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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LOODY VALENTINE



이상한 사람. 그는 그랬다. 그러고 보면 사람인 것도 아니었다. 거실바닥에 붉게 번진 그의 증오를 닦아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멀뚱하게 앉아 내 어깨에 밴드를 붙이는 일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모든 일이 더욱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건, 정말로 그랬다.


그러니까 그가 아직도 보고 싶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야. 비릿한 피 냄새가 온 몸으로 피어올랐다.


나는 여태까지도 난리 통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서 안을 눈만 끔뻑이며 바라보다가 내 얼굴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는 서류더미 덕분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하마터면 나 자신이 일터에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뻔했다. 지겨운 얼굴이 담긴 사진과 거짓말투성이의 인적사항, 그리고 노랗게 칠해진 유달리 굵은 글씨가 시야를 침범해왔다.


봉준우

사건번호 No.1 / 3 / 7 / 8


그러고 보니 그랬다. 난 내 직장에서 보는 줄리안을 썩 달갑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찌됐건 줄리안도 먹고 살아야했고, 재수 없지만 그의 식사가 우리에게, 즉 경찰에게 적발이 된다면 난 아무것도 모르쇠 하고는 수사에 협조하며 줄리안을 마주봐야만 했다.

그날 밤 날 물어뜯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코는 여덟 번째 사망자를 만들어낸 줄리안에게도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줄리안은, 피를 몽땅 흡혈한 것으로 모자라 한쪽 목까지 잔인하게 비틀어놓은 여덟 번째 피해자뿐만 아니라 아홉, 혹은 열 번째 사상자까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포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새낀 정말 끽하면 사형이야.”


사형제 폐지 된지가 언젠데. 난 참 현실성 없는 파트너 : 승현의 혼잣말을 똑같은 혼잣말로 되받아쳤다. 어차피 줄리안이 단두대 위에 쉬이 올라갈 위인도 아니라는 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지금 정부에서 그 놈의 뱀파이어들 때문에 얼마나 지랄중인데. 진짜… 봉준우 얜 간도 크다.”


음, 그러게. 내가 그런 대답을 하긴 했지만 정말인지 영양가 없는 대화였다. 난 내가 살고 있는 집에 그 간 큰놈의 지문이 구석구석 안 묻은 곳 없다 말해주고 싶었지만 물론 아직은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짭새 노릇하며 쌓아온 온갖 커리어를 줄리안 때문에 망치고 싶은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구역질나고 진저리나도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었고, 난 대부분 그렇게 했다.


「바쁘겠네.」


그래, 니새끼 때문에…… 난 줄리안에게 온 문자를 보고 답장을 보내는 대신 속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온갖 욕지기들을 열심히 뇌까렸다. 난 곧 줄리안이 열심히 지랄해놓은 현장에도 가봐야 했고, 그 전에 일곱 번째 사건을 탈탈 긁어 나온 몇 가지 증거들에 대한 보고서까지 써야했다.


오늘도 꼼짝없이 야근이야. 난 부디 다음 인사발령 때는 내 부서가 바뀌길 강력하게 희망하는 바였다. 게다가 하도 살인사건이 터져제끼니 각성이다 뭐다 만화 밖으로 빠져나온 소문이 현실에 도는 것조차 지치기 짝이 없었다.


“이 새끼들 진짜 각성시기 뭐 이딴 거 아니야?”

“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딴 상상할 시간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난 오년동안 멀쩡한 사람인 척 굴었던 줄리안의 평범함을 애써 머릿속으로 끄집어내며 마치 그와 다른 사람만 같은 사진 속 줄리안의 행적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비위도 좋으셔라. 목을 으득으득 꺾어놓은 주제에 시체에 지문 안 묻히는 방법은 어디서 배워 온 건지 모르겠다. 목과 함께 박살난 여자의 어깨가 참으로도 애처로웠다. 그 탁월한 미모로 피해자들을 유혹해놓고선 콱, 소리 나게 먹잇감을 빨아들였겠지. 어쩌면 내 모습이 될지도 몰랐던 여자의 행색에 온 몸으로 소름이 번졌다.


"이쁜 언니만 불쌍하게 됐수다."


그러니까 말이야. 난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가 망설임 없이 곧바로 토해냈다. 야, 시발! 내 커피에 담뱃재 털었냐? 푸하하, 내 비명소리를 들은 승현의 얼굴 만면으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개새끼. 난 그를 향해 거침없이 사건파일을 내던지면서 소매로 쓱 입가를 훑었다. 내 연인의 얼굴이 수놓아진 종이가 팔랑팔랑, 내 파트너에게로 날아간다.


“야, 꼭 던져도 이런 살인귀새끼 사진을…”


여덟 번째 흡혈사건, 용의자는 부인할 필요도 없이 경찰인 나의 오랜 연인이었으며 또 오늘의 이곳은 변함없이 평화로웠다.



