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나타난 김한빈의 변화는 시간의 경계가 흐려진 그 날 이후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12시가 되어서도 늑대로 돌아가지 않는 한빈이와 더 오래,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로, 12시가 되어도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빈이를 볼 때면 그 모습이 그렇게 야속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바뀌는 걸 제가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는 건지 익숙하지 않은 시간에 늑대가 될 때면 한빈이는 어김없이 내 옆으로 다가와 낑낑대곤 했다.
바뀌어버린 한빈이에 적응을 하기 힘들었지만, 나보다도 더 적응을 어려워 하는 건 한빈이 본인이었다.
특별한 시간이 없이 무작위로 바뀌는 제 몸 때문에 활동 시간이 아예 바뀌어버린 한빈이는 점점 기운을 잃었다. 차츰 움직임이 줄어드는 것이 느껴지더니 이제는 움직이는 시간보다 잠에 들어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정도로 한빈이는 잠이 늘었다. 늘 나만 졸졸 따라다니던 김한빈이 변해버린 게 이상했다.
한빈이의 패턴이 무너짐과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듯, 그렇지만 평범하던 우리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먹을 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냉장고 문을 여는데 냉장고 안이 텅 비어있다. 언제 마트를 가고 안 간 거지…. 장을 보고 온 지도 오래 된 거 같아서 식탁 옆에 놓여있던 포스트잇을 식탁 위에 한 장 붙이고는 펜으로 그 위에다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적었다.
거실에서는 조금 전 부터 사람으로 변해있는 한빈이가 검은색 후드 티를 입은 채로 티비를 바라보고 있다.
틀어놓은 채널이 토크쇼인 듯 티비 속에서는 여러가지 이야기도 들리고, 뭐가 그렇게 즐거운 지 웃음 소리도 들리는데 한빈이는 그냥 간간히 웃기만 할 뿐 시선만 물끄러미 티비 안으로 던져두고 있다.
" 마트 갈 건데 같이 갈래? "
짐도 많을 거 같은데 좀 들어주면 좋고. 내 말에 한빈이가 응, 하고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필요한 물품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포스트잇의 반 정도를 빼곡히 채워가고 있는데, 한빈이가 어느 샌가 내 뒤로 다가와선 내 허리에 제 팔을 감으며 뒤에서 안아 온다.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웃음이 나는 것 같았다.
" 너는 뭐 필요한 거 있어? 마트 가서 사야할 거. "
내 질문에 한빈이가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감은 풀을 슬그머니 풀며 있어, 하고 대답해 온다.
" 뭔데? "
받아적기 위해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데 한빈이는 아무런 말이 없다.
뭐가 필요한데, 하고 되물으려는데 김한빈이 나를 돌려 자기와 마주보고 서도록 만들었다.
" 뭐야. "
오랜만에 마주하는 이 따뜻한 눈빛이, 한빈이의 저 표정이 좋아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갑자기 돌려 세워진 몸에 균형을 잡고 멈춰 서기도 전에 한빈이는 나를 들어 식탁 위로 날 앉혔다.
눈높이가 처음으로 얼핏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필요한 건 말 안 하고 갑자기 왜 이래. "
" 뽀뽀 해줘. "
" …뭐? "
" 뽀뽀. 그게 필요해. "
김한빈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 뭐야. 김한빈 정말….
빨리 하라는 듯한 한빈이의 재촉하는 눈빛에, 그 볼에 쪽 하고 한번 입을 데었다 뗐다.
됐지? 하고 물으니 한빈이가 아니, 하고 답했다.
" 한 번이 다야? "
" 몇 번이나 해주길 원하는데? "
" 한…. 백 번? "
뭐라는 거야, 이 늑대가….
장난 치지 마, 하곤 한빈이를 아프지 않게 툭 쳤다. 얼른 마트 갔다 와야 해. 너 언제 또 늑대가 되어버릴 지 모르잖아.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딱 붙어있던 몸을 떨어트리는 한빈이가 귀여워서 웃고 있는데, 갑자기 김한빈이 내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 온다.
짧은 뽀뽀가 아니라 조금은 길게 이어졌다 떨어지는 한빈이의 뽀뽀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자꾸만 웃음이 났다.
한빈이가 내 몸을 다시 식탁에서 내려 주면서 제 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았다.
그리고는, 정말로 아쉬움 가득 묻은 목소리로 말해온다.
아쉽다. 갔다 와서 마저 더 할까?
