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안녕~
오랜만...인듯 오랜만이 아니지?
하하하, 사실 어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예기치 못하게 일정이 꼬여서 하루종일 너무 바빴어.
그래서 늦게나마 일요일 오후인 오늘! 이렇게 온거야.
화내지 않을거지?
항상 미안할 일만 하는것 같다. 정말 미안해~
오늘도 그럼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한번 시작해보도록 할게.
저번에 멈췄던 부분에서부터 시작해볼까?
저녁식사는 예기치못한 상황으로 인해서
부득이하게 없었던 일로 만들고 과자로 대충 때우게 됐고,
대신에 영화를 보기로 했었잖아?
막상 DVD를 빌리러 가려니까 너무 귀찮기도 하고
그렇다고 손님을 불러놓고 혼자 밖을 다녀오는것도
조금 이상한것 같아서 그냥 집에서 결제를 하고 보기로 했거든.
어차피 부과금은 집으로 통지서가 날아올테니까. 세상 참 편해졌어.
그래서 열심히 영화 목록을 뒤지고 있는데
나와 오세훈 그 녀석의 취향이 굉장히 다르더라고.
사람들이 흔히 내 생김새만 보면
로맨틱 코미디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좋아하는줄 아는데
사실 난 그런건 닭살스러워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거든.
오히려 마법이나 액션신이 많은 사이파이 액션영화 같은걸 좋아하는편이야.
호쾌한 움직임이나 눈요기가 많아서 지루할틈이 없거든.
오세훈 그 녀석은 생긴것만 봐서는 호러영화나 액션영화를 좋아할것 같은데
의외로 잔잔한 멜로영화를 좋아하더라고.
그래서 둘이서 한참동안 무슨 영화를 볼지에 대해서 실랑이를 벌였어.
사실 가장 간단한 해답은 둘 다 보면 되는거였는데 말이야.
어차피 다음날도 일요일일테니까
조금 늦게까지 영화를 보다가 간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것도 아니니까.
해리포터를 보겠다며 고집을 부리던 나와
자기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반딧불이의 숲 이랬던가...?
아무튼 이름이 특이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자는 오세훈 사이에
약간의 갈등이 생길뻔 했지만, 나중에는 결국 둘 다 보기로 합의를 보고
해리포터를 먼저 보기 시작했어.
사실 해리포터는 전 시리즈와 책을 포함해서
몇백번은 읽고 본것 같지만, 볼때마다 재미있거든.
내가 워낙에 판타지 장르에 환장하는 괴짜타입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스타워즈나 아이언맨, 해리포터 같은 장르의 영화를 나는 정말 좋아해.
하지만 오세훈 그 녀석은 도통 집중을 못하더라고.
계속 카우치에 앉아서 몸을 뒤척이는데 내 정신이 다 사납더라니까?
그런데 그 녀석이 내 황금같은 영화감상 타임을 방해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있었어.
한창 결투씬이 나와서 집중을 하고있는데 갑자기 허벅지를 무언가가 짓누르더라고.
그래서 뭔가 싶어서 내려다보는데 오세훈의 얼굴이 보이는거야.
그때 어찌나 놀랐는지, 하마터면 얼굴을 팔꿈치로 찍어내릴뻔했지 뭐야.
정말 큰일날뻔 했어. 그런데 놀란건 조금 가라앉았는데
그 다음에 밀려드는 감정이 더 곤혹스럽더라고. 민망함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누워있는 오세훈이야 무슨 생각이었는지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참 민망하더라고.
이런 스킨십이 어색한것도 사실이고 말이야. 사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진한 스킨십은
그 녀석이랑 대판 싸우고 나서 화해의 의미로 나눴던 포옹밖에 없거든.
그러니 무릎베개가 편안할리가 없었지, 당연히.
그래도 나는 민망함을 애써 감춰보려고 스크린만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어.
지팡이 사이로 불빛들이 번쩍이고 날아가면서 별천지를 사방에 수놓는데
그게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몸의 모든 신경감각이 내 양 다리에 쏠린것처럼
다리를 스치는 모든것들이 세세하게 느껴지는거야.
오세훈이 호흡을 할때마다 따라서 약하게 다리를 압박하는 움직이라던가,
뒤척일때마다 허벅지를 스치는 머리카락과 이따금씩 와닿는 한숨같은거 말이야.
원래 민망함을 느낄때는 다른 무언가에 열중함으로써
그 민망함을 털어버리는게 당연한거잖아.
나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 행위에 충실하려고 스크린을
계속 쳐다봤던거고. 그리고 그 모습이 오세훈 그 녀석한테는 신기해보였나봐.
