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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연준이와 열여덟 범규는 같은 반일 것 같다 반 애들은 왜 열아홉이나 된 형이 2학년인 본인들과 같은 반인지 관심도 없을 것 같다 바로 옆에 앉은 범규만 빼고 범규 늘 수업 시간에 수업 대신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늘 맨 뒷자리 창문 바로 옆의 자리에 앉아 있을 듯 연준이는 운동부라 가끔 수업 들어올 때마다 제일 끝자리인 범규 옆자리에 앉아서 엎드려 잠을 잘 것 같다 안 잘 때는 범규가 책 읽는 걸 턱 괴고 쳐다 보면서 재미있어? 하고 물을 듯 반에 자주 오지 않는 만큼 연준이는 말 섞을 대상이 범규밖에 없었고 범규도 수업 못 듣는 연준이한테 대신 전달해야 할 거라든가 그런 것들 잘 얘기해 주고 그럭저럭 친해질 것 같다
범규는 늘 수업 들을 때는 엎드려서 잠만 자는 그 형이, 학교에서 말 섞는 사람이라고는 야구부 부원들이랑 자신뿐인 그 형이, 수업을 듣지 않을 때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에서 야구공을 던지는 등 번호 1번 투수 그 형이, 공이 잘 들어갈 땐 웃으면서 야구 모자를 벗는 그 형이 자꾸 눈길이 갈 것 같다 어느 순간 수업 시간에 책을 읽는 대신 창 밖으로 보이는 연준이를 보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범규는 하나 더 깨달았을 것 같다 아 내가 저 형 좋아하는구나
그걸 깨달은 후로는 범규 수업 시간에 책을 읽다가도 창문 밖으로 운동장 구경하면서 눈으로 연준이만 찾을 것 같다 야구 룰도 하나 모르는 범규가 학교 야구부를 종일 보고 있는 이유는 늘 연준이 하나일 듯 연준이가 컨디션이 좋은지 연습 경기 중 삼진 아웃을 시키고 웃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범규랑 눈이 마주칠 것 같다 연준이는 범규랑 눈 마주치고 범규한테 손으로 브이자 만들어서 흔들 듯 그걸 본 범규 귀가 새빨개질 것 같다 범규는 속으로 멀어서 다행이다 귀가 안 보여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할 듯
범규 도서부 활동하는 날 학교 혼자 남아서 책 정리하고 있을 것 같다 창가 책상에 널부러진 책 정리해서 가져가려고 할 때쯤 창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할 듯 비가 들어올까 창문을 닫는데 창밖으로 연준이가 공을 던지는 모습이 보일 것 같다 범규 창문 닫다가 말고 연준이를 지켜 볼 것 같다 여름날의 연준이가 좋아서 범규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것들 모두 정리하고 문 단속하려고 창문 문고리 거는데 밖은 방금 전보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을 듯 속으로 우산 가지고 오길 잘했다 생각하는 찰나 연준이가 방금 그 자리에서 아직도 혼자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 같다 공을 받아 줄 사람도 없어서 공도 없이 던지는 폼만 하면서
연준이 비 오는 것도 개의치 않고 혼자 연습하는데 갑자기 자기 머리 위로 우산이 씌워질 듯 연준이 휘두르던 팔 멈추고 고개 돌릴 땐 거기에 범규가 있을 것 같다 감기 걸려요 형 하는 목소리에 그제야 연준이랑 범규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서 쉴 듯 반에서 둘만 얘기한 적은 있어도 아무도 없을 때 둘만 있던 적은 드물어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범규가 먼저 입 열 것 같다 형은 왜 2학년이에요? 범규 자기가 질문하고도 괜히 질문했나 생각할 듯
연준이는 태연하게 대답할 것 같다 어깨 부상 당했었다고 범규 그거 듣고 입 꾹 다물고 아무 말 안 하는데 연준이가 먼저 웃으면서 풀어 줄 것 같다 이젠 괜찮아 형이 할 줄 아는 건 야구밖에 없는데 그거 못하면 억울하잖아 이 악 물고 복귀했지 그 말 가만히 듣던 범규가 형이 왜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형은 다 할 수 있어요 그 말 들은 연준이 그저 웃으면서 고맙다고 할 것 같다 이제 가자는 연준이 말에 범규 우산 들고 벌떡 일어날 듯 그럼 연준이 고개 젖혀지게 웃으면서 동아리실에 우산 있어 할 듯 그거 듣고 또 범규 귀가 새빨개질 것 같다
그럼 형 동아리실까지만 데려다 줘 그 말에 범규 바로 연준이랑 우산 하나에 몸 딱 붙어서 갈 듯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도 범규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갈 것 같다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느껴서 범규가 연준이 동아리실에 데려다 준 후에 연준이가 조심히 가 범규야 라고 하면 범규 가다가 발걸음 멈추고 몸 돌려서 동아리실 들어가는 연준이 부를 것 같다 형! 그 목소리에 연준이가 뒤돌아 볼 때면 범규가 그렇게 외칠 것 같다 근데 형은 야구 할 때 제일 행복해 보여요 하고 그 얘기 듣던 연준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우산 들고 총총 걸어가는 범규 뒷모습만 볼 것 같다
범규가 집에 도착했을 땐 연준이에게 카톡이 하나 와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 지역 대회 있어 응원하러 올래? 범규 그 카톡 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을 것 같다 네 형 보러 갈래요 그 답장을 보던 연준이도 행복하게 웃을 것 같다 야구할 때처럼
다음 날도 범규는 수업 들으면서 창 밖으로 연습 중인 연준이 보고 있었을 듯 덥지도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깐 수업에 집중하는 사이 운동장에서 연준아! 하면서 소리 지르는 게 들릴 것 같다 놀란 범규 그대로 고개 돌려서 다시 창 밖을 봤을 땐 연준이가 부상당했다던 어깨 꽉 부여잡으면서 운동장에 쓰러져 있는 광경일 듯
범규 수업 중인 것도 잊고 교실에서 뛰쳐 나와서 운동장까지 달려갈 것 같다 숨이 차올라서 죽을 것 같은데 멈추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서 범규가 뛰어서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엔 야구할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이던 연준이가 울면서 어깨 붙잡고 살려달라고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때 범규는 시간이 멈춘 사람처럼 구급차가 와서 연준이를 데려갈 때까지 멍하니 운동장만 보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