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中
" 진짜, 누가 강아지 아니랄까 봐…. "
내 말에 평소였으면 개 아냐, 하고 특유의 말투로 대답을 해올텐데 오늘의 한빈이는 대답이 없다.
대답 대신,
한빈이는 그 때 처럼… 내 입술을 또 핥았다.
" 내 꺼야. "
" …어? "
"다른 놈은 안 돼."
" …. "
" 다른 놈이랑 이러고 있는 거 못 봐. "
" …. "
" 좋아해. "
갑작스러운 김한빈의 고백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평소처럼 음… 하는 바보같은 소리 조차 내지 못 하고 그냥 한빈이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그냥,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한 방울씩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던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계속해서 흘렀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는 내 모습에 김한빈은 당황한 듯 손으로 하염없이 내 눈물만 닦아냈다.
" 왜 울어, 어? 왜 우는데…. "
울지 마. 어? 왜, 내가 다 미안해, 잘못 했어, 울지 마.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중얼거리는 한빈이를 보며 눈을 꼭 감았다.
이제야 알겠다.
나는, 김한빈을 좋아하는구나 ….
그리고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울면서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김지원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분명 김지원을 보면서도 심장이 쿵쿵거렸는데 지금 나를 지배하는 이 감정의 중심은 김한빈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걸.
감은 눈을 뜨자,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서 축 쳐진 눈으로 날 바라만 보고 있는 한빈이의 눈과 마주쳤다.
한빈아…. 하고 부르는데 목이 잔뜩 쉬어있는 것이 느껴진다. 별 소리 안 낸 거 같은데, 끙끙대는 거 말고는…, 하고 생각이 미치자 순간적으로 얼굴에 열이 확 달아오른다.
지금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치겠어….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얼굴 빨개졌어, 하고 말하는 한빈이에 하아,짧게 한 숨을 쉬곤말 없이 한빈이를 툭 쳐서 몸을 지탱하고섰던 팔을 무너뜨려내 옆으로 쓰러트렸다.
복잡한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지만 겨우, 겨우, 그 생각들을 밀어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나중 일은 나중 일로, 될 대로 되라지.
내 옆에 누워선, 나를 보고 돌아 누운 채로뚫어질듯 날 바라보는 김한빈의 눈을 내 손으로 가렸다.
" 왜 가려? "
" 보지 마. "
" 싫어. 볼래. "
안 돼. 내가 널 못 보겠단 말야….
얼마 남아있지 않은, 사실 거의 사라져버린 술기운을 애써 끌어모아 한빈이의 눈을 가린 채로 속삭였다.
" 오늘은 여기서 자. "
" 같이? "
" …같이. "
내 말에 김한빈이 웃었다.
목을 타고 울리는 기분 좋은 그 웃음소리와 함께나도 스르륵 눈을 감았다.
김한빈이 팔을 뻗어 내 몸을 끌어안았다.
다른 건 내일 생각하자.
잘 자.
한빈아.
개 같은 김한빈 키우기 썰 8
간밤의 잠은 참 달콤했다.
기분 좋은 향기에 묻혀서 머리 속을 어지럽히던 여러 가지 생각들도, 자꾸만 날 괴롭히던 쓸데 없는 걱정들도 없이 모처럼 아주 푹 잤다.
매일 같이 꾸던 꿈들도 안 꿀 정도로.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는 데 몸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눈이 부실 만큼 들어오는 저 햇빛이 평소였으면 잠을 깨운다고 싫어했을 테지만, 오늘은 저 햇빛의 따뜻한 느낌마저 좋았다.
몸을 반쯤 일으켜 앉았다. 언제부터 비어있었던 건지 옆자리에는 온기가 없다. 한빈이는 아침이라 늑대가 되선 제 방으로 돌아가 버린 건가….
괜히 김한빈이 누워 있던 그 자리를 손으로 한 번 쓸어보는데 그제야 느껴진다.
침대 위의 김한빈 향기. 내 방은 온통 김한빈 특유의 그 향으로 물들어 있었다.