***



미안해요, 옷값 물어 줄 테니 전화번호 좀 알려줘.


그건 분명 상당히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운 어조였다. 나는 남자가 내 옷에 가차 없이 뿌려제낀 레드와인의 흔적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컬러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내 목덜미를 노리는 것이 보인다. 찐득찐득한 와인의 감촉이 순식간에 날 휘감았다.


“어, 뭘 봐? 뱀파이어가 작업 거는 거 처음 봐?”


머리통에 있는 대로 쏟아 부은 스프레이의 역한 향이 내 코를 자극했다. 이래서 잠입수사가 싫어. 부디 평화롭게 끝나길 바랬던 수사의 끝물에서 꼭 이런 복병을 만나고야만다. 난 위장을 위해 착용한 빨간색 컬러렌즈에 눈이 뻑뻑해져오는걸 느끼며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한테 이렇게 대한 뱀파이어는 네가 처음이야.”


왜냐면 나랑 대화해본 흡혈귀새끼도 네가 처음이거든. 자고로 사람의 말에는 종종 과감한 생략이 필요한 법이었다. 난 자켓 안주머니에서 덜그럭 덜그럭 제 존재를 알리는 총구를 떠올려내며 천천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 눈앞의 뱀파이어를 이대로 쏴 죽여도, 난 정당방위였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와우, 그거 영광이다.”


내 손에 죽게 되는 것도 부디 영광으로 알길. 난 그런 대사를 중얼거리며 인이어를 타고 들려오는 반장님의 목소리에 급해진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빨리 이 새끼만 처리하고 가야지. 반짝거리는 와인 잔의 색깔은 보면 볼수록 영 께름찍한 것이었다. 와인 특유의 어두운 보랏빛 대신 질척질척한 레드컬러만이 남자의 목을 적셨다.


“어, 근데 자기…”

“…….”

“사람이구나.”


피, 그러니까 혈액血液이었다. 남자의 와인 잔 안에 흐르고 있던 액체 말이다. 설마 경찰인거야? 나 잡아가려구 왔구나. 싱글싱글 거리는 남자의 표정에 그것을 깨달은 내 뒤로 식은땀이 떨어졌다. 툭, 화려한 카페트 위로 내 권총이 낙하하는 소리만이 내 대답을 대신했다.


핏자국이 점처럼 수놓아진 바닥에 이질적인 물체가 홀로 형광등 빛을 반사해낸다. 망했다. 내가 죽으면 시체는 화장하고… 엄마한텐 사랑한다고 전해줘.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은 차마 입 밖으로까지 내뱉어지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켜졌다.


“로빈, 어디야? 빨리 와 새끼야!”


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예상치 못한 일의 투성이였다. 난 잘 갈아진 남자의 송곳니에 방울져있는 핏방울이 내 것이라도 된 마냥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인이어로 들려오는 파트너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침만 꼴깍 삼켜낼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남자의 알 수없는 붉은색 눈동자로 내 초조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친다.


“너무 걱정 하지 마.”

“…….”

“자긴 안 죽일 거니까. 섹시하잖아?”


맞아, 그리고 내 이름은 봉준우야. 기억해줘.


그렇게 덧붙이는 남자의 미소가 퍽 화사했다. 봉준우……. 나는 사실 이 남자가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나 먼저 갈게. 파티시간이 끝나가서 말이야.”

“…….”

“안녕, 다음에 또 봐!”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 번째 흡혈사건 용의자, 그리고 나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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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32.166
우와우ㅠㅠㅠㅠㅠ 뱀파이어물너무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달게하시는작가님의글 ㅠㅠㅠㅠㅠㅠㅠ힝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
9년 전
HOT ONE
(비회원 댓글이다)(도키도키)
9년 전
독자1
기다리고있었어요 선댓...!
9년 전
HOT ONE
....! (두근)
9년 전
독자3
아 저 이썰에서처럼 더티섹시 퇴폐섹시한줄랸이 너무좋아여ㅠㅠㅠ 그래서 이거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또하나의 최애썰이 나타났음을 느꼈따능...ㅠㅠㅠ 진짜 뱀파이어 줄랸 너무매력있어요 자까님은 더럽...♡
9년 전
독자2
와 줄리안 개섹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치명사할 것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아 그런 줄리안이 로빈에게 첫만남에 넘어갔다니 로빈은 또 얼마나 이쁠까요 (므흣) 잘 읽고 갑니다!
9년 전
HOT ONE
금발에 푸른 눈동자로 와인잔에 담긴 피를 마시는 뱀파이어 줄리안...(!) 저도 이렇게 상상하니까 급 덕통사고 오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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