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하나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부모님이 내 살아생전 본적도 없는 눈물을 흘리시며 나를 두 팔로 껴안으셨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저는 죄인이에요…동생을 죽게 내버려둔 죄인……. 나를 안고 엉엉 우시는 부모님의 품이 꽤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눈이 내리는 밖과 달리 따스한 부모님의 품이 이질적이게 느껴지면서도, 안정감을 느끼는 내 자신에게서 역겨운 시체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차라리 저 창문 너머 밖, 자신의 고기를 덮고있는 가죽 하나에 의지해 쓸쓸하게 눈을 맞으며 걷고 있는 개가 되는 게 나으리라고 생각했다.
1.
"어쩔 수 없는 일이였지.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너를 내가 어떻게 욕을 하냐."
"오빠."
"내가 말했잖아.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고. 자칫하면 둘 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였어. 그렇다고 네 판단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둘 다 잃을 뻔 했던 내 여동생 둘 중 하나가 살아남기만 했다는 것만 나는 생각할련다."
"오빠. 난 죄인이야."
"그런 말 하지마."
"오빠 나는 내 뒤에서 여주가 죽어가는 것을 듣고만 있었어. 범인이 무기로 내 여주를 내리치는 소리, 살려달라며 발버둥 치는 소리, 여주의 숨이 꺼져가던 소리, 범인이 내 여주를 죽이고 유유히 집을 나가던 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목숨 하나 지키겠다고 눈 한 번 깜짝 안 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던 년이야, 내가."
"……."
"오빠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될거야. 이게, 바로, 내가…선택한 방법이야. 누가 뭐라해도, 부모님이 뭐라해도, 오빠가 뭐라해도, 친구들이 뭐라해도, 어느 그 누군가가 몇년이 지나 내게 이제 네가 행복해질 차례야. 라고 해도 내 의지는 굽혀지지 않아."
"그게 여주가 바라는 바일 것 같아? 막말로 말하자면, 여주까지 밟고 일어선 인생 여주 몫까지 니가 담아서 남 부럽지 않게 살아야될 거 아냐? 난 인정 못해. 그게 여주에 대한 예의라고? 좆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욕을 안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뭐? 제일 불쌍하게 살아? 웃기는 소리 작작하고 정신이나 차려 병신같은 기지배야. 니가 지금 하는 말 난 못들은 걸로 한다. 여주 인생까지 담아서 니 인생 여주한테 부끄럽지 않게 살아. 불쌍하게니 뭐니 이상한 소리 하지말고."
오빠는 화가난 얼굴을 하고는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돌아본 창문으로 여전히 화가 가라앉혀지지가 않았다는 듯 씩씩, 거리며 발걸음을 급히 옴기는 오빠의 모습이 보였다.
2.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정처없이 떠도는 생을 삶을 가진 사람처럼 버스에 몸뚱아리를 싣고는 밖만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3.
"왜 그랬냐고요?"
그 날밤, 나의 동생을 흉기로 내려쳐 죽인 범인이 말했다. 분명히, 진짜…. 진짜로. 내 안에서 이 단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조차도 없는 깊은 분노가 피어오르는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지? 왜? 난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지? 당장이라도 형사님 앞에 놓인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으로라도 놈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데 왜 나는 못하는 거지? 왜……?
"아, 그러고보니 너."
검은 모자를 푹 눌러써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놈의 눈이 나를 향한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너 임마, 누굴 말하는 거야? 쟤요, 쟤. 놈의 검지 손가락이 나를 향했다. 주위의 모든 형사들과 가족들의 눈이 나를 향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너 그 때 깨어있었지?"
온 몸이 벌벌 떨린다. 라는 긴 숙어를 20살이 된 지금에서야 확실하게 이해할 수가 있었다.
"지 죽일까봐 지 동생 죽이는 거 모른척한 거 맞냐고 묻잖아. 야, 따지고보면 너도 나랑 다를 바 없다? 너도 니 동생 뒤지는 데에 도움을 보탰다, 이 말이야. 나랑 똑같은 범죄자인 년이 어디서 고고한 척이야? 존나 재수없게 씨발년이."
"이 씨발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좆같은 새끼야!"
놈을 취조하던 형사가 열이 받은, 붉으락한 얼굴로 놈의 대가리를 때렸다. 나의 오빠도 거기에 합세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던 열을 참고있던 오빠가 놈의 볼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또 내리치고, 볼이 부족하다면 배를 내리치고, 또 내리치고 자신의 주먹이 헐어칠 때까지 내리치던 오빠의 동작이 서서히 멈춰졌다. 주위의 형사들이 쉬쉬하며 놈의 위에 앉아있던 오빠의 두 팔을 잡으며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덤으로 나의 오빠의 주먹을 맞고만 있던 놈의 몸도.
