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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식 쟁이."



승연이 비웃으며 검지를 까닥였다.



"너그러운 내가 못생기고 배고픈 네놈에게 하사하지."

"뭡니까."

"잔말 말고 오거라."



승연이 제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낼 듯 만지작거렸다.



"눈을 감거라."



답지 않게 주원은 고분고분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이내, 다시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뭡니까."



승연에 저에게 입을 맞춰왔기 때문이었다.



"선물."



주원이 작게 웃었다.



"이러면,"



주원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뒷일은 알아서 해달라는 뜻입니까."

"그건 아니다."



어차피 주원은 승연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원래 그런 놈이었다.

무시하고 점차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진짜 안 돼. 네놈 집이잖아. 여기서 하면, 지금 비오는 네 마당에서 먼지 나도록 밟을거야."



물론 저놈은 멍석말이를 한다고 해도 개의치 않을 인간이었다.

하기사 원래 미친놈이긴 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안 된다.

승연은 단호했다.

그의 눈을 말 없이 바라보던 주원이 이내 작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별안간 승연이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들릴 듯 말 듯 작게 웅얼거렸다.



"...몸 말고, 그냥 입으로만 하면..."



궐과는 달리 밖에 지키는 사람 없이 둘뿐이었다.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기엔 조금은 섭했다.



"그게 아니면 껴안기라도,"



주원이 승연의 입술을 삼켰다.

서로의 호흡이 섞였다.

더운 숨도 얽혔다.

잠깐 입이 떨어지자 승연은 떨 듯이 숨을 내쉬었다.


주원은 다시 입을 겹치면서 승연의 등을 감싸 천천히 눕혔다.

섶 안으로 손을 넣고 얇은 적삼을 쓸어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매끈한 감촉이 나긋했다.


주원은 승연을 옆으로 눕히고 그의 섶에 이마를 맞댔다. 

숨을 들이마시자 엷은 향이 났다. 

옆으로 누우니 벌어진 섶 사이로 승연의 적삼이 드러났다.


주원은 눈이 풀린 채로 승연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가 허리매듭을 잡고 풀었다.

그 순간 승연은 눈을 번쩍 떴다.



"뭐하는 거냐? 입으로만 해달라고 말했잖아."

"압니다. 입으로만."



주원은 승연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승연도 말 없이 눈만 깜박이며 주원을 보았다.

눈동자에 서로의 얼굴이 담긴 순간이었다.

불현듯 승연의 낯이 창백해지며 표정이 바뀌었다.



"미친 놈아! 그곳을 입으로 해달라는 게 아니라고...!"

"예?"



주원은 승연의 샅과 낯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여기가 아니면 어디를 입으로 해달라는 겁니까."

"입! 입술이라고! 다리 사이...거기가 아니라!"



승연은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짚었다.

대가리에 음탕한 생각만 가득한 놈.

저딴 머리로 어찌 장원이 된 건지 의뭉스러운 놈.

그래놓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저만 보니 승연은 눈을 감고 한숨만 쉴 뿐이었다.



"이렇게 저질인 주제에 어찌 문과시험을 본 게냐. 글을 읽다가도 이상한 생각만 했던 거 아냐?"

"그땐 혼자였으니 그런 생각도 안 했습니다."



말을 말자.

승연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무식하게 몸으로 밀어붙일 줄만 아는 놈이 무과는 안 보고."



투덜대던 승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의문이었다.

주원은 과거에서 문과시험을 본 사내치고 활은 물론이며 싸움 실력도 월등히 좋았다.

당장 조금 전 이곳에 올 때만 해도 곰 같던 산적을 엎어치기 한 놈이었다. 

골똘히 생각하던 와중에 주원이 말을 얹었다.



"본래 무과 시험을 준비하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었다.



"길바닥 거지들에게서 제 정보를 뜯어냈으니 아는 줄 알았는데. 혹 모르셨습니까?"



승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배울만한 자를 알아보던 중 그를 알게된 것 뿐이었다.

모든 과거를 알 필요가 없었고, 미처 모르기도 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무과를 보려던 놈이 왜 문과 시험을 본 것이냐."