*
마트에 도착하고 카트를 한빈이의 손에 맡긴 채로 포스트 잇에 적힌 필요한 물품들을 분주하게 찾아 담았다.
필요한 물품을 다 구매하고 나오는 데에도 평소보다 몇 배의 속도를 낸 거 같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한빈이가 혹시라도 여기서, 예고도 없이 늑대로 돌아가 버릴까 봐.
불안한 마음을 도무지 달랠 수가 없었다.
이런 내 걱정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김한빈은 다른 사람들이 양 손에 한가득 들 만큼의 짐을 한 손에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온다.
나도 한 손에는 가벼운 짐만 든 채로 다른 한 손으로 한빈이의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마주 잡은 한빈이의 손에서 조금은 차가운 내 손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집 앞 놀이터를 지나는데 예전 일이 생각났다.
한빈아, 너 기억나? 하고 묻는 내 물음에 한빈이가 뭐? 하고 되물어 온다.
" 여기서 너 싸운 거. "
" 기억나. "
" 완전 많이 맞아놓곤 자기 멋있냐고 그런 거나 묻고…. "
내 말에 한빈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쉿, 하고 소리를 내어 온다.
뭐, 창피해? 하고 물으니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데 저 귀는 참 솔직하게도 빨개져 온다.
" 너 창피하구나. "
내 놀림에 귀가 조금 더 빨개졌다.
그만 놀려, 하고 칭얼대는 한빈이가 귀여워 웃고 있는데 갑작스레 한빈이가 잡은 손을 놓아온다.
순간 사라진 온기에 반사적으로 한빈이를 바라보는데 한빈이가 한 손으로 제 이마를 감싸고 있다. 표정이 좋지 않은게, 갑작스럽게 두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 왜 그래. 아파…? "
걱정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한빈이를 보고 묻는데 한빈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바로 옆의 골목으로 달려갔다.
한빈아!
놀란 것도 잠시, 곧바로 한빈이를 따라 골목을 향해 달렸다.
달리는 속도가 느린 내가 겨우 한빈이가 도착한 골목에 도착해 잠깐동안, 아주 잠깐동안 숨을 고르고 한빈이를 바라보았다.
김한빈은 그 새 또 늑대가 되어 있다.
여전히 통증이 느껴지는 건지 늑대인 한빈이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한빈이가 들었던 짐까지 모두 품에 안은 채로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 마자 현관에 던지듯 짐을 다 내려놓으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완전 기진 맥진, 모든 힘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운동을 해야겠어 진짜…. 힘들어 죽겠다.
뒤를 따라 들어온 한빈이가 주저 앉은 내게 다가와서 제 머리를 내게 부볐다. 미안해서 그러는 건가.
어쩌겠어, 늑대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닌 걸…. 괜찮다는 의미로 그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 숨을 고른 다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 짐을 풀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필요했던 물건들을 제 자리에 두고 돌아오는데, 여러 가지가 묶인 포장용 테이프가 도무지 뜯길 생각을 않는다.
손으로 뜯을까 싶었지만 도무지 뜯길 것 같지 않은 모습에 결국 몸을 일으켜 가위를 가져 왔다.
" 아으으, 손목 아파라…. "
조금만 움직여도 손목에 통증이 느껴져서 졀로 인상이 써진다.
가지고온 가위로 포장 테이프를 다 잘라내는데 순간적으로 팔에 힘이 빠지며 실수로 테이프가 아닌 손가락을 베였다.
아! 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손가락에서는 피가 조금 나는 게 아닌,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 대체 얼마나 베인 거지…. 으, 으…. 손가락에 따가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맞은 편에서 기운 없이 앉은 채로 눈을 감고 있던 한빈이가 순간적으로 눈을 번쩍 떴다.
피 향기를 맡은 건지 몸을 이르켜 내게로 다가온 한빈이는 피가 흐른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혈을 위해 휴지를 덧댄 채로 꾹 누르는 내 손만 바라보고 있다.
" 괜찮아. 조금 누르다가, 약 바르면 돼. "
한빈이가 사람이었다면 위에 있는 약을 좀 꺼내달라 하면 되겠지만 늑대인 한빈이가 저기 닿을 리가 없다.
한 손으로 베인 부분을 꾹 누르면서 어떻게 약을 꺼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했다.
방법을 찾기 위해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빈이가 갑작스럽게 내 상처 부위 주변을 핥아 왔다.
