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첸] 뚝 떨어진 천사 변백현 x 지나가던 김종대 03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0/c/e/0ceeea07ac6648619292094092d1854f.gif)
폭풍이 지나간 후 고요한 방 안, 종대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여긴 내 방인데. 제 침대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곤히 자고 있는 백현을 굳이 깨워 바닥으로 내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큼 매정한 성격은 아닌 종대는 한참 동안 고민을 하다 결국 바닥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손님이 왕이니까, 후. 애써 웃으며 할머니 모르게 이불을 빼와 방바닥에 깔고 누운 종대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가족 말고 누군가와 한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은 처음이었다. 친구 집에 놀러가서도 하룻밤 신세를 지기보다는 늦기 전에 꼭 집에 돌아오던 그였기에 더 그랬다. 더군다나 백현이 여자도 아닌데 괜히 심장이 두근대는 종대였다. 그의 존재를 무시하려 애쓰며 눈을 감고 있다 슬슬 잠이 들려고 하면 왠지 백현의 숨소리가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종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 동이 틀 때쯤 간신히 잠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잠을 자던 종대는 눈을 뜨자마자 어제와 같이 골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잠에서 깨긴 깼지만 몽롱한 정신과 몰려오는 피로에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알람을 들은 기억도 없는 것으로 보아 또 끄고 자버린 것 같았다. 또 학교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스레 눈을 부비고는 제대로 눈을 떴을 때, 누워있는 종대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백현이었다. 둘의 얼굴 사이의 거리는 거의 두 뼘 정도 떨어진 상태였다.
"아아아악!"
"일어났…"
"뭐예요!"
종대는 반사적으로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자신을 놀래켜놓고는 태평하게 일어났냐고 묻는 백현에 종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벙 진 표정으로 아침부터 사람 간 떨어지게 한 것에 대해 백현을 원망스레 쳐다봤지만 백현은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종대를 바라보며 말할 뿐이었다.
"나 심심해."
심심하다고? 심성 고운 종대의 가슴 속에 분노가 화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은 누구 때문에 딱딱한 바닥에서 종일 잠도 못 자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 자고 피곤해 죽겠는데, 그 누구는 푹 자다 일어나고는 사람 놀래켜놓고 하는 말이 심심하다니! 당장이라도 백현의 뺨을 때리며 썩 꺼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종대의 본성은 그러지 못했다. 결국 헤헤 웃기만 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방구석에 걸어놓았던 시계를 찾았다.
"근데 지금이 몇…"
종대의 시선이 시계에 닿았을 때, 시계는 마치 약을 올리듯이 오전 7시 40분 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등교 시간은 8시까지. 학교를 꽤 먼 곳으로 다니는 종대로선 높은 확률로 지각을 할 게 뻔한 상태였다. 현재 시각을 파악한 종대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그는 왜 그러냐며 어서 놀자는 백현의 팔을 뿌리치고는 화장실로 달려가며 소리를 지르려다, 거실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고는 대충 고양이 세수를 끝내고 칫솔에 치약을 짜며 자신을 따라온 백현에게 속삭이듯 윽박질렀다.
"왜 안 깨웠어요! 아, 진짜…."
"자기가 늦잠 자놓고 나한테 난리네."
"저 계속 보고 계셨던 거 아니었어요? 그럼 깨웠어야죠!"
백현은 칫솔을 입에 넣고 구석구석 빠르게 양치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종대를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자는 사람을 깨우면 쓰나, 라는 백현의 얄미운 한 마디에 종대는 대답 않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입을 헹궈버리고는 정신없이 방으로 뛰쳐들어가 교복을 대충 껴입었다. 백현은 침대 난간에 기대어 종대가 하는 양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근데 어디 가는 건데?"
백현의 뜬금 없는 질문에 종대는 교복 윗도리를 머리에 끼워 넣다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혹시 잊은 준비물은 없는지 가방을 뒤적거림과 동시에 현관으로 나가며 톡 쏘았다.
"학생이 이 시간에 학교 가지 어딜 가요. 천국엔 학교도 없어요?"
"죽은 사람들만 모인 곳인데 그런 게 있어야 말이지."
