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세준] 20대 김준면의 진짜 이야기 A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b/5/a/b5a1ffb5c545c3e81af22c73a04dede6.jpg)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다. 나는 죽었다. 이따금 올 겨울을 맞이하지 못한 채 나는 죽었다. 후회는 없다. 딱히 후회할 만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삶은 산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리 크지 않는 아파트에서 시간을 보내며 이웃들로부터 평범한 아이 대우를 받았다.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았다.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걸 엄마 뱃속에서부터 순순히 받아들인 것처럼 나는 조금도 그 누군가를 원망해 본적 없다. 나 자신도. 학교는 다니지 않는다. 전단지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용돈을 모았다. 새벽엔 땅에 뒹구는 병 따위들을 주웠다. 절반은 할머니, 절반은 나. 군것질하기엔 턱도 없이 부족한 용돈이었지만 악착같이 모았다. 이 땅을 뜨고 싶었다. 할머니와 단둘이, 그 누구의 억압을 받지 않고 함께 나머지 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조금 소박한 꿈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선 그 어떤 꿈보다 간절하고 절박했다. 나는 매일 밤 기도를 했다. 딱히 종교 같은 것을 믿는 건 아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손 모아 기도했다.
― 아프기 싫습니다. 그 누구도요, 살고 싶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일종의 어리광으로 보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일하게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 나는 그 시간만 되면 몸을 움츠린 채 소리 없이 울었다. 그게 하루하루 내가 버틸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자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깊은 잠에 빠진 할머니에, 나는 그 시간마저 가질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처음으로 할머니 앞에서 울었다. 미동 하나 없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외로움이 순식간에 내 몸을 타고 지배했다. 정말 혼자가 된 것이다. 미친 듯이 울었다. 부디 이 울음소리가 할머니 귀에 들어가지는 않기를 나는 빌었다. 10대의 마지막. 나는 그렇게 마지막을 보냈다.
그러고 나는 며칠을 부운 눈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익숙하지 않았다. 나름 나 자신이 강하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누군가의 죽음에 나의 일생을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혼자 남겨진 지 한 달 즈음 지났을까, 나는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파고드는 아픔보다 안쪽에 밀려오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전만 해도 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라는 막연한 꿈은 한순간에 죽음의 갈망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죽고 싶다.
― 안 아파요?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그 어중간한 경계 속에 선 나는, 그렇게 한 소년을 만났다. 나는 바코드를 찍어 소년이 들고 온 삼각김밥을 계산하곤 거스름돈을 건네주었다. 익숙한 얼굴, 자주 이 편의점에 들락거리는 남학생이었다. 종종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컵라면을 사가곤 했다. 학교 한 번 제대로 다녀보지도 못한 채 20대를 맞이한 나로서는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소년에게 조금 부러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소년은 거스름돈을 받고는 자신의 이름이 '오세훈' 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물어보지도 않은 이름을 왜 그렇게 강조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딱히 귀찮은 수준은 아니라 대충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 자주 여기 왔었는데 저 기억나요? 그나저나 안 아프냐고요.
― 뭘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요.
아마 손목에 자리 잡은 상처를 말하는 듯했다. 아뿔싸, 계산을 하기 위해 맨투맨 소매를 무의식적으로 걷었을 때 그의 눈에 띈 모양이다. 집요하게 몇 번이고 말을 걸어오는 소년은 자신이 현재, 크나큰 오지랖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짜증이 났다. 밝게 물들인 머리, 평균 키보다 조금 더 큰 듯한 키, 환히 트인 표정, 그 외의 외적인 모습으로 봐서는 크게 걱정 따위 없이 귀하게 자란 티가 났다. 피곤하다. 소년은 내가 자신의 물음에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으려는 걸 알아챘는지 수고하라는 말과 함께 편의점을 벗어났다. 오세훈, 뚜렷하게 남은 세 글자의 이름. 무의식적으로 소년의 뒷모습을 흘겨보았다가 그가 계산한 채 그대로 두고 간 삼각김밥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병신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아, 소년의 것을 내 점심으로 간단히 때웠다.
그 날, 나는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피곤함에 누운 채로 하긴 했지만 말이다.
*
나는 아르바이트를 모두 끝낸 뒤, 짬짬이 공책에 글을 썼다. 가족에 대한 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제대로 이룬 적은 없지만, 쓰면서 나는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미련 같은 불필요한 감정들을 버렸다. 어릴 때 잠시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의 혐오감을 후회했다.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귄 적 없었던 나는 글 속에서 가상의 친구를 만들었다. 잘 쓰지는 않았지만, 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내가 다섯 살 때, 엄마 아빠는 이혼을 하시고 나는 할머니 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이웃 아줌마의 말로는 나는 어린 10대의 미혼모 아들이었고 이내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가 입양을 된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에게 이웃 아줌마가 해준 말을 그대로 들려줬더니 곧바로 나에게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제삼자에게서 그런 사실을 들은 후에도 나는 엄마 아빠를 가짜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아원에 있는 나를 받아준 두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나를 낳은 진짜 엄마를 찾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이혼 절차를 밟기 전, 아빠가 자고 있는 나를 죽이려 한 것도, 그걸 말리다 새하얀 얼굴에 흉터를 가지게 된 엄마도,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충동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그 충동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힘든 처지를 남에게 탓하고 싶은, 그런 어린아이 같은 감정. 그렇게 이혼을 했지만, 엄마는 아빠 몰래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엄마랑 같이 살까, 준면아? 나는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몰라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울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과 당부의 말을 반복했다. 엄마도 끝내 울었다. 그리고 떠났다. 내 곁을 떠나는 와중에도 엄마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미련.
미련이라는 거, 정말 싫다.
