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다른게 아니라."
"…?"
"사과하러, 왔는데요……."
차분하게, 하지만 짙게. : 2
이곳은 아침도 찼다. 으으, 계속 이러다가 몸이 뻣뻣해져 나무토막이 되면 어떻하지. 물론 그런일이 일어날거라곤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한번 꼬리를 물고 문 생각은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오늘은 이불을 두개정도 덮고 자볼까. 추위를 많이 느끼는 몸은 불편하다. 내 친구중엔 그걸 노려 제 남자친구에게 점수따는 애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 지내려나. 연락없이 나 잠시 연락 안될거야, 라고만 남기고 나왔는데. 이런저런 생각을하며 칫솔에 치약을 짜 입에 넣었다. 치약맛은 조금 알싸했다.
"짐정리를 먼저 하는게 옳을까, 옆집에 가서 인사를 하는게 옳을까."
…어려워.
결국 난 짐정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지금 찾아가기엔 솔직히 너무 이른감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죄송하다고 말하러갔다가 혹시 상대가 자고있었다면 오히려 민폐를 더 끼치고 올 테였다. 다른 짐들은 아직 오려면 멀었고, 내가 지금 정리해야 할 것은 어제 내가 들고온 캐리어밖에 없었다. 읏차, 하는 소리를 내며 캐리어를 침대위에 올려놓고 자크를 열었다. 열리는 그 특유의 느낌과 소리가 좋아 두어번 앞뒤로 왔다갔다 거리다 이내 완전히 열어버렸다.
천천히 하다보면 어느덧 끝나있겠지.
*
"아이고, 허리야……."
허리를 주먹쥔 손으로 두어번 투닥이며 바로 섰다. 비어버린 트렁크가 맘에 들었다. 자자, 너는 이제 여기로 들어가자. 실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캐리어를 방 구석에 밀어넣고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좋아, 이제 좀 사람사는 방 같네. 어제는 솔직히 너무 텅텅 비어있어 약간의 괴리감까지 느껴졌었다.
"예가, 예가! 아직도 자니?"
"아, 레나. 저 일어나있어요!"
"잘 되었구나. 어서 내려오렴, 식사 다 했어!"
네, 하고 끝을 길게 늘이며 대답하고는 방문을 열어 아래로 내려갔다. 음, 냄새가 좋은데.
"이곳에 와서 처음 먹는 식사맞니? 내가 조금 심혈을 기울이긴 했다만."
"레나, 대단해요! 잘먹을게요."
사실 공항에서 내려 간단히 하나를 먹었었지만 굳이 말할필요는 없을테지. 맛은 정말 나쁘지않았다. 오히려, 맛있었다. 집주인의 음식솜씨가 좋지않아 고생하는 사람들의 글을 많이 봤었는데, 다행히 난 그 불행에서 벗어났구나. 이곳에 오기전 나 혼자 두근거림에 상상하던 그런 모습과 비슷해 나도 모르게 레나와 마주보며 바람빠지듯 웃고말았다.
*
"어디 가니?"
"그냥, 잠시요. 금방 돌아올거예요."
"그러렴. 나간김에 마을을 한번 돌아보는것도 좋을 것 같구나."
"네."
문을 열자 종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비록 내가 문을 닫자마자 가로막혀 들리지않았지만.
빈 손으로 가기엔 조금 그래서 그냥 주섬주섬 챙겨온게 고작 한국과자 몇개라는게 조금 부끄러웠다. 내 자신이 어린애 같아서. 그냥 인사만 하고 올까. 죄송하다며 이걸 드리는것도 조금 웃길거같은데. 이렇게 가면서 선택을 해볼까. 하지만 옆집과의 거리는 내 생각보다 가까웠고, 나는 어느새 옆집의 문앞에 서서 감히 초인종을 누르지도,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나가지도 못한채 어쩔까 고민만 하고있었다.
얼만큼 이 앞에 서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이 문 너머, 조금 시끄럽다.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거같기도 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잠깐만, 잠시만…!
