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다를 다루는 신이였다면 내 몸소 직접 바다가 되어 온갖 나쁜 말을 담아 욕을 내뱉어도 부정할 수가 없는 해일이 되어 저 높은 벽 집, 자신의 고기를 덮고 있는 가죽 하나에 의지하여 웃음 짓는 시체들을 덮쳐버리리.
검은 머리 짐승
내가 사는 곳은 집이 몇 되지 않는 시골이였다. 시내로 나가려면 한 시간정도 버스를 타고 나가야하는 곳이였다. 나는 이 시골 집에서 혼자 살았다. 말하자면, 스무살이 되자마자 글을 쓴다며 무작정 집을 나온 것이기도 했다. 어디에 가야할지도,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통장에 찍혀있는 650만원이라는 돈만을 믿고 집을 나온 것과도 같았다. 한 날은 그저 사람이 지나가는 것만을 구경했었고, 한 날은 정처없이 길을 걷기도 했었고, 한 날은 외할머니네 집 근처에 있는 절으로 향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었고, 마지막 날인 그 날에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난 곳에 있던 이 작은 마을을 보고 여기에 살아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누군가 살던 집에 마을 주민분들의 도움을 받아 벽지를 새로 붙이고, 필요없던 가구를 버리고, 천장 구석 곳곳에 있던 거미들을 털어내고, 먼지도 털어내어 나의 두번째 둥지를 틀었다.
마을 주민분들은 착하신 분들이였다. 오십은 거뜬히 넘으신듯한 이장님과 부인, 자신의 아내가 너무나도 고와 꽃분이라고 부른다는 성재아저씨와 꽃분이 아줌마, 그 사이에서 나온 7살 쪼그마한 꼬맹이 하나, 늙으신 어머님을 뫼시고 산다는 육십 아저씨와 이제 사십이 되었다며 순박한 웃음을 흘리며 내게 인사를 하던 춘식 아저씨와 젊은 베트남 아가씨, 요 앞에 하우스 보이지? 내꺼여. 목장갑을 낀 손으로 내게 악수를 건네던 하우스 아저씨와 아줌마, 자신은 사과 밭을 한다며 나중에 구경오라던 아저씨와 그런 아저씨의 아들이라던 20살 박찬열이 이 작은 마을의 구성원들 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나는 그 동안 품어왔던 긴장감을 풀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라 맺고 끊기가 분명한 나라도, 쉽게 정을 붙일 수가 있었다. 이 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하우스 아저씨와 사과 밭 아저씨의 조수역할 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기와 사과를 수확해 정확한 갯수를 새는 것이 다였지만. 사과 밭 아저씨의 아들인 찬열이도 나와 같은 조수역할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둘은 꽤나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장난도 쉽게 받아쳤고, 시내에 장이 열리는 날이면 같이 장을 보기도 하고, 가끔 밤에 같이 술을 마시며 자신들이 감추고 있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이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나의 둥지도, 마을 주민들도, 조수역할로 받는 꽤 짭짤한 수입도.
몇 가구 안 되는 이 작은 마을에는 어느 한 빈 집이 있었는데. 그 빈 집은 나의 둥지 맞은 편에 위치해 있었다. 이 곳에 둥지를 틀었던 날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산 떡을 돌리기 위해 빈 집을 향한 나의 손 짓과 저기 누구 살아요? 나의 물음을 들은 이장님께서는 어쩐지 떨떠름한 목소리와 손짓으로 아무도 안 사는 집이여. 하며 말을 돌리셨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말 않고 화제를 돌렸다. 성재아저씨네 댁이 어디에요? 라며. 이 곳에서 살아갈 날은 많고, 그 중 마음에 드는 날을 골라 언제든지 물어보면 되는 말이였다.
"야."
아마도 그 날이 오늘이였나 보다. 캔 맥주를 마시던 찬열의 눈이 나를 향했다.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 마을 제일 끝에 있는, 산 바로 밑에 있는 불이 꺼져 있는 집을 가리켰다.
"저기 누구 살아?"
나의 손 끝을 따라가며, 맥주를 마시던 찬열이의 손이 멈췄다. 나는 그런 찬열이를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도 몰라."
그래? 처음부터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오징어를 집는 나를 바라보는 찬열이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퍽퍽한 오징어를 씹어 삼켰다.
"야, 잘가라."
"엉, 너도."
술을 마셔 알딸딸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휘젓고는 눈을 똑바로 떴다. 불빛 하나 없는 방으로 들어와 누워 아까의 찬열이를 다시 또, 되짚었다.
가족들이던, 친구들이던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너는 눈치가 너무 빨라.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 옆의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얘 감도 쩔잖아. 그들의 말처럼 나는 찬열이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말하지 않고 싶어한다는 것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열심히 했던 것이기도 하고. 도대체 누가 살길래 그러나, 싶었다. 누군가가 열지 못하게 막는 상자가 더 열고 싶다고, 나는 그 집에 누가 사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단순한 호기심이기도 했고, 찬열이가 숨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고 싶기도 했고, 글을 쓸만한 소재를 건지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컸다.
방문을 열면 보이는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집을 바라봤다. 나는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마을은 어둠에 깔려 있었고, 모두가 잠에 빠져있을 즈음이였다. 이 때다 싶었다. 옷걸이에 걸려져 있는 점퍼를 걸치고 손전등 하나를 들고 부리나케 집을 나섰다. 후에 생각해보니, 나는 무언가에 홀린 미친사람과도 같았던 것 같다.
가까이서 보는 집은 매우 컸다. 대가족이 살아도 될 만큼. 나는 나 보다 큰 키를 가진 대문을 열었다. 굳게 닫혀져 있을 줄 알았던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끼익-하고 듣기 싫은 소리가 울렸다. 혹시라도 누군가 들을까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왠지 웃음이 나왔다. 어린아이들이 몰래 탐방을 하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손전등을 키고 바라본 집은 조선시대의 양반댁처럼 보이기도 했다. 의외로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손전등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바라봤지만, 이렇다할 무언가가 없었다. 문 앞에서만 머뭇거리던 발걸음을 집 안 쪽으로 옴겼다. 행랑채가 보였다. 행랑채의 돌계단에 올라서 기웃거렸다. 계세요…? 애꿎은 내 목소리만이 어둠에 깔린 행랑채에 울렸다. 아무도 없나? 뒷 목을 긁적거리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옴겼다.