실감이 났다. 어제의 일이 풀어진 필름처럼 주르륵 눈 앞을 스쳐지나갔고, 장면이 스쳐 지날 때마다 얼굴에 열이 서서히 올랐다.
" 미쳤어…. 나 미쳤구나. "
이제 김한빈 얼굴을 어떻게 봐!
내가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고, 김한빈의 그 눈빛이 떠올랐고, 마지막에 김한빈의 그 목소리도 떠올랐고….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또 내 얼굴은 빨개진 상태로 후끈후끈해졌다. 그래도 지금은 아침이니까, 사람이 아닌 늑대 김한빈을 마주할 테니 다행이다. 하지만 오후에는 어떡해야 하지. 씨이, 미치겠다….
손부채질로 얼굴의 열을 식히려고 해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열이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어디 숨어버리고라도 싶은 마음에 이불을 목끝까지 올려 덮는데 이불에 배인 김한빈의 향기가 또 풍겨왔다.
좋은데…. 좋아서 보고 싶고. 그런데, 못 보겠고.
정말, 지금의 감정은 너무나도 복합적이다. 몸을 가만히 둘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이불 안에서 발길질을 하는데, 작은 움직임에도 허리가 찌르는 듯 아파온다.
" 아파…. "
아픈데, 진짜 아픈데 아픈 건 둘째 치고 어제 일이 또 자꾸만 생각나는 건 뭐란 말야!
민망해 죽을 것만 같았다. 왜 자꾸 생각나, 왜, 왜! 일부러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저어 보았지만 도무지 생각이 떨어져 나가질 않는다.
그 때 갑작스럽게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빈이가 들어오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늑대 한빈이가 욕실 문을 혼자 열고 나올 리가 없지 않나…?
아니, 무엇보다도 한빈이는 늑대일 때 욕실을 안 쓰는데….
뭘까 싶어서 열리는 문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욕실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한빈이다.
언제 일어난 건지 씻고 나온 김한빈은 머리를 털다 말고 날 발견하곤 웃는다.
" 일어 났어? "
얼레…. 지금 아침인데, 김한빈이 어째서 사람이지? 지금 오전인데. 왜 늑대가 아니야?
뭐야, 싶어서 한빈이의 뒤로 보이는 시계를 확인하는데 오전은 무슨. 시계 바늘은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몸이 개운하다 했어…. 나 진짜 많이도 잤구나.
한빈이는 머리에 수건을 올린 채로 내 옆 침대로 와 앉는다. 그리고는 제 머리를 말리다 만 걸 잊은 건지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날 보고 웃는다.
잘 잤어? 하고 물으며 쓰다듬는 김한빈의 손길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안절부절.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그저 좋다는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한빈이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힐끔, 힐끔. 그러다 한빈이 머리 위에 놓인 수건을 잡았다.
" 이리 와. "
" 왜? "
" 머리 말리게. "
안 그럼 감기 걸려. 조금 더 한빈이를 내 쪽으로 당기곤 마주본 상태에서 반쯤 젖어있는 그 머리를 수건을 이용해 닦아주었다. 긴 머리인 내 머리를 말릴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까 김한빈이랑 있으면서 처음 해보는 게 되게 많구나…. 남자 머리 말리는 것도 그렇고, 늑대일 때 줄 고기를 사는 것도 그렇고, 남자 옷을 고르는 것도 그렇고.
가만히 내 손길을 받고 있는 김한빈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 기분 좋지. "
" 어? "
" 누가 이렇게 머리 만져주는 거. "
" 응. "
" 어떤 기분이야? "
" 졸린 기분. "
잠 오는 거 같아. 우리 조금 더 잘까?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인 김한빈의 말에 머리 말리던 수건을 그대로 김한빈의 머리 위에 덮었다. 으이구. 갑작스럽게 멈춘 내 손길에 왜, 하고 칭얼대는 한빈이를 보니 참 웃기기만 하다. 더 자긴. 시계 봐, 1시 넘었어. 밥 먹어야지.
침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반쯤 앉혔던 몸을 움직여 보려는데,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 통증에 나도 모르게 절로 인상이 써진다.
아파…. 이렇게 해서 오늘 하루 어떻게 움직이지.
