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근처가 아닌 이상은 어디에서도 잠을 자지 않겠다는 똥고집 열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대 아래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아주 큰 의심 속 불편한 마음과 다르게 눈은 잘 감긴 탓에 아주 푹 잘 잤다고 말할 수 있었다. 덜 뜨인 졸린 눈으로 시계침이 열두 시를 가리키는 걸 봤을 때야 엄청나게 늦잠을 잤다는 걸 자각했다. 상체를 일으켜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 어제 새벽에 있던 일이 생각나 침대 아래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건 큰 옷가지들 아래에서 잠들고 있는 허스키, 진짜(?) 열매였다
"...헐."
어제 그렇게 멘붕을 겪고 나서도 또다시 밀려오는 두통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니까, 개와 사람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한다 이건가? 혼란스러움을 안고 꿀잠을 즐기고 계신 열매가 깨지 않게 조심 조심 발걸음을 내딛어 방 밖을 나왔다. 화창한 햇빛이 불 꺼진 집 안을 밝게 비추어주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도 보고, 대충 씻고 수건으로 탁탁 털고 문을 열었다.
"주인!"
"아 씹...!"
분명 쿨쿨 자고 있던 멍멍이 열매가 금방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서있었다. 그 특유의 미소 (^____^)를 빼놓지 않고.
놀란 가심을 쓸어내리고 인사하는 열매에게 맞인사를 해주었다. 아, 어, 안녕 ㅎ... 다행히 옷은 어제처럼 뒤집어 입지 않고 잘 입고 나왔다.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 그냥 현실 수용을 해야하나. 아니, 근데 이건 스케일이 좀 크잖아! 영화에서만 보던,...
"주인, 나 배고파."
"...밥 먹을까."
"응!"
금강산도 식후경.
식탁 의자에 걸쳐져있던 앞치마를 둘러맸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 쓰담쓰담
아빠와 오세훈, 김종인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얘가 이상한 걸까.
적당히 2~3인분으로 간단히 만든 볶음밥, 나는 두 입만 먹고 저 녀석에게 모두 내줘야만 했다. 후라이팬 손잡이를 한 손으로 집고 숟가락으로 퍼먹는 모습은 꽤나... 거지 같았다. 나쁜 뜻이 아니라, 정말 거지. 며칠 굶은 듯한 사람. 내 배고픔은 잠시 잊고 열매의 먹는 모습을 살펴봤다. 서투른 숟가락 질이라는 게 보인다. 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꾸 식탁에 볶음밥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흘리면서 먹으면 안 되지."
"이게 자꾸 흘려지는데."
"그렇게 잡지 말고, 이렇게 잡아봐."
흡사 산적처럼 집은 숟가락을 보통 사람들처럼 잡게 해주었다. 이렇게? 되묻는 열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 큰 놈한테 이런 앙증맞은 것까지 가르쳐줘야 하는 게 조금 꺼림직해졌다. 그래도 전보다 수월하게 입으로 넣는 걸 보고 흐뭇해했다. 미친. 이게 뭐라고 엄마 미소가 지어지지. 10분도 되지 않아 깨끗하게 비워진 후라이팬을 보고 경악을 했다. 이런 내 표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만 크게 뜨고 왜? 라고 한다. 아닌가, 원래 눈이 큰 걸까.
"그냥... 잘 먹네 열매야."
"나 배 불러 주인."
"그렇게 많이 먹으니까 배가 부르지."
난 두 입 밖에 못 처먹었는데!!!!!
티비를 틀어놓고 열매를 쇼파에 앉혔다. 여기서 이거 보고 있어, 알겠지? 애한테 짐짓 경고하는 것 마냥 단호히 말하니 열매가 알겠다며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별로 많이 한 것도 없는데 쌓인 설거지가 못내 미웠다. 휴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건데...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어쩔 수 없이 고무장갑을 손에 꼈다. 물을 틀고 세제를 짜 쓱싹쓱싹 문질르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신기한 표정으로 거품이 묻혀진 그릇들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거일려나. 그런 열매를 보다, 다시 내게 눈을 돌리는 탓에 아직 불편한 감이 남은지라 다시 설거지에 열중했다.
