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아저씨가 그린거에요?’
여자의 나체가 가득 담긴 난잡한 그림들을 가리키며 너는 순진히 물어왔다. 나의 시야에 잡힌 너의 하얀 피부, 하얀 다리, 하얀 손가락. 가녀린 몸에 걸친 아이보리 스웨터 하나. 나는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자라나는 불순한 욕구를 느낀다. 너를 더럽히고 싶어, 온통 하얀색인 너를 검은색으로 칠하고 싶다.
너는 어떤 표정을 지어보일까.
*
‘뮤즈요?’
체리맛 사탕을 입 안에서 열심히 굴려대던 너는 호기심어린 눈동자로 나를 본다.
‘어려울 것 없어. 사탕같은거야.’
너의 그 체리맛 사탕처럼 내게 강렬한 색으로 굴려지면 돼. 그것 뿐이다. 너는 내게 강렬한 영감을 선사하고 나는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기만 할거야. 매 일, 매 시간, 매 순간마다 더럽혀지는 너의 모든 표정과 몸짓을 캔버스 위의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 내 목표다. 성인 여자의 몸들은 이제 따분하다. 내게는 무언가 신선한 영감이 필요했고 너는 그것에 부족함이 없다.
‘내 뮤즈 할래?’
‘어렵지 않다면…상관없어요.’
너는 분명 나의 캔버스 위에서 걸작을 남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말았다. 희열과 흥분에 젖어드는 감정이 주체할 수 없는 웃음으로 터져나온 것이었다. 너는 날 이상한 사람인마냥 보다 이내 나의 그림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관능적이고, 은밀하게 자극적인 이름 모를 여성들의 나체 그림이 이제 너의 그림으로 대체될 거라는 걸, 얼마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검은색으로 칠해질지 너는 모른다.
muse
너의 망가진 모습은 생각을 뛰어넘을 정도로 유혹적이고 도발적이었다. 망설이던 처음과는 달리 너는 이제 스스로 나의 뮤즈가 되어 나의 상상력을 넘는 그림들을 탄생시킬 수 있는 어떠한 광기어린 욕구를 만들어낸다. 살짝 벌어진 입술과 야릇하게 접어올린 하얀색의 티셔츠는 여전히 가녀리고 하얀 너의 몸들과 어우러진다. 소녀와 숙녀의 경계. 반항적이게 눈을 치켜올렸지만 앳된 소녀의 얼굴을 한 너의 모습. 나는 끊임없이 너에게 색을 입힌다.
‘어때? 뮤즈가 된다는거 말야.’
‘아저씨 말대로 어렵지 않네요. 오히려 즐거운걸.’
반쯤 풀린 눈으로 미소를 짓던 너는 코카인을 찾는다. 이제 너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린 하얀색 가루를 깊게 들이마쉰다. 너는 무언가에 홀린 듯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다. 입술도 느릿느릿 힘겹게 뗐다.
‘왜 나였어요?’
‘괴롭히고 싶어서.’
‘괴롭혀요? 이렇게 좋은데.’
‘그냥 너가 궁금했어.’
들고 있던 술 잔을 내려놓았다. 실없이 웃고있는 너의 입술과 내 입술이 맞닿았다. 너는 반항도 하지 않은 채 나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나의 행동은 더 대담해져 나의 손이 너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들자 너는 기분좋은 신음을 한다. 아기고양이같이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다. 너의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고 이번에 너는 숨 넘어갈듯한 신음을 뱉는다. 너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가 애욕에 찬 얼굴을 한다. 발갛게 달아오른 너의 얼굴을 찬찬히 관찰했다.
‘아저…씨 괴롭히고 싶다는 게 이런 거…였…’
쉿. 아무 말도 하지마. 너의 입술에 손을 조용히 갖다대었다. 하얀 몸이 붉은 색으로 달아올라 부르르 떨린다. 하지만 내가 보는 너는 검은색이다. 온통 하얗던 너를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완벽해. 너는 나의 완벽한 뮤즈. 당장이라도 너를 캔버스 위에서 그려내고 싶다.
*
마지막 채색을 입혔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내가 그려낸 건 조금 전의 너였다. 전라의 몸으로 내 옆에서 그림을 지켜보던 너가 말했다.
‘나 되게 섹시하다.’
‘맞아.’
‘근데 왜 내 몸이 검은색이야?’
너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예전에는 회색이였잖아.’
‘말 못한게 하나 있는데 너 이제 내 뮤즈아니야.’
경악한 표정을 금치 못한다. 너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게 무슨소리야? 내 인생은?’
‘너 인생 책임져준 다고 한 적 없어.’
너는 화내는 모습마저 섹시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화폭에 담아내지 않는다. 널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너는 아름답지만 이제 나에겐 그저 검은색일 뿐이니까. 검은색은 아무리 덧칠을 해도 하얀색이 될 수 없거든.
‘고마웠어. 나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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