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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 전체글ll조회 1062l 4

 

 

 

 

 

 

주말 이른 오후의 주택가는 한적했다. 과일이나 생선을 싣고 지저분한 소리를 내는 오디오를 달고 골목골목을 쏘다니는 퍼런 트럭과 새까만 짧은 머리카락을 펄럭이며 세네명씩 무리지어 땡볕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과 장바구니에 과일이며 채소며 온갖 식재료들을 담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아줌마들이 이따금씩 보이기도 했다.

 

달콤한 안동 꿀사과 팝니다아─ 창틀에 턱을 괴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는 지저분한 오디오가 부르짖는 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시퍼런 트럭은 탈탈 거리며 느리게도 굴러갔다. 시퍼런 트럭 위에는 시뻘건 사과들이 징그럽게도 많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저들끼리 몸을 부닥치면서 좁은 자리를 서로 차지하겠다며 투닥거렸다. 트럭이 우뚝 솟은 나무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때가 되서야 나는 졸린 눈을 천천히 부볐다. 요즘 들어 온 몸이 썰물에 쓸려가지 못한 해파리 마냥 흐물흐물 늘어지는 것은 아마 서서히 오고 있는 봄이라는 것 때문일 거다.

 

자연은 인간과 정반대였다. 나는 겨울 내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뜨뜻한 볕에 녹이기 바쁜 반면에 나무들은 벌써부터 연한 녹색의 봉오리를 뻐끔뻐끔 내밀기 시작했다. 우리 집 맞은 편에는 시꺼먼 쇠창살같은 대문을 가진 집이 한 채 있었고 그 집 마당 안에는 무지 큰 벚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달릴 거 달린 사내새끼 주제에 갓 중학교에 들어간 소녀 마냥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감상에 젖는 건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 일이기는 했지만 함박눈처럼 바람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는 벚꽃잎은 확실히 절경이기는 했다. 굵게 뻗은 가지 위에 매달린, 아까 본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비비탄 총알 만큼이나 작은 봉오리를 뚱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나는 책상에서 엉덩이를 떼고 의자로 내려왔다. 아직 문제집을 다 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샤프를 쥐고 문제집에 시꺼먼 식을 휘갈기면서도 자꾸만 창 밖을 힐끗거렸다. 항상 이 시간 때면 집 밖으로 나오던 앞 집 그 애가 오늘은 웬일인지 보이질 않았다.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나머지 창문을 닫아버리고 커튼까지 쳐버렸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도대체 그 애가 뭐길래?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힘껏 쥐어 뜯으며 문제집으로 이마를 쳐박았다. 주말 이른 오후의 주택가는 너무나도 한적했다.

 

 

 

 

 

2

늦잠을 자버렸다. 나는 홧김에 울리지 않은 건지 내가 듣지 못한 건지 도무지 모를 알람 시계를 방 구석탱이에 내팽개쳤다. 새 둥지가 된 머리를 헝크러트리며 부리나케 화장실로 가 양치질만 대충 하고 허둥지둥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평소 교과서들을 학교 사물함에 놔두는 습관 덕에 책가방은 성가시게 챙길 필요 없이 어깨에 걸쳤다. 가벼웠다. 하지만 발걸음은 그렇지 못했다. 빗지도 못한 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투명하고 거대하고 허름한 빌라의 문을 활짝 열었다.

 

나는 빌라를 벗어나자 마자 전속력으로 뛰겠다는 계획과는 다르게 빌라 앞에 우뚝 멈춰서버렸다. 시꺼먼 쇠창살같은 대문 앞에 앉아있는 그 애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무심한 얼굴로 비눗방울을 불고있는 앞 집 그 애. 그 애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 잠시 멈칫 했지만 이내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작은 통에 구멍 뚫린 막대기를 휘휘 젓더니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빌라의 문 만큼이나 허름한 무지개 색 비눗방울들은 하늘로 날아 가려하면 터지고, 또 터지고, 터지고, 터지는 것을 반복했다. 차도 하나를 사이에 끼고 우리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이따금 비눗방울이 차도를 건너 나에게 오기도 했지만 그 속에 비친 나를 보기도 전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학교 안 가?"

