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일 초가 싫었다
이 분 남짓 주어진 시간에 나는 여덟 번의 계절을 보내며 네 앞에서 울었고 부은 눈으로 잠들기 전에는 끝없는 잠영을 반복했다 밝아올 아침이 두려웠다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레슨을 가는 길엔 내 무릎이 팔십 팔 개의 건반이었다 매 레슨 때마다 제출이 늦은 삼 부 형식의 피아노 곡은 감각 죽은 음형들과 지루하기 짝이 없는 화성진행들 더 열심히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연습실 피아노에 손을 올려 습관적으로 하농을 칠 때면 반복되는 스케일에 정신분열이 올 것 같다가도 애써 연습한 새 터치법이 망가질까 두려웠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힘이 들어가 아려오는 손목을 십수 번 내려쳤다 그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라도 힘을 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미스 터치가 잦은 부분은 열 번을 연달아 칠 수 있을 때까지 쳤다 한 번만 더 하면 돼 압박감에 아홉 번째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될 때면 보면대에 를 박았다 머리라 할 가치가 없었다 수월하게 돌아가지 않는 손가락에 음 사이 간격이 일정하지 않을 때면 없는 손톱으로 손등을 쥐어뜯었다 그렇게 토막토막 연습을 하다가 곡 한 번을 끝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날이면 그냥 뭘 하고 있나 싶었다 날고 기는 애들 사이에서 특출난 거 하나 없어 애매한 재능 하나 붙잡고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두 시간이 지나 연습실 한 켠에 있는 간이책상에 오선지를 펴 음표를 적어넣을 때는 서러웠다 스물네 마디 백지의 오선지와 이 분 삼십 초의 빠른 악장 소나타가 순간마다 나를 옭아매 좀먹는 것 같았다 별다를 거 없는 진부한 곡을 마무리하고 어영부영 집으로 가는 길엔 매번 울음이 터졌다 순간마다 재능의 부재를 체감하는 게 멍이 사라질 날 없는 제 손목보다 아팠다 열심히 하지 못함은 노력해도 안 될 게 뻔하다며 포기하는 게 수순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있었다 쉬고 싶었다 열심히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없는 시기의 이유들이었다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변명조차 입밖으로 꺼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결국 재능의 부재 또한 버티지 못하고 피아노 뚜껑을 닫은 것에 대한 업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