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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BHll조회 709l
이 글은 4년 전 (2019/11/13) 게시물이에요


학종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 인스티즈




(퍼옴)


대입 선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공성은 무엇일까요? 저는 ‘기회 균등’의 원칙이라고 봅니다. 수능이나 내신은 학생들에게 대체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선택과목이 존재하므로 과목조합이 동일한(same)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동등한(equal) 과목 선택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기회 균등의 원칙에 맞습니다. 하지만 학종의 여타 반영요소들에서 기회가 균등할까요? 교내 경시대회를 한 개 준비하는 학생과 부모와 학원의 도움으로 다섯 개 준비하는 학생의 기회가 과연 균등한가요? 특목고·자사고의 학생 1인당 창의적 체험활동 예산이 일반고의 10배에 달하는데 이들의 기회가 균등한가요? 논문 지도에 부모(특히 부모가 교수인 경우)와 전문가를 동원할 수 있는 학생과 논문을 써볼 엄두조차 내보지 못하는 학생의 기회가 균등한가요?...


2000년 전후부터 한국에는 ‘성적순 선발’이 편협하고 후진적이라는 담론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한마디로 한국의 지식인들이 얼마나 미국 편향적인지를 보여주는 현상이지요. ‘미국화가 곧 선진화’라고 믿던 사람들이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 학생들의 잠재력까지 통찰하게 되고 대입경쟁이 완화되며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해질 거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미국 대학들이 자신의 제도를 자화자찬하는 자료들을 그대로 수입해 옵니다. 이들은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공공성을 어떻게 해쳐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자료들, 예를 들어 명문대 입학사정관제의 타락상을 파헤쳐 퓰리처상을 받은 다니엘 골든의 "The Price of Admission"(번역서 "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이라든가 교육사회학의 명저인 제롬 카라벨의 "The Chosen"(번역서 "누가 선발되는가") 같은 자료는 하나같이 외면합니다.


미국은 예외적인 나라입니다.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은 성적만으로 선발하거든요. 독일도, 캐나다도, 스웨덴도, 핀란드도, 호주도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성적만 반영합니다. 영국이 예외적으로 자기소개서(에세이)도 반영하지만 그 영향력은 크지 않습니다. 이 나라들은 대입시험성적이든 고교내신성적이든 모두 절대평가이지만(절대평가로 점수 또는 등급 부여), 어쨌든 지원자들의 성적만 활용해서 합격 여부를 가릅니다. 독일과 호주는 내신성적과 입시성적을 합산 반영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입시성적만 반영, 캐나다는 내신성적만 반영, 스웨덴은 내신성적과 입시성적 가운데 하나만 반영(학생이 선택), 핀란드는 내신성적과 두가지 대입시험(정부 주관 시험과 대학별 본고사)을 반영합니다. 핀란드는 일본과 더불어 대학 자율로 본고사를 시행하 는 특이한 경우인데, 미국처럼 불투명한 정성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논술·면접이 혼합된 형태의 전공별 본고사를 공개적으로 치르고 성적순으로 선발합니다.


이처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성적만 반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야 ‘기회 균등’의 원칙이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비교과영역 비중이 높아질수록 성장환경과 부모·사교육의 지원이 중요해지고 ‘기회 균등’이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은 선진국 평균과 많이 다릅니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국민의료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인 것처럼,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제로 정성평가를 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입학사정관제는 우리가 본받을 선진적 제도라기보다 오히려 미국 사회의 부실한 공공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죠.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은 고등학교에서 입시(대입시험) 준비를 열심히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인문계(academic) 고등학교가 대학 진학을 위한 준비학교에서 유래했거든요. 영국의 고등학교에서는 마지막 2년간 대입시험(A레벨) 준비를 열심히 해줍니다.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도 대입시험(바칼로레아) 준비를 열심히 해주고, 독일의 고등학교에서도 대입시험(아비투어) 준비를 해줍니다. 우리나라 논술고사는 과목이 불분명하고 공교육으로 준비가 불가능한 반면, 유럽의 대입시험은 논술형 문항이지만 과목별 시험이고 고교 교육과정으로 준비됩니다. 고교에서 책읽고 토론하고 탐구하고 글쓰는 일이 곧 입시교육입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과목 문항은 유명하지요. “경험을 통해 진리를 확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욕망을 해방시켜야 하는가,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가?”... 이런 문항에 대비하는 것이 입시준비이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입시교육’이라는 말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없습니다. 


고교 교육이 대학입시로부터 자유로워야 정상이라는 관념은 미국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 교육계는 이것을 금과옥조 삼아 수능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심지어 수능을 폐지하거나(전교조) 자격고사화(진보교육감들) 하자고 주장합니다. 물론 수능처럼 객관식 문제풀이를 계속하는 것은 바람직한 미래지향적 교육의 모습이 아니지요. 그런데 그렇다면 유럽 국가들처럼 수능을 논술형으로 바꾸자고 해야 논리적이지 않습니까? 물론 수능을 논술형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사교육 우려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얘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수능을 없애거나 자격고사화하자는 주장은 애초에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겁니다.


- 교육평론가 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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