사랑채의 주위만 어슬렁 거렸다. 아무도 안 사나? 하긴, 아무도 안 사니까 맨날 불이 꺼져 있겠지. 사랑채 주위에 있던 연못으로 발을 옴겼다. 손전등으로 연못으로 비추니 아직 숨이 붙어있는 여러 마리의 붕어들이 보였다. 이게 뭐야? 누가 키우는 거 아냐? 쭈그려 앉았던 다리를 똑바로 피고는 손전등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깊게 깔린 어둠에, 그저 빨빨 거리기만 했던 이 집이 괜시리 무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손전등을 따라간 곳에는 연못 옆을 따라 놓인 한 길이 있었다. 갈까? 말까? 고민할 틈은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연못을 따라 길이난 곳을 따라갔다. 연못을 따르는 길은 사랑채의 뒤편을 향해 있었다. 누군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길인지 너무나도 좁은 길이였다. 연못에 빠질까 조바심을 내며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마지막 발걸음이 닿은 곳에는 사랑채와는 다른, 그러니까 언뜻 보면 창고로 보일만한 것이 있었다. 문도 아까의 대문보다 더 큰 느낌이였다. 크기도 아까의 사랑채보다 더 큰 느낌이였다. 나는 큰 크기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서 방문으로 그 집을 바라볼 때와 똑같은 느낌이였다.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이 집에 사는 누군가가 나를 이 곳으로 들어오라고 손 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문 앞으로 조금씩 다가가다, 열까 말까 고민하는 손짓을 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문을 열었다. 천장에는 드문드문 달빛이 내려오고 있었고, 그 달빛을 따라 내려간 곳에는 달을 닮은 것 같은 한 남성이 달빛을 받으며 허공에 떠있었다. 나는 나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한 체, 너무나도 신비스러운 남성의 모습을 믿지 못한 체, 나의 손에서 손전등이 떨어진다는 것도 눈치 체지 못한 체, 그렇게 남성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남성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남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성의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침묵을 지켰다. 공중에 떠있던 남성의 발이 풀썩, 하며 바닥에 닫았다. 위로 올려만 봐야 했던 남성의 눈이 조금만 올려만 봐도 되는 높이가 되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난 오세훈, 넌?"
"……."
대답 없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내가 답답했던 남성이, 아니 오세훈이 눈썹을 찡그렸다.
"이름이 뭐냐니까."
조금은 짜증이 들어간 듯한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였다. 어? 어? 난 조우진.
"예쁘네."
오세훈이 웃었다. 달빛에 비춰져서 그런가 신비스러웠다. 솔직히 흔히들 말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라고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뒤 돌아 뒷짐을 지고는 이 안을 산책하듯이 돌아다니는 오세훈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디서 왔어? 오세훈의 음성이 들려왔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목소리. 굵지도 얉지도 않은 목소리. 듣기 좋은 오세훈의 목소리였다. 나?…서울에서 왔어. 아아, 왜? 어? 글쓸려고 왔는데. 정작 글은 못 쓰고 아저씨들 일 도와 주고 있어. 여기 마을 사람들 다 착하더라. 짚으로 엮여져 있는 풀 더미에 털썩 하고 앉았다. 무서웠던 긴장이 다 풀리는 듯 했다. 근데, 넌? 처음부터 이 곳에서 산 거야? 오세훈이 걷기만 하던 걸음을 멈추고는 뒤 돌아 내 눈을 바라봤다. 정면에서 보는 오세훈은 삼백안을 가지고 있었다. 매우 매력적인 눈이였다.
나? 응. 너.
오세훈은 이제 갓 스물이 된 남자아이였다. 그리고 이 넓은 집에 혼자 산다고 했다. 불을 켜지도 않는다. 문 밖을 나가지도 않는다. 그저, 이 넓디 넓은 집을 산책하고 가끔은 연못을 바라보기도 하고, 붕어와 말 벗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선뜻 얘기 하지 못하고 입 안에 삼키던 말을 했는데, 자신은 신비한 힘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픈 것을 모두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심심하지가 않다. 게임이 하고 싶다면 게임기를 소환하면 되었고, 잔치가 하고 싶다면 상상 속의 인물을 소환하면 되는 일이였다. 번개를 보고싶다. 번개를 치면 되는 일이였다.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자신이 가진 신비하고도 묘한 힘을 발휘하면 되는 일이였다. 자신은 이 힘을 12살부터 다루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 처음으로 자신의 친구에게 힘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자신에게 돌을 던지며 괴물이라며 자신을 피했다고 했다. 그걸로는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이 이 작은 동네에 소문이 난 것이었다. 부모는 그러한 소문을 믿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망측한 소리를 하고 다니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고 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자신이 가진 힘을 부모에게 들키지 않으려 숨기고 있더라ㅡ웃기지 않니? 참 모순적이다. 그렇게 말하며 오세훈은 웃었다. 그 친구는 마을에서 소문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고 했다. 부모가 화를 노발대발대며 우리 세훈이는 그럴리가 없어. 당신네 아들이 이상한 거짓말 내고 다니는 거 아니고? 증거를 대봐. 증거를. 우리 세훈이가 그랬다는 증거를! 증거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당연히, 친구에게만 보여줬었던 것이고. 당연히, 자신은 자신의 부모에 행동에 숨기려고 들었으니까. 친구의 아버지는 믿기지 않는다 듯이 진짜 봤어요! 니가 나한테 보여줬었잖아! 니 손에서 불이 나온다며! 니가 나뭇가지 들고 와서 니 손에서 불태우는 거 나한테 보여줬었잖아! 자신의 몸을 흔들며, 소리치는 친구를 바라만 봤다고 했다. 오세훈! 무슨 말이라도 해봐! 진짜 아니야? 니가 나한테 보여줬었잖아! 친구의 간절한 절규가 마을 전체에 울리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자신은 그러한 친구의 절규를 듣고만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아이는 그럴 일이 없다며 진저리 치던 부모님의 모습이 머릿 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아, 자신의 힘을 밝히면 부모님이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를까봐. 