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24.
“야.”
“이게 누구야. 로운 아니야. 귀하신 몸이 제겐 어쩐 일로.”
“……뭐라는 거야, 이거나 받아.”
“이게 뭔데?”
“경첩 팬던트.”
“…….”
“행운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거야. 수업시간에 만든 건데, 내 게 제일 잘 만들어진 거라길래.”
토요일 오후. 점심시간이 막 끝나고 한산한 도서관 구석을 찾아온 사람은 두 명이었다. 태형과 로운.
태형이 주말마다 그곳에 간다는 걸 아는 사람은 로운뿐이었고(이것도 우연인지 아닌지 모를 계속된 만남으로 알게 된 것이다), 태형 또한 가까이서 들리는 인기척이 로운이라 확신했다. 태형은 비스듬히 누워있다 일어나서는 로운이 건넨 팬던트를 받았다. 은빛 경첩이 힘을 주자 똑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은 비어 있었지만 은은한 향이 퍼지는 게, 행운의 기운이 느껴졌다.
“미안해.”
“…….”
“함부로 오해했던 거 미안하다고.”
멀거니 쳐다보는 눈빛이 꼭 뭐가? 라고 되묻는 것 같아 로운은 눈을 피하며 덧붙였다.
“네 말대로 색안경을 낀 건 나였던 것 같아.”
“…….”
“사과의 의미로 주는 거니까 받든지 버리든지 알아서 하고.”
“의외네.”
“뭐, 뭐가?”
“이런 걸 받을 줄은 몰랐어.”
단 한 번도 받아 본 기억이 없었다. 사과라든지, 이런 팬던트라든지.
누군가의 잘못은 항상 저의 잘못이었고, 남의 잘못에도 도리어 높아지는 언성만이 태형이 겪어온 것이었다. 저렇게 우물쭈물대는 행동과 멋쩍은 듯 피하는 시선, 진심어린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법을 정욱에게 못이 박히도록 배워온 태형이었지만,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지, 지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아.
“고마워.”
잘쓸게. 태형은 정욱에게 달려가 금줄이든 실이든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당장 이 팬던트를 끼워 목에 걸고 싶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정욱을 따라 교육원에 입학하고 마법을 배우면서, 태형은 많은 것을 배웠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로 터득한 것은 바뀌지 않았다. 이유를 따지는 것. 초반엔 머글 출신이라며 배척도 받았지만 마법이든 공부든 비행이든, 뭐든 잘했던 태형에게 따라오는 건 시선이었다. 애초에 질투를 할 수조차 없는 실력이었기에 일반적인 노선과는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 옆에 있다면 뭐라도 조금 더 배울 수 있겠지. 이 아이 옆에 있다면 쟤랑 친해질 수 있겠지. 저 선생님과 친해질 수 있겠지. 모르는 건 얘한테 다 물어보면 될 거야. 쟤네 집 부자래. 가족 중 한 명이 교수라나 봐. 같이 다니다 보면, 뭔가 얻어갈 수 있겠지.
호그와트 교장과 가족 같은 사이인 것이 밝혀졌을 땐 많은 소문이 돌았다. 게 중엔 거짓인 게 대부분이었다만 사실도 끼어 있었다. 그린델왈드를 이을 어둠의 마법사가 될 거래. 악의 순결정체라더라. 악에 사무친 마법으로 머글세계를 어지럽힐까 봐 데려온 거래. 보바통과 호그와트가 저 애를 가지고 싸웠다더라. 호그와트는 저 애를 여기로 데려오기를 원했지만, 보바통은 영원히 없애기를……
온갖 소문으로 점철된 학창시절에서도 태형이 초반만큼 배척받지 못한 것은 태형의 뛰어난 마법실력과, 태형의 뒤에 호그와트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때문에 졸업반이 되고부터는 호그와트 입학 예정이었던 많은 아이들이 태형에게 다가왔다. 태형은 그런 그들이 흥미로우면서도 우스웠다. 그 덕에 억지웃음을 짜내지 않아도 된 것은 다행이기도 했다.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으니까. 그 내용이 다르긴 했지만.
호그와트에 입학했을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 손익을 따져 태형에게 다가왔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떠나지 않는 것. 더 얻을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전보다 더 교활했고, 태형의 눈에는 그게 보였다.
때문에 손익을 따르는 ‘왜’는 자연스럽게 태형의 머릿속에 녹아든 습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운과 함께 있을 땐 ‘왜’라는 것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 하는 물음에 왜냐니? 하고 반문하던 모습을 태형은 기억하고 있었다. 제 잘난 맛에 산다며, 모두가 다가오려 했던 걸음을 보여주지 않던. 제가 먼저 다가갔음에도 그곳에 멈춰있던, 로운. 색안경을 쓰고 있다며 비난하더니, 오해였다며 도리어 사과를 하던. 멈춰서 담마저 쌓을 것 같던 태세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로운.
왜?
는 로운에게 쓸 수 없는 표현이었다.
그렇게 태형은 정욱과 몇 년을 보내며 알게 된 것만큼 로운과 한 학기를 보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로운은 약초학을 전공한 할머니 덕에 약초학에 능했고, 몰이꾼인 태형과 버금갈 정도로 빗자루를 잘 몰았으며,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천식과 약한 기관지로 인해 잔기침을 달고 살았고,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 이런저런 이유로 병동을 자주 들락거렸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자의적으로 깊은 인연을 만들지 않았고, 그 덕에 태형과 더 자주, 더 오래 지낼 수 있었다.
