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변백. 존나 오랜만?" "뭘 오랜만이야. 아침마다 문 열면 보는 새끼가." "같은 반인건 오랜만이라고, 삐뚤어진 새끼야. 어떻게 하필이면 딱 고3 때 다 같은 반이 되냐?" "몰라, 씨발. 수능 망하라는 신의 계시인가보다." "미친놈아, 300일도 안남았으니까 그딴 말 지껄이지마." 오세훈, 박찬열과 같은 반이 된 건 세훈이 말대로 정말 그야말로 오랜만이다. 중학교 2학년 뭣 모르던 시절, 모두 같은반이 되어 학교를 누비고 다니던 때는 끝났다. 수능이 채 9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 우리 셋이 같은 반이 된 건 그리 좋은 점은 아니다. 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고 수능은 뒷전으로 하며 잘만 놀겠지만. "야, 지금 교탁 바로 앞에 앉은 애 보여? 어깨 좁고 키 작은 애." "왼쪽?" "어, 쟤가 도경수인데.. 그, 왜 내가 작년에 말했잖아. 우리 반 또라이." "아, 그 불교 맹신자?" 세훈이 갑자기 앞쪽에 앉은 애를 가리키더니 왜 굳이 속삭이려 하는지도 모를만큼 작진 않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 또라이라 함은, 작년 10월달 세훈의 반으로 전학 온 도경수인데, 세훈의 말에 따르면 정말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학교에서 점심, 저녁을 먹을 때도 *발우공양을 한다고 한다. "진짜 단무지로 식판 닦아?" "내가 씨발, 작년에 얼마나 충격 받았는데. 숭늉물? 아무튼 그거 싸오고 단무지도 집에서 갖고와선 물 부어서 식판 단무지로 닦고난 뒤에 그 물 먹는다고. 그게 원래 절에서 맨날 하는거래." "......" 순식간에 조용해져 멍한 표정을 짓고있는 무교인인 찬열과 나를 한심한 눈빛으로 세훈이 쳐다본다. "그게 바로 종교에 대한 믿음이야, 이 지옥 갈 새끼들아." "넌 성당에서 그렇게 시키면 할거냐?" "우린 그런 거 안해.." 우릴 욕해놓고 내빼는 세훈을 때리려 한 순간, 문이 열리며 새로 배정된 담임이 들어왔다. 2학년 때 있었던 선생님들이 거의 그대로 올라온터라 작년에 수학을 담당했던 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되었다. 담임이 수학이라.. 눈 앞에 그려진 절망감에 우린 그저 머리만 쥐어뜯었다. "도경수." "네." 출석을 부르는 담임의 목소리를 멍하니 듣다가 '도경수' 라는 이름에 들려오는 깔끔하고 낮은 목소리에 괜히 놀랐다. 하마터면 출석을 놓칠 뻔했다. 이쯤되니 그의 얼굴이 궁금한게 사람 심리였다. 도경수랑 바로 옆 번호라며 찡찡대는 찬열을 무시한 채 일단 학기초니 키 순으로 자리를 앉자는 담임의 말에 따라 키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변백현 앞으로 가야지?" 당연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뒤로 가는 박찬열과 오세훈을 깡그리 무시한 채 도경수로 보이는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너, 나랑 비슷하지 않나?" "......" "어? 같이 앉자."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이목구비가 예쁘게 배치돼 있는 얼굴에 시선을 박은 채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지만 그 예쁜 입은 열리지 않았다. 살짝 얼굴을 찌푸리니, 도경수는 되려 더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드디어 내게 말을 한다. "불교 맹신자랑 그렇게 앉고 싶니?" "아, 드.. 들렸어?" "너넨 안 하는데 우린 그런 거 해서 존나 미안하다. 넌 뭐, 천주교 신자냐?" "아니, 그건 오세훈이.." "단무지로 쳐맞기 전에 그냥 꺼져." ...경수야, 너 생각보다 밥맛이구나? *발우공양 스님들이 평소 식사하는 것을 '발우공양(鉢盂供養)'이라고 한다. 발우란 스님들의 그릇을 뜻한다. 행자가 청수물을 돌리면 그릇을 헹구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하고 식사가 끝날 때도 물로 헹구어 남은 음식을 모두 먹은 후 청수물로 그릇을 헹구어 정리한다. 특히 쌀알 하나도 그것을 지어낸 이의 공덕을 헤아려 버림이 없도록 하는 마음은, 음식으로 배보다 정신과 마음을 채우는 스님들의 수양덕목이다. 출처: 네이버 음식백과 전 무교인입니다. 만약 특정 종교에 대해 불편함이 느껴지시면 댓글로 지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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