그게 너무나도 무서워서 자신은 그저, 자신의 팔을 잡고 흔드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친구는 그 후로 점점 신뢰를 잃어갔다고 했다. 마을 어른들은 친구를 보면 혀를 차기 일쑤였고, 아버지 진짜에요! 제가 봤어요. 제가 봤다구요! 친구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저희 밭 좀 부탁드릴게요. 며칠동안만. 빨리 돌아올거에요. 소량의 돈을 건네며 친구의 손을 잡고는 버스를 탔다고 했다. 자신은 왜 친구가 버스를 타고 가는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가 없는 사이, 작디 작은 마을에 한 소문이 퍼졌는데. 그 주인공은 자신과 친구였다고 했다. 찬열이 고게, 애가 점점 미쳐가더라니까. 그래서 찬열이 애비 찬수도 찬열이 정신병원에 데리고 간 거 아녀. 에휴, 세상이 어찌 돌아갈런지. 세훈이만 불쌍하게 됐지. 찬열이가 까딱하면 멀쩡한 애 이상한 애로 만들뻔 했잖어. 자신은 이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 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고ㅡ차라리 내가 그 때, 아버지의 라이터로 장난을 친 거 였다고. 찬열이도 자신에게 속은 거라고. 그렇게 변명을 했더라면.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야. 오세훈이 쓰게 웃었다. 찬열이와 찬수 아저씨가 돌아온 것은 그 후, 3일 후였다. 찬수 아저씨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그에 반면 찬열이는 어린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눈에 독기가 서려 있었다고 했다. 찬수야 의사선생이 찬열이 보고 뭐라하든? 찬수아저씨는 아무 말도 못하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만 봤다고 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만요. 우리 찬열이 정상이랍니다. 마을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듯 했지만, 아휴! 그럼. 찬열이가 그럴리가 없지. 하며 비유를 맞춰줬다고 했다. 자신은 그런 찬수아저씨의 말에 다행이다.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후에는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웠다고 했지만.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 듯 했다. 찬수아저씨의 사과 밭도 무럭무럭하게 자라났고, 찬열의 눈에 서려있던 독기도 점점 옅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부터 장독에 물이 새어나가기 시작했을까. 찬열이 정신병있는 거라면서? 찬수가 그러더만. 뭐? 찬수가 아니라며. 아니 글쎄 우리한테는 아니더라니. 하우스한테는 한 잔 주고 받으면서 말했다더라고. 사실 우리 찬열이가 정신병이 있다고. 뭐? 하이고. 부처님이 아시면 큰일날 소리네. 늙은 노인이 나눈 대화는 파도가 백사장을 덮치는 것처럼 마을에 퍼져나갔다고 했다. 저 노인이 들은 얘기는 저 노인에게로, 저 노인이 들은 얘기는 자신의 부모에게로, 자신의 부모에게로 들은 얘기는 저 집에게로, 이 집에게로, 마침내는 찬수네 아저씨에게로, 찬열이에게로, 자신에게로 닿아져 결국에는 찬수아저씨가 하우스아저씨와 주먹다짐을 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니가 말한 거냐? 우리 찬열이 얘기를? 이 개쌍놈의 새끼야! 누가 그래? 내가 퍼트렸다고! 난 입도 뻥끗한 적 없어! 어디 다른 노인네들이 엿듣고 퍼트린 거겠지 이 무식한 놈아! 뭐? 무식한 놈?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찬열은 자신때문에 마을에서 죽마고우라고 소문이 났던 자신의 아버지와 하우스 아저씨가 싸우는 것을 보며 죄책감이 맺힌 눈을 하며 바라만 봤다고 했다. 어떻게 찾았는지 모를, 그 둘을 말리는 주위 어른들의 뒤에 겁쟁이처럼 숨어있던 자신을 찬열은 독기와 눈물이 맺힌 눈으로 자신 만을 바라만 봤다고 했다. 자신은 그 눈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그런거야. 내가, 내가……. 그 후, 마을에서 소문난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찬열은 자신을 아주 미워했다고 했다. 자신이 지나가면 발을 걸기가 일쑤였고, 일부러 싸움을 내 자신이 잘못했다는 쪽으로 몰아가기 일쑤였으니까.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했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도, 결국엔 찬열을 거짓말쟁이로 몰아간 것은 자신이였으니까. 그래서 당연하게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머리에 딱지가 져도, 운동장에 쓸린 손바닥과 무릎이 하얗게 그여 피가 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고 했다. 그러한 생활은 중학교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키가 크고, 머리가 성장하다보니 아이들은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고 했다. 박찬열은 왜 그렇게 오세훈 괴롭히는 거야? 오세훈도 괴롭힘 당할 애로는 안보이던데. 아, 박찬열? 걔 정신병 있는 애잖아. 오세훈 이상한 애로 만들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저렇게 심술부리는 거지 뭐. 한 아이가 대수롭지 않게 꺼낸 이야기는 전교 100명이 안 되는 작은 중학교에 물 엎어진듯 퍼지기 시작했다고. 찬열의 옆에 붙어있던 별 볼일 없던 놈들도 너 진짜 정신병있는 새끼냐? 낄낄거리며 찬열과 주먹다짐을 했다고. 지나가는 선생님들, 믿었던 친구라도 했었던 놈들도 찬열이를 불쌍한 정신병자라고 칭하며 불쌍한 눈초리를 쳐다봤다고 했다. 찬열은 그럴수록 더욱 더 삐뚤어져 갔다고 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틈만 나면 학교를 빼 먹었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주먹다짐도 횟수를 논하기 어려울 만큼 했다고 했다. 찬열의 어머니는 그런 찬열을 보면 뒷목을 잡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안그래도 깊은 병을 앓고있던 어머니가 잦은 쇼크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늘어나자 마을 노인네들은 모두 입을 모아 찬열을 힘껏 모함했다고 했다. 물론, 그 모함의 중심에는 자신도 끼여있었다고 했다. 세훈이도 이상한 애로 몰아갈려고 하더니만, 이제는 지 어미까지. 그거 아주 독종인 놈이야. 독종. 찬열의 어머니의 병세는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찬열은 그런 자신의 어머니를 본체도 하지 않았다. 찬열, 자신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어느 날 찬열이 자신의 세계의 창문을 깨고 나오는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은 찬열의 어머니가 자살기도를 한 날이였다. 세훈은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자신의 침묵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는 날이였다고, 그렇게 말했다.
"니가 죽인거야. 니네 엄마."