"주인. 이게 뭐야?"
"이건 설거지 하는 거야. 너랑 나랑 먹은 걸 깨끗이 닦는 거."
"이 동글이는?"
크게 거품이 난 그릇을 보며 열매가 말했다. 동글이라니... 존나 큰 등치에 언어력은 아기 수준이잖아. 귀엽지만 좀 그렇네. 하하.
세제라고, 어떻게 또 어렵게 거품이라고 설명한 나는 금새 설거지를 마쳤다. 자신도 해보겠다는 열매를 말리랴, 그릇 깨지지 않게 하랴 정신이 없던 것 같다. 나중을 기약하고 거실로 가있으라고 하니 꽤나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 쇼파에 안착하는 걸 봤다. 개나 사람이나 말 잘 듣는 건 다를 게 없구나. 존나 한 것도 없지만 잘 키운 기분이다.
북극을 주제로 삼은 다큐 프로그램에 빠진 열매를 뒤로하고 이부자리 정리를 하려고 방에 들어갔다. 침대부터 바닥까지, 돼지우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은 모습에 귀찮음에 한숨이 푹 쉬어졌다. 이불들이 이리저리 넓게 펴져있었다. 아아, 제발 쉬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다. 어차피 우리 집에서 살게 됐는데, 기본적인 건 가르쳐 놔야지! (를 빙자한 집안일 시키기) 반가운 목소리로 열매를 부르니 우당탕 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말은 참 잘 들어요.
"열매도 이거 같이 해볼까?"
"이거 뭐 하는 건데?"
"음... 이불 정리 놀이! 재밌을걸? 같이 하자."
"응!"
주인이 이런 불순한 의도를 가져서 미안해...☆
그래도 열매 거까지 하고 살기엔 짐이 늘고, 힘은 빠지니까. 나는 내 이불을 들고, 열매에게 제 이불을 들게 했다. 이렇게 펴봐. 내가 하는 행동과는 조금 미숙하지만 이불을 반으로 접어서 똑같이 하라고 하니 꽤 비슷하게 접었다. 또 다시 한 번 접으라고 하니 삐뚤빼뚤해도 잘만 했다. 바닥에 까는 이불도 완벽히 처리했다. 짜식 괜찮은데?!
"좀 하는구먼. 잘 했어~"
보상의 의미로 (?) 강아지 열매를 대하듯 까치발을 들어 머릴 쓰다듬어줬다. 강아지 열매는 박스에 들어갈 만큼 귀엽고 작은데, 사람 열매는 겁나게 크네. ^^;
나름 여자의 키로서 163은 알맞다고 생각했는데, 성처럼 큰 열매를 보니 좀 부럽기도 했다. 정리도 다 했겠다, 이제 할 게 뭐있나 하고 생각하다, 열매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
"어? 왜."
표정이 오묘했다.
무언가 신기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을랑 말랑하는 게 영 알 수 없었다. 뭐, 뭐지... 부르고 나서도 아무 대답 없는 열매에게 다시 한 번 대답하자, 열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해 주면 안 돼?"
"...?"
"금방, 막 이렇게 해 준 거."
그러면서 내 손을 지 머리에 올려놓는다.
...
......
..........
쫀나 끼여워!!!!!!!!!!!!!!!!!!!!!
머리 쓰다듬어준 게 마음에 들었는지 허락을 맡는 것처럼 나에게 물었다. 큰 강아지를 보는 듯한, 의외로 귀여운 열매를 흐뭇하게 바라보자 허릴 숙여 머릴 내밀었다. 아, 깜짝이야 ㅎㅎ... 손을 들어 문질 문질 해주니 얼굴을 들고 헤벌레 웃는다.
