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되었던 바이츠만이 시오니스트들과 서있는 모습(가운데), 왼쪽에서 두 번째에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보인다
1933년, 나치당이 정권을 잡고 히틀러는 총리에 올랐다. 그 이후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유대인들은 나치로부터 온갖 시련과 고난을 겪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약 600만의 유대인들이 학살되기에 이른다. 그 뒤에 1948년 5월 14일, 중동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새로 건국되었고, 선포되었다. 그 이전과 같은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로 다짐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새로 건국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인 대통령으로 누가 좋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한창 이스라엘 건국의 주역들이었던 시오니스트들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초대 대통령의 적임자로 아주 뜻밖의 인물이 선출되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 출신으로 원래는 독일에서 살았지만, 미국으로 이주했었던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국회는 세계적인 과학자이면서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했다. 아인슈타인이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면 천재 물리학자였던 과학자가 이스라엘 최고의 정치지도자가 되는 셈이었다. 즉,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안철수(아인슈타인이 더 뛰어나기는 하겠지만)가 얼마전 정치권에서 새로운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킨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미 학계에서 전설적인 존재가 된 상태였다. 그는 일반 상대성이론, 특수상대성이론, 광양자설 등과 같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이론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특히 상대성이론은 철학, 천문학, 물리학,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광양자설은 양자역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하는 논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이후인 1922년에는 노벨상을 그의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국의 원자폭탄 계획에 아인슈타인도 일정부분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역시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이라는 세계의 두뇌였던 유대인들의 국가인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의 자리를 공식적으로 제안받았던 것이다.
사실, 그는 학계에서만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1900년대 초부터 지적 자유, 인종차별 등 정치 현안에 관해 수많은 공개 편지를 쓰고 언론에 기고를 했으며, 대중연설을 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시온주의 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미국 정부에 대한 원자폭탄 요청도 그와 같은 맥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정중하게 이를 사양했다. "대통령을 할 만한 인물은 많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을 가르칠 학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대통령을 맡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라면서 거절을 했던 것이다. 그는 이후 평화주의자로 전쟁에 반대했고, 이로 인해 다른 과학자들과 반목하기도 했다.
결국,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자리에는 시오니즘운동의 지도적 정치가, 화학자로 제1차 세계대전 하의 영국에서 폭약제조에 쓰이는 아세톤의 대량생산법을 개발하였던, 또 영국 정계 사람들과도 친교를 맺어 '밸푸어선언'을 발표하게 하는 데 성공하였던 하임 바이츠만이 1949년 이스라엘 정부의 정식발족과 더불어 초대 대통령에 추대되면서 일단락이 되었다.
그러나, 1952년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이던 하임 바이츠만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국회는 다시 아인슈타인에게 2대 대통령직을 맡아달라고 제의를 했다. 입헌군주제의 왕과 같은 의전 대통령이었으나, 그는 이번에도 거절했다. "나이가 너무 많다. 나는 인간을 다룰 만한 타고난 능력도 경험도 없다. 정치는 그냥 나의 친구일 뿐, 정치는 물리학보다 더 어렵다."
평생 정치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인기를 모았던 아인슈타인도 정작 현실 정치세계에 들어가는 것은 자제했다. 세기의 천재 물리학자였던 그가 물리학보다 어렵다고 한 것이 현실정치였던 것이다. 이렇게 아인슈타인은 어쩌면 자신의 그 화려한 경력에서 천재 물리학자라는 수식어에 추가로 이스라엘 초대 대통령, 또는 2대 대통령을 추가할 기회를 얻었음에도 이를 마다했다.
아인슈타인이 과학계에 여러 공식들과 이론들을 발표함으로써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 물리학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지금과 같이 명예로운 천재로 불리우는 이유는, 어쩌면 그가 이렇게 권력을 마다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평화를 위해 헌신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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