찬열을 향해 마을 사람들 모두는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찬열은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저, 어른들 사이에 숨어 죽은 자신의 엄마를 바라보고만 있는 비겁한 새끼만을 바라봤다. 좆같은 새끼. 씨발새끼. 니가 죽인 거잖아. 우리 엄마. 찬열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달려나가 비겁한 새끼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 꽂았다. 그 놈의 위에 올라타 가슴에도 주먹을 꽂고, 머리에도 꽂고, 꽂을 수 있는 곳 어디든 자신의 주먹을 내리 꽂았다. 주위 어른들이 놀라 찬열 자신의 팔을 때리며 놈에게서 떼어놓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찬열은 쓸 수 있는 힘을 모두 써내려고 했다. 발버둥치고, 물리치고. 멀쩡히 살아있는 저 새끼의 얼굴에 피멍이라도 들게 한다면. 내 어머니의 상처의 전부만큼은 아니더라도, 티끌 하나라도 저 새끼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더라면.
"너 정말 왜이래! 우리 세훈이 이상한 애로 몰아가려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때려? 너 진짜 경찰서 한 번 가볼래?"
찬열은 비겁한 새끼를 감싸 안아 자신에게 호통치는 여인을 바라봤다. 참으로도 웃겼다. 자신은 이렇게 신뢰도 잃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엄마까지 잃었는데 저 좆같은 새끼는 신뢰도 얻고, 불쌍한 아이라는 타이틀로 주위 사람들의 동정을 얻고, 보듬어주는 엄마도 있고. 이가 바득바득 갈렸다. 내가 너네 엄마의 목에 칼을 꽂고 피로 온 몸을 적셔도 넌 그렇게 나한테 당하기만 할꺼냐? 세훈아. 찬열은 입 밖으로 내밀지 못하고 입 안에서 굴리던 말들을 속으로 삼켰다. 옷에 묻어있던 흙을 털어내면서도 찬열은 세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겁먹은 얼굴이 너무나도 웃겼다. 자신은 이렇게 쓰레기로 만들고 저 새끼는 주위 사람들이 감싸주느라 안달이 났으니. 참으로 좆같았다. 찬열은 터덜터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에게 등을 지며 걸어나갔다. 이 좆같은 마을에는 내가 다시는 안 온다. 찬열은 그렇게 다짐하며 며칠 전 아이들에게 빼앗았던 돈을 손에 쥐고는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으로는 세훈을 일으키며 옷을 털어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덤으로 세훈의 아버지와 싸우는 자신의 아버지도. 찬열은 눈을 감았다. 보고싶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찬열이 눈을 떳을 때에는 찬열이 들어만 보았지, 실제로는 보지 못한 간판들이 많았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간판들을 살펴보니 이 곳은 안양인 것 같았다. 찬열은 벨을 눌리고 버스에서 내렸다. 이 곳은 마을 주민들이 없는 곳이였다. 자신을 정신병자라고 칭하던 선생들도, 학교 아이들도 없는 곳이였다. 착한 척만 하는 좆같은 새끼, 세훈도 없는 곳이였다.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곳이였다. 찬열은 무언가 벅차오르는 듯한 기분에 주저 앉았다. 그제서야 집에서도 풀지 못했던 긴장이 풍선에 바람빠지듯 풀리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왔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찬열은 아랑곳하지않고 한참을 주저 앉아 울고, 또 울었다.
세훈 자신도 그 후에 찬열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잘 됐다, 잘 됐다 하면서도 찬수아저씨 앞에서는 어휴, 찬열이는 어디갔데?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 너스레를 떨며 찬열이에 대해서 안줏거리로 삼으려 아주 열이 올랐었다고 했다. 물론, 그 열기는 한 달도 체 안갔다고 했다.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고 했다. 찬열의 얘기는 자연스럽게 들어갔고, 찬수아저씨도 사과밭 농사를 재게했다고 했다. 자신은 찬열이를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의 죄라고 생각하며 잘 웃지도 않았고, 가족 외 누군가와도 말을 잘 섞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런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처럼, 파도에 휩쓸려 부서진 배가 된 것처럼 무너져 내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잖아. 세훈아. 니가 나한테 빼앗아간거에 비하면."
작은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얼마나 일어난다고 이리도 시끄러울까. 세훈은 어지러운 머리를 바로 잡았다.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이였다. 시골이라 CCTV도 없고, 범인이 남긴 지문이나 흔적도 없고, 흉기도 주위에서 발견된 게 없어서 잡는 게 좀 힘이 들 것 같네요. 라고 말하는 경찰의 말투에서는 범인 못 잡겠네. 단념한 듯한 말투가 담겨있는 것이 고스라이 느껴졌다. 세훈은 항의할 힘도 없었다. 제 아비와 몇날 며칠을 상념에 빠져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제 아비가 경찰의 멱살을 잡으며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우리 영선이 죽인 범인 찾아내! 찾아내라고! 우리 세금은 달달이 꼬박 꼬박 받아 쳐 먹는 새끼가 뭐? 찾기가 힘들어? 울며불며 소리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세훈은 힘 없이 나가 떨어져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 그만하세요. 자신의 아비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아비의 팔을 흔들고 허리를 붙잡아 경찰에게서 멀리 떨어트려 놓으려 힘을 주어도 자신의 존재, 세훈이라는 자신의 아들은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눈에 담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 제발 그만하세요! 제 아비가 자신의 목소리에 경찰의 옷을 부여잡고 흔들던 손이 멈추는 것을 세훈은 바라만 보았다.
"세훈아. 네 엄마가 죽었다. 내 아내, 영선이가 죽었어. 근데, 어떻게……내가 진정을 할 수 있겠냐. 네 엄마 죽인 그 새끼! 그 놈의 새끼! 그 새끼 얼굴만 한 번이라도 본다면 좋으련만……왜 그랬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만 볼 수만 있다면. 뭐 잘난 것도 없고,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없는 나한테 일찍 시집와서 고생만 하던 그 여자를 왜……도대체 왜……. 그 여자한테 무슨 한이있다고……."
세훈은 자신의 아비가 얼굴에 눈물을 적시며 자신의 옷을 잡고 늘어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아비를 보는 세훈 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 죄송해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잖아. 세훈아. 니가 나한테 빼앗아간거에 비하면."
