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강하게 끌어안는 남자의 품 속에서 당황한 채로 멍하니 눈을 깜박이자 남자는 제 품 속에서 내를 빼내어 내 얼굴을 부여잡았다.
단정해 보이는 얼굴에 자리한 두 눈이 오롯이 나를 바라보며 걱정의 빛을 가득 담고 있었다.
"오라버니..."
자연스럽게 내 입이 움직여 그 남자를 불렀다. 남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조선시대의 한복과도 비슷한 복색을 갖추고 있는 귀공자와도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싱긋이 웃으며 다시 나를 끌어안았다.
김준면 (20)
[EXO/민석준면찬열경수세훈] 인연(因緣) 2
[명사]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을 보고 와주세요-
"별안간 쓰러져 눈을 뜨지 않아 걱정하였다. 괜찮은 것이냐?"
"날이 더워 기력이 쇠한듯 싶습니다. 아무렇지 않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준면은 제 앞에 주저앉아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는 제 동생을 바라봤다.
본디 살결이 희긴 했지만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보아하니 어머니께 말씀드려 새로운 탕약이라도 지어야겠다 생각하며 작은 동생을 일으켜 세웠다.
멍한 표정은 하고 앉아 있는 모양새가 퍽 귀여워 살풋이 웃음을 지어보인 준면이 제 손 위에 얹어진 자그마한 손을 쥐고 제 동생을 부축했다.
"왜 그리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냐, 꿈이라도 꾼것이냐?"
"꿈을 꾼 것만 같습니다.."
"어떤 꿈이였는지 말하여 줄 수 있겠느냐, 낯빛이 하얗게 질린 것을 보아 그다지 좋은 꿈은 아닌 듯 싶구나."
"어찌 아셨습니까?"
"갑작스레 쓰러진 아이가 눈을 뜨더니 다른 사람이 된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질 않느냐."
또 다른 세상의 나는 원래의 나와는 성격이 많이 달랐구나 싶어 멍하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 손 밑에 자리잡은 다부진 손을 살짝 쥐었다.
그러자 생긋이 마주 웃어오는 단정한 얼굴이 정말이지 전형적인 미남상이었다. 잘생겼다. 정말로.
괜히 얼굴이 벌개지는 것 같아 고개를 푹 수그리자 혹 어지러운 것이 아니냐며 내 턱을 쥐고 가볍게 얼굴을 들어올리는 손길이 퍽 다정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붉어졌다를 반복하니,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냐?"
"아,아무것도 아니니 개의치 마십시오."
"아이가 어울리지 않게 존대를 쓰는구나, 우리 둘 뿐이니 하대하여도 좋다."
준면이 제게 꼬박 꼬박 존대를 쓰는 제 여동생 탓에 준면의 얼굴이 걱정으로 가득찼다.
부모님께서 경을 칠 것이니 존대를 하라 일러도 고집을 피우며 꼬박 꼬박 하대를 하던 아이가 어찌된 일인지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깍듯히 제게 존대를 해오는 모습에
준면이 왠지 모를 어색함을 느끼며 제 여동생의 얼굴을 살피기 바빴다.
세계의 중심이라 일컬어지는 이 곳, 황국(黃國)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김준후는
준면의 양아버지이자 제 눈 앞의 제 여동생의 친부(親父)였으며 현재 황국(黃國)의 황자(皇子)를 보필하는 최고 관직인 승상(丞相)직을 꿰찬 사내였다.
모든 것을 가진 사내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그에게 단 하나 고민거리가 있다면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승상(丞相) 다음으로 최고가는 직위의 삼공(三公) 중 하나인 태위(太尉)직에 자리하고 있는 이병우의 외동딸인 이윤주와 혼인을 올린 후
승상(丞相) 김준후는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첫째딸을 가질 수 있었지만 몇년이 지나도 아들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부인 이윤주를 위해 차마 첩을 들이기를 거부했던 그는 저잣거리에서 자고 나란 이미 장성한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준면이었다.