"밖에 진짜 추운데! 오세훈 너 나빴…. 어, 누구세요?"
"……."
이거 어쩐지 데자뷰같다.
미친척하고 도망갈까, 나. 정말 순간이였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왜 하필 내가 뒤돌아걸어나가려는 그 순간에 문은 열리는것이며, 나는 그 문이 열리는 소리에 왜 뒤를 돌아봐 이 사람과 눈이 마주친걸까. 사실 무시하고 간다고 쳐도 이 집앞에 서있다 감이 분명한 내 모습이라 어찌됬든 이상한 사람이 되는건 틀림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다.
"야야야, 세훈아! 너 여자친구생겼어?"
"뭔소리야. 빨리 나가서 사오기나해."
"그치! 안생겼지!"
…그런 말은 제가 없을때 해주시면 안될까요? 상대방은 그럼 내 앞에 있는 이 여자분은 누구야? 라고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외치다시피했고, 어차피 지금와서 도망가버리는건 도무지 가능하지 않을것이라 본 나는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입을 열었다.
"저, 다른게 아니라."
"…?"
"사과하러, 왔는데요……."
*
툭 던진-사과하러 왔는데요-말에 상대는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날 빤히 응시하다 내 귓가가 추움에 새빨개진것을 본것인지, 아니면 이유없이 그런것인지, 여튼 그는 나를 집안으로 들였다.
"…너네 집인줄 알겠다?"
"너의 집은 나의 집. 나의 집도 나의 집!"
어제 내가 실수했던 그는 맘에 들지 않는다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불퉁하게 말을 뱉었지만, 조금 움츠린 나와는 다르게 상대는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거리면서 자연스레 걸어가 쇼파에 털썩 앉아 기댔다.
"음, 그 쪽도 앉아요."
"……."
정말 그 쪽 집인줄 알겠어요.
섣불리 앉지도 못하고 내 옆의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쇼파에 앉은 상대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어찌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을찰나.
"앉아."
삐딱하게 날 바라보던 그-아마도 이름이 세훈-는 이 말을 끝으로 쇼파로 걸어가 검은머리의 남자가 앉아있는 옆 쇼파에 소리없이 앉았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의 반대편에 앉았다.
"음, 그래! 그래서 사과하러왔다고요? 왜? 난 아가씨 처음보는데?"
"……."
그 쪽말고 그 옆에 계신 분한테 사과를 드리러 왔어요, 제가. 결국 나는 조금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원래 하려던 말을 드디어 했다.
"어제, 밤늦게 죄송했어요."
나도 모르게 무릎위에 올려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제 그 틱틱거리는 반응에 괜히 그가 무서운건 사실이였다. 물론 무시를 하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지만. 다만, 이곳에서 한국인을 본다는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있었고,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았다. 적어도 보자마자 표정관리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해야하는 난감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집은."
"네? 아, 덕분에요. 감사해요."
"뭐야, 이거 괜히 질투난다. 왜 나만 동떨어진 기분이야?"
흑흑, 세훈아. 형은 서러워. 그는 작게 우는 척을 했다. 나는 나이를 적어도 스물셋 이상 먹어보이는 그 얼굴에 저런 시늉을 낸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혹시 진짜 우는건가, 하는 마음에 그를 계속해서 바라보았고, 아마도 이름이 세훈이였던듯한 내 사과상대는 같잖지도 않다는듯 상대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그는 용케 세훈의 시선이 돌려졌다는 것을 알아내 고개를 들어 투덜댔고, 이내 잠시 세훈과 투닥거리던 그는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저 넋놓고 둘을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나에게로 꽂히는 시선들에 조금 움찔했다.
"근데 신기하네. 여기에 한국인이 두명이나 올 줄이야. 그 쪽은 이름이 뭐예요?"
계속 그 쪽이라고 부를수는 없잖아. 그는 그 특유의 눈웃음을 지었고, 나는 그 웃음에 화답하듯 작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예가,요. 한 예가.
