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번에도 내가 멍청하게 뒤돌아 널 못본 척 하고,
다음 날 마치 아무일 없듯이 평소처럼 널 대할거라고 생각했겠지.
천만에.
평소에는 엄두도 못냈던 검정색 미니드레스를 입고
김지원이 실수인 듯 흘린 장소로 향했다.
주변에 수많은 여자들을 거느린 채 술을 마시며
내 두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다른여자와 키스하는 김지원에
' 내가 이런짓을 해도 넌 날 놓지 못해'
라고 확신하는 김지원의 눈빛에
이번에야말로 널 완전히 내 곁에서 떼어내겠다고 다짐한다.
너의 그 확신에 찬 두눈이,
내 위에서 날 쥐고 흔들던 너의 거만한 두 눈이,
후회와 분노로 가득차길 바란다.
지갑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여기서 제일 쌔끈한 남자로 데려와주세요, 라고 말했고
검정색 미니드레스의 밑단을 아슬아슬하게 뜯었고
김지원이 나를,
내가 김지원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가장 독한 양주를 시켰고
부디 김지원이 모멸감을 느끼길 바라며 양주를 한잔 마시며
저기 다가오는 오늘밤 내 연극의 파트너를 맞이 할 준비를 한다.
" 카밀? "
남자를 빌릴때 닉네임을 알려달라고 하기에
아무거나 막 뱉었던 그 닉네임을 부르는 남자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자리에 남자가 앉았고,
나는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 날 좀 도와줘요 "
아마도 당신에겐 꽤 쉬운일일 거에요.
김지원을 엿먹이는 일 따위는.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하고있는 남자를 앞에두고
테이블위로 다리를 올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가
이제는 이런 내 행동을 흥미롭다는 듯 지켜보는 남자의 옷깃을 잡아
셔츠단추를 두세개쯤 풀어주고는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
" 여기서 잘 보이는 자리에 내 남자친구가 있어요 "
고개를 돌리려는 남자의 뺨위에 손을 얹고 다시 나와 마주보게 하고는,
" 키스할 때, 곁눈질로 한두번쯤 보도록해줘요. 약오르게 "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어 주면 더 좋고요.
셔츠깃을 잡아 그대로 남자의 입술위에 내 것을 얹었다.
남자는 이윽고 약간의 실소를 내뱉더니,
흘러 내려오는 내 머리를 귀에 꽂아주고는,
고개를 옆으로 젖히고 더 깊숙하게, 더 진하게
키스해오기 시작했다.
눈을 꼭 감고있다가 떠서 김지원 쪽을 봤을때엔,
분노 보다는 당황을 느끼고 있었다.
한번도 니가 오직 자신의 소유라고 느꼈던 내가 다른남자와 몸을 공유한 적이 없었기에.
남자는 더 깊이 키스해왔고,
그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 남자의 가슴쪽을 툭툭쳤다.
남자는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싸고 입술을 떼더니,
" 내가 하는대로 따라오기만해 "
자신의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하고는 내 입술을 혀로 한번 쓸더니 다시 입맞춰 온다.
이윽고 손으로 내 무릎부터 드레스의 밑단까지 쓸어오는 손길에
당황해서 저지하려 했지만 저지하려는 내 두손을 왼손으로 잡아 통제하고는
오른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안아
아직까지 테이블위에 있던 나를 끌어내려 자신의 무릎위에 앉힌다.
" 이정도에 당황하지마. 연극이면 이정도는 해야하지 않겠어? "
입술을 다시 떼고는 내 귀 가까이에 대고 속삭인 후에 귓볼을 핥아오는 남자에
이번엔 내가 먼저 남자의 목에 입술을 묻고는
다시한번 김지원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분노와 모멸감을 두 눈에 담고있는 김지원이다.
나를 자신의 소유라고 하며 내 주위의 남자란 남자는 모두 끊어버렸으면서,
정작 자기자신은 꼭 내가 보는 앞에서 다른여자와 놀아나는 모습을 보여줬던
그런 너를 왜 사랑했는지 모르겠다.
아아, 홀가분하다.
김지원이라는 쇠사슬을 끊어내는 이 기분, 참 황홀하다.
하지만 난 몰랐다.
나와 이 연극을 함께하는 파트너, 이 남자가
나중에 더 큰 감옥이 되어 날 가둘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