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잡아줘서 고마워. 내 옆자리에 앉아있어줘서 고마워. 내 얼굴 마주보고 웃어줘서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꿈에서 깼다. 따뜻한 봄바람도, 향긋한 냄새가 나던 나무벤치도, 너도 없다. 오히려 으슥한 기분마저 들었다. 차게 식은 몸을 덮으려 손으로 이불을 더듬어 잡아당겼다. 너무 가볍게 끌려왔다. 내 왼쪽에 누워있어야 할 네가 없다. 하루 이틀이 아닌 일에 진저리가 났다. 너는 왜 내 꿈에 매번 나오면서, 현실에선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여주지 못할까. 나는 왜 같은 꿈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무의식 중에도 옆자리를 더듬어볼까. 너를 잡지 못한 손으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껏 그래왔듯 여느 인연처럼 지나갈 줄 알았다.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과 다른 것도 없다고 여겼다.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이 세상에서 가장 병신같은 일이었다는 걸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난 지금쯤 꿈이 아닌 너를 두 팔 가득 안고 있을텐데. 백현아. 사랑하는 백현아. 내가 네 앞에서 그 소중한 이름을 온기 가득 담은 채 내뱉어 본 적이 있었나. 뒤늦게 목이 가득 메인 채로 더듬더듬 불러보았지만 이젠 들어줄 사람조차 없다. 아니, 너 아니면 아무도 안 들었으면 좋겠다. 남들 다 한다는, 흔한 노래 가사 속 이별이란 게 말이야. 이렇게 숨막히고 가슴 먹먹한 건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귀기울여 들어볼 걸. 난 어떻게 해야할 지 조차 모르겠다. 사랑인지 미련인지 모를 답답한 감정으로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데 난 어떻게 해야할까, 백현아. 네가 습관처럼 해주어서 당연한 줄 알았던, '그래도 사랑해.' 그 말, 조금만 더 귀담아 들을 걸. 사람 목소리 하나가 이렇게 그리운 것인줄 진작 알았더라면, 수백번, 수천번도 더 해달라 했을텐데. 변백현, 넌 정말 나를 사랑했니? '그래도'? 혼자 하는 사랑이 많이 힘들었니? 지금 나처럼? 이렇게 죽을만큼 힘든 줄 알았다면, 조금만 더 일찍 너를 안아줄 걸 그랬다. 나 혼자 누워있는 이 침대에, 한 때는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눴지. 아니, 한 사람만 사랑이었던가. 왜 너는 그렇게 착해빠져서, 진작 나한테 모질게 한 번 못 굴어서, 지금 나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어. 너는 나보다 작아서 내가 여기 이렇게 누워 널 안으면 넌 내 품에 쏙 들어왔다. 그 좁은 틈에서 고개를 들어 나를 말똥말똥 보던 두 눈이 귀여워서, 마지못해 웃으면서 네 뒷머리를 헝클여줬는데. 내 위에 앉아도 너는 하나도 무겁지가 않았다. 오히려 우아한 곡선을 그려내던 전혀 추하거나 더럽지 않던 네 몸짓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너에게 진심이었던 기억이 있다. 너와 함께 사랑을 나눈 순간만 생각하면 몸보다 머리가 먼저 뜨거워져서 눈물이랑 섞여 뜨겁게 흘러내린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는다는 것이 이런 건 줄 진작 알았더라면, 너의 손을 잡을 때도, 너의 귀여운 말들을 무심히 들을 때도, 너를 조금만 더 소중하게 생각할 걸. 왜 네가 오늘까지도 내 옆에 있어줄 줄로 착각하고 살았을까.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내뱉었지만 목구멍을 꽉 막아버린 무언가는 사라지지 않는다. 갑갑함에 주먹을 쥐어 가슴도 쳐보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헝클어보아도 너는 없다. 이게 나의 현실이다. 백현아, 이젠 그럴 일 없겠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어느 땐가, 어디선가 마주치게 된다면. 우주 어딘가서라도 만나게 된다면. 그 땐, 내가 아주아주 밉더라도, 한 번만 웃어줄래. 뒤늦게 널 사랑한 바보같은 사람이 그 모습을 못봐서 죽을 것 같으니까, 네 눈물밖에 보지 못한 기억에 이젠 내가 낮밤을 눈물로 지새우니까, 욕하고, 침을 뱉고, 발로 차고, 뺨을 치고, 주먹으로 몰아세워도 모자란 거 알지만, 한 번만 웃어줄래. 살면서 이렇게 하루하루가 의미없고 무기력한 건 처음이다. 심장이 아프도록 가슴이 먹먹해져본 것도 처음이다. 누군가를, 그것도 변백현을. 이렇게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빈 말이라도, 사랑한다 한 번만 해줄 걸. 네가 하는 모든 말, 진지하게 한 번만 들어봐줄 걸. 매일 새벽 잠을 설치고서 끝없는 후회와 질문만 늘어놓는 일은 이제 지치는데. 네가 아주 못된 놈이었다면 좋았을 걸. 나를 떠나는 순간까지 내 걱정밖에 하지 않아서 괜한 기대를 하게 만들어. 제발, 돌아와줘. 세상에서 가장 염치없는 말인줄 알면서도 해본다. 혹시나 너도 아직 나를 잊지 않았을까봐. 말도 안 되는 상상들로 계속되는 희망고문도 이젠 끔찍하다. 사랑해. 너와 나는 사랑할 시간조차 서로 맞지 않아서 고통스럽고,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너를 한참이 지나서야 너무 사랑해서, 바보 같은 짓인 걸 알면서도 다시 잠이 든다. 네 얼굴이 희미해져 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꿈속의 너를 만나러 간다. 꿈속의 봄바람이 내 목소리를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서야 사랑해. 내가 너를 사랑한다, 백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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