주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움직이는 게 귀찮을 거 같아서. 그리고 요즘 대세는 문과입니다."



예상보다 어처구니없는 답이었다.



"응... 그래... 너 잘났다."



할 말이 없어진 승연은 주원을 등지고 허리매듭을 다시 묶었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비는 그쳤으려나.

승연은 잠시 귀를 기울였다.

딱히 빗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했다.



"문 좀 열어보거라. 비가 그쳤는지 보고 싶다."



주원은 귀찮았지만 제 반려의 하명에 묵묵히 따랐다.

끼익, 사랑채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쳤습니다."



애초에 소낙비처럼 드세게 올만한 비도 아니긴 했다.

적당히 축축해진 마당을 보며 주원이 물었다.



"궐로 돌아가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내 집이 더 넓거든."



틀린 말도 아니라서 주원은 입을 닫았다.


겨울이 성큼 다가와서 그런지 하늘은 금세 어두워질 준비를 했다.

점심을 먹고 비가 그친 후에 저잣거리로 나왔을 뿐인데 새벽처럼 푸릇한 풍경이었다.

곧 어두워질 느낌이었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분주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바짝 장사를 할 셈인 듯했다. 


항상 오던 곳이었지만 밝고 볕이 좋을 때 산보를 하다보니 평소와는 느낌이 달랐다.



"목화솜을 넣어 따뜻한 *포단(蒲團)이 있습니다요! *상투잡지 마시고 지금 득(得)하시오!"

"자, 자! 비단이 곧 *망고하니 어서들 가져가는 게 좋을거요!"


  * 포단(蒲團): 잘 때 몸을 덮기 위하여 피륙 같은 것으로 만든 침구.

  * 상투잡다: 값이 가장 비쌀 때 사다.

  * 망고하다: 마지막이 되어 끝판에 이르다.



시끌시끌한 상인들이 내놓은 물품을 구경하다보니 승연의 발걸음이 조금씩 늦춰졌다.



"빨리 와, 승연아."



꼴에 두 살 많다고.

주원은 밖에 나오자 아까처럼 승연을 이름으로 불렀다.


승연은 아무렇지 않게 감히 제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이 짜증났지만, 그래도 시전 한복판에서 대감이나 저하라고 불리는 것보단 나았다.

누가 봐도 스무살이 넘지 않은 사내가 그런 대감 소리를 듣는다면 왕족인 게 바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왕족인 게 알려지면 괜히 제 머리만 아프고 귀찮을 뿐이다.

승연은 별수 없이 앞서 있는 주원에게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이름을 좀 작게 부르면 안 되나."

"응, 알았어. 승연아."

"자꾸 그러면 떡쇠라고 부른다?"



승연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던 주원은 떡쇠라고 부르든 말든이었다.



"응. 우리 승연이 마음대로 해."

"그래, 떡쇠야."

"응. 승연아."



말도 안 통하고 재수도 없는 새끼.

공부만 잘하면 다인가.

저를 시강(侍講)하면 다인가.

짜증은 나는데 그러기엔 너무 쪼잔한 이유였다.

잔뜩 언짢은 낯으로 승연은 고개를 휙 돌렸다.


그 순간 반질반질한 게 눈에 들어왔다.

승연은 홀린 듯 구경하러 갔다.

주원은 재빨리 승연을 쫓아갔다.


비단으로 만든 비단잉어 목화솜 인형이었다.

크기도 큰 편이라 침수들 때 안고 자면 부드럽고 기분 좋을 것 같았다.



"아이고! 도련님!"



상인이 재빨리 튀어 나왔다.

인형은 비단으로 만들어서 값이 꽤 나갔다.

비싼 옷을 입은 승연이 관심을 보이자 상인은 눈을 빛냈다.



"이 비단잉어 인형은 다 팔리고 이거 딱 하나 남았습니다요!"



승연은 만져볼까 하다가 손가락으로 잉어 인형을 콕 찔러봤다.

귀여운데 촉감도 좋았다.

승연은 고민했다.

팔짱을 끼고 가만히 지켜보던 주원이 뒤돌아서며 걸어갔다.

몇 걸음 나아가던 주원은 승연을 휙 돌아보았다.