아, 하고 짧게 나온 내 신음소리에 김한빈이 일으키려던 내 몸을 그대로 다시 앉혔다.
" 미안해. "
" 뭐가. "
" 오늘은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 줄게. "
김한빈의 말에 절로 바람빠진 웃음이 나왔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뭘 다 해줘. 내 웃음에 김한빈이 어깨를 으쓱하곤 말한다. 나도 다 할 줄 알아.
" 오늘은 공주처럼 가만히 있기만 해. "
" 공주? 공주란 말은 어디서 배웠어? "
난 저런 말 안 쓰는데.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침대 옆 책장 속에서 얇은 동화책 하나를 꺼내 내 품으로 안겨준다.
책 제목을 읽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엄지공주가 뭐야, 한빈아….
아, 귀엽다 김한빈. 귀여운 마음에 계속 웃었더니 김한빈은 혼자 진지하다.
" 왜 웃어? "
" 그냥. 엄지공주, 진짜 오랜만에 본다. "
" 재밌어. 좋은 책이야. "
진지한 그 대답에 또 웃음이 터졌다. 참 나. 진지한 한빈이에 그래 너 하고 싶은대로 해봐, 라고 했더니 밥을 해주겠다고 한다.
쌀이 뭔지도 모르잖아…. 하는 내 말에도 끝까지 자기가 하겠다며 내게 신신당부를 해온다. 방 안에 있어. 나오면 안 돼.
그리고는 방 문을 닫으며 부엌으로 나가는 저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못미덥다. 뭔가 불안한데….
한빈이가 부엌으로 나가고 방 안에 혼자 남겨진 나는 오랜만에 보는 엄지공주 책을 펼쳐보았다.
아기자기한 그림들 사이로 엄지공주의 모습이 보인다.
예전에 이 책 되게 좋아했던 거 같은데…. 무슨 내용이였더라? 기억도 가물가물.
뭐, 한빈이가 밥을 만들어 준다니까 가만히 기다릴 심산으로 책의 맨 앞 페이지를 펼쳐보았다. 항상 글씨 크기도 작고 빽빽한 전공책만 보다가 이렇게 글씨 크기도 크고, 표현도 부드러운 책을 보니까 왠지 모를 낯선 기분도 든다.
천천히 한 페이지씩 읽어 나갔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랑스러운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부부가 살고 있었어요. 그 부부는….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순간 놀라 몸을 작게 떨었다. 뭔가 와르르 떨어진 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음식을 만들다가 들릴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다음 장으로 책을 넘기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밖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분명 날 불렀을 한빈인데 부르지 않은 걸 보니 알아서 어떻게든 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쟤 진짜 뭐라도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한 마음에 앉아있는게 불편하기만 하다. 같이 요리를 해본 적은 있지만 쟤 혼자 저렇게 하게 한 적은 없어서 더 불안했다.
엄지공주를 다 읽어갈 때 쯔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데 한빈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뭔가를 들고 들어오긴 하는 거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다. 음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빈이를 올려다보니 한빈이는 멋쩍은 웃음만 짓고 있다.
" 뭐 만든 거야? "
" …밥. "
밥…?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한빈이를 보며 좀 불안하긴 하지만, 어쨌든 정성이 고마워서 한 입 숟가락으로 떠먹는데 입에 들어가자 마자 나도 모르게 인상이 팍 써진다.
쓰다. 대체 뭘 넣으면 이렇게 쓴 거지?
입에 넣은 걸 제대로 삼키지도 못한 채로 숟가락을 천천히 놓았더니 한빈이가 어색하게 웃는다.
" 아직 많이 아파? "
" 아픈 건 괜찮은데…. 방금 먹은 게 맛있냐고는 안 물어봐? "
" 표정만 봐도 어떤지 다 알 거 같은데. "
" 뭘 만든 거야, 대체…. "
내 말에 한빈이는 본인도 웃긴 듯 웃기만 한다.
혼자 맡겨놓는 게 불안하다 싶더라니. 뭐, 그래도 마음이 예쁘니 봐준다.
