 나는 그를 껴안았다. 창문으로 새어들어온 빛이 거실을 빛나게 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백현이 눈꼬리를 접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응…."
나는 양손에 백현이와 준면이의 손을 쥔 채 언덕위로 올라갔다. 찬란한 금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을 바라보던 그들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와. 언덕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 나는 다리를 뻗고 앉았다. 종인이가 내 옆에 앉아서 머리를 어깨에 기대었다. 그의 머리에서는 햇살의 냄새가 났다.
"노래 불러줘."
"나도 듣고싶어."
"…좋아."
경수가 오른쪽에 앉아 내 손을 매만졌다. 노래를 불러달라는 종인이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나는 눈을 감고서 오래된 가사를 더듬으며 세상의 평화와 사랑을 노래했다. 찬열이가 킥킥댔다. 모두들 아는 노래였다. 뻔하디 뻔한 노래라고 백현이가 언젠가 학창시절에 말했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는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요. 마지막 소절을 끝마쳤다. 여운으로 목소리가 떨렸다.
"너희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
"……."
나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언제나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지금 하면 재미 없을 것 같아. 옆에서 준면이 쓰게 웃는것 같았다.
"그럼 내일 해도 괜찮아."
"아. 진짜 재미없다."
세훈이 찬열에게 투정부렸다. 모두들 서로가 무슨 마음인지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내일이란…. 우리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서 하늘을 보았다. 그저 그렇게 웃으면서 저물어가는 말간 해를 보았다. 내일은 뭐하지. 내일? ..그러게. 뭐하고 있을까. 별보러 갈래? 어이고. 하늘이나 실컷 보세요. 더 이상의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손을 더 강하게 쥐는 것으로 대신했다.
"내일도 다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게."
주황빛으로 저물던 하늘이, 일순간 강하게 빛났다.
-
끙, 여기에 이런 누추한 글을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어요..ㅠㅠ
어디서 보셨던 분들도 있을거에여... (부끄)
이게 모두의 마지막일지 내일 해를 볼수 있을지는 독자분의 상상에 맡길게요.
써놓은 글은 많은데..
한분이라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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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