"승연이는 여기서 살아. 주원이는 갈거야."



저게 미쳤나.

기가 막힌 승연이 주원을 쳐다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주원은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승연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빨리 사서 쫓아가면 그만이었다.

얼른 값을 치른 승연이 잉어 인형을 품에 안았다.


비단으로 만든 비단잉어 인형.

마음에 쏙 들었다.

승연은 잉어 인형을 꽉 안고 얼굴을 부볐다.

폭신폭신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승연아."



비단잉어 인형을 만지작거리던 승연이 입을 비죽였다.



"왜 떡쇠야."



주원은 별안간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저거 사줘, 승연아."



이 새끼가 내 이름도 뺏더니 돈까지 축낼 생각이구나.

근데 그 와중에 사달라는 건 서책이었다.

승연은 헛숨을 쉬며 확 쏘아 붙였다.



"떡쇠 너 사줄 건 없어."



그러고선 주원을 휙 지나갔다.



"어...!"



그리고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빗물을 머금은 흙에서 질퍽한 소리가 났다.

주원이 얼른 달려가 승연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십니까?"



승연은 울 것처럼 표정이 울멍울멍했다.

잉어 인형을 꽉 쥐고 있었다.



"내 비단잉어... 오늘 안고 자려고 했는데..."



저 대신 죽부인처럼 안고 잘 생각으로 산 인형이었다는 걸 알자 주원은 진흙을 잔뜩 뒤집어 쓴 잉어가 썩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연못에 살던 물고기였으니 아주 잘 어울렸다.

주원은 승연을 슥 봤다.

보아하니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내가 호- 해줄게. 승연아 얼른 가자."



승연은 주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뒤도 안 돌아보고선 주원을 휙 지나가 걸었다.


어느덧 궐 안에 들어온 승연은 뒤를 돌아봤다.



"저하, 천천히 걸으십시오."



입궐하자 주원은 전처럼 승연에게 존칭했다.

승연은 조용히 웃음을 삼켰다.

이젠 자신이 역전할 수 있었다.

마침 그의 눈에 우르르 지나가는 나인들이 보였다.



"멈춰라."



화들짝 놀란 나인들이 승연에게 얼른 다가왔다.

허리를 숙인 여인들 중에서 맨 앞의 나인이 예를 갖춰 입을 열었다.



"하명하시옵소서, 저하."

"고개를 들거라."



예상치 못한 승연의 명에 나인이 놀라며 망설였다.

그러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낯을 들었다.



"이 자의 이름을 아느냐?"

"예?"



예상치 못한 물음에 나인은 어찌 반응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권... 문학이옵니다."

"그건 직책이지 않느냐. 나는 이름을 아는지 물었다."



송구하옵니다, 라고 말한 나인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무슨 답을 원하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망설이던 나인이 다시 답했다.



"유수... 나리입니다."

"그것은 호(號)다. 지금 나는 본명을 묻는 것이다."



일개 나인인 자신은 당연히 알 리 없었다.

망했구나.

장난기가 좀 있긴 했지만 온화하던 대군이었는데, 오늘따라 너무 당혹스러웠다. 

어쩌지, 어쩌지, 눈만 이리저리 굴리던 나인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송...구하옵니다. 소인이..."

"떡쇠다."

"예?"



너무 뜬금없어서 나인이 고개를 들었다가 황급히 다시 숙였다.



"권가(家) 떡쇠이다. 잘 기억해두거라."

"예..."



승연은 자랑스럽단 듯이 웃었다.

그러고선 주원의 어깨를 팡팡치며 나인들을 휙 지나쳤다.



"떡쇠야 가자."



뒤에 있던 나인들이 승연과 주원을 흘깃흘깃 보았다.

아무 일도 아니긴 했는데, 너무 뜬금없고 뭐지 싶었다.



"...떡쇠? 떡쇠라고?"

"뭔... 소리야, 이게?"

"권떡쇠?"



나인들은 저들끼리 들리지 않게 수군거리며 멀어져가는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갖신 두 짝이 저벅저벅 땅을 밟았다.

하나는 고급스러운 놋갖신, 다른 하나는 사대부의 평범한 흑혜였다.