*
오세훈, 18살 편의점 근처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평범한 남학생. 그것도 내가 알고 있는 세훈이라는 아이의 정보였다. 나는 자해를 그만두었다. 그만둔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만두었다. 자해의 흔적이 서서히 아물어져가는 무렵, 세훈이 편의점을 찾아왔다. 한 손엔 케이크를 든 채로 말이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대답이 앞섰다.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편의점 바닥을 걸레질했다. 딱히 닦아도 깨끗해지는 느낌은 없지만,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대라 대충 그렇게 시간을 때우곤 했다. 세훈은 아무 때나 굴러다니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와 앉았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이 시간쯤에 학생들은 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을 시간 아닌가, 한 가지 의문점이 돋았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 저 예체능이라서 오전 수업만 하고 가요.
내 속마음을 읽은 건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세훈을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걸레질에 열중했다. 대걸레는 쉽게 더러워진다. 그게 싫다.
- 뭐, 학원 수업은 또 저녁에 있어서 그 사이에 할게 없거든요.
- …….
- 친구들은 다 학교에서 공부 중이고.
도와줄까요? 세훈이 다가온다. 나는 신속히 대걸레를 벽에다 아무렇게나 세워놓고 녀석을 지나쳤다. 오지랖. 나는 짧게 중얼거렸다. 세훈은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들었는지 얼굴을 묘하게 찡그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세훈은 세훈대로 시간을 보내고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오면 계산을 하고, 손님이 나가면 세훈은 나를 힐끗 쳐다보다 이내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갈 채비를 할 무렵에야 세훈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시간 참 헛되게 보내는 녀석이다. 매일 이 시간에 집 가나 보죠? 세훈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학원 안 가? 케이크를 챙기고 편의점 문을 여는 세훈의 뒤에서 물었다. 세훈은 한 시간 뒤에 가요, 라고 대답했다. 지금 시간이 10시인데….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았다. 세훈은 마치 나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는 사람 마냥 행동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재잘재잘 끊임없이 말소리를 듣는 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익숙한 아파트가 눈에 보일 때 즈음에야 나는 깨달았다.
- 너도 여기 살아?
- 이제 알았어요? 그래서 아는 체 한 건데.
나는 503호, 세훈은 603호, 바로 위층이었다. 왜 지금껏 몰랐을까, 여기로 이사 온 이유로 먹고살 궁리 빼고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였지만 윗집 아랫집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줄은 몰랐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예체능까지 하는 애라면 이런 아파트에 살 리가 없는데, 세훈과 계단을 올라가는 과정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까까진 재잘거리던 세훈도 아파트에 들어서는 순간, 말문을 닫았다. 5층에 도착한 나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세훈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마 그냥 잘 가라는 인사겠지. 나는 집에 들어서는 동시에 곧바로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오늘 하루는 조금 길었다. 피로가 배로 느껴진다. 차가운 물줄기가 내 몸을 적셨다. 그렇게 샤워를 끝내고 나와 옷을 편하게 갈아입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왔다. 한적하다. 낮게 깔린 하늘을 창가 너머 바라보았다. …글 써야지.
*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평소보다 글을 몇 줄 더 긁적이다가 겨우겨우 눈을 감았다. 쿵쿵 쿵, 새벽 두시, 둔탁한 소리에 막 잠에 들려는 정신이 확 깨버렸다. 다시 한 번 쿵쿵 쿵,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새벽부터 누가 벽에다 못을 박을 리가 없고…, 잔뜩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소리의 근우너지는 현관문 너머였다. 지금 이 시간에 손님이? 딱히 집에 올 손님은 없었다. 가끔 부녀회장이 점검을 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리는 것 빼고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현관문을 열고 빼꼼 얼굴만 내밀었다.
- 아, 저 때문에 깼어요?
세훈이었다. 녀석의 손엔 익숙한 케이크가 들려져 있었다. 자신이 오늘 생일이라고 받았다는 케이크였다. 갑자기 찾아온 의도를 몰라 말없이 세훈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피곤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인데 세훈은 조금도 피곤한 기색 없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기분이 조금 나빴다.
- 갑자기 뭐야.
- 케이크, 먹으라고요.
- 케이크? 그거 네 거잖아.
아닌데요, 세훈은 케이크를 나에게 내밀었다. 어울리지 않게 분홍빛 포장지, 나는 이 상황이 그저 떨떠름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상황 파악이 힘들었다. 세훈도 나와 같이 편한 차림이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세훈은 케이크를 나에게 안겨 주고 안으로 들어왔다. 거의 무단 침입이었다. 나는 무거워지는 눈을 비비고는 세훈을 어이없다 듯이 바라보았다. 세훈은 마치 자기 집인 것 마냥 행동했다. 몇 개 없는 접시를 세팅하고 내 손에 들린 케이크를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칼로 적당히 한 조각 잘라 접시 위에 올렸다. 생크림 케이크, 조금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태어나 케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끔 빵집을 지나가다 눈으로 보는 것 빼고는 이렇게 가까이 케이크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한 입 먹고 느끼해 바로 뱉을 뻔했지만 그리 싫은 느낌은 아니었다.
- 케이크 별로 안 좋아해요?
- 아니, 맛있어.
세훈은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지 나를 한 번 쳐다보다 이내 포크로 케이크를 작게 잘라 한 입 먹었다. 그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은 케이크였다. 나는 그날 이후 정확히 한 달하고도 3일 후 세상을 떠났다. 이따금 올 겨울을 맞이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죽음. 이 이야기는 내가 세훈이라는 소년을 만난 후에서 죽기 전, 그 사이에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평범하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평범한 이야기가 좋다. 세훈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절대 시간 남아서 쓰는 그런 가상의 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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