아버지가 욕을 뱉으며 칭했던 검은 머리 짐승을 전 그 날 봤어요 아버지. 한 손에는 제 어머니의 피가 젖은 칼을 쥐고 피에 젖은 얼굴로 저를 바라보던 검은 머리 짐승을 전 그 날 봤어요 아버지. 아버지. 저는 그 모습을 보고도 씨발새끼, 개새끼, 씹새끼라는 분노로 엉켜져있는 욕 조차도 내뱉지 못했어요. 그저, 저를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검은 머리 짐승과 마을 사람들이 곱다며 칭송하던 나의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만 있었어요.
내 지난날의 과오가…. 그 과오로 인해 검은 머리 짐승이라고 불리는 저 아이와 원래는 내게 돌아와야했을 질타와 비난을 받던 저 아이와 그 질타와 비난으로 인해 잃어버린 저 아이의 어머니, 또한 나의 과오로 인해 잃게된 나의 어머니. 아버지 죄송해요. 지금이라도 저의 바지가락을 잡고 내팽겨치셔도 좋아요. 나쁜새끼, 좆같은 새끼라고 욕하며 저의 뺨을 내리치고 발로 밟으셔도 좋아요. 아버지, 저는……. 내 죄가 너무나도 많아 짐승이 제 어머니를 찌른 범인이라고 입도 뻥끗하지 못하는 저는 비겁자이자, 방관자이자, 범인입니다. 아버지…….
세훈과 자신의 아버지는 그 후 이 마을을 떠났다고 했다. 집은 팔지 않았다. 언제든 너네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채취가 있는 이 곳에 돌아올 수 있어. 그저, 지금은 그 추억과 채취를 잠시 묻어두는 거야. 언제든 다시 돌아와 눈물 흘리지 않고, 웃으며 이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연습을 하는 것과도 같은 거야 세훈아. 세훈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그 당시 세훈은 자신의 아버지가 왜 제주도로 떠나자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신혼여행 장소야. 라고 말했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사망보험금으로 나온 돈으로 세훈과 자신이 살만한 작은 집을 장만했다고 했다. 가구도 새로 샀고, 전자제품도 새로 샀다. 아버지의 의견이였다고 했다. 집에서 가져와도 되지 않을까요? 아니. 다 엄마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것이잖니. 배송되온 옷가지와 몇가지의 귀중품들을 자신의 방에 풀어놓고 정리를 한 후, 아버지와 새 출발이라는 의미로 짜장면을 시켜먹었다고 했다. 다 먹은 후, 입가를 닦으며 아버지는 제게 한 손을 내밀며, 검은 머리 짐승에게 자신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선고를 받은 후 처음으로 히쭉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둘이서 잘 해보자."
엄마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지자. 둘이서 잘 해낼 수 있을거야. 비어있는 한 자리를 너와 나, 반씩해서 채워나가다보면 어느샌가 익숙한 시간이 되고 어느샌가부터는 한 자리를 채운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시간이 올거야. 세훈은 자신의 아비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자신의 아비를 따라 웃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뇌 한켠에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도저히 그럴수가 없었다.
"요 근처에 시장 있다던데. 장이라도 보러 갈까? 세훈아."
제 아비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한껏 받으며 기지개를 피곤 웃으며 제게 말했다. 사람들이 흔히 떠들곤 하던, 후광이라는 것이 자신의 눈에도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세훈은 이대로 모든 것을 다 잊은 채로 새롭게 시작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어두웠던 마을, 자신의 과오로 인해 검은 머리 짐승이 되어버린 찬열도, 목숨을 잃어버린 제 어미도 다 잊고서. 세훈은 눈물이 나왔다. 제 아비가 자신에게 놀란 얼굴로 뛰어오며 등을 토닥이는 것이 여실하게 느껴졌다. 눈물이 멈추지가 않았다. 어두웠던 자신의 삶에서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빛이 자신의 앞에 있었다. 그래. 신이 내게 죄보다 이기심을 택한 사악한 인간이여. 칼을 꽂아도 좋았다. 그 마을에서 떨어진 이 제주도라는 섬에는, 항상 찬열과 자신을 자신들의 입방아에 올리던 주책맞은 어른들도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보는 찬열의 아비도 없었다. 언제나 자신을 죽일듯이 바라보는 찬열도 없었다.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친우들도 없었다. 자신의 어두웠던 과오와 과거를 아는 모든 이가 없는 곳이였다. 그제서야 세훈은 자신의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심지어는 집으로 가는 길을 걷던 길거리에서도 풀지 못했던 긴장이 풍선에 바람빠지듯 풀리기 시작했다. 세훈은 자신의 눈물을 제어할 방법이 없었다. 목구멍이 따가워 오는 것을 참으려고 했는데도, 참을 수가 없었다. 제 아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비가 매만져주는 등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너무나도 따뜻했다. 제 아비가 의뭉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세훈은 아랑곳하지않고 한참을 주저 앉아 울고, 또 울었다.
"찬열이가 마을로 돌아왔다고 하더라."