놋갖신은 걸음걸이가 묘하게 경쾌했지만 흑혜는 여느 때처럼 느리고 정적이었다.

물론 놋갖신이 좀 더 빨랐다.


주원은 승연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의 흑혜가 저벅이며 땅을 밟았다.



"봤냐, 주원아? 네놈은 이제 궐에서 떡쇠라고 불릴 것이다."



승연은 왠지 이긴 기분이었다.



"뭐 어떻습니까. 떡쇠가 부끄러운 이름도 아닌데. 마음껏 부르십시오."



다시 진 기분이었다.

제 이름도 아닌데 수긍하는 것도 어이없었다.



"아, 지금이 *유시(酉時)이므로 수라를 드시고 의대를 정제하십시오. *술시(戌時)에 시강(侍講)하겠습니다."


  * 유시(酉時): 17~19시

  * 술시(戌時): 19~21시



완전히... 진 기분이었다.

승연은 힘 없이 터덜터덜 처소로 돌아갔다.


석(夕)수라를 먹고 술시(戌時)가 되기 직전까지 처소에서 뒹굴거리던 승연은 발 소리가 들리자 얼른 경상 위에 서책을 올렸다.

승연은 옷깃을 대충 털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저하, 권 문학입니다."

"들라."



한참 누워서 쉴 시각에 시강이라니 너무 비참했다.

일부러 기침이라도 해서 아픈 척이라도 해볼까 고민되었다.



"몸이 좀... 안 좋은데..."



주원은 말 없이 시경(詩經)의 책장을 넘겼다.

여느 때처럼 벼루의 먹을 갈고, 얇은 붓에 먹을 입혔다.



"*일각(一刻) 전에 윤 의원이 처소에서 나오길래 물어봤습니다. 저하의 예후(睿候)가 어떠하시냐고." 


  * 일각(一刻): 한 시간의 4분의 1. 약 15분.



승연은 일말의 희망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오롯이 느꼈다.



"석(夕)수라도 평소보다 잘 드셨고, 맥도 좋았다 들었습니다."



승연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한 *시진(時辰)만 버티자.

*석강(夕講)이 끝나면 바로 누울 것이다.

승연은 붓을 잡아 쥐었다.


  * 시진(時辰): 약 두 시간.

  * 석강(夕講): 저녁에 글을 강론하며 공부하는 것.



"이제 진강(進講)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책을 편 승연과 주원은 조용히 글을 읽어 내려갔다.



"有駜有駜(유필유필)하니 駜彼乘黃(필피승황)이로다.

夙夜在公(숙야재공)하니 在公明明(재공명명)로다 振振鷺(진진로)여.

鷺于下(노우하)로다,  鼓咽咽(고인인)이어늘.

醉言舞(취언무)하니 于胥樂兮(우서낙혜)로다."



주원의 목소리에 승연은 해의(解義)했다.



"저 건장한 누런 말 네 필이 기름지고 억세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조정에서는 부지런히 일할 때, 백로가 떼를 지어 날아와 앉는다.

북소리는 둥둥 울리고 취하여 춤추니 모두들 즐거워라."



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떡쇠야. 나 잘했지?"



승연이 뿌듯하게 웃었다.



"경어를 쓰십시오."



주원의 검은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알았어, 떡쇠야."



그의 눈이 점점 서늘해졌다.



"저하. 아무리 친하다지만 소신은 예조의 시강원 소속입니다. 시강을 하는 동안은 경어를 써주십시오."



더 반말을 하면 입을 찢어버릴 것 같았다.

승연은 보이지 않게 주원을 째릿 쳐다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둘은 계속 글을 읽었다.

승연은 눈그늘이 점점 짙어졌다.

허리가 뻐근하고 피곤했다.


한 시진(時辰)은 생각보다 길었다.

승연의 갈색 눈동자에 졸음이 그득히 찼다.



'더럽게 오래 하네.' 



주원 앞에서는 차마 못 할 말이었다.

승연은 좀이 쑤셨지만 억지로 버티고 앉아 있었다.



