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자신의 집에 불을지른 철거반원 4명을 죽인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박흥숙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수련하는것을 게을리하지않았음
당시 온가족이 흩어져살았는데 박흥숙은 무등산 판자촌에 그럴듯한 집을 만들고 가족들을 불러모음
이집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불러 다같이 함께살게됨. 어머니는 무속인들 심부름해주고 번돈은 은행에 안맡기고 저렇게 집안쪽에 꼭꼭 숨겨뒀음
그런 어려운 생활을 이겨내기위해 박흥숙은 사법고시에 도전함
박흥숙의 일기에서도 어머니에게 집을 지어드린것을 기쁘게 생각하고있음
그러다가 무등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게됨. 때문에 미관을해치는 무허가 판자촌을 철거해야한다는 지침이 내려와 철거반원을은 박흥숙이 사는 동네를 덮치게됨
보통 부시기만해도될일을 이날 철거반원들은 불까지 사용해서 판자촌을 태워버림. 이과정에서 박흥숙의어머니가 모아뒀던
돈들이 전부 불에타버림.
처음에는 박흥숙도 협조적이었으나 집에 불을지르는것을본 박흥숙은 흥분하였음
이후 덤벼드는 철거반원을 향해 폭력을 사용함
영화에서는 맨손으로 사람을 죽였는데 실제로는 둔기로 죽였음
그과정에서 철거반원 4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에 빠짐
박흥숙이 체포되고. 언론은 일제히 그가 운동했을 당시사진을 언급하며 이러한 특이한 기행과 흉폭함이 이번 살인의 동기라면서 철거반원들이 무허가 판자촌을 습격하여 불을질렀다는 사실은 빼고 이 모든원인을 박흥숙이란 개인에게 전부 집중시킴.
사실 이사진들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몸이허약해 매일 운동을 한것.
이사진으로 박흥숙은 살인사건당시 유명한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언론은 일제히 그의흉폭성과 결여된 윤리의식에대해 집중해서 기사를 써나갔음
결국 박흥숙은 4명의 살해혐의가 적용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박흥숙의 최후진술서
그리고 박흥숙은 사형선고를 받고 3년째되는 1980년 12월24일 눈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