 

 

너는 비눗물 속에 막대기를 휘휘 저으며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제서야 나는 지금 전속력으로 학교를 가도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조금 멍청한 소리를 내며 그 애 한테서 몸을 돌리려는데 그 애가 다시금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처음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치고는 꽤나 무례한 말투였으나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학교 때문이었을까?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그 애 한테로 몸을 돌렸다. 그 애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너, 주말 마다."

"……."

"나 훔쳐보는 애 맞지?"

 

 

그 애의 무심하고 크고 시꺼먼 눈동자가 나를 관통했다. 누군가를 훔쳐보는 것은 스토커나 하는 짓이었다. 스토커는 범죄자였다. 그 애는 내가 범죄자냐고 묻고 있었다. 아주 무심한 눈으로. 그래, 그 애를 창 밖으로 보았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범죄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 애한테서 등을 돌려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빨리 학교에 가야했다. 지각이었기 때문이다. 지각 때문이었다. 그랬다.

 

 

 

 

 

3

그 날 이후 그 애는 요즘 자주 보였다. 내가 그 애와 마주칠 때마다 그 애는 비눗방울을 불고 있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그 애한테 나이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열 일곱살 이라고 했다. 나와 동갑이었다. 왜 학교를 안 가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었다. 대답 없이 비눗방울만 하염없이 불고 있길래 그거 재밌냐고 물었다. 그 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미도 없는 그걸 왜 맨날 붙들고 있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순했다. 심심해서. 나는 그 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은 21세기였고 텔레비전도 있었고 컴퓨터도 있었고 핸드폰도 있었다. 심심함을 달래는 용도로 초등학생들이 가지고 놀만한 동물모양 통의 비눗방울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애를 추궁하지 않았다. 무표정이던 그 애의 얼굴에 먹구름이 조금 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 애와 나는 날이 갈 수록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제부턴가 그 애는 항상 내 등교 시간에 맞춰 나를 학교까지 바래다 줬다. 하교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애는 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내가 학교에서 나오면 같이 집으로 갔다. 신기하게도 그 애는 학교를 좋아하는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이유를 묻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평소 하굣길은 매우 조용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고 모레도 그럴 것이다. 집 앞에 도착하면 마땅한 인사 없이 서로 뒤돌아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생각해 보니 우리는 참 이상한 관계였다. 이상해서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조차 않는 이상한 관계였다.

 

 

"야."

 

 

그 애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교복에 달린 내 명찰을 분명히 보았을테니까. 하지만 그 애는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야. 그게 그 애가 날 부르는 호칭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마침 도착한 집에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각자의 집을 등지고 선 채 마주봤다. 너 나한테 뭐 물어볼 거 없어? 그 애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 애의 질문은 뜬금없다 못해 쌩뚱맞았다. 당황하기에 충분했다. 그 애가 말했다.

 

 

"나 네 이름 알아. 변백현."

"……."

"너는?"

 

 

아─ 내가 멍청한 감탄사를 내뱉자 그 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고는 몸을 홱 돌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려고 하는게 아닌가. 이, 이름 뭔데! 나는 당황스러움에 말까지 더듬었지만 그 애는 쇠창살 대문을 신경질적으로 쾅 닫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덜컹거리는 대문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시꺼먼 대문을 등졌다. 터덜터덜 몇 걸음을 옮겨 빌라의 문을 힘 없이 미는데.

 

 

"야!"

 

 

그 순간 다시 들리는 그 애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애는 쇠창살을 두 손으로 붙잡고는 그 사이로 얼굴을 디밀었다. 그 모습이 꼭 감옥에서 탈출하려는 죄수 같아서 터지려는 웃음을 입술을 꾹 깨물면서 참았다.

 

 

"도경수!"

"……."

"내 이름!"

 

 

그 애는 자기 할 말만 마치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도경수. 나는 멍하니 서서 그 애의 이름을 한참이나 곱씹어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선 빌라의 문을 밀었다. 도경수.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빌라 내부가 후끈후끈했다. 봄이라 그런가보다.