세훈은 숨을 내뱉었다. 어제가 동지가 그런가 깊은 입김이 나왔다. 하얗게 뒤 덮인 주위를 둘러보며 제 아비가 사온 따뜻한 점퍼와 목도리를 여몄다. 언제까지고 내 기억 밑 저 바닷속으로 잠겨둘 수 만은 없는 과오였다. 왜 대학 가는 것을 굳이 미루냐며 따지듯이 물어오는 아비의 말에 해결할 일이 있어요. 이걸 꼭 해결해야만 제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놓고, 처음으로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비춰놓기도 했다. 언제 돌아갈 건지 날짜도 정해 비행기도 예약했다. 자신의 몸뚱아리와 그 가죽을 덮어줄 몇 개의 옷가지들만을 들고 떠나면 되는 일이였다. 세훈은 흘러내린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길을 걸었다. 빛만을 보고만 살 수는 없는 일생이였다. 가끔은 어둠을 봐주기도 해야만 했다. 그 것이 고통스러운 것도 안다. 버티기 힘들어 차라리 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결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날이 올 것도 안다. 그래도 어둠을 봐야만 했다. 다짐은 했다. 결심도 했다. 흔들리는 마음 따위는 없었다. 세훈은 눈을 맞아 젖은 머리를 털어냈다. 세훈은 자신의 눈에 새하얀 눈이 떨어져 눈 밭에 닿는 것을 담았다. 자신의 과오도 이토록 간단하게 털어낼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훈이 돌아온 것은 1월 어느 날 밤이였다고 했다. 깊은 밤, 자신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따뜻한 연기마저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목도리에 깊게 얼굴을 묻었다고 했다. 나 편하고자 끌려고 했던 캐리어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 손으로 들어 옴겼다고 했다. 1년이라는 짧으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길기도 한 그 시간이 이 큰 집에는 참으로도 긴 시간이였는지 애정이라고는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한기가 서려있는 대문을 열 때의 소리마저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깊은 밤 수풀을 헤쳐 뒷문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세훈은 서두르지 않으려고 했다고 했다. 천천히 상황을 살펴본 후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발을 들여 자신의 과오를 묶여진 끈이 풀리듯 풀어내려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만만치 않다고 했던가. 세훈이 돌아온 세계는 아주 많이 변화되어 있었다고 했다. 다시 재게된 찬수아저씨의 사과밭과 다시 우애가 깊어진 친우가 된 찬수아저씨와 하우스아저씨, 이미 이 세상에 눈을 감은 주책맞은 어른들, 다른 지역으로 뜨고 없는 어른들과 친우들, 밝게 웃으며 어른들의 일을 돕고 있는 찬열, 그리고 잊혀진 자신. 세훈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잊혀진 자신이 다시 활기차진 이 마을에 나타나는 것은 죄가 아닐까, 하고. 이제야 평화를 찾았다.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던 찬열이, 더 이상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찬열이 너무나도 맑게 웃고 있었다. 그래서 다가갈 수가 없다. 이제야 몇 년 만에 얼굴에 꽃을 피어낸 찬열에게 어두운 과거를 뜻하는 자신이 다가가면 다시 그 꽃을 빼앗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서 저 홀로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나고, 3월이 지나고, 4월이 지나고, 5월이 지나고, 초여름이 시작되는 이듬해까지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자신의 신기하고도 묘한 힘을 발휘해 잔치를 열고, 벗을 만들며, 그렇게. 찬열의 꽃을 훔쳐보고만 있었다고 했다.
"난 이제 돌아갈거야."
"……."
"내 아버지가 계시는 제주도로. 이제 됐어. 몇개월동안 찬열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으니까 이제 됐어. 그리곤 이제 더 이상 이 곳으로 오지 않을거야. 아버지를 설득해 어머니의 영혼이 담겨있는 이 집도 영영 팔아버릴거야. 찬열이가 더 이상 우리 집을 바라보며, 그 좆같은 과거를 떠올릴 수도 없게."
"……."
"그리고 너한테 고맙다. 찬열이가 너 덕분에 요즘 더 많이 웃는 것 같았거든."
"……."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 난 더 이상 해줄 얘기도 없고, 너에게 듣고 싶은 얘기도 없어."
"……."
"단 한 가지 명심해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나 만났다는 거 찬열이한테 얘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또 기분 안 좋아질거야."
나는 입에 무엇이라도 물리어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세훈이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친절하게 열어진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초점을 잃고 돌아가는 발걸음의 우주에서 차마 그 앞에서 내색하지 못했던 토기가 밀려올 것만 같았다. 천진난만하게 웃음지었던 나를 찌르고 싶었다.
꿈을 꾸었다. 눈을 뜬 곳에서 나는 달리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닌 토끼였다. 뒤를 돌아본 곳에는 개 한마리가 나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나는 발짓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런 개를 피하려 몸을 숨겼다. 숨이 턱 끝까지 찬 느낌이였다. 내가 숨은 바위 앞까지 온 개 한마리의 뒤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찬열이였다. 찬열이의 손에는 긴 총이 들려있었다. 여유롭게 걸어오던 찬열이의 걸음이 멈췄다. 찬열이는 총을 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찬열이를 눈치 채지 못한 세훈이는 내 앞에서 숨어있어, 하며 웃었다. 탕-! 하는 총소리가 들리자 개가 피를 흘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놀란 눈을 하며 옆으로 쓰러진 개를 바라보았다. 개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눈을 떴다. 왜 갑자기 개가 세훈으로 보였던건지는 알 수 없었다.
동네가 시끄러웠다.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져있는 머리를 깔끔하게 묶었다. 뺀질하게 주머니에 손을 꽂곤 길을 걸었다. 이 조그마한 동네에 시끄러운 일이 있다면 뭐가 이렇게 시끄럽다고. 심드렁한 눈빛으로 주위를 바라보다 경찰차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좋지 않은 눈을 이용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이마를 찌그러트려 자세히 보려고 해도 눈이라는 작자는 도와주질 않았다. 나는 다급한 발걸음을 옴기다, 이내 뜀박질을 하여 그들이 있는 곳에 끼어들려고 애를 썼다. 찬수아저씨가 울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너무나도 커서 마치 굴에 갇힌 짐승이 울음 짖는 소리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길바닥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내 발바닥을 굳이 옴기려 했다. 찬수아저씨가 무엇에 의해 이토록 울음을 짖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였다. 근데 알 수가 없다. 가고 싶은데, 가고 싶지가 않다. 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에 의해 찬수아저씨가 이토록 울음을 짖는지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되면 후회할 것만 같다. 지금이라도 당장 찬수아저씨와 동네 사람들을 모르는 척 한체로 짐을 싸들고 이 둥지를 떠나고 싶었다. 어째서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지는 나도 잘 알 수가 없다. 이 감정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기가 어렵다.
"찬열아……."