공주님 놀이는 이걸로 됐어. 제대로 밥 해 줄게. 아까보다는 참을만 해진 통증에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데 김한빈이 내 팔을 잡아온다.
" 나 아직 밖에 안 치웠어. "
" 괜찮아.
" 내가 치울게. "
" 아냐. 나 안 아파. 밥도 해줬는데 치우긴 내가 치워야지. "
" 안 돼. "
" 왜, 왜 또 이렇게 고집이래. "
" 아, 안 되는데…. "
억지로 한빈이의 손을 밀어내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순간 보이는 모습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허리를 부여잡은 채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세상에… 너 대체 무슨 짓을 해놓은 거야, 김한빈!
" 야, 김한빈! "
너 진짜 죽을래?
김한빈을 향해 소리를 빽 지르는데 아까 날 붙잡던 김한빈은 어느새 멀리 떨어져 도망가있다.
커튼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민 채로 날 바라보며 바보 같이 웃는 저 모습에 안 아프던 머리가 지끈.
고백이 있었던 그 다음날.
우리의 일상은 예전과 다를 게 없다.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김한빈을 잡아 한 소리 하려는데 때 마침 울리는 메세지 알람 소리에 멈춰 선 채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지원의 메세지. 무슨 일 있어? 왜 연락이 안 돼.
그제야 김지원이 떠올라 허어, 하는 의미 없는 소리를 내며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몇 일을 연락을 안 했더라. 복잡한 생각에 김지원에게 답해야 하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답을 하지 않았다. 김지원과는 참 애매한 사이였다. 아무 사이도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뭔가 애매한….
일방적으로 짝사랑 중이던 김지원과 나 사이의 애정전선은 몇 번의 데이트에서 이미 바뀌었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짝사랑이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상태라는 것.
결국 다 내 탓이었다. 날 좋아하지 않는 김지원을 먼저 좋아한 것도 나였고, 김지원의 마음을 돌려 놓은 것도 나였고,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도 나였다.
한 편으로는 김한빈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그러게, 왜 날 좋아한다고 했냔 말야….
뭐, 그래도 결국은 내 탓. 그 말에 흔들려 버린 건 나였으니까.
어떻게 해도 내가 나쁜 거구나.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괜히 울적해진다.
요리조리 잘도 피해다니던 김한빈은 내가 더 이상 쫓아가지 않고 조용해지자 그제야 내게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왜 이러고 서 있어, 하는 말과 함께 뒤에서 슬그머니 내 어깨를 감싸 안아온 김한빈은 제 턱을 내 어깨에 올린 채로 내가 바라보던 휴대폰에 시선을 돌렸다.
뭐 봐? 하고 물으며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인상을 팍.
" 연락 하지 마. "
" 어떻게 연락을 안 해. 안 할 순 없어. "
" 왜? "
" 얘랑 같은 과니까. "
" 그게 뭐 어때서. "
" 매일 볼 거잖아. 불편하게 지내긴 싫어. "
" 그래서 뭐. "
" 넌 몰라 바보야…. 사람 관계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란 말야. "
김지원에게 뭐라고 답을 해야 할까. 화면만 바라보고 제 말에 답했더니 한빈이는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일단은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만나자' 하고 친 뒤에 보내기를 누르려는데, 김한빈이 뒤에서 휴대폰을 쏙 뺏어가버린다.
뒤를 돌아 김한빈에게서 휴대폰을 뺏으려는데 내 키가 닿지 않는 다는 걸 아는 건지 팔을 위로 뻗어 휴대폰을 들곤 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안 돼. 만나지 마.
" 왜. 만나서 할 말 있어. "
" 그냥 이걸로 해. 굳이 만날 이유가 뭐야? "
" 그래야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단 말야. "
" 안 돼. 그냥 여기서 전화로 해, 그러면. "
" 왜 자꾸 못 만나게 해. "
" 너 쟤 좋아하니까. "
김한빈의 말에 순간 멈칫했다.
잡으려고 아둥바둥 거리던 손을 멈추고 한빈이를 바라보자 김한빈이 아냐? 하고 되묻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알고 있었구나….
