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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을 위한 지침서 03] 


 


 


 


 


 

 

교복 입고 학교 다니던 시절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아버지가 사온 빵 봉투 안에는 단팥빵과 소보로빵이 가득이었다. 예쁜 우리 딸, 하며 징그럽게 붙어오는 아버지를 밀어내고 굶주린 짐승마냥 빵 봉투를 열어 재끼면서 나는 크림빵은 왜 없는 것이냐며 투정을 냈었다. 다소 거치적거리는 비닐을 벗기고 한가득 빵을 입에 집어넣었다. 어쨌거나 그건 예전일인 마냥 단팥빵은 맛만 좋았다. 딱히 동네 슈퍼에서 파는 빵이라곤 이런 것 밖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도대체 메일 확인은 왜 안하는 거야?” 

 


 


 


 


 


 

화면에 확인하지 않은 메일들이 들어찬다. 오늘밤 외로운 당신을 위한 화끈한 파트너, 오빠! 심심한데 오늘밤 뭐해? 시벌. 목구멍으로 넘어갔던 빵조각이 급정거 하는 기분이다. 나는 덩어리를 삼키듯 침을 삼켜내고 목록을 쭉 훑었다. 볼 것 없이 전부 그런 메일이다. 

 


 


 


 


 


 

  “이별빛 오빠님께서는 어떻게 놀아주시려나.” 


 

  “코드 뽑아버린다.” 

 


 


 


 


 


 

이홍빈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쓸데없는 메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게 줄어드는 숫자에 혀 어느 쪽이 씁쓰름해져 단팥이 조금 상했나 싶었다. 쓸데없는 메일이라고 지운 게 정확히 752통이었다. 

 


 


 


 


 

  “안 지우고 놔둔 건 뭐야?” 


 

  “공모전 메일이나 네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보낸 거. 필요한 거 아니야?” 


 

  “지금은 필요 없어.” 


 

  “아주 그냥 세상을 왕따 시키네.” 

 


 


 


 


 


 

나는 빈 빵 봉지를 구기며 웃었다. 그러자 이홍빈은 이사이에 끼인 단팥 껍질이 불쌍하다며 웃는 내게 무안을 주었다. 얼른 입을 다물고 진짜? 어디에?, 하고 물으니 이젠 또 아니란다. 나는 이홍빈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 잠시 고민했다. 

 


 


 


 


 


 

  “남겨둔 것 중에서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삼일 전엔가 온 건데 발신자 이름이 A.” 

 


 


 


 


 


 

A. 나는 이홍빈의 말을 입에 담고서 다시 굴려 넣었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감색 교복과 함께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름. 평생 과거로 치부되지 않을 것만 같던, 그런. 간지러운 느낌에 어깨가 살짝 떨려왔다. 화면에 가지런하게 정렬된 글자를 눈으로 훑었다. 급한 연락은 아니었지만 곧 얼굴 한번 보자는, 상당히 상투적인 문장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도 어디인지 확실히 꼽을 수는 없지만 얼굴 부근이 홧홧해오고 목을 덮은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러워 들췄다 놓게 되는 이유는 나도 몰랐다. 밑으로 슬쩍 말아 넣은 머리에 단정히 교복을 차려입은 나라면 알까. 

 


 


 


 


 


 

  “오랜만이라는데 좀 만나고 와. 답장 해줄까?” 

 


 


 


 


 


 

이홍빈은 내가 정말 친구 하나 없는 줄 아는지 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는 괜찮다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오랜만이네, 아니 이건 좀 아닌가. 잘 지냈어?, 이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몇 차례 백스페이스를 눌러대며 몇 자 되지도 않는 글씨를 자꾸만 지워나갔다. 만약 종이 위였더라면 지우개에 종이가 해어질 만큼. 결국 ‘미안, 답장이 좀 늦었네. 난 시간 많은데 오랜만에 볼까?’라는,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가장 평범한 문장이 완성되었다. 마우스의 화살표 모양이 메일전송 버튼 주위를 배회했고 아무 말 없이 나의 표류를 감상하던 이홍빈은 조심스레 말을 끌며 물어왔다. 

 


 


 


 


 


 

  “어떤 친구야?” 


 

  “……어, 고등학교 때 많이 좋아했던 친구.” 

 


 


 


 


 


 

나는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동작이 굼떠지는 것에 맞추어 호흡도 늘어진 듯 말을 늘렸다. 그리곤 돌리고 돌려 꺼낸 낯간지러운 말에 홧홧한 기운이 혀에도 알싸하게 감싸오고 있음을 느꼈다. 달칵, 하는 경쾌하면서도 목까지 울렸던 심장박동이 쑥 내려가는 소리에 나는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어떡해, 보내버렸어. 어느새 나는 교복 입은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하루 내내 이걸 했다, 하고 내놓을 만큼의 일을 해낸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가벼운 마음으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눈이 감길 듯 말 듯, 잠이 올 듯 말 듯. 묘한 느낌으로 침대에 그렇게 누워있자니 오늘따라 조용했던 이홍빈이 말을 꺼내 물었다. 

 


 


 


 


 


 

  “만날 거야?” 