백현의 대답에 풀린 운동화 끈을 묶던 종대의 손이 멈칫했다. 혹시 자신이 너무 생각 없이 말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 종대는 백현에게 아무 대꾸도 않고 다녀오겠다며 묵묵히 집을 나섰다.
간발의 차로 지각을 면한 종대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시작된 수업에 집중하려 애썼다. 5분, 10분이 지나고 차차 가라앉은 종대의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칠판을 향해 꾸벅꾸벅 인사를 하던 그는 이건 다 어제 백현이 자신의 꿀 같은 수면을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를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종대의 고개는 결국 교과서 위에 푹 박혔다.
그렇게 오전 수업을 잠 때문에 통째로 날려먹은 종대는 딱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잠에서 깬 자신을 깨닫고는 밀려오는 자괴감에 얼굴을 감쌌다. 그것도 잠시 친구 세훈과 마주앉아 소시지를 찍어먹으며 행복해하던 그는 전날 백현과의 대면이 떠올라 밥풀까지 튀기며 세훈을 급하게 불렀다.
"있잖아, 세훈아!"
순식간에 종대의 입 속에서 분출된 밥풀을 직방으로 맞은 세훈은 젓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웃어보였다.
"씨발,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려."
밥풀을 묻힌 채로 미소를 짓는 세훈의 모습에 괜시리 머쓱해진 종대는 하하, 하고 웃어주며 사과의 의미로서 자신의 소시지 하나를 세훈의 식판에 슬쩍 얹어주었다.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 어제 천사 봤다."
"……."
세훈은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 간 정적을 유지하던 그는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 그에 종대도 결국 무어라 더 하지 못하고 가만히 국을 떠먹었다. 한동안 둘 사이에 후루룩대는 소리만 오가던 중, 세훈은 아무 말 없이 종대가 자신에게 주었던 소시지와 자신의 몫 하나를 더해 총 두 개를 종대의 식판에 얹어주었다. 뭐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종대의 눈빛에 그는 씩 웃어보이며 말했다.
"많이 먹고 힘내라."
마의 5교시 수업, 종대네 반 학생들 중 3분의 2는 이미 나가떨어진 상태였다. 심지어 국사 수업이었기에 생존해있는 나머지 30퍼센트의 학생들의 눈꺼풀도 매우 무거워보였다. 그 중에서 유독 초롱초롱한 것은 종대였다. 오전 수업을 전부 잠으로 보내서 그런지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 상태에 도달해 있는 그였다. 스스로도 놀라워하던 종대는 지루한 국사 수업을 듣고 있자니 또다시 잠이 올 것만 같았다. 주변에 앉은 친구들과 몰래몰래 수다를 떨고 싶어도 거의 전멸한 상태였다. 결국 체념하고 열심히 필기를 하던 중, 종대는 창가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 좋다고 느꼈다. 미소를 머금으며 창가 쪽을 바라본 그의 눈에 백현이 보였다.
"아, 찾았다. 야, 인간아!"
종대의 교실은 3층에 있었다.
"나 안 보여? 김종대!"
백현은 공중에 둥둥 떠있다 창가에 걸터앉고는 손을 흔들며 계속 종대를 불렀다. 종대는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백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픽,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아, 잠이 아직 부족한가. 아니면 내가 벌써 죽을 때가 됐나. 종대는 아무래도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칠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시 필기에 집중하려는 찰나, 자꾸 백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환청을 떨치기 위해 고개를 흔들며 마사지를 하려는데, 어느새 종대 쪽으로 다가온 백현이 그의 교과서를 깔고 책상 위에 앉아 종대의 볼을 꼬집으며 소리쳤다.
"왜 나 모르는 척해!"
"으아아… 아저씨이…."
종대는 백현의 손을 잡고 떼내려 버둥거렸다. 그러다 문득 수업 중이라는 생각에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봤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었다. 선생님도 종대의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들으신 것 같지는 않았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던 것도 잠시, 종대는 꼬집힌 볼이 아프다는 생각에 그때서야 비로소 백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아파? 꿈이 아닌가? 백현은 종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퉁명스레 마주했다.