야아, 피 맛 나잖아!
한빈이를 막기 위해, 한빈이가 핥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혈을 하던 손으로 한빈이를 쭉 미는데 한빈이는 이번엔 주위가 아니라 내 상처 부위를 핥아 온다.
" 뭐 하는 거야, 한빈아! "
얘는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뭘 핥으려고 해.
한빈이를 향해 뭐라고 타박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한빈이가 핥는 그 순간부터, 따갑고 찌르는 듯 느껴지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졌고 조심스레 바라본 상처에는 어느새 피가 멎어 있었다.
꼭 거짓말 처럼.
눈으로 직접 보고도 신기했다.
놀란 마음에 한빈이를 바라보니 한빈이도 날 바라보고 있다.
나와 마주친 그 눈동자의 색이 변한 것 같았다. 늘 검고 어두운 색이었던 한빈이의 눈에, 조금은 붉은 색이 비춰졌다.
" 대체 넌 뭐야, 김한빈…. "
알다가도, 그렇게나 잘 안다고 생각하다가도 한빈이에 관한 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김한빈의 눈은 그 때부터 조금씩 더 붉어지기 시작했다.
붉은 빛이 비치기 시작하던 그 눈에서 이제는 적갈색의 눈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늑대 김한빈은 다음 날이 될 때 까지도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한빈이가 사람이 아닌 늑대로 지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
김한빈은, 정말로, 점점 늑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
약속 지켰어요! 금방 오겠다는 약속!
사실 9화, 그리고 오늘 10화까지 합해서 한 화가 되어야 하는데 빨리 글을 전해 드리고는 싶지만 뒷 내용이 아직 덜 써진 탓에 어제 끊어서 올려버렸네요
다들 울지 마요.. 9화 댓글에 온통 눈물바다야, 아주 (ㅠ.ㅠ)
울지마! (짝) 울지마! (짝) 내 이쁜이들 울지 마! (짝)
한 마디 덧붙이자면
9화에 나왔던, 손에 책을 들고 한빈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무심한 유리 창 속의 늑대는 준회입니다
준회 특유의 무표정으로 바라보는 걸 담고 싶었는데 딱히 이름을 밝힐 기회가 없어서, 그냥 전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썼어요.. ♡
암호닉에 관한 질문 중
개한빈에서 쓰던 암호닉은 김지원 글 '아가씨' 에서도 동일하게 쓰실 수 있습니다!
한번 제 암호닉 이쁜이는 영원히 암호닉 이쁜이! 편하실 대로 새로 신청해 주셔도 좋고, 그대로 쓰셔도 좋습니다
개한빈이 마지막에 가까워 지는 것도 같아요, 그럼 그 다음 연재는 아가씨가 될 거 같기도 한데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동시에 써볼까도 싶었는데 그래도 제 마음의 일등은 개한빈이라 우선 이걸 더 신경 써야 할 거 같더라구요 (ㅠ..ㅠ)
또 비회윈 분들도 가리지 않고 암호닉 신청 가능하니까 주저 말고, 걱정 말고 신청해 주세요♡
다른 질문들에 대한 답은 나중에, 모두 모아서 올리도록 할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앞의 9화와 함께, 짧지만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
암호닉!
(암호닉은 가능한 가장 최근의 글에서 신청 부탁드릴게요! 그래야 제가 잊지 않고 꼭 꼭 챙길 수 있을 거 같아요 ㅎ.ㅎ ♡)
초코파이님, 아델라님, 자명종님, 뿌요님, 요맘때님, 누나님, 고데기님, 몽실님, 사랑둥이님, 김빱님, 늑대한빈님, 들레님, 핫초코님, 초코님, 밍밍님, 찰리님, 한빈사랑 나라사랑님, 김한빔님, 햫님, 빈블리님, 맘비니님, 비니님, 아가야님, 콜라님, 만세님,빨강이님, 홍홍님, 시카고걸님, 바나나님, 우리비니님, bobb_y님, 바나나킥님, 밥이님, 헠헠님, 자궁암님, 메추리를개로피자님, 뿌리님, 탸당님, 샌드위치님, 현복님, 뭇님, 늑대개한비니님, 수박님, 갓빈워더님, 보끔밥님, 얍얍님, 허블님, 드라이기님, 더크님, 매력넘치는님 ♡
언젠가 제 사랑 암호닉들을 위한 특별편도 준비해 보도록 할게요!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