"죄송합니다. 이 새끼가 원래 이런 새끼라."
형사가 굳어있던 나를 보며 놈의 머리를 억지로 땅에 박듯 눌렀다.
"오늘 수사는 여기까지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가족분들도 이만 돌아가시고, 오늘 일은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따라와, 이 새끼야!"
형사가 놈의 목덜미를 잡으며 끌었다. 멍으로 얼룩덜룩 해진 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은 모자로 가려진 놈의 눈도 나를 향한다는 것을 느낌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놈의 입꼬리가 지나치게 미소를 지었다. 기괴했다. 놈이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살인자.
아아……. 나는 그제서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왜 그렇게 놈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때리지도 못하고, 욕 한마디도 뱉어보지 못하였는지를. 나는 저 놈과 똑같은 살인자였던거야.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3.
글러먹은 건 나다. 추악한 것도 나다.
4.
이상적인 세계를 꿈꿨다. 나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 처럼 하늘을 날아다녔고, 꽃이 핀 들판을 바라보며 내 이름 석자 밑에 새겨진 살인자라는 각인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그 이상적인 세계에는 나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내 죽은 여동생 여주였다. 여주는 나처럼 날지도 못했고, 환하게 웃지를 못했다. 항상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매섭게 바라볼 줄만 알았다. 나는 그런 여주에게 말했다. 여주야 너도 나처럼 환하게 웃어봐, 이렇게. 여주의 매서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처음으로 똑바로 마주한 여주의 눈빛은 매서움 만이 아닌 분노와 미움도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런 여주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움 마음만이 들었을 뿐이였다. 우리 여주는 어쩌다 그런 눈빛을 가지게 되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뿐이였다. 여주의 입술이 달싹였다. 나는 그 달싹이는 입술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눈빛을 반짝였다. 어서 내게 네 진실을 말해줘. 그런 내게 여주가 말했다. 살인자. 균열이 깨졌다.
나는 그 후 더 이상 영적인 존재가 아니었고,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사람도 아니었다. 현실의 나만 존재했다. 날아다닐 수 있는 날개조차도 없었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입꼬리조차도 없었으며 오로지 매서운 눈빛으로 날 우러러보고만 있었던 여주와도 같이, 환하게 웃으며 날아다니는 여주만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였다.
5.
나는 분명했다. 살인자 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인 척, 오만 불쌍한 척은 다 하고 있는 추악한 시체가 분명했다. 그런 내게 악취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6.
"살이 더 빠졌네."
친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요즘 어떻게 지내냐며 물어왔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 혼자 이 세상에 둥둥 떠있고, 어울리지 못하는 느낌이다.
7.
칼은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나는, 오로지 나 혼자만을 생각했으면 했다. 완전한 시체가 된 후의 부모님의 심정과 흘리게 될 눈물과 오빠와 친구들과 내가 그 동안 해왔던 모든 노력들, 대학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오로지 나 혼자만을 생각했으면 했다. 맞다. 이기적은 사람은 내가 맞고, 다른 사람의 감정 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내가 맞다.
8.
죽는다는 것은 꽤나 어렵지 않고, 산다는 것은 꽤나 어렵다는 것이 내 정의다. 나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날개를 달고 있었고, 죽었다.
9.
내 방관죄는 씻기지도 않고, 나는 씻기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내 죽음으로 여주의 죽음을 위로할 뿐이며, 내 마음과 영을 위로하기 위해 죽음을 위하는 것일 뿐이다. 후자가 나의 이기라면, 전자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정의한다. 나는 칼로 내 몸을 수십차례 찌르고 죽었으며 더 이상 삶에 바라는 것은 없다. 만약 한 가지 있다면, 내 여동생 여주를 죽인 살인자에게 끊임없는 죄책감과 빨간줄이 그인 그의 인생이 더 이상은 꽃이 피지 못하도록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그가 범죄자인 것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 단 한 가지 바램이 있는데. 여주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였으면 한다. 믿었던 자신의 언니가 자신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방광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이라던가, 눈물이라는, 부정적인 단어 조차도 떠올리지도 못하게 나를 기억하지 못하였으면 한다. 내 바램은 단 한 가지, 이 것뿐이며 나는 내 동생을 위로하며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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