나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길바닥에 뉘여져 있는 익숙한 남성의 자태는 찬열이가 맞았다. 좋지 않는 눈으로 인해, 이마를 찌그러트려 몇 번을 다시 보고 또 보아도 내가 아는 찬열이가 맞았다. 틀리지가 않았다. 나는 어지러운 머리를 바로 잡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자신의 아들을 껴안은 체 울부 짖는 짐승의 울음을 듣고만 있던 경찰이 입을 뗐다. 시골이라 CCTV도 없고, 범인이 남긴 지문이나 흔적도 없고, 흉기도 주위에서 발견된 게 없어서 잡는 게 좀 힘이들 것 같네요. 라고 말하는 경찰의 말투에서는 범인 못 잡겠네. 단념한 듯한 말투가 담겨있는 것이 고스라이 느껴졌다. 짐승을 보던 하우스아저씨가 다급하게 경찰의 입을 막았다. 눈치있게 행동하라는 뜻과 같았다. 짐승은 다짜고짜 경찰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우리 찬열이 죽인 범인 찾아내! 찾아내라고! 우리 세금은 달달이 꼬박 꼬박 받아 쳐 먹는 새끼가 뭐? 찾기가 힘들어? 울며불며 소리치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기만 했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내 자신이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에다, 뇌를 굴리지도 못하는 병신인 줄 알았다. 찬수야, 그만해라. 하우스아저씨가 다급하게 경찰의 멱살을 쥐고 놓아줄 생각 조차도 하지 못하는 찬수아저씨의 어깨와 팔을 잡았다. 그러나 짐승은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경찰, 말고는 다른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만 같았다. 자신만의 우주와 세계에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아저씨, 그만하세요. 나를 아껴주시던 분이였다. 친딸처럼 예뻐해주고, 부모님을 떠나 홀로 이 집에 둥지를 튼 것을 안타깝게 여겨주셨다. 찬수아저씨의 팔을 세게 쥐었다. 아저씨, 그만하세요. 제발……. 울음이 섞인 내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진아. 내 찬열이가 죽었다. 내 아들, 찬열이가 죽었어. 근데, 어떻게……내가 진정을 할 수 있겠냐. 찬열이 죽인 그 새끼! 그 놈의 새끼! 그 새끼 얼굴만 한 번이라도 본다면 좋으련만……왜 그랬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만 볼 수만 있다면. 어려서부터 이상한 아이로 취급 받던 내 아들을 왜…… 도대체 왜……. 무슨 한이있다고……."
나는 찬수아저씨가 얼굴에 눈물을 적시며 나의 옷을 잡고 늘어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눈이 따갑다. 쉴새없이 흘렸던 눈물 때문에 머리도 띵했다. 멍한 눈빛으로 둘러본 우주 속에는 어젯밤 선악과를 건내었던 뱀 하나가 있었다. 세훈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이 정신을 차렸다.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 아직도 있을려나? 벌써 간 건 아니겠지? 있어야만 하는데. 제발…….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뜀박질을 했다. 뛰다 헛발질을 해 다리가 휘청거려 넘어져 온 무릎이 다 까진다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토록 찬열이의 행복을 바라던 사람이였다. 이 사실을 전해야만 한다. 마지막 발걸음 만은 찬열이와 같은 땅에 서볼 수 있도록만은 해주고 싶었다.
굳게 닫혀져 있는 문을 활짝 열었다. 다급한 발걸음을 옴기느라 연못에 빠진 내 옷가지가 찝찝한 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드디어 어젯밤 뱀을 보았던 곳이 보였다. 이제야 드디어 보였다. 이 문 만을 열고 들어가면,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선악과를 건네었던 간악한 뱀은 사탄이라고 했었나. 피에 젖은 칼을 쥐고 있는 뱀이 보인다. 나는 녀석이 건네는 선악과를 얼마나 먹었던 것일까. 토기가 밀려온다. 어젯밤, 저 새끼가 내게 건네었던 선악과를 먹었던 내 귀를 찢어내리고 싶다.
"하나만 묻자."
"……."
"나한테 찬열이 얘기를 해준 이유가 뭐야."
"내가 왜 여기에 왔을거라고 생각해?"
삼백안이 참 차갑다.
"내가 왜 여기서 몇 달 동안 죽은 사람처럼 지냈을 거라고 생각해?"
저 좆같은 새끼가 웃고 있다니. 세훈의 이빨이 빠득거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새끼의 온 몸에 칼을 쑤셔버리고 싶지만 일단은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세훈은 지루한 눈빛으로 찬열을 바라봤다. 저 새끼는 몇달이 지나도 여전했다. 하루도 다른 날과 다른 날이 없었다.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였다. 세훈은 뻐근거리는 뒷목을 만지며 하품을 했다. 점점 이 짓거리도 질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때였다. 한 계집이 나타났다. 찬열과 같은 나이라고 소개했다. 밝고, 싹싹해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 모두도 그런 계집에게 쉽게 정을 주는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세훈은 그런 계집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봤자, 찬열이 저 새끼는 한 없이 똑같을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재미있어졌다. 살인자인 주제에 계집을 맘에 품는 찬열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세훈은 나날이 갈수록 웃음을 짓는 날들이 늘어났다. 언제 저 새끼의 몸에 칼을 찌를까. 틈을 보기도 했다. 기특하게도 계집은 눈치도 빨랐다. 세훈의 집을 가리키는 손짓을 본 찬열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본 세훈은 웃음이 터져 참을 수가 없었다. 세훈은 흐름이 재미있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덤으로 계집을 이용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신비하고도 묘한 힘을 발휘했다.
"난 오세훈, 넌?"
이름이 뭐냐니까? 자신이 짜증난다는 듯 되묻는 말에 계집이 다급하게 대답을 해오는 것이 보였다.
"예쁘네."
세훈은 입에 발린 말도 참으로도 잘하는 새끼였다. 어떻게 할까. 세훈이 창고를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단순했다. 정말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였다. 어디서 왔어? 나?…서울에서 왔어. 아아, 왜? 어? 글쓸려고 왔는데. 정작 글은 못 쓰고 아저씨들 일 도와 주고 있어. 여기 마을 사람들 다 착하더라. 계집이 긴장을 풀고 짚더미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넌 처음부터 이 곳에서 산거야? 세훈이 걷기만 하던 걸음을 멈추고는 계집을 바라봤다. 세훈이 말했다. 나? 응. 너.
밀려오는 토기를 참은 체 걸어가는 계집이 보였다. 세훈은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기대되는 일은 계집 다음의 일이였다.
찬열이 그 새끼는 여전했다. 자신을 보고 놀라는 기색 하나도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에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새끼는 자신이 거짓말쟁이로 몰렸던 그 길에서 칼을 맞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언제든 내가 널 죽일거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했니? 목 끝까지 차오르는 질문이었다. 그런 모습에 더 열이 받기는 했다. 그래서 10번 찌를 거 20번을 찌른 것도 있다. 더 이상 몸을 움직이지도 않는 그 새끼에게 잘난 말도 해줬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알잖아. 찬열아. 니가 나한테 빼앗아간 거에 비하면."