...반인반수 주제에 잘생겼다니...
*
뭐, 다행스럽게도 씻는 건 지가 알아서 척척 잘 하는 듯 했다. 화장실에서 샴푸 거품을 내고 이렇게 하는 거야~ 바디클렌저를 샤워타올에 쭈욱 짜 몸에 문질문질 하고 물로 닦은 후에 수건으로 닦고, 옷을 입고 나오라는 주구장창 긴 설명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왔다. 제발 잘 해결하고 나오길 빌었다. 어린 아이가 아닌, 성인의 몸을 닦아주는 건 달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성인 체구 남성이라면... (끔찍) 중간에 우당탕 소리도 나고, 뭔가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도 적나라하게 들렸지만 참고 기다렸다. 다치지는 않겠거니 하며 쇼파에 엎드려 기다렸다. 물 소리가 꺼지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잘 한 건가? 몇 십 분이 흐르고 문이 열렸다.
"주인, 나 다 했어."
머리에 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나왔다. 이리로 오려고 하자 내가 안 돼! 소리치며 재빨리 다가갔다. 종인이가 두고 간 여벌의 옷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출장 간 종인이한테 좀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물을 털어내는 행동을 하는 열매 때문에 정신이 없어졌다.
"열매야, 이리로 와봐."
방으로 들어가 화장대에 앉혔다. 낮아진 열매를 향해 헤어 드라이기를 조준했다. 괴음과 함께 바람이 나오자 열매는 놀랐는지 드라이기에 머리를 박고 달아났다. 주인, 이게 뭐야!!! 기겁을 하며 달아나려 하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제자리에 앉혔다. 살짝 무서워하는 것 같았으나 머리를 말려줄 뿐 저에게 해가 되는 게 없으니 입 꾹 닫고 가만히 있는다. 그나저나 개사람은 머리가 원래 이리 부드러운가? 엘라스틴 애용자인 나도 이렇게 부드러웠던 적은 없는데. 보드라운 머릿결을 쓰다듬듯 털털 털어주니 열매도 나쁘지 않은지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다. 결국 좋아할 거면서 튕기긴. 그렇게 몇 분을 말려주고 헤어드라이기를 껐다. 끝! 코드를 뽑고 거실로 나가려는데 뒤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열매 자?"
가까이 다가가보니 고갤 푹 숙인 채 눈을 감고 자는 열매였다. 시끄러웠을 텐데, 잠이 오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가, 아까 접어 놓은 이불 위로 옮겼다. 땅에 머리를 박을 뻔 했으나 타이밍 좋게 손을 그쪽으로 옮겨서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잤는데도 잠이 오는구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나도 바닥에 털썩 앉았다. 아침부터 큰 일을 치룬 것 같았다. 먹은 것도 없어서 힘도 쭉쭉 빠지고.
"열매야."
"......"
"...넌 뭐니."
나도 내가 이렇게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이었나 싶다. 자다 일어나보니 개가 사람이 되어있고, 그 반인반수에게 먹을 걸 주고, 이것 저것 알려주고, 머리도 말려주고. 예전에 나라면 상상도 못했을 거다. 곤히 잠든 열매의 볼을 쿡 찔렀다. 말랑하구먼. 잠에 푹 빠진 녀석에게 내 침대 위에 올려진 내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다 팔이 삐져나왔는데, 왠 큼지막한 멍이 들어있었다. 아침에 확인했을 때도 이런 건 없었는데. 화장실에서 다쳤나. 일어나면 약이라도 발라줘야 할 듯 싶었다.
애물단지야, 이왕 잘 거면 오래 푹 자 줘. 주인 피곤해. 휴대폰을 들고 종인이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으으음..."
"......"
"주인..."
이건 뭔 사랑스러운 시추에이션...?
몸을 뒤척이며 내 쪽으로 돌리며 '주이인...' 이라며 잠꼬대를 하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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