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첸] 뚝 떨어진 천사 변백현 x 지나가던 김종대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0/c/e/0ceeea07ac6648619292094092d1854f.gif)
종대는 백현과 통성명을 하고 난 후 어색함에 찌들어 죽을 것만 같았다. 저 사람, 아니 아저씨, 오천 번 봐줘서 형은 대체 뭘까. 게다가 자신의 할머니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가 깨어났으니 쫓아내야 할지, 아니면 더 신세를 지도록 아량을 베풀어야 하는지 감이 오질 않았다. 종대의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현은 종대의 좁은 방 안을 이리저리 누비며 눈에 보이는 것마다 신기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침대 앞에 조용히 앉은 종대가 두 손을 경건히 모으고 고민에 빠져있던 것도 잠시, 백현이 종대의 눈 앞에 손바닥을 휙휙 흔들며 말을 걸었다.
"야. 인간아."
대뜸 없는 '인간' 이라는 호칭에 종대는 기분이 팍 상했다. 물론 인간에게 인간이라면 듣는 인간은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종대라고 이름까지 알려줬건만. 괜히 빈정이 상한 종대는 입술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인간 아니고 종대인데요."
"인간 아니면 뭔데? 너도 천사냐?"
"그런 거 아니… 뭐라고요?"
종대는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방금 너도 천사라고 했나? 너도? '너도' 라는 것은 백현이 천사일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보조사였다. 종대가 '어서 내게 한 마디 설명이라도 해봐!' 라는 눈빛을 쏘아대자 백현은 되려 자신이 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종대를 위아래로 훑었다.
"워워, 나한테 반한 건 알겠는데 시선이 너무 뜨겁잖냐."
"아저씨, 진짜 천사에요?"
딱.
종대의 이마가 빨갛게 부어올랐다. 백현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아야… 이마를 박박 문지르며 백현을 올려다보는 종대가 찔끔 눈물을 보였다. 백현은 그런 종대는 아랑곳 않고 빽 소리를 질렀지만,
"아저씨는 누가 아저씨야. 230살 밖에 안 먹었…"
"좀, 시끄러워요…!"
혹시나 할머니가 듣고 또 방으로 찾아오실까 잽싸게 백현의 입을 막은 종대의 손길에 묻히고 말았다. 거칠게 저항할 줄 알았던 종대의 예상과는 달리 백현은 순순히 종대가 입을 막은 대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입을 막은 손바닥 너머로 잘 들리지 않는 웅얼거림을 외치며 한껏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잠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종대의 머릿속에 한 가지가 스쳐 지나갔다. 이 아저씨, 우리 할머니가 아까 못 보셨었는데. 사실을 깨닫고 나서 종대는 입꼬리를 씩 올린 채 백현의 눈치를 보며 막고 있던 손을 스르르 내렸다. 그러기 무섭게 종대를 쏘아보는 백현의 목소리는 종대에게 들리다 말았다. 근데, 230살?
"너 손 씻었냐? 존나 짜."
"잠깐만요. 아저씨, 진짜 230살이세요?"
"너 존나, 어디 한 번 나중에 천당 가서 나한테 아저씨라고 지껄여봐라. 오천 살 쳐먹은 도 씨 할매한테 죽도록 맞을 걸?"
헐. 현재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종대의 가슴 한 켠을 가득 채운 한 글자였다. 진짜 천사에요? 진짜? 진짜로? 종대의 계속된 물음에 백현은 넌덜머리가 났는지 두 귀를 막고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겠냐며 침대에 발라당 누워버렸다. 한 번도 안 말했는데… 백현의 계속된 무시에 서운해진 종대는 괜히 입을 삐죽거리며 백현이 누운 옆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머릿속을 제 나름대로 열심히 정리해보았다. 그러니까 자신은 평소처럼 집에 왔고, 평소처럼 장마가 왔다. 그러던 와중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밟았는데, 그게 백현이라는 이 아저씨였다. 이 아저씨는 자신이 천사라고 주장하는데 할머니 눈에 안 보이고, 안 보이고…
"근데 왜 할머니 눈에는 안 보여요?"
"낸들 아냐? 난 너네 할머니 본 적도 없는데 뭔 개소리야."
백현의 대답에 종대는 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졌음을 느꼈다. 아, 머리 아파. 일단 그렇다 쳐두기로 한 종대가 백현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의 젖은 머리칼과 옷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종대의 머릿속에 빗속에 젖어있던 백현의 모습이 지나갔다. 저대로 있으면 감기 걸릴 텐데. 몸을 일으킨 종대가 옷장을 정신없이 뒤지다 결국 자신의 학교 체육복을 꺼냈다. 그가 잘 개어진 체육복을 백현에게 건네자 백현은 썩어 문드러진 표정을 하고서는 종대와 체육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패션 센스 봐, 존나."