 

  “답장이 오면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가도 돼?” 


 

  “아니.” 

 


 


 


 


 


 

나는 천장을 보고 누웠던 몸을 돌려 거치대에 기대진 작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은 빨려 들어갈 듯 검은빛만 내다가 뭘 봐, 하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아니, 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내가 왜 그렇게 대답했는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이홍빈이 그 자리에 존재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무엇을 잃지 않기 위해? 아니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이홍빈을 그 자리에 세워 놓고서 내가 잃을 건 뭐고 없다고 해서 내가 얻는 것은? 잃을 것은 당장에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얻을 것은 있다. 좋은 관계. 옛 기억을 등지고 다시 만났다는 설렘을 안고 시작하는 호감의 관계를 위하여, 나는 이홍빈을 그 자리에 데려갈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네가 연애도 해보라며. 혹시 몰라 그런다.” 


 

  “그게 내가 안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러게. 무슨 상관이지? 

 


 


 


 


 

  “아, 몰라. 나 잔다.” 

 


 


 


 


 


 

자는 척 눈은 감았으나 물음표 단 의문은 쉽사리 나를 재워주지 않았다. 떨떠름해 하다가 이내 알았어, 잘 자, 하고 불을 꺼트린 화면과 이제야 느낀 짙은 어둠은 날 점점 파고들었다. 할 수 있다면 이 머릿속을 전부 꺼내 정리하고 싶었다. 몇 가지 같잖은 답안들이 몸속을 가로질러 입 밖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였으나 난 그게 같잖다는 이유로 다시 삼켜냈다. 삼켜낸 것이 쌓여갈수록 더더욱 의문에 쌓일 수밖에 없었다. 푸른 불빛이 온방을 물들이듯 켜졌다가 사그라졌다. 이홍빈이었다. 

 


 


 


 


 


 

  “혹시나, 그냥 하는 말인데……, 내가 운영체제라 창피해서 그런 건 아니지?” 

 


 


 


 


 


 

목소리는 조용조용하게 아래로 기었고 잠든 척한 나를 깨우려들지 않았다. 그냥 한번 내보지도 못하면 깊은 곳 어딘가가 썩어갈 것만 같아 할 수 없이 내본 듯, 말을 하는 이홍빈은 조심스러웠다. 

 


 


 


 


 


 


 

  “……, 그냥 혹시나 해서.” 

 


 


 


 


 


 

마음 같아선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숨도 쌕쌕 내쉬었다. 작은 종료 알림 소리와 함께 이홍빈이 사그라질 때까지. 다시 어둠이 장악한 천장이 보였다. 난 눈을 떴고 목소리가 사라진 화면을 잠시 바라보았다 창 밖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바깥마저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와 가로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여러 불빛들이 검은 하늘을 괴롭혔다. 


 


 


 


 


 


발신


 

정수정님, 밑입술님, 이서니님 

암호닉 신청 감사합니다'ㅁ' 


 

늦은 나중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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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련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홍빈아 아니야... 난 니가 뭔들... 뭐라도 데려나갈수 있어 그러니까 나랑 연애하자... 내가 평생 너 돌봐주레규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수정이에요 작가님 나라세! 울 홍빈이 분위기가... 다 했자나요... 네ㅐ...??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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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저도 우리 정수정님 나라세! 그렇죠 홍빈이라면 뭔들;ㅅ; 다음 편은 이번보다 좀 더 빨리 올 수 있게 할게요. 늦은 점 죄송하고 더 좋은 글, 재밌게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다시 한번 우리 수정님 나라세 하고 나중에 뵈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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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홍빈이즈뭔들... 호님이즈뭔들... 어서오쉐여 호님~ 이서닙니당 ♥.♥ 주말 오전에 밍기적밍기적 일어나 보니 헐...♥ 호님 신알... 덜덜 떨면서 들어와써여ㅋㅋㅋ 저런 운영체제 현실엔 없나...엿... 어디 조용한 섬으로 몰래가서 집짓고 홍빈운영체제랑 둘이 살고 싶으네요 *_ㅜ

늦지도않고 이런연재속도! 정말 좋습니다 때 되면 척척 글 쪄주시니 독자 입장 에선 어찌나 감사 드리는지... 우리 오래 오래 봅시다 호님♥♥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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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죠 이서니님! 전 편 글이 벌써 보름 전이었는데 괜찮다고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ㅁ;... 감동에 눈물이... 언덕 위에 집 지어 놓고 콩영체제 준비해 놀테니 어서오세요 흡흡 바쁘게 끝내야 할 일을 넘겼으니 다음 편은 좀더 일찍, 재밌게 좋은 글로 올 수 있게 할게요! 다음에 또 봐요 우리! 우리 이서니님도 나라세!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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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ㅠㅠㅠㅠ 홍빈이 왜 갈라구 ㅋㅋㅋㅋㅋ재밌어여ㅠㅠ
11년 전
대표 사진
안녕해요, 우리 독자님!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ㅁ; 다음엔 더 좋고 재밌는 글로 올 수 있게 열심히 할게요, 다음에 다시 봐요 우리! 우리 독자님도 나라세!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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