 

 

 

 

 

4

일요일 낮은 나른했다.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저 침대에 누워 텅 빈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있자니 침대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 느낌마저 받았다. 흘러가는 1분 1초가 몸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집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고 그만큼 짙게 흐르는 정적은 내가 살고있는 세상을 아득하게끔 만들었다. 정적에 온 몸을 감싸여 쓰잘데기 없는 공상에 깊숙히 잠겨 갈 때쯤 감겨있던 내 눈을 뜨게 한 것은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였다. 누구지? 공상의 여운에 아직 벗어나지 못한 채로 멍한 눈을 하고서 터덜터덜 침대에서 내려왔다. 내 방에서 현관까지. 그 짧은 거리를 걷는 중에도 요란스러운 초인종은 징그럽게도 울려댔다. 그 징그러운 소리가 멈춘 것은 달칵─하고 문고리가 풀리는 소리와 동시에 였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안녕."

 

 

전혀 안녕하지 않은 표정으로 안녕이라는 말을 건네는 그 애가 서있었다. 도경수가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나는 쇠몽둥이에 뒤통수를 맞은듯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가 그 크고 새카만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보는 그 애를 깨닫자 마자 나는 말을 흠씬 더듬으며 그 애한테 들어오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거실을 지나치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바보 같았던 방금의 나를 자책했다. 바보.

 

그 애는 쉽게도 내 방을 찾아 들어가더니 내 방 창문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책상 옆구리에 걸터 앉았다. 팔은 창틀에 올려둔 채로. 나는 그런 그 애의 행동에 절로 뜨끔해버렸다. 저 창문으로는 맞은 편에 위치한 그 애의 집이 보였고 그 애는 내가 주말마다 어디론가 나가는 저를 창문을 통해 보고있었다는 것을 알고있었고 그 애의 지금 자세는 그럴때의 나와 같았기 때문이다. 꿀꺽 침을 삼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가 방금 전까지 있던 침대 위로 풀썩 앉았다. 그리고 그 애는 그 후로 거의 오분동안이나 그렇게 있다가 이내 다시 바닥으로 폴짝 내려왔다. 별 생각없이 한 행동이겠거니 안심하고 있던 중 그 애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보고있었구나."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뭘 봤다고 그래! 너무나도 천연덕스러운 그 애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큰 소리를 냈지만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이고선 내 좁은 방 안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바빴다. 그렇게 둘러봐봤자 평범한 열입곱 남자애 방에 뭐 그리 특별한게 있다고 그 애는 참 열심히도 보았다. 그 애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나는 방을 구경하느라 나에게 등을 지고있는 그 애에게 물었다.

 

 

"왜 온거야?"

 

 

그 애는 내 물음에 뚫어져라 주시하던 책장을 등지고 나를 마주봤을 뿐 별다른 대답은 없었다. 그러다가 그 애는 방 구경에 이제서야 흥미가 떨어진건지 아니면 내 물음에 대답을 하기 위해선지 책상 밑으로 몸을 반쯤 숨기고 있던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그 애는 의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 애도 의자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 애를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나풀댔다. 검은 머리카락을 따라 내 시선이 움직였다. 수 없이 엮이는 연쇄작용에 머리가 어지러워 질 때쯤 그 애가 입을 열었다.

 

 

"엄마랑 싸웠어."

"왜?"

"병원 가기 싫어서."

 

 

불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게 저 딴에는 꽤 진지해보여서 도리어 나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다섯살 애도 아니고 뭐 그런 걸로 싸워. 웃으면서 덧붙였더니 그 애가 입을 꾹 다문다. 처음에는 그냥 창피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니 조금씩 불안해진다. 그 애가 빙글빙글 돌리던 의자도 어느새 멈추고는 정적에 동조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끊임없이 들리던 소리가 사라지니 시간이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은 요상한 느낌이 맴돌았다. 나는 무심코 벽에 달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침은 우렁찬 소리를 내며 9라는 숫자를 막 지나고 있었다. 똑딱똑딱. 평소처럼. 아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다.