"陟彼景山(척피경산)하니 松栢丸丸(송백환환)이어늘 是斷是遷(시단시천)하야 方斲是虔(방촉시건)하니

 松桷有梴(송각유천)하며 旅楹有閑(여영유한)하니 寢成孔安(침성공안)이로다."



이미 일흔 번 넘게 하품이 나왔지만 승연은 침침해진 눈으로 책장의 글자를 보았다.



"...저 경산에 오르니 쭉 뻗은 굵은 소나무와 잣나무를 깎고 다듬어, 소나무 서까래를 길게 하여 늘어선 기둥을 크게 하니 정침을 편안하게 이루로다. " 

"시경(詩經) 공부가 끝났습니다."



피곤한 낯으로 승연은 고개를 들었다.

주원이 서책을 덮었다.



"오늘은 이만 하겠습니다."



오늘도 공부로부터 생존한 승연은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승연은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하며 하명했다.



"지밀 나인과 침방 나인 들거라."



승연은 한시라도 빨리 눕고 싶었다.

주원은 복습도 안 하고 바로 누울 생각부터 하는 승연을 한심하게 바라봤다.

내일은 곱절로 시강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저하, 지밀 나인과 침방 나인 들겠습니다."

"들어 오거라."



나인들이 옷과 이불을 가져오자, 승연은 문득 주원을 흘깃 보았다.

고단함이 가득했던 낯이 오묘하게 웃음을 띠었다.



"침의로 갈아입을 것이니 떡쇠는 나가 있거라."



갑자기 떡쇠라는 말이 나오자 나인들은 일순간 손을 흠칫 멈췄다.



"저놈의 이름이 뭔지 아느냐?"

"예?"

"떡쇠다, 떡쇠. "



아까 다른 나인들에게도 그랬지만 승연은 이번에도 주원의 이름을 떡쇠라고 세뇌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권가(家) 떡쇠라는 걸."

"떡치고 싶어서 떡쇠라고,"

"주, 주, 주, 주원이다! 얘 이름은 주원이야."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나인들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예, 저하. 소인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승연은 머리를 감싸쥐며 얼른 나가라고 손짓했다.


나인들이 나가자 정적이 감돌았다.

승연은 침소에 풀썩 누웠다.

하얀 침의가 침소에 구겨지듯 펼쳐졌다.

주원 때문에 너무 피로해졌다.

승연은 마른 세수를 하며 탄식했다.


주원은 승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조금 전에 읽었던 구절을 떠올렸다.



  - 有駜有駜(유필유필)하니 駜彼乘黃(필피승황)이로다.

  - 저 건장한 누런 말 네 필이 기름지고 억세구나. 



여전히 괴로워하는 승연을 바라보며 주원이 입을 열었다.



"내일 *기마궁술(騎馬弓術) 배우러 나갑시다." 

"뭐? 추운데 무슨 말타기야."


  * 기마궁술(騎馬弓術): 말을 타며 활을 쏘는 무술.



승연은 엎드려 누운 채로 고개를 저었다.



"싫어. 안 해."

"더 추워지기 전에 배우는 게 좋습니다."



열 받은 승연은 주원의 다리에 베개를 던졌다.



"안 해, 안 한다고!" 

"그럼 글을 배우시겠습니까. 내일은 서경(書經)을 처음으로 읽으니 *두 시진(時辰)을 할 예정입니다."


  * 두 시진(時辰): 4시간.



승연은 발버둥 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가자."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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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와서 암호닉 쓰는데 마음이ㅠㅠㅠ

저는 약간 회복이 되었어요, 다음에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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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세상에 작가님!! 잘 지내셨나요??
1년 전
글쓴이
네❤❤ 오랜만이죠ㅠㅠ 일 하면서 번아웃이 왔더니 글을 못 썼어요ㅠㅁㅠ 지금은 병원 다니면서 쉬고 있는데 많이 나아졌어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1년 전
독자2
작가님이 멋진 글을 써주시는 것도 여기에 잊지 않고 와주시는 것도 독자로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항상 행복하세요 작가님!! 아프지 마시고💕💕
1년 전
글쓴이
으에엥ㅠㅁㅠ 정말정말 감동이에요❤❤❤ 독자님도 항상 건강하셔요~!
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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