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백현이와 나 사이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아, 변백현에서 백현이로 호칭이 바꼈다는 정도. 백현이에게서 내가 좋아하는 애, 배수지가 아니라 너야. 라는 말을 들은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날들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백현이에게 거창한 이벤트나 로맨틱한 고백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나랑 사귀자. 이 다섯 글자면 될텐데....수업 시간 내내 머릿 속에서 백현이가 둥둥 떠다녔다. 버스 정류장에서 백현이 했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4교시 한국사 시간이다. 오늘은 조는 것 대신 교과서 구석에 낙서하는 것을 선택했다. 짜증나. 변백현. 병신. 하고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꾸벅꾸벅 조는 짝꿍을 그리기도 하면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다. 더 이상 이 페이지에는 낙서할 곳이 없어졌고, 입맛을 쩝 다시며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기려는 순간, 한국사 선생님의 회초리가 책상을 툭툭 건들였다. 고개를 들자 얼굴이 일그러진 한국사 선생님이 보였다.어쭈, 교과서가 네 스케치북이야? 점심 시간 종 치고 제 2 교무실 앞에서 손 들고 서 있어.제 2 교무실은, 백현의 교실 바로 옆이었다....점심 시간 종이 치자마자 급식 순서 1등인 우리 반 아이들은 급식실로 뛰어갔고, 한국사 선생님의 불호령에 쫄아 한국사 선생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선생님은 교무실 안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손을 들고 서있었다. 쪽팔림을 덜기 위한 수단이었다. 급식을 먹으러 가던 박찬열이 내 옆에 서서 깝쭉대기 시작했다."오징어. 너 수업 시간에 졸았냐?""내가 너냐? 안졸았거든.""뻥치지마. 너 중학교 때 눈 뜨고 있는 거 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아니, 이 새끼가. 세륜 찬열. 급식 먹으러 사라져주세요. 안그래도 백현이랑 한국사 선생님때문에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있는 상태인데 옆에서 박찬열이 화를 돋우니 참기가 힘들었다. 백현이가 아닌 박찬열에게 굳이 참을 인 자를 새길 필요도 없었다."박찬열. 밥 먹으러 꺼져.""싫은데?""아, 그럼 다른데로 가던가.""내 맘인데?""초딩이냐?""초딩은 너겠지. 키 존나 작아. 150은 되냐? 호빗아."박찬열의 마지막 말에 진심으로 분노했다. 나 160이거든? 박찬열의 배를 때리려고 주먹을 뻗었으나 내 이마를 손으로 밀고있는 박찬열때문에 허공에 팔을 휙휙 젓는 꼴이 됐다. 박찬열은 그런 나를 보며 사마귀 웃음을 지었고 그런 박찬열이 괘씸해서 발을 꾹 밟았다."아, 아프잖아!""아프라고 한건데.""벌 서는 주제에 떠들어?"망할. 벌 서는 중인 걸 망각하고 박찬열이랑 떠들었다. 세륜 찬열. 사라지래도 안사라져요. 한국사 선생님은 내 옆에 박찬열이라는 혹을 달아주셨고, 박찬열과 나는 나란히 서서 손을 들고 벌을 받아야했다. 복화술로 서로에게 욕을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찬열과 나는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고, 선생님의 눈치를 슬슬 보다가 팔을 내리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박찬열이 병맛이긴 해도 대화 코드가 통하는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을 박찬열과 떠들고 있을 때, 백현이네 반 교실 뒷문이 열리며 시끌벅적 해졌고, 백현이가 교실 밖으로 나왔다."백현아.""너 여기서 뭐해. 남자 교실 쪽엔 무슨 일이야.""무슨 일이긴. 우리 징어 나랑 놀러왔지."세륜 찬열. 입 다물어 주실게요. 백현이는 박찬열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봤다. 백현의 표정은 박찬열 말이 사실이야? 하는 표정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제 2 교무실 앞에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아니, 그게 아니라, 한국사 시간에 딴 짓 하다가 걸려서. 벌 서는 중이야.""박찬열도?""나한테 말 걸다가 한국사 선생님한테 걸려서 같이 벌 서는 중."해명 아닌 해명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현은 나와 박찬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섰다. 좌 찬열, 우 징어 사이에 낀 백현은 심기불편한 모습이었다. 20분이 지나고 한국사 선생님의 잔소리를 한바탕 들은 후에야 급식실로 향할 수 있었다. 박찬열은 배고프다며 급식실로 뛰어간지 오래였고, 백현과 나는 급식실로 향했다...."너 박찬열이랑 친해?""아니. 왜?""그냥. 친해보이길래.""아, 같은 중학교 나와서."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급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백현을 따라 급식을 먹었다. 백현과 나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어떠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백현과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좋았다......