 

9를 향해 가는 초침이 돌고 돌아 열번을 채 못 지났을 무렵 그 애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에 달린 바퀴가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꽤 큰 것이어서 똑딱거리는 초침소리를 쉽게도 덮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시계에서 그 애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헌데 그 애가 갑자기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나한테 마구잡이로 던지는 것이 아닌가. 공책이든 연필이든 지우개든. 그 애 손에 잡힐만한 것는 모조리 나에게로 날아와 내 팔과 다리와 몸통을 맞추고서는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나는 가만히 맞고만있었다. 그다지 아프지 않은 것들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갑작스러운 그 애의 행동이 퍽이나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던질만한 것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그 애는 팔을 축 늘어뜨렸다. 마치 내 몸을 맞추고서 추락하던 조그만 물건들처럼. 나를 노려보는 동그란 두 눈이 어째 표독스럽게까지 보이기도 했지만 그 애의 눈을 가득채운 것은 독기라기보다는 원망에 가까운듯 했다. 나는 그 애가 이렇게 구는 이유를 몰랐고 그래서 그냥 멍하니 그 애를 마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애의 눈에 차오르는 물기가 차면 찰수록 내가 느끼는 당황스러움도 배가 되어갔다. 도통 그 애가 입을 열지 않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내가 이유를 물으려 할 때쯤 그 애가 입을 열었다.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그 애가 말했다.

 

 

"너, 진짜 싫어."

 

 

그 애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내 방에서 뛰쳐나가 버렸다. 곧 문고리가 돌아가더니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그 파장으로 덜컹거리는 소리가 귀를 찔러왔다. 나는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 즈음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늘어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책상에는 물건들이 쌓이고 바닥은 점점 깨끗해지기 시작할 때 나는 심장이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허나 그 이유는 몰랐다. 그 애의 눈에 차있던 눈물인지, 나를 노려보며 내뱉은 독설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까 맞았던 고통이 지금에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것인지. 나는 정말로 몰랐고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정말로.

 

 

 

 

 

5

그 일이 있은 후로 어쩐 일인지 그 애가 머리카락조차 내보이질 않았다. 나와 같이 등교를 하기 위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지도 않았으며 학교가 끝난 후 집에 돌아가려고 지나친 교문 앞에도 그 애는 없었다. 고작 일주일 좀 넘게 같이 한 등하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의 부재는 내 옆자리를 꽤나 공허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 방 창문 너머로 본 그 애의 집 창문에서 비눗방울이 퐁퐁 날아다니는 걸 본 것 같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결에 무심코 본 것이라 확실하다고 하기에는 찝찝했다. 그러니 그 애가 확실하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일이 있고나서 일주일하고도 몇일 후라고 할 수 있겠다.

 

 

 

 

 

6

학교가 끝난 후 모래를 툭툭 차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두 발이 우뚝 멈췄다. 실로 오랜만에 교문 앞에 서있는 그 애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를 보자마자 반가움 때문인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서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대체 몇일만에 보는 얼굴인건지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어보려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애를 깨닫고 그냥 교문으로 뛰어갔다. 내 발걸음을 따라 하나 둘 튀어오르는 모래들이 내 교복 바지 끝단을 물들이기 시작할 때 나는 너의 앞에 도달했다. 그러고는 똑같았다. 우리는 별다른 말없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주일하고도 몇일 전처럼.

 

주위에선 간간이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선선한 바람에 흩부딪히는 나뭇잎들 소리가 들렸다. 비록 우리는 말이 없었지만 그것들 때문에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뚜벅뚜벅. 나란히 걷는 발소리도 그것에 동조했다. 낡고 허름한 빌라가 눈 앞에 보일 즈음 나는 그 애를 슬쩍 곁눈질했다. 스쳐 본 팔목이 전보다 조금 야윈 것 같기도 했다.

 

 

"야."

 

 

갑작스러운 그 애의 부름에 나는 혹시나 그 애가 내 곁눈질을 눈치챘을까 재빨리 눈을 굴렸다. 응? 나는 겨우 목소리를 다잡으며 대답했지만 그 애는 집 앞에 완전히 도달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과일이나 생선을 파는 트럭을 제외하면 차가 잘 다니지도 않는 차도 위에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서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 애는 무엇을 말하려는듯 입술을 자꾸만 달싹였지만 무슨 연유에선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답답했지만 그 애를 재촉하진 않았다. 그 애의 눈에 아주 조금씩 차오르는 눈물을 보고 내 입도 저절로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애는 한참 후에야 흔들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말할 수 있었다. 그 애가 말했다.