옆으로 내 허벅지를 베고있던 자세에서
똑바로 천장을 보고 눕는 자세로 몸을 뒤틀더니 그러더라고.
"진짜 재미있나보네."
"......"
"그래도 너무 집중은 하지 말아요.
질투나니까."
마침 화면에 나오고 있는 상대가 볼드모트였거든.
그래서 볼드모트를 상대로 질투를 한다고? 라는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너무 웃긴거야. 그래서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물었더니 그러더라고.
"질투 난다니까 그렇게 좋아요?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못됐다."
"야, 그게 아니라 너가..."
"이제야 눈을 맞추네.
연예인도 아니고, 뭐 그렇게 얼굴보기가 힘들어요."
영화 보자고 해놓고서 얼굴 보기 힘들다고 하니까
나로써는 할 말이 없더라고.
그리고 내내 저는 영화도 안 보고 계속 내 얼굴만 쳐다봐놓고
도대체 왜 투덜거리는건가 싶어서 조금 이해가 안되기도 하고.
멀뚱멀뚱 상대방 얼굴만 바라보면, 뭐가 달라지는것도 아닌데 말이야.
"영화 보자면서. 집중해."
"집중이 잘 안돼요."
"그렇게 산만해서 일은 어떻게 하는거야?
진짜 용하네."
내가 저렇게 말하니까 입을 다물고
갑자기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더라고.
표정이 뚱해보이는게 조금 삐진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저 녀석은 삐지면 은근히 티가 잘 안나서
달래주기도 힘들단 말이야.
그래서 나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데 갑자기 손을 뻗더니
턱을 괴고있던 내 손을 잡아가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반작용으로 손을 잡아뺐더니 다시 잡아가더니 안놓는거야.
이 녀석이 또 무슨 꿍꿍인가 싶어서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는데
손을 만지작대면서 그러더라.
"집중력 좋은 선배는 영화에 집중해요.
산만한 나는 뭔가 가지고 놀게 필요하거든요.
선배 손도 심심해보이는데 내가 데리고 놀죠, 뭐."
"뭐래. 손을 그렇게 주물럭대는데 집중을 어떻게 해?"
"산만한 저와 다르게 선배는 충분히 영화에 집중할수 있을것 같은데요.
아니면 제가 선배를 너무 과대평가 한 건가요?"
나도 참 멍청하지.
완전히 잊고 있었던거야. 그동안 너무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더니.
오세훈 이 녀석이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걸 말이야.
저렇게 말을 하면 나도 영화를 그냥 보는수밖에 없잖아.
손은 그냥 포기하는셈 치고. 안 그럼 산만한 어린애로 전락하는거나 마찬가진데
자존심 강한 내가 그걸 용납 안할거라는걸 오세훈 그 녀석도 알테고 말이야.
그러니 저런 밑밥을 깔아둔거겠지.
결국 다 알면서도 덫에 걸려든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어.
내가 간지럼을 잘 타는걸 알고 그러는건지
아니면 전혀 모르고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는데, 계속 몸이 움찔거려서
참느라고 혼났어. 나쁜자식.
어쨌든 그 녀석이 내 손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이상한 글씨들을 쓰면서
난리 부르스를 추는 동안 영화는 막을 내렸고
엔딩 크레딧을 보는데 그렇게 기쁠수가 없더라.
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중 하나가 끝났다는 사실에
그렇게 기뻤던적이 없었던것 같아.
아니, 사실 영화가 끝났다는 사실보다는
오세훈 그 녀석의 마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더 기뻤던것 같지만.
어찌됐든 약속은 약속이니까 영화를 다 보고나서
오세훈 그 녀석이 보고싶다던 애니메이션도 봐야하니까
카우치 앞에 놓여있던 탁상 위로 노트북을 가지고 왔어.
그 녀석의 핸드폰과 노트북을 연결시켜서 조금이라도 큰 화면에서 보고싶었거든.
너무 작은 화면에서 보면 영화를 볼 맛이 안난단 말이지.
아무튼 더듬더듬 거리다가 영화를 플레이 하기는 했는데
분위기부터 하도 잔잔해서 집중을 하기가 힘들더라.
오세훈 그 녀석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조금은 알것 같았어.
스크린속은 찬란한 여름으로 물들어 있는데
나는 지루한 음악이나 들으면서 방구석에 앉아있는거잖아.
그래도 뭐, 음악은 꽤 괜찮은것 같아서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리고 있는데 주인공이 나오더라고.
은색 머리의 소년과 엄청나게 작은 소녀.
처음 그 소년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오세훈의
팔을 치면서 말해버렸어.
"어, 쟤 너랑 닮았다."
얼굴은 고양이 마스크를 쓰고있어서 못 봤지만
뭐라고 할까, 길쭉한 몸이라던가
얄쌍해보이는 얼굴선이 오세훈 그 녀석이랑 비슷해보이더라고.