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야 마땅할 이 시간에 일어나 옷장에서 옷이란 옷은 죄다 꺼내 침대에 늘어놓았다. 미친. 입을 옷이 없잖아, 작년에 벗고 다녔나. 최대한 예쁘고 최대한 여성스럽고 최대한 귀여운 옷을 입어야했다. 어쩔 수 없었다. 자고 있는 언니 방에 살금살금 들어가 언니가 일주일 전에 산 옷을 들고 나왔다. 평소보다 준비하는데 두배의 시간이 걸렸다.백현이 데이트 신청을 했다.백현이가 데이트 하자고 말한건 아니지만, 데이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가자 백현이가 서있었다. 백현이는 옷 입는 스타일마저도 나를 설레게 만들었다. 니트에 자켓, 핏 좋은 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타일이 백현과 잘 어울렸다. 백현의 옆에 서자 백현은 영화표를 보여주며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데이트의 정석이었다....영화 보고, 영화 보고나서 밥 먹고. 모범적인 데이트 코스를 밟고 나서 백현과 나는 근처 공원을 걷기로 했다. 쉬었다 가자는 백현의 말에 벤치에 앉았다. 백현과 나는 한 뼘 반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았다. 백현과 나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어색했다. 왠지 모르게 뻘쭘하고, 분위기가 묘했다. 백현도 그렇게 느끼는지 입술을 축이며 머리를 헝클였다."저기.""응?""우리..., 사귈까?""...""아니다, 우리 사겨. 사귀자."사귈까? 와 사귀자. 는 같은 뜻인데, 느낌이 왜이리도 다른지. 백현은 나에게 답을 바란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볼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토록 기다렸던 말이다. 백현에게 거창한 이벤트나 로맨틱한 고백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백현은 그동안 봐왔던 백현의 모습대로, 고백했다. 답을 기다리는 백현에게 1초가 얼마나 지옥같을지 아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백현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마주 본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붉어진 얼굴로 웃어보였다.드디어, 백현과 나의 연애가 시작됐다....4월, 봄이 다가오긴 다가왔어도 바람은 찼다. 유난히 손과 발이 차가운 나였기 때문에 손을 꼭 말아쥐고 걸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백현의 섬유 유연제 향을 맡으며, 백현의 옆에 서서 걸었다."아, 춥다."춥다고 말 할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닌데. 나도 모르게 춥다는 말을 내뱉었다. 습관처럼 말이다....백현이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눈에 띄게 내 눈치를 살피는 탓에 백현이 나에게 고백한걸 후회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나도 백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연애를 막 시작한 커플인데 서로의 눈치를 보며 걷고있었다. 아, 춥다. 또. 습관처럼 말했다. 이 분위기를 깨려고 무의식적으로 나온 말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백현과 나 사이에는 벤치에 앉아있을 때 처럼 한 뼘 반의 간격이 있었다. 백현이 반걸음 내 옆으로 다가왔고,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사라졌다. 걸을 때마다 서로의 손이 스쳤다."아, 춥다."내가 한 말 아닌데? 백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백현은 아, 춥다. 라는 말과 함께 스치던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고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런 백현을 올려다보자 백현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날씨가 좋네, 저 가게 간판이 예쁘네 하며 딴청을 피웠다. 백현의 손을 꼭 잡았다. 백현의 체온에 의해 내 손이 따뜻해져 가고 있었다.백현을 알아갈수록, 백현을 겪어볼수록, 백현이 좋아졌다.....드디어 제가 이 썰을 쓴 목적이 나왔습니다. 저 손 잡는 씬. 이 썰의 시작이었습니다. 저 씬을 위해서 글을 3개나 올렸네요.연애하는 썰인데 하라는 연애는 안하고 쓸데없는 기 싸움만 했네요. 제가 생각한 이 썰의 끝은 손 잡는 씬입니다만. 한 편 정도 더 써볼까 생각중입니다.다른 썰을 쓰고싶어요. 제 머릿속의 썰들을 다 뱉어내고 사라질거에요.별거 아닌 글에 큰 사랑 주시니 그저 감사합니다.보고있나, 솔솔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암호닉 파라다님, 염소님, 팝콘님, 하트님, 부농이님, 앵두님, 떡뽀끼님, 큥큥님, 사과님, 아따님, 싸랑해님, 김종대학교님, 최면님, 맑음님, 벚꽃님, 인수니님, 핫뚜님, 만두님, 댕기님, 0408님, 모모님, 사탕님, 응가송님, 핑구님, 원숭이님, 찬블리님 감사합니다.암호닉은 늘 받고 있습니다. 암호닉 신청은 제가 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에서 신청해주시는게 확인이 빠를거에요. 빠진 분들은 제가 글을 올리고 난 후 확인 하는 경우입니다. 다음 편에 올려드려요.내 글을 봐주는 모든 그대들 사랑해요.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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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