 

 

"나 외국 가."

"……."

"거기서 계속 살거래."

 

 

나는 그 애의 말에 이렇다 할 대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 혹여나 떠올렸더라도 굳은 입술 밖으로 대답이 나올 수 있을런지는 미지수였다. 대답의 부재로인한 정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애의 눈커풀이 파르르 떨리는 횟수도 잦아졌다. 그 애의 입술은 꾹 깨물려서 허연 빛을 띠고있었고 다부지게 쥔 주먹은 눈커풀처럼 부들부들 떨리고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도 모른척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왜 갑자기 머릿속이 백지가 되버린건지, 왜 너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지, 왜 아무 말이라도 할 수 없게 입술조차 굳어버린건지. 날 보는 너의 눈이 그 날과 닮았다. 날카로우면서 어딘가 애처로운 눈동자. 눈물 때문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정적은 생각보다 길었고, 때문에 그 애가 참지 못하고 꾹 다물려있던 입술을 열었다. 어딘가 절박하기까지한 목소리였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 외국 간다고, 거기서 평생 산다고!!!"

"……."

"다신 못 본다니까?!"

 

 

기어코 그 애의 눈에 매달려있던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진다. 심장이 쿵쾅쿵쾅 무겁게도 뛰고있었다. 심장이 뛰는 곳에 손을 올려놓지 않아도 고동을 느낄만치 무겁게. 눈물이 그 애의 뺨을타고 내려와 단단한 아스팔트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슴이 갑갑해진다.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내 몸 어딘가가 이상해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붉게 물든 그 애의 눈을 마주보며 굳은 입술을 애써 떼어냈다. 머리는 여전히 백짓장인데 입술은 어떻게 해서든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잘… 지내. 건강하고, 또……."

"……."

"…잘 가."

 

 

내 말을 들은 그 애의 표정이 어째선지 더 일그러졌다. 어깨는 더욱 심하게 들썩였고 흐느끼는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애를 달래주지 못했다. 그 애가 그러는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나는 서글프게도 우는 그 애를 눈 앞에 두고 더 갑갑해지는 가슴에 밭은 숨으로 호흡할 뿐이었다. 그 애는 이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잘게 떨리는 왜소한 어깨가 안쓰럽게까지 느껴져 천천히 손을 뻗자 그 애가 재빠르게 내 손을 쳐냈다. 버림받은 손은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에 부유하다가 이내 나의 의지대로 축 늘어졌다. 눈물로 범벅이된 그 애의 얼굴을 멍하니 마주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그 애가 나의 어깨를 있는 힘껏 밀쳤다. 그러고선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병신아!!"

 

 

그 애는 내게 짧은 욕설을 내뱉고는 차마 잡을 새도 없이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대문은 덜컹거리며 흔들렸다. 나는 그 애의 뒷모습과 덜컹거리는 대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무언가 발치에 걸리는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비눗방울이었다. 허리를 숙여 그것을 주우니 나는 참을 수 없이 요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참을 수 없이, 요상한. 심장은 여전히 무겁게 뛰고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비눗방울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도둑질을 할 요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금 고개를 들어 본 그 애의 집 마당에는 만개한 벚나무가 항상 있던 그 자리에 서있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의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가슴이 참을 수 없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7

그로부터 이틀 후 그 애는 떠났다. 그 애가 올라탄 차가 풍성한 나뭇잎들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시선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다가 흩날리는 벚꽃잎에게 닿았고 벚꽃잎이 날아온 길을 차근차근 되짚어 보고나서야 벚나무에게 정착했다. 그 애가 살고 있던 집 마당에 있는 그것, 봄이 되면 짧게 만개하다 지는, 그것. 나는 무엇에 홀린듯 방을 나섰다. 급히 신발을 신는 내게 엄마가 어딜 가는거냐고 물었지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대답을 하긴 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빌라의 문을 열면 십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에서 쇠창살 대문을 마주볼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몇 발자국 채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대문은 벌써 내 눈 앞에 있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었다. 대문은 끼긱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들이쉬고 내쉬다가 대문 안으로 발을 딛었다. 