둘은 조식과 중식을 꼭 함께 먹었다. 주말 점심시간이면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읽거나 수다도(대체로 로운이 말하고 태형이 들었지만) 떨었다. 호그스미드에서 이런저런 군것질을 하기도 하고, 숲에서 열매를 따먹기도 했다. 한 번은 머글세계에 나갔다가 걸리는 바람에 함께 벌점을 받기도 했다. 태형은 이따금씩 로운을 병동에 데려다주거나 데리고 오기도 하면서 로운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태형은 그것이 어쩐지 본능 같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첫 만남이 그랬고, 마법주문으로 분류모자를 속였을 때가 그랬다.
태형에게 로운은 점점 본능이 되어가고 있었다.
“약초학 과제 너무 많아.”
모든 교수님들은 다 본인 수업만 있는 줄 아나 봐. 로운이 볼멘소리를 하며 수저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운이 흥미를 갖고 꽤나 성실하게 임한 수업 중 하나가 약초학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방대한 양의 과제로 고생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시험이 끝나고 남은 과제들이 여러 수업에서 한꺼번에 나와, 방학이 얼마 안 남았음에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래도 항상 안 빠지고 잘 해갔잖아.”
“그 덕에 다른 과제들을 부실하게 제출하기 시작했어. 내가 약초학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음 벌써 버렸을 거야.”
양 볼 가득 감자를 넣은 로운이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태형은 그 모습에 웃으며 샐러드를 뒤적거렸다. 푸른 샐러드가 마치 숲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응?”
“약초학 과제는 나랑 같이 하는 거야.”
내가 자주 가는 숲이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 내 말은, 너만의 장소 같은 거 아냐?”
“괜찮아.”
너랑 함께라면, 뭐든지.
“언제 가려고?”
“저녁 먹고.”
“어엉?”
“지금.”
태형에게 로운은 점점 본능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거! 너도밤나무 약초! 내가 꼬박 사흘을 찾아 헤맸던 건데.”
“…….”
“개구리뒷다리 풀꽃! 이건 내가 일주일동안 찾다가 포기한 거! 여기 그냥 약초천국이네? 네가 항상 채집과제를 잘해오는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진작 데려올걸 그랬네.”
태형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마다 오던 호수. 로운은 여기에서 저기까지, 저기에서 여기까지 뛰어다니며 약초에 눈을 빛냈다. 여름임에도 저녁의 바람은 꽤 차서 태형은 로운이 혹여 기침을 하진 않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순간 나부끼는 머리칼 사이로 로운의 웃는 눈이 보였다. 태형은 그것이 노을 같다고 생각했다. 꺼질 때 더 붉게 타오르는 불처럼, 하늘을 아주 붉게 물들이는 노을.
그때 태형은 제가 들었던 말 중 하나를 떠올렸다. 언제 크기가 커질지 모르는 불꽃. 그것은 머글세계에 있을 때, 고아원에 있던 몇 명을 병원신세 지게 만든 뒤에 생긴 별명이었다. 어감은 나쁘지 않지만 속뜻은 묘하게 태형을 향한 두려움과 경멸이 서려있는 것. 태형은 처음으로 그 별명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너도, 나와 같이 붉은 색이구나.
“너는 발소리도 안 내고 걷더라.”
그러나 너는 내 것을 잠재우고 나는 네 것을 따라간다.
“기차 탔을 때 말이야.”
“응?”
“그때도 그렇게 소리 없이 왔었는데.”
“아아, 어렸을 때부터 몰래몰래 나가야 하는 일이 많았거든. 약 먹고 쉬어야 하는데, 심심해서 그럴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게 습관이 됐나 봐. 그런데 기차는 무슨 소리야?”
로운은 태형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운은 호그와트 입학 전날 온 동네를 휘저으며 오랫동안 보지 못할 곳들을 다녀오느라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었다. 물론 몰래 다녀오느라 그 피곤은 배가 되었고, 그래서 기차에서는 자리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태형은 헛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 대답했다. 로운이 기억하는 저와의 첫 만남이 약초학 수업에서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오래도록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너는 나를 건너 건너 알고 있었을 뿐이겠구나. 그래서 더 네 것을 따라가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래번클로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언젠가 고서에서 읽었던, 쓰게 될 줄도 몰랐던 주문을 썼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그냥, 나의 느낌으로.
나는 네가 되고 있는데.
“너는……”
너도,
“응?”
너도 내가 되고 있을까.
“아냐. 이만 돌아가자. 바람이 꽤 차네.”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라면, 나도 네게 우연이 아니고 싶다.
로운의 흩날리는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태형은 웃어보였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
나의, 나비야.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태형이가 저러니까 나비가 되고 싶은데 일단 저는 인간이 좋네요
이번 달이 끝날 때까지는 연재가 평소보다 조금 빠를 것 같아요 빠른 전개를 위해...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만큼 저도 빨리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하지만 다음 달부터는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껄껄 그래도 또 변덕이 오면 빨라질지도 몰라요 *^^*
저번 화에도 언급했듯이 소장본 소식은 3월 중으로 데려올 것 같습니다 한 번 더 언급하는 이유는 혹시나 해서요...
그리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ㅠㅡㅠ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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