"으아아악!"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겨우 깨달은 종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조용한 교실에 울려퍼진 그의 비명은 기절하듯 자고 있는 반 친구들을 깨우지는 못했지만, 열성을 다해 수업을 진행하시던 선생님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국사 선생님의 날카로운 시선에 종대는 예의 해맑은 미소로 겨우 무마시켰고, 그렇게 수업이 끝났다. 종이 울리기 무섭게 종대는 백현을 데리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칸 하나에 밀어넣은 뒤 문을 닫자마자 그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화장실은 학생들로 붐벼 꽤 떠들썩하였기 때문에 목소리를 줄일 필요는 없었다.
"학교는 왜 온 거예요?"
종대는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가버리라는 눈빛을 쏘아대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백현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코끝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말했잖아. 심심하다고."
"그래도 그렇지, 여길 오면 어떡해요. 진짜 미쳤어요?"
말을 하며 울상이 된 종대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백현은 적반하장이었다. 한동안 둘은 화장실 칸 안에서 어차피 너만 보이는데 뭔 상관이냐, 됐으니까 집에 가라 하며 옥신각신했다. 이제 곧 수업 종이 울릴 것 같은 예감에 종대는 마지막으로 백현에게 집에 가서 기다려달라고 간청했다. 종대의 간곡한 부탁에 백현은 결국 그러기로 하였고, 교문 앞까지 백현을 배웅하고 나서야 종대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수업에는 살짝 늦었지만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학교에서의 모든 일과가 끝났다. 종대는 혹시나 학교 밖에서 백현이 기다리고 있기라도 할까봐 세훈에게 오늘은 심부름이 있어 같이 가지 못하겠다며 핑계까지 댄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교문 밖으로 나왔을 때, 예상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백현은 하교하는 학생들 무리에 파묻혀 두리번대다 종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빠르게 달려왔다. 종대는 백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살짝 돌리고는 한숨을 쉰 뒤 그를 마주했다.
"이렇게 마중까지 나와주는 오빠가 세상에 어디 있냐."
"아, 네."
그러시겠죠. 이젠 본인을 형도 아니고 오빠라고 칭하는 백현에게 무미건조하게 답한 종대는 최대한 걸음을 빨리하려 노력했다. 백현은 종대와 속도를 맞추며 옆에서 네가 없는 동안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긴 아냐, 이 근방에는 학교가 왜 이렇게 많은 거냐, 너 찾느라 죽는 줄 알았다 등 한시도 멈추지 않고 쉴새없이 말하기 바빴다. 반면 종대는 중간중간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며 들어줄 뿐이었다. 겉으로는 그래도 속으로는 백현과 함께 있으니 조용한 것보다 낫고 즐겁다고 생각하는 종대였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하교길을 갖던 중, 종대가 백현을 발견했던 골목을 지나면서 종대가 잊고 있던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백현이 자신도 모른다고는 하지만, 대체 어쩌다 이곳에 쓰러져 있었던 것일까.
"아저씨."
"아저씨 말고 오빠."
그놈의 오빠. 종대는 벌써부터 '오빠' 라는 단어만 들어도 골이 울리는 것 같았다. 종대는 괜히 백현을 한 번 휙 쏘아보고는 다시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아저씨 말고 오…"
"아, 대답이나 해주세요. 어쩌다가 여기 떨어지셨던 거예요?"
종대의 말에 백현이 얼굴을 굳혔다. 그는 귀찮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쓸고는 대답했다.
"나도 기억 안 난다고 했잖아."
"거짓말. 그래도 아무 이유 없이 떨어진 건 아닐 거 아니에요."
종대의 논리적인 반박에 백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종대가 승리감 깃든 미소를 지으며 백현을 재촉하듯 바라봤다. 백현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 종대를 한 번 쏘아보고는 대답했다.
"…나중에 말해줄게."
"나중 언제… 으아!"
"우리 종대, 얼른 집에 가야지~"
급기야 백현은 종대에게 격한 어깨동무를 두르고는 뛰듯이 걸었다. 종대는 백현의 팔에 고개가 죄여 캑캑거렸다.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백현을 밀어내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어서 가서 밥 먹자며 웃는 백현의 말에 정말 못 말린다고 생각하며 결국 같이 웃음을 터뜨리는 종대였다. 두 명이 지나는 골목에는 여전히 종대와 백현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지만 오늘따라 골목은 사람이 붐빌 때보다 훨씬 시끌벅적한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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