"입기 싫으시면 그러고 있으시든…"
"누가 안 입는대?"
종대에게서 체육복을 뺏듯이 휙 가져간 백현은 자신의 앞에 있는 종대는 전혀 아랑곳 않고 입고 있던 축축한 옷을 훌훌 벗어제끼기 시작했다. 그에 소스라치게 놀란 종대는 같은 남자끼린데,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다 결국 조용히 두 손바닥으로 눈앞을 가리고 말았다. 아, 진짜… 같은 남자에게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는 스스로를 속으로 탓하고 있던 것도 잠시, 방문 너머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녁 먹으러 나오라는 말씀이었다. 손바닥 사이로 두 눈을 깜빡이던 종대가 백현을 흘낏 쳐다보았다. 그러나 백현은 있어야 할 자리에 없었다. 의아해진 종대가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것은 방문을 열고 밥을 외치며 거실로 나가는 백현의 모습이었다. 세상에! 놀란 나머지 멍하니 서있던 종대는 백현을 잡으러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한 발 늦은 종대의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은 아주 가관이었다.
"할매, 왜 내 밥은 없어?"
"우리 강아지, 얼른 할미랑 밥 먹자. 안 앉고 뭐 혀."
"이봐, 할매. 나 무시해?"
백현에게 제발 조용히 해달라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종대는 매우 원망스러웠다. 저 아저씨 진짜… 그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마른세수만 하다 일단 식탁 앞에 앉았다. 종대는 어느새 제 옆자리에 앉고는 지금 자신을 굶기려는 거냐, 너만 먹으면 맛있을 것 같냐며 귀에 다다다 박히는 백현의 목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와 동시에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떻냐며 묻는 할머니와의 대화를 이어가자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할머니께서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시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하면서, 제 눈에만 보이는 백현까지 상대하기란 담임 김준면 선생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세상에 그것보다 힘든 일은 없으리라 자부했건만. 내일 학교에 가면 친구 세훈에게 이 일을 꼭 알려줘야겠다고 다짐하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식사를 끝낸 종대는 오늘따라 피곤하다는 명목으로 후딱 방에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기 전 할머니의 눈을 피해 선반에서 백현에게 줄 빵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까지 안전하게 닫자마자 바로 소리를 지르는 백현에 종대는 한 쪽 귀를 막으며 빵을 던졌다.
"일단 이거나 드세요."
"천사한테 이따구로 해서 너가 천국 갈 수 있을 것 같냐."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주세요."
백현의 하이톤에 골이 울리는 나머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종대의 요청에 백현은 궁시렁대며 빵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백현을 빤히 바라보던 종대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역시 아무리 시끄러운 사람이라도 먹을 때만큼은 조용해지는 것이 맞았다. 빵도 꽤 큰 걸로 던져줬으니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 생각하며 급격히 밀려오는 피곤함에 침대에 누워 살짝 눈을 붙이려던 종대의 휴식은 빠르게 빵을 해치운 백현의 속도로 인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종대가 누우려고 하는 기미가 보이자 빵을 채 씹지도 않고 입 안에 꽉꽉 우겨넣은 백현은 종대의 팔을 잡고 무어라 웅얼대며 빵 부스러기를 튀겼다. 따발총 맞듯 얼굴에 박혀오는 빵 부스러기에 참다참다 못한 종대는 결국 백현의 뺨을 반대로 주욱 밀어냈다.
"아저씨, 좀!"
"으저씨 으이라이까?!"
"먹었으면 잠이나 주무세요. 졸리시죠? 안녕히 주무세요."
어떻게든 저 입을 닫아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종대는 다짜고짜 백현을 침대에 눕혀버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뒤에서 백현의 욕지거리가 들려왔지만 모른 척했다. 자신이 방으로 돌아갔을 때쯤엔 제발 백현이 잠든 채로 있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고 또 빌며 종대가 방으로 향했을 때, 백현은 종대의 바람대로 그새 잠들어 있었다. 뭔가 잘 된 것 같으면서도 허탈한 느낌에 종대는 픽 웃고는 조용히 백현 쪽으로 다가갔다. 침대 옆에 가만히 앉아 백현이 취침하는 모습을 살피고 있자니 새삼 백현이 꽤 잘생겼다고 느끼는 종대였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살피며 한참 멍하니 있다, 곧이어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종대는 얼굴이 붉어져 괜히 백현이 덮고 있는 이불을 백현의 머리 끝까지 올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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