제 자신 앞에 놓여진 시체 한 덩이도, 이 시체와 제 자신이 엮였던 모든 기억들을 여기, 이 곳. 시궁창과 다를 바 없는 곳에 버리고 제 아비가 있는 제주도로 떠나면 그만이다.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세훈은 시체의 아비 찬수가 시체를 끌어안고 울음 짖는 소리, 그런 찬수를 말리는 주위 사람들과 계집, 몇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얼굴로 똑같은 말을 내뱉는 경찰, 하나하나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제 눈에 담았다. 세훈은 끝이 오는 것을 예감했다. 그러나 계집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것은 예감하지 못했던 일이였다. 자신과 달리 불순하지 않은 의미를 담은 체 자신의 다리와 온 몸에 상처가 있는 것도 모른 체 달려온 계집의 모습은 꽤나 의외였다.
"하나만 묻자."
무엇을? 세훈이 속으로 물었다.
"나한테 찬열이 얘기를 해준 이유가 뭐야."
계집은 참으로도 눈치가 빨랐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거라고 생각해?"
"내가 왜 여기서 몇달동안 죽은 사람처럼 지냈을 거라고 생각해?"
삼백안이 참 차갑다.
"답은 아주 간단해. 나 혼자만 알고 있기 아쉬워서야."
경악을 했다. 이제서야 내가 잘못 걸렸다는 걸 눈치챘다. 지금 당장이라도 짐을 싸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이 마을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불순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도 모른체 저 새끼의 친절에 속았던 내가 너무나도 병신같았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지? 여기 오세훈이 있다고 소리를 질러도 그 누군가가 내 말을 믿어주기는 할까?
"넌 그냥 자연스럽게 여길 빠져나가서 이 마을을 떠나면 돼."
"이 마을에 있는 그 누군가도 니가 날 봤고, 알고있다는 걸 믿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오히려 찬열이 그 새끼와 같은 취급을 당하겠지."
아쉽긴하다. 그 꼴을 못 보고가서. 먹이사슬 꼭대기에 차지하고 있는 짐승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손은 공포와 불안에 떨리느라 가만히 있을 생각을 하지 못했고, 머리끝 부터 가슴까지가 심장이라고 서로 주장을 하는듯 뛰고 있었다.
"넌 그저 재수없는 일에 휩싸였을 뿐이야."
그렇게 합리화시키면 될거야. 그럼 곧 네 마음도 편해지겠지. 오세훈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였다. 나는 그저 그의 말대로 따르면 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나는 뱀 같이 교활한 새끼가 내다버린 칼을 들었다. 이 칼에는 짐승의 핏덩이의 흔적이 남겨져 있겠지. 뱀은 자신을 노리는 사냥의 눈빛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태만했다. 그렇겠지. 한낯 계집이 무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래도...저 뱀과도 같은 새끼에게 짐승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상처 하나만이라도 낼 수 있더라면. 나는 더 이상 망설일 일 조차도 없었다. 어차피 이 우주에 존재하는 인간은 너와 나 둘 뿐. 그 누구가 목청을 낼 수 있겠는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히려 내 팔에 그여진 상처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 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텅 비어진 우주에 존재하는 것은 허무함, 그 단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광대처럼 웃음만이 나왔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로 정했다. 더 이상 여기에 머물 명분이 없다는 것이 겨우 내 자신이 해낸 변명이였다. 수화기로 들려오는 부모님의 격앙된 목소리에 이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희망으로 둘러싸여졌던 나의 결정은 더 이상 빛나는 꽃이 아니였고, 후회로 둘러싸여져 저물은 꽃 조차도 되지 못해 그저 온갖 이물질을 입에 머뭄고만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아쉬운 눈빛을 했다. 나도 아쉬운 눈빛으로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속은 그들과는 다른 불순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꽤나 애를 썼다. 이렇게 안 주셔도 되는데...바리바리 싸주신 음식들을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음에도 결국에는 양 손에 쥐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속은 이 마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담아 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잘 가. 다음에 한 번 들리고. 끝내 네, 당연히 그래야죠.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는 발을 들이고 싶지 않은 곳이였다. 사실 아까부터 찾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찬수아저씨는 내가 부모님의 차를 탔을 때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마을 사람들이 요즘 제 정신이 아니라 그래. 위로했지만 나는 무어라 입을 열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망치는 것 같구나. 그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버지의 눈빛은 매서웠다. 그래서 눈을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낮으로 인해 흘러나오는 햇빛이 새어들어오는 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비겁하고 속물적인 인물이 맞겠지.
나는 결국 창에 머리를 박으며 울었다. 당황한 부모님이 차를 멈춰세우곤 나를 저지시키는 데도 창에 머리를 박았다. 어머니는 나를 우악스럽게 잡아 이끌었고,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토악질을 내뱉었다. 이토록 내 자신이 추악한 인물인 줄은 몰랐다. 점점 잃어가는 정신 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의 죄는 무엇으로 승화할 수 있을까.
꿈을 꾸었다. 추측하건대, 나는 이 세계의 이방인이며, 이 곳은 누군가의 과거인 것 같았다. 그 증거로는 내 앞에 고등학교 시절의 찬열과 세훈이 존재했고, 찬열의 손에는 피 맺힌 칼이 들려있었다.
"고맙다 찬열아. 이번에도 또 열내줘서."
"내가 또 착한 사람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됐잖아."
"멍청한 새끼."
"비밀로 해줄게. 칼만 들고 도망가라."
아무 기척없이 눈이 띄였다. 멍한 정신으로 앉아있는 나를 본 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렸고,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셨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 오빠와 동생은 충격을 먹은 얼굴로 나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부모님도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정신병원에 나를 입원시켰을 뿐이다. 차라리 이게 더 나은 일이겠지. 나는 의식 없는 수중 속에서 하염없이 아가미만 벌렸다.
한 번도 그 마을의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알게 된 그 마을의 이름은 주목나무마을이였다. 참으로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한 1년 정도 질질 끌며 써왔던 글입니다.
세훈의 독백과 마지막 꿈에 대한 내용이 매치가 되지 않을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 것은 후에 나올 찬열의 과거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위선자인 세훈의 여김없는 진실이 드러날 것 입니다.
사실 고쳐야할 부분들이 여지없이 많은 글이지만, 그래도 왠지 빨리 올리고 싶다는 마음에 이렇게 급하게 찾아와 글을 올립니다. 그럼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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