"나는 루한이예요. 그냥 루한이라고 불러요."
"저, 근데 루한씨는 그러면 한국인이 아닌거예요?"
루한씨 말고 루한. 호칭을 정정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난 중국인이예요.
생각해보니 그는 한국인치고는 조금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론 한국어 실력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였지만. 내 이런 생각하는 모습을 '왜 한국말을 쓰시는 거예요?' 라는 모습으로 받아들였던듯, 루한은 세훈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세훈이가 중국어를 못해요. 난 한국어를 하고."
"…못하는건 아니거든."
"그럼 이거 맞춰봐. 猜想."
"……."
프흐, 이 상황이 왜인지 재미있었던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바람빠지듯 웃음을 내쉬었고, 이내 시선을 루한에게서 돌려 나를 보는 세훈의 그 시선에 나는 바로 웃음을 멈추고 헛기침을 해야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즐거웠던듯 이번에는 루한이 큰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쳐냈다. 별달리 내가 잘못한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민망함에 어쩔줄몰라했고, 루한은 세훈이 그만해, 라고 몇번을 말하고 나서야 겨우 웃음을 참아낼 수 있었다.
"흐.. 배아파라. 그나저나 예가는 뭐하려고 이곳에 온거예요?"
"아, 그림…그리려고요."
"오, 그림! 왠지 예가랑 잘 어울려요."
그렇지? 세훈을 툭툭 치며 루한은 그에게 답을 요구했고, 나를 한번 슬쩍보고 루한을 다시 슬쩍 보던 세훈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왜 나는 저 긍정이 무지 마지못해 내는 그런 긍정같이 보일까.
루한이 말했던 것처럼 이 곳에서 비슷한 지역에서 온 사람을 한곳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나는 루한의 그 말에 긍정할수 있었고, 아마 그건 세훈이도 마찬가지인듯했다. 귀찮다는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던 걸로 보아서는. 루한은 재잘거리며 여러 이야기를 늘여놓았고, 중간중간 그가 막힐때 나와 세훈이는 그가 막혔으리라 짐작되는 단어를 말하며 그의 고민을 도왔다. 그리고 그 단어가 루한이 생각했던 그 단어였을땐 그는 박수를 짝, 하고치며 그래, 그 단어!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참 맑은 사람같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시간의 시간이 걸릴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많은 시간동안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사과용으로 가져온 한국 과자들을 까먹으면서. 루한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세훈이는 나와 동갑이라는 점, 루한은 사진을 찍고, 세훈이는 피아노를 친다는 점. 루한은 세훈이에게 형대접을 요구하지만 세훈이는 그러지 않는다는 것. 사실 나와 동갑인 세훈이가 루한에게 그렇게 대하니 나도 생각보다 나보다 윗사람인 루한을 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사실 그런것에는 루한 그 특유의 사교성도 한 턱 했지만.
예가야, 라고 불러도 돼? 사실 예가, 는 발음도 어렵고… 예가야-가 더 친근감있잖아.
어느새 나에게 말을 놓은 루한은 이야기의 끄트머리쯤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예가야, 예가야. 어떻냐는듯 반복해서 읊는 그 모습에 나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좋아.
그는 나처럼 밝게 웃었다. 문득 세훈이의 표정이 궁금해진 나는 세훈이에게 시선을 돌렸고, 놀랍게도 그 또한 웃고 있었다.
아직 이곳에 온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좋은 이웃들을 만난 기분이였다.
과연 이웃으로 끝날까
연재속도가 느려요.. 완결은 무조건 낼 생각이지만ㅠㅠ
이 글은 잔잔합니다! 아주 잔잔해요!
댓글달아주신분 감사해요.. 제 글에ㄱ댓글이 달리다니 심장이 뛴다 허억허어ㅓㄱ허ㅓㄱ
사실 한번 날렸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다음엔 다른데다가 써다가 붙어야겠어요.
조금 길어서 20P할게요 .....으으ㅠㅠㅠㅠ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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