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글"... 야자 쨌냐...? 왜 이렇게 일찍 다녀.."
탁하고 긁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얼른 대문을 열고 들어가 문이 부셔져라 닫았다.
'뭐야.. 저 미친놈은.'
대문 틈새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남자가 대충 머리를 털더니 대문앞으로 다가왔다.
"...야. 사람이 말을 하면.."
"..누구세요? 나 알아요?"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저희집 신문 안 봐요. 부, 불교 믿어요."
거의 잡아먹을 듯한 남자의 눈빛에 나는 뒷걸음질치며 집안으로 뛰쳐들어왔다.
'날씨도 꾸리꾸리한데 이게 뭔일이람...아, 내 우산..'
궁시렁 거리며 신발을 벗는데 대문밖에 던지듯 떨어트린 우산이 생각났다.
'...나 우산 하나밖에 없는데..'
망했네. 어차피 찾아오지도 못 할 우산에 미련을 버리고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으러 집안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비가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귀찮은 청소거리가 생기지 않아 조금 전보다 기분이 나아졌다.
평소처럼 TV를 틀고 라면을 끓였다.
"비가 오는 날에 라면이지~ 맛있는 라면~ 오늘은 계란을 넣어야지~"
흥얼거리며 라면을 끊이는데 아까운 내 우산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 지금쯤이면 갔으련... 아니야. 포기하자.'
꼬들꼬들하게 익은 라면을 식탁위에 놓고 한 젓가락을 집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 꼭 먹으려고 하면 전화가 와요......아빠..?"
"아빠? 오늘 들어와? 웬일로 전화를 다 했어?"
'딸! 아빠가 보고싶어서 전화했지. 딸! 오늘 누가 집에 안 찾아왔어?'
"응. 아무도 안 찾아... 찾아온 사람은 없는데 웬 미친놈이 대문앞에 앉아있더라. 우산도 없고 양복 쫙 빼입고 앞에 널부러져 있는데.."
'...딸..? 그 양복 빼입은 미친놈이 아빠 손님같아.. 머리색깔이 시뻘건 색일텐데...'
"...응? ..."
오늘도 못들어 온다는 아빠는 그 손님한테 아빠 서재에 있는 파일 좀 전해달라고했다.
서재에서 아빠가 말한 파일을 찾아서 문을 열고 나갔다.
대문으로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대문 너머에 있는 남자가 나를 째려보는게 또렷하게 보였다.
"...안녕하세요."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듣자. 어?"
'빨간머리...'
"전무님 전화 받았나보네. 파일 내놔."
나는 대문을 열고 파일을 내밀었다.
남자는 낚아채듯이 파일을 들고 가버렸다.
문제는... 저 남자가 쓰고 가는 우산이 내 우산이라는거다...
내 분홍색 부엉이 삼단우산... 저거 삼만육천원짜리인데... 나 우산 저거 하나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