오세훈이 고등학생이었더라면 저런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할정도로 비슷해보여서 그런말을 했더니 오세훈이 웃더라고.
그러면서 그러더라.
"쟤는 형이랑 닮았어요."
그러면서 노트북 스크린으로 손가락질 하는데
그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옮기니까 내가 말한
엄청나게 작은 철부지 소녀가 보이더라고.
뭐야, 또 나 작다는걸로 디스 하는건가.
난 키 이야기에 상당히 예민하단 말이야.
내가 생각하는 가장 치명적인 콤플렉스라서 말이지.
"저게 어딜 봐서 나랑 닮았어?
내가 키도 훨씬 크고 성격도 훨씬 어른스러운데."
"하얗고 작잖아요."
"저렇게까지는 안 작거든?
네 키가 큰거지 절대 내가 작은게 아니야."
"귀엽다는 소리예요.
말했잖아요. 난 귀엽고 작은 사람이 좋다고."
더 짜증을 내고 싶었는데
저렇게 말하니까 나도 딱히 더 이상 무슨 말을 하지는
못하겠더라고. 괜히 나만 더 이상해지는거잖아.
그래도 그렇지, 5~6살로 보이는 여자애랑 내가 닮았다니.
대한민국 어느 남자가 그런 말을 듣고 좋아하겠느냔 말이야.
나쁜자식.
그래서 뚱한 얼굴로 그냥 카우치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있었는데
멍하니 앉아있다보니까 슬슬 졸리더라고.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시도때도 없이 졸린지 모르겠어.
나이가 들면 잠도 조금 줄어든다는데, 나는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잠이 많아지는 기분이야.
뭐든 평범한게 제일 좋은건데 말이지.
아무튼 그래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그래도 같이 영화를 봐야하니까 나름 눈에 힘도 주면서
스크린도 두어번씩 보고 그랬거든.
하도 장면들이 제각기 따로놀아서 개연성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스크린을 힘겹게 보기는 봤어.
작은 소녀는 사라지고 어느새 커버린 소녀가 보이더라.
그 소녀 옆에 서있던 은발의 소년은 여전히 그대로였는데
소녀는 벌써 다 커서 소년과 눈높이를 나란히 하고 있었어.
그 둘을 감싼 계절은 여적 푸르른 여름인데
그 둘은 어느새 돌고 돌아서 성장해 있었던거야.
아니, 둘이 아니라 한명이지만. 다른 한명은 이미 어른이었거든.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
꾸벅꾸벅 조느라 스토리의 플롯을 알지는 못했지만
그냥 마냥 어려서 한명이 일방적으로 의지하던 사이가 아니라
조금 더 자라나서 서로에게 의지를 하는 모습을 보니까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조금 뿌듯해지는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냥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나답지 않게 그런 나른하고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영화를 보면서
감상에 잠겨있는데 피곤한건 어쩔수 없더라.
한것도 없는데, 그냥 무던하게 굴러가는 일상이 너무 고단했나봐.
자꾸 꾸벅꾸벅 졸게 되더라고. 잠깐 존것 같았는데 다시 눈을 떴을때
난 오세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고
영화는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어.
서서히 여물어가는 여름의 끝자락을 향해서 말이야.
그동안 누군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경험은 있었지만
내가 누군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건 처음이라 조금 생소하더라.
몰랐어, 나는.
누군가의 목덜미에서 맥박이 그렇게 힘차게 뛰는건지,
그리고 그런 울림이 머리를 기댄 상대에게도 본래 느껴지는거였는지.
처음이라 서툴었던 나도 그냥, 아무것도 몰랐어.
관자놀이를 쿵쿵 두드리는 울림에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냥 무작정 오세훈 그 녀석의 어깨에 기대고 앉아서
화면만 무기력하게 응시하고 있었거든.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참 이상한 일이야.
스크린 속에서는 찬란한 여름밤이 펼쳐지고 있었어.
기모노를 입은 소년과 소녀.
하얀 겨울을 닮은 소년과 1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동안
맵게도 스크린을 채우던 여름을 닮은 소녀.
눈 깜빡할 사이에 가루가 되어서 사라져버린 소년과
소년의 마지막을 포옹으로 온전히 감싸안아준 소녀.
그 모습들이 꼭 그 둘이 목숨줄처럼 쥐고있던
불꽃놀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짧지만 엄청나게 밝고 뜨거웠던.
영화에서 담아낸 그들의 사랑은 나에게 있어선 여름 그 자체였어.
풋풋하고 밝으면서도, 묘하게 아쉽고 여운이 남는,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날같은 그런 마음.