준면의 나이 12, 그리고 승상(丞相) 김준후의 첫째딸의 나이가 10일 때 그 둘의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현재, 준면의 나이 20, 그리고 승상(丞相) 김준후의 첫째딸의 나이가 18인 지금, 그들이 만났던 때로부터 꼬박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준면은 그 긴 기간동안 단 둘이 있을 때에는 제게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존대를 사용하며 고개를 푹 수그리기 바쁜 제 여동생을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 작은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쓰러졌다 일어서서는 낯빛이 하얗게 질린 채로 평소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대는 통에 준면은 당황한 채였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의원에게라도 보여야 할 듯 싶구나."
"괜,괜찮습니다! 의원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 부정하는 제 어린 여동생을 보며 준면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는 제 의복을 이리저리 정돈하더니 제 동생의 앞에 등을 보이고 쪼그려 앉았다.
평소라면 신나서 꺄르르-하는 웃음 소리를 내며 덥석 등에 업혀 다리를 이리저리 대롱대롱 흔들며 제 머리를 만지작거리기 바빴을 제 동생이
아무런 움직이도 보이질 않자 준면이 다시 의복을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말 다른 사람이 된 듯 싶구나, 아직 꿈에서 깨어나질 않은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거참, 언제까지 어울리지 않게 존대를 할 생각이냐, 계속해서 아가라 불렀더니 정말 어린아이가 된 듯 해 기분이 이상하구나."
아가-하며 다정하게 제 볼을 톡톡 두드리는 내 눈 앞의 사내의 손길에 더더욱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었다.
18살이나 나이를 처먹고서 이렇게 다정한 호칭으로 불릴 줄을 내가 어떻게 알았겠나 싶어 괜히 가슴 속 한켠이 간질간질했다.
그것도 이렇게까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생긴, 잘생겼다는 말이 모자라 성스럽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남자가
나를 아가, 아가 하고 불러대니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입을 벌리고 어버버 거리자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톡톡 두드리던 기다란 손가락이 이제는 반쯤 벌어진 내 입술을 다정하게 훑는다.
멍하니 남자가 하는 행동을 바라만 보고 있었더니 긴 손가락이 입 안으로 쑤욱 들어와 혀 끝을 쿡 찌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악!"
"이제 정신을 차린 것이냐?"
"예,예에.."
"아가, 정신을 차린 것은 좋지만 여자 아이가 되어서 그리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셨다가는 크게 혼이 날것이다.
그런 모습은 이 오라비의 앞에서만 보이는 것이 좋겠구나."
자기 자신을 오라비라 칭한 사내가 내 앞에 다시 쪼그려 앉아 등을 보인다.
묘하게 고집스러운 면모가 있는 것 같아 포기하고 엉거주춤 꽤나 넓직해보이는 등 위로 내 몸을 눕히자 으쌰-하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를 내더니 벌떡 일어선다.
가볍게 허벅지 밑을 받쳐 내 몸을 끌어 올리는 손길이 꽤나 다부지다. 얼굴은 곱기만 하더니 꽤나 남자다운 모습도 있는 듯 했다.
"심신이 온전치 않은듯 하니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은 어떨까 싶구나."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아가."
"예?"
"몸에 힘을 빼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아가가 내게 무거울 리가 없으니 편하게 있거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시나 이 세계로 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미친듯이 주워먹기를 좋아하던 나였던 탓에 이 세계의 나도 무거울까 싶어 몸에 힘을 주고 있었더니
그것을 무섭게 알아차리고 콕 꼬집어내는 오라버니의 행동에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얼굴이 불타올랐다.
한참을 말도 없이 등에 업혀 가만히 있다 보니 눈 앞에 펼쳐지는 저잣거리에 티나지 않게 입을 벌리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시끌벅적한 거리에 민속촌에 온 것만 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내 움직임을 그새 눈치챘더니 또 큭큭대며 낮게 웃은 오라버니가 손을 살짝 움직여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곧 있으면 장이 열릴 것이니 그 때 같이 한번 나와 보는 것이 좋겠구나."
"같이 나와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않느냐, 아이를 저잣거리에 혼자 내보낼 수 없으니."
고개를 주억거리자 다시 으쌰-하는 소리를 내며 엉덩이를 받치고는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 가득 넓은 기와집이 들어찬다. 안동과 같은 민속촌에 가서나 볼 수 있었넌 넓은 양반가의 집안이 눈 앞에 가득 들어왔다.
입을 멍하니 벌렸다.또 다른 세상의 나는 이렇게나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구나.