 

아무도 없는 집 특유의 공허한 분위기가 주는 위압감은 실로 큰 것이었다. 충동적으로 여기까지 온 내 자신을 원망하며 그냥 돌아갈까 고민한 것도 잠시,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시멘트 바닥을 살살 즈려밟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향한 곳은 벚나무 아래였다. 내 방 창문을 열면 바로 보이니 만큼 벚나무는 이곳에서 제일 익숙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내 발걸음이 그곳으로 향한 근본적 이유는 그곳에 떨어져있는 노트 한 권이었다. 나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주워들었다. '일기장'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붉은색 공책에 그늘이 져 나뭇잎들이 살랑거리는 것이 그림처럼 그려졌다. 나는 이것이 누구의 것인지도, 왜 여기에 떨어져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지만 노트을 펼치는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 본다는 죄책감 또한 없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좀 더 무겁게 뛰고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냥 그것 뿐이었다. 밭게 뛰는 심장에 조금씩 떨리는 숨을 가다듬으며,

 

 

나는 일기장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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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쟁반 나오기 전에 쉬었다 가는 글. 은쟁반 쓰고나면 기력이 후달려요.. ㄷㄷ

아무튼 이거 끝으로 갈수록 왜이러지..(별) 내가 뭐 그렇지..(별)

경수의 일기장은 외전 형식으로 나올 예정입니다...만 여기 올릴지는 모르겠네요 끙_끙

 

암호닉

첸첸벌레님 반달님 산딸기님 또르르님 자두님 가디건님 새우깡님 상츄님 닝겐님 나랑자자님

정리하고 보니까 저 주제에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이 많아서 눈물 머금은 거 안비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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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엉 ㅠㅠㅠㅠ 이거 왜 이렇게 아련하고, 먹먹하고... 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상기시켜 보니까 왜 더 아련해질까요, 수채화라는 단어일 뿐인데 ㅠㅠ 경수 일기장이 너무 궁금해 신알신 하구 가요, 자까님 건필하셔요! ㅠㅠ
11년 전
난쟁이
으아니 이렇게 빨리 댓글을..! 감덩이에여.. 감사합니다 독자1님 사랑해요 하트ㅠㅠ
11년 전
독자2
암호닉 신청 괜찮을까요? 된다면 벚꽃으로 부탁드려요 ㅠㅠ 자까님도 하트하트 ㅠㅠ
11년 전
난쟁이
신청 가능함니다. 당연함니다. 벚꽃님 감사드려용ㅠㅠ 하트
11년 전
독자3
엏엏ㅇ 상츄에요ㅠㅠㅠㅠㅠㅠ아진짜 먹먹 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짱bb 작가님 글보고 힐링힐링 하고가여~
11년 전
난쟁이
힐링되셨다니 감동ㅠㅠ 감사해여 상츄님 하트하트ㅠㅠ
11년 전
독자4
악 반달이에요 저 암호닉 신청해놓고선 댓글에 암호닉 발설을 잘 안했었는데.......ㅎ허허헣........저 이거 독방에서 앞부분 봤었는데ㅠㅠㅠㅠㅠㅠ흐엉 떠나는데 왜 아무말도 없어 아무말이나 하지ㅠㅠㅠㅠ끙끙ㅠㅠㅠㅠㅠㅠ외전은.......해피죠?ㅠㅠㅠㅠ잘봤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난쟁이
으아니 숨어 계셨군욬ㅋㅋㅋ! 독방에서 보셨다니 왠지모를 수줍음..(수줍) 글쎄요 외전은 과연.. 흐흐 감사해여 반달님 하트하트!
11년 전
독자5
이거 뭐예요....ㅠㅠ 내일 수학 시험인데 오늘 이거 보고 치유받고 가요ㅠㅠㅠ 아련하고 따스하다ㅠㅠㅠㅠㅠ
11년 전
난쟁이
치유가 되셨다니 기분이 좋네요ㅠㅠ 수학시험 잘보세요!! 감사함니다 하트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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