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저기 앉자." "아, 기다려 보라고!!" 계속 가까운 자리에 앉자며 찡찡거리는 오세훈을 밀어내고 도경수를 찾기에만 열중했다. 내가 진짜 그 잘난 모습을 봐야하는데.. 아, 저기있다. "가자." "뭐, 도경수 옆에?" "어, 나 튕긴 도경수 옆." 탁, 하고 도경수 옆자리... 는 사실 무서워서 못 앉겠고, 한 자리를 띄워서 앉았다. 대각선으로 잘 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 밥을 먹기 보다는 도경수를 관찰하는 데 더 심기를 기울였다. "야, 도경수 뚫어지겠다." "단무지로 쳐맞는 거 아니야?" 옆에서 실컷 쪼개는 둘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도경수만 응시하니 그 시선을 느낀 듯 도경수도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무슨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에 괜히 주눅 들어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씨, 도경수 욕한 건 거의 다 오세훈인데 대체 왜 내가 이런 핍박을 받아야 하는 건지.. 킥킥대며 쌈을 크게 싸 입에 넣는 세훈이 얄미워 코를 막아버렸다. "우붜버버붜!!! 이 씨발, 돌았냐?! 사람 죽일 일 있어?" "퇴화했냐? 쪼개지 말고 좀 조용히 쳐먹어." "잘 먹고 있는 사람 먼저 건든 게 누군데.." "...야, ㅈ.. 저거야?"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옆에서 말을 더듬는 찬열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숭늉물을 식판에 붓고있는 경수가 보였다. 그 뒤, 단무지로 식판을 닦더니... "아, 역겨워." "남의 종교를 그런식으로 치부하지 말라니까?" 식판의 물을 모두 들이마시는 경수를 보며 차마 욕을 뱉지 않을 수 없었다. 발우공양을 하는 것도 TV에서만 봤지 이런 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다가 비위도 약한 지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 "박찬열, 너도 충격 먹었냐?" "야, 백현아.." "아, 나 울렁거리니까 말 걸지 말아봐." "멋있어." ...뭐? "도경수... 존나 멋있어." "경수, 넌 언제부터 불교에 관심 있었던거야?" "그냥 어릴 땐 엄마 따라서 몇 번 절 갔던 것 뿐이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템플스테이 하고 나서부터 믿게 됐어. 근데 너 진짜 쟤랑 친구 아닌 거 맞아?" "누구, 아.. 변백현? 어, 친구 아니야." "그래, 그럼 됐어. 갑자기 불교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된거야?" ...점심 시간 도경수의 발우공양을 보고 나서부터 박찬열이 무언가에 홀린 듯 도경수를 따라가선 전도를 받고 있다. 불교 전도는 흔치 않은데 나 덕분이라니 너무 기쁘다며 박찬열을 향해 웃어보이는 도경수 얼굴을 보니 배알이 꼴렸다. 나한테는 그만큼 지랄하더니 왜 저 새끼한텐 천사표야? "야, 박찬열. 매점 안 가냐?" "내가 차고 있는 염주는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건데, 구슬이 총 108개거든? 흔히들 108배 하잖아. 108배 할 때마다 1개씩 구슬을 세면서 하는거야." "와, 진짜 그건 몰랐다. 신기한데? 나 너희 집 가면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는거야?" "부탁해보지, 뭐." "존나 연애하고 앉아있네, 씨발. 우리끼리 가자." 들은체도 안하며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있는 박찬열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욕을 했더니, 괜히 애꿎은 도경수가 날 돌아보며 또 희번덕한 눈으로 째려본다. 아, 진짜 쟨 왜 나한테만 저래?! "개새끼야, 이게 다 네가 아까 도경수 까서 그런거잖아!" "내가 뭘.. 야, 솔직히 그런걸로 치면 아까 역겹다고 한 네가 제일 심했지. 나같아도 박찬열한텐 존나 잘해주겠다. 개멋있다면서 아주 찬양을 하던데." "몰라 씨발, 그 새끼 저녁 시간엔 홀려서 같이 옥상가서 108배라도 할 것 같은 느낌이야." ...아무래도 수능은 포기하고 돗자리를 펴야하는걸까. 8교시 땡 종이 치자마자 사라진 박찬열을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설마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옥상에는 쿠션을 깔고 108배를 하고 있는 박찬열과 도경수를 찾을 수 있었다. "수능 잘 치게 해주세요... 아니, 그 전에 수시 붙게 해주세요.." "미친 새끼. 공부나 하고 그 지랄을 해라." "방해하지마. 정신 수양도 같이하는 거니까." 박찬열 엉덩이 한 번 찬 것 가지고 엄청나게 까탈스럽게 구는 도경수를 슬쩍 노려봐주고 어쩔 수 없이 벤치에 앉아있는 오세훈 옆으로 갔다. "뭐하냐?" "여친이랑 카톡하는데." "씨발놈, 재수해라." "형이야, 이 미친 새끼야!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데.." 그렇게 오세훈과 투닥대다보니 어느새 108배가 끝난 건지 땀으로 홀딱 젖은 찬열이 헥헥대며 내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뭐야, 도경수는?" "단무지... 헥, 숭늉... 물. 가.. 지러.. 갔는데..." "왜 사서 고생질이냐?" "닥쳐, 숨 좀... 쉬자.." 이제 아예 누울 기세인 박찬열을 겨우 일으켜 (절대 내가 키가 작아서 그런 건 아니다.) 급식실로 향했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박찬열과 도경수는 내 눈에는 퍽 다정해보이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럼 이번 주 일요일에 자습 마치고 우리 집 올래?" "그래! 진짜 할머니께서 직접 염주 만들어 주시는거야?" 어느덧 약속까지 잡은 건지 아예 세훈이와 나, 우리 둘은 배제시키고 알콩달콩한 박찬열과 도경수를 소심하게 노려보다가 반찬으로 나온 돈까스에 환호성을 질렀다. "경수야, 너 돈까스 안 먹어?" "어, 나 별로 안 좋아해." "그럼 나 먹," "근데 오늘따라 맛있어 보이네." "...하하, 경수 파인애플도 안 먹어?" "응, 혀 따가워서." "그럼 내ㄱ," "근데 오늘은 괜찮을 것 같다." "아, 씨발!!!" 계속 날 농락하듯 장난치는 도경수에 화나 소리치며 수저를 집어 던졌더니 되려 날 골리던 도경수는 조용히 밥만 먹고 있고 덕분에 나만 시선집중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쪼그려 앉아서 수저를 주울 수 밖에 없었다. "병신." "...뭐?" "아냐, 백현아. 네 밥 숭늉으로 말아버리기 전에 네거나 잘 쳐드시라고." 해사하게 웃으며 내게 말하는 도경수에게 침을 뱉 을순 없어 정말 병신같이 그래... 라 말하고 난 뒤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손에 들은 수저가 땅바닥에 떨어졌던 것인게 생각나 새 수저를 받으러 줄 사이로 끼어들었다. 2학년들이 어찌나 덩치가 좋은지 잔뜩 밀려나 겨우겨우 수저를 받아왔더니, 분명 네 식판이 있었던 자리엔 오직 내 식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밥 위에 놓여진 단무지 한 장과 함께. 도경수, 이..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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