"아가,"
집 앞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제 등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 제 여동생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준면이 다정한 음색으로 제 여동생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대답을 하질 않자 다시 아가-하며 목소리를 내어 제 동생을 부른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등에서 폴짝 뛰어내린 제 여동생이 제 의복 치마를 손으로 매만지더니 이내 단정한 차림새를 하고 다시 저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보인다.
그에 준면이 제 여동생과 시선을 마주하고는 살풋이 웃으며 아직 정리되지 못한 치마 뒷부분을 손으로 톡톡 털어 다듬더니 흐트러진 머리까지 매만진다.
여자보다도 섬세한 손짓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준면이 제 머리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제 여동생의 시선을 느끼고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고개를 빠끔히 들어올린 제 여동생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것을 알아차린 준면이 손가락으로 제 여동생의 입술을 꾸욱 누르더니 먼저 앞장서 문을 연다.
"돌아오셨습니까."
"아버님 어머님은 어디에 가시기라도 한 것이냐?"
"어사대부(御史大夫) 박근우의 집에 향하신 것으로 압니다."
"본 목적은 어사대부(御史大夫)가 아닌 그 자제에 있을 것이다.
너도 잘 알고 있질 않느냐."
"두분께서는 대부(大夫)의 집안의 자제를 아가씨의 정혼자로 낙점하신듯 합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나."
쓴웃음을 지으며 냉랭한 말투로 말을 잇는 준면의 앞에는 무사복을 입은 채로 칼을 찬 남자가 서 있었다.
사내답지 않은 하얗기만 한 창백한 피부에 죽 째진 눈매를 한 남자가 준면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반듯이 고개를 들어올린 남자는 의아한 표정을 담으며 다시 입을 열어 준면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어디 계십니까?"
"내 뒤에 있질 않느냐."
제 뒤에 있을 것임이 분명한 제 여동생을 찾는 사내의 말에 준면이 도리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제 뒤를 가리키며 뒤로 돌았다.
하지만 온데간데 없는 제 여동생의 모습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다행이구나-내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묘한 안도감을 애써 내리누른 준면이 몸을 돌려 세훈에게 등을 보이며 돌아섰다. 바보같은 아이가 어디로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듯 싶었다.
"아이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듯 싶구나."
"제가 모셔 오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십시오."
"먼저 들어갈 터이니 잘 데려오도록 해라, 이전부터 네 앞에서는 묘하게 편안함을 보이는 아이가 아니였느냐."
"당치 않은 말씀은 삼가십시오."
단정하게 뚝 떨어지는 말투로 준면에게 응대한 사내가 준면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준면이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바라봤다.
준면이 방 걸쇠를 열고 철컥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사내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준면의 방에서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단정한 동작으로 뚜벅뚜벅 넓은 보폭을 자랑하며 걸어간 사내는 문 앞에 다다라 문 걸쇠에 손을 얹었다.
빠르게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오라버니의 행동에 멍하니 고개를 들어 큰 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야. 지금까지 이렇게 챙겨 줬으면 데려갈 때도 좀 챙겨주지 이게 뭐람.
투덜투덜 불평을 토해내며 흙바닥을 퍽퍽 발로 차자 뿌옇게 흙먼지가 일어나 눈을 괴롭혔다.
눈 앞에 놓여진 색다른 문고리에 한참을 손으로 잡고 낑낑거려도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은 기괴한 모양새의 문고리가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문고리를 돌리며 낑낑거려도 끼익 거리는 거친 소리만 날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으앗...!"
"예서 무엇하고 계십니까."
"저기..."
"그런 호칭은 아가씨께는 어울리지 않으니 평소처럼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며 눈 앞에 무사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몸을 지탱하고 있던 문이 열리자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재빠르게 허리를 낚아채는 손길에 놀라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짓자
하얀 이를 드러내어 보이며 씨익 웃은 사내가 내 몸을 바로 세워주며 옷을 털어준다.
또 다른 세상의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산걸까. 이 남자, 잘생겼다. 그것도 존나, 엄청나게.
단정하기만 했던 오라버니의 얼굴과는 그 이미지가 달랐지만 아무튼, 내 눈 앞에 가득 들어찬 남자는 그 낯짝이 화려했다.
물론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 탓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분위기의 얼굴이었지만.
호위무사 오세훈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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