텅 비어버린 소년의 기모노를 끌어안는 소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도 눈을 감아버렸어.
그 이후의 결말을 보기는 싫었거든.
나는 사실 묘한 습관을 가지고 있어.
해피엔딩을 너무나도 좋아해서, 해피엔딩 이외의 다른 결말들은
그 결말이 완전하게 나오기 전에 끊어버린다는 거야.
왜냐하면 그 결말을 마주하고 나서 닥칠 여운이나 아픔같은걸
감당할 여유같은게 사실 나에겐 없거든.
나는 흔히 말하는 고독이나 슬픔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 못된다 이거야, 내 말은.
눈을 감으니까 그 소리가 다시 들려왔어.
관자놀이를 규칙적으로 때리는 쿵쿵거리는 북소리 말이야.
둥둥둥, 무던하게 울려퍼지는 북소리가 자장가같아서 마냥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오세훈 그 녀석이 그러더라.
"앞으로 로맨스물 자주 봐야겠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어.
근원모를 무기력함에 젖어있었거든. 그래서였을까?
그 녀석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무런 말도 없이 목석마냥 앉아있기만 했어.
그 녀석의 동맥에서부터 들려오는 일정한 두드림을 들으면서
하염없이 앉아있었어.
"평소에 이렇게 고분고분하고 말도 잘 들으면
얼마나 예쁠까."
아, 지금이 예쁘지 않다는건 아니고,
라는 말을 황급히 덧붙이는게 웃겨서 나도 모르게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어버렸어.
바보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웃음소리와 그 두드림이 뒤섞이는걸 느끼면서
잠이 들었던것 같아. 그냥 스크린에 만연해있던 여름에 취했던건지.
여름이 지나간지가 언제인데.
계절을 거슬러가려고 하는 스스로가 웃겨서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어.
아, 잠이 들었는데 아주 묘한 꿈을 꿨어.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의 한장면이 마음에 걸렸던걸까
나답지 않게 너무 감상적인 꿈을 꿔버렸지 뭐야.
아주 익숙한 도로를 나는 천천히 걷고 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오세훈이, 사이좋게 손까지 마주잡고 말이야.
커다란 은행나무가 파랗게 심어진 거리를 걷는 우리들의 머리 위로는
인디고색의 하늘이 펼쳐져 있었어.
파랗게 물든 가을과 그 위에 씌워진 여름하늘이라니, 조금 이질적이지?
꿈이라는게 원래 모호하기 그지없잖아.
천천히 걷는 우리둘의 손에는 불꽃놀이가 들려있었어.
반쯤 타들어가서 반절이 까맣게 그을려버린, 다 수명이 다해가는 불꽃놀이.
내 불꽃놀이도 어느덧 찬란했던 순간을 마감하고 꺼져가고 있었어.
영화에서 보았던, 소녀의 손에 들려있던 불꽃놀이처럼.
아, 내 불꽃놀이가 꺼져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희미하게 번쩍이던 불꽃에 더욱 세차게 번쩍이는 불꽃이 올라앉고 있었어.
그에 놀라서 삐뚜름하게 어긋난 시선으로 하얗고 커다란 손이 들어왔어.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드니, 오세훈 그 녀석의 얼굴이 보였어.
영화에서 보았던 소년처럼 겨울 하늘을 닮은, 서늘해보이는 머리카락을
덥수룩하게 늘어놓은 오세훈.
나는 영화에서 나왔던 예쁘고 늘씬한, 그리고 순종적인 여자아이가 아닌데.
나는 그 로맨스물의 주인공이 아닌데.
나는 그 여자아이가 아닌데. 아주 다른, 그냥 고집 쎈 남성일뿐인데.
문득 밀려드는 생각들에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순간, 죽어가던 내 불꽃놀이에서
다시 불꽃이 일기 시작하는걸 난 볼수 있었어.
불꽃 말이야. 말 그대로, 예쁜, 불로 만들어진 꽃.
바늘처럼 가느다란 꽃잎들로 둘러쌓인 예쁜 불꽃.
동시에 여름날 바다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마주하니까
갑자기 마음이 너무 편안해지기 시작했어.
여름과도 같은 사랑.
불꽃놀이 같은 감정의 교류.
어쩌면 영화에서 보여줬던,
서로 지켜보기만 하기에 아름다운 감정의 교류보다는
서로 꺼져가는 불꽃을 나누어주며 절박한 몸부림을 칠 수 있는 사이가
여름의 참모습을 닮은 사랑이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해버렸어.
여러 감정들이 점철되어 하나의 커다란 도형을 그려내는,
과도기와도 같은 관계 말이야.
나답지 않게 너무 감상적인 이야기를 해버린것 같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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