예전에, 내가 김지원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본 김한빈이 왜 쟤만 보면 얼굴이 빨개져? 하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한빈이는 그냥, 좋아한다는 표현을 못 해서 그렇게 물어봤던 거 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 알고 있었던 거 였구나. 내가 김지원 앞에서만 이상한 반응을 하는 걸.
불만이 가득한 김한빈의 눈이 날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늘 보던 불만이 담긴 그 눈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김한빈의 눈은, 그러니까 그 눈에 담긴 건.
…질투?
까치발을 들어 겨우 김한빈의 손에서 휴대폰을 쏙 빼내곤 아까 보내다 만 메세지를 곧바로 전송했다.
만나자, 하는 글이 전송됨과 동시에 김한빈이 하, 하고 짧게 한숨을 쉬고는 쇼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서 있는 날 잡아먹을 듯 바라본다.
표정이 없는 김한빈은 참 무섭다. 그 앞에 가서 한빈이를 마주보고 섰더니, 서 있을 때면 그렇게나 높게 올려다 봐야 하는 한빈이를 내려다 보게 되었다.
" 좋아해. "
또 다시 김한빈은 내게 갑작스럽게 고백을 해왔다.
" 넌 날 안 좋아해? "
그리고 숨김 없이, 솔직하게 내게 물어온다.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김지원과 김한빈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냥, 마음을 확실히 잡기가 어려웠다.
김지원을 좋아했고, 지금도 김지원을 좋아한다. 하지만….
김한빈이 좋았다. 김지원과 있을 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설레는 마음이 컸다면, 김한빈과 있을 때에 느낀 감정은 설렘이 더해진 편안함이었다.
늘 바라봐주는 눈. 같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내 어깨에 걸어오는 팔. 느린 내 걸음을 맞춰 걸어주는 그 느낌. 눈을 뜨면 보였고, 밥을 먹을 때도 늘 함께였고, 당연하다는 듯 김한빈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김지원을 볼 때만 쿵쿵 뛰던 심장은 이제 김한빈을 볼 때에도 쿵쿵 뛰었다.
김한빈에게서는 마치 심장이 귀 바로 옆에서 뛰고 있는 듯, 쿵쿵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결국 결론은 김한빈이었다.
방법이 따로 없었다. 솔직해 지는 것 밖에는.
김한빈의 양쪽 볼을 양 손으로 감싸 고개를 위로 올려 나를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도 예고도 없이 왼쪽 눈에다 쪽, 왼쪽 볼에다 쪽, 오른 쪽 볼에다 쪽.
여기 저기 입술을 붙였다 뗐더니 김한빈은 아무 말도 못 한 채로 날 바라보고 있다.
조금 전, 잔뜩 퉁해져 있던 김한빈의 표정이 조금 풀린 것도 같다. 당황한 것도 같고.
그런 한빈이를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하곤 말했다.
" 딱 한 번만 말 할 거야. 잘 들어. "
" …뭐야. "
" 김지원이 아니라 네가 좋아. "
" …. "
" 널 좋아하는 거 같아. "
그리고는 아, 하고 짧게 숨을 쉰 뒤 말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좋아하는 거 같은게 아니라 널….
" 좋아해. "
좋아해, 하고 속삭이는 내 말에 한빈이는 아주 잠깐 아무 말도 없는 채로 날 바라보다가 그대로 제 볼을 잡고 있던 내 한 쪽 팔을 당겨 제 품에 안았다.
갑작스럽게 당겨져 김한빈의 품으로 안긴 내게 한빈이는 간지럽히듯 여기 저기 입을 맞춰온다.
이런 반응은 예상 못 한 거라 순간 당황해서 한빈이를 아프지 않게 툭툭 쳤다.
" 안 돼, 그만 해! "
간지러워. 낮이잖아…. 김한빈을 겨우 떼어놓곤 김한빈의 다리 위에 앉은 채로 마주보게 되었다.
이런 자세로, 이렇게 마주 보는 건 처음인 거 같다.
자꾸만 심장이 간지러웠다. 또 주위가 한빈이의 그 향기로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장을 콩닥대게 하는 건 김한빈의 표정이었다.
김한빈은, 정말 본 적 없던 웃음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 날 더 좋아해? "
묻는 한빈이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 널 좋아해. 더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널 좋아하는 거야. "
부끄러웠지만 진심은 진심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한빈이 쪽, 하고 입술에 뽀뽀를 하곤 떨어졌다.
예뻐 죽겠다.
김한빈의 나즈막한 속삭임에 귀까지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김한빈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또 아까처럼 날 간지럽히듯 여기 저기 제 입술을 대 온다.
아, 김한빈! 종잡을 수가 없는 이 늑대를 어떡하면 좋을까.
때 마침 울리는 휴대폰 메세지 소리에 그만, 그만 하고 한빈이를 겨우 달래곤 옆에 두었던 휴대폰을 잡아 확인했다.
당연히 김지원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다.
메세지 내용을 읽고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김한빈이 아닌 또 다른 늑대인간과 자신이 함께 있다는 것. 그리고 연락을 달라는 말과 함께 찍혀진 열 한 자리의 숫자.
♡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혹은 보내셨나요 제 이쁜이들!
쉬어가기 타임으로 불마크가 달린 7.5화를 던지듯 올려두고 갔다가 새벽 늦게 쪽지를 확인하러 왔더니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정말 놀랐어요 ♡ㅠ.ㅠ♡
열심히 쓴 거지만 여러분들 성에 차지 않을까 싶어서, 지금까지 올렸던 개한빈 글 중에서 가장 자신이 없었던 글이었는데
레전드라는 얘기도 해주시고, 제 의도처럼 외설적인 말 없이도 좋은 분위기 느껴주셔서 정말 감동받았어요
여러분은 역시 the love..♡ 제 사랑들!
이번 화는 비회원 이쁜이들도 만나 볼 수 있겠네요!!!!! 저번 화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얼마나 속상했던지, 정말..
앞부분에 짧게 7.5화의 고백 장면만 넣었으니까 내용 이해에는 별로 지장 없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저만의 생각일수도 ☆)
중간에 엄지공주에 딱히 의미는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냥 사랑 받는 공주 이야기를 넣고 싶었는데, 생각난 게 엄지공주 뿐..
저 왜 이렇게 공주를 모르죠? 동화책 다시 읽으러 가야할까봐요
사실 글씨 작고 빽빽한 전공책도 제 분노에서 우러나온 표현입니다
어쩌겠어요.. ☆
부들부들 손을 떨며 한 글자 한 글자 쳐넣은 건 안 비밀
매일 오다가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오니까 사담에 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거 같아요
댓글 달아주시고 늘 좋아해주시는 제 이쁜 독자님들! 정말 소중한데 어떻게 표현 할 방법이 없네요
특히 늘 길고 긴 댓글 달아주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해주실 때마다 감사하고 감동받아요..♡ 저는 여러분이 제게 쫑알쫑알 해주시는 게 너무 좋습니다..♡
뭐 결론은 모두 사랑한다구요
암호닉은 언제나 신청 받고 있습니다!
혹시나 제가 암호닉 신청을 실수로 빼먹어도 상처 받지 마시고 다시 한 번 적어주세요! 고의로 빼는 게 아니라는 거 다들 아시죠 ♡ㅠ.ㅠ♡
암호닉 신청은 가급적이면 가장 최근의 글에 해주시면 아마 빼먹지 않고 챙길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마지막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한빈이 자궁암으로 안 죽여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귀여우신 제 독자님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암호닉!
초코파이님, 아델라님, 자명종님, 뿌요님, 요맘때님, 누나님, 고데기님, 몽실님, 사랑둥이님, 김빱님, 늑대한빈님, 들레님, 핫초코님, 초코님, 밍밍님, 찰리님, 한빈사랑 나라사랑님, 김한빔님, 햫님, 빈블리님, 맘비니님, 비니님, 아가야님, 콜라님, 만세님,빨강이님, 홍홍님, 시카고걸님, 바나나님, 우리비니님, bpbb_y님, 바나나킥님, 밥이님, 헠헠님, 자궁암님, 메추리를개로피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