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녕 이것이 가벼운 마음이라 생각하는 게냐."
"……아니요."
"헌데 왜 나를 보지 않느냐."
이번엔 내가 답하지 않았어. 숙인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어.
이건 부끄러워서도, 설레서도 아니고.
정말 너무 미안하고, 슬프고, 원망스러워서.
차라리 그때 나 같은 이방인을 내쫓았더라면.
호되게 벌해서라도 보내버렸다면.
나한테 왜 잘해줬어요?
돌아오지 않는 대답이 메아리가 돼서 돌아왔어.
아무리 물은들, 누가 들어주기나 할까.
더는 누구 탓하지도 말자고 마음먹으며 전하를 피해 걸음을 옮겼어.
여기로 온 방법이 강에 뛰어든 거니까.
깨어나든 돌아오든 똑같은 방법으로 하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무작정 강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그래 봤자 아직 궐 내였지만.
평소엔 넓다고 여기던 궐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좁은 것인지.
궐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에 누가 내 팔을 잡아 나를 돌려세웠어.
결국, 따라 나오셨구나.
"나를, 나를 보아라. 왜 자꾸 눈을 피하는 것이야."
다급하게 쏟아내는 말에, 전하를 쳐다보았어.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둘 다 아무 말도 안 했던 것 같다.
그냥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어.
슬픔을 억지로 참아내는 듯한 일그러진 표정에 내 마음도 아릿해졌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니까, 이별도 금방이겠지.
그러길 바라고. 잊기도 그만큼 빠르게 잊길 바라고.
지금까지 쌓아 온 추억은 별거 아닌 것처럼 훌훌 털어내고.
다시 예전처럼 일어설 수 있기를.
힘없는 전하의 손을 떼어내고 한번 심호흡을 했어.
이제는, 정말로 모든 걸 정리해야 해.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고, 돌아가야 하니까.
이건 꿈이고, 깨어나야 하니까.
"전하. 비록 이 못난 제가 전하의 곁을 두고 다시 돌아가지마는,
전하께선 제가 항상 바라왔던 어질고 의애로운 군주가 되어 이 나라의 태평성대를 이루시길 바라요.
제가 비록 이렇게 떠난다고 하여 전하께서는 마음의 가책을 가지지 마세요.
저, 전하의 곁에 한 사람으로 남아 잠시나마 기뻤습니다. 부디 강녕하세요."
이 정도면 충분해.
차분히 잘 얘기했다. 괜찮아.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것인지.
나를 한참 쳐다보던 전하께서도 입을 여셨어.
"들어라, 백 년이 지나도, 그 곱절이 지나 혹 내가 너를 만나지 못하여 결국 스쳐 지나간다 하여도 나는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해서 다음 생에도, 그 다음 생에도 기필코 너를 찾아내 다시 내 옆에 둘 것이다.
허니 너는 이만……. 가거라. 너는 내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너는 그저 긴 여행을 떠날 뿐이다, 알겠느냐?
그러니 아무 염려 말고 갔다 오거 라. 잠시 길을 걷고 있으면 내가 곧 널 따라갈 터이니."
눈물을 억지로 참아내는 게 너무 힘들었어.
코가 시큰거리고 눈이 화끈거리고. 근데 여기서 울면 정말 못 갈 것 같은 거야.
힘들게 마음먹었는데, 그리고 난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데.
다 무너지신 듯한 전하의 모습을 보니까 나도 그냥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어.
차라리 내가 여기에 오지 않았었더라면, 그랬다면.
아니면, 역사가 뒤집히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남는다면.
이제 와 후회한들 바뀌는 건 없겠지.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을 겨우 떼서 뒤를 돌았어.
뒤를 돌자마자 눈물을 못 참겠는 거야. 결국, 바보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울었어.
소리까지 내서 애처럼 막 우는데, 뒤에서도 울음소리가 들리더라.
한 나라의 왕일지언정 나랑 비슷한 나이일 텐데.
그동안 보여 준 순수한 모습으로도 충분히 보였던 여린 마음은, 그걸로 견딜 수 있는 슬픔은 어쩌면 나보다도 더 버거울 수도 있을 거 아니야.
울지 마세요. 제발 울지 마세요.
"감히 전하를 연모하여 송구합니다. 하지만 이제…… 잊으셔도 괜찮아요."
"길 잃은 연정이 얼마나 아프고 괴로운지 내가 잘 아는데 너는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그러고 나선 목 놓아 울었던 것 같아.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이지.
아무리 악을 쓰며 울면서 발을 굴러도 변하는 건 없었어.
난 그대로 주저앉아서 울 뿐이었고. 전하 또한.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
제가 여기에 있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저 여기 있게 해주세요.
"그대 없이는 내가 살 수가 없소……."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다시 생각해도 먹먹하네.
정말 울다가 숨이 넘어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낄 정도로 울었어.
이게, 감당이 안 되더라고.
나름 마음 굳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동안 내가 받은 모든 것들이 저 한마디에 다 담겨있는데.
처음부터 깊게 생각을 해야 했던 거였는데.
바르게 생각하고 똑 부러지게 행동 해야 했어.
내가 잠깐의 달콤함에 눈이 멀어 후회할 선택을 한 거야.
전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는 순간,
진짜 머리를 한대 얻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고 숨을 들이마시면서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그리고 지독한 악몽에서 나는 깨어났고.
모든 게 제자리에 돌아와 있었어.
날 내려다보는 가족도. 병원인 듯한 소란스러운 이곳도.
일어나자마자 울음이 또 터지더라.
이렇게 정리하면 모든 게 끝나는 거였구나.
그러면 그냥 입 다물고 있을걸.
누가 뭐라 하던 전하 뒤에 숨어 눈을 감아버릴 걸 그랬나 보다.
꿈이 아닌 것 같아, 이건 진짜인데.
너무나도 생생한데.
모든 게 아직 내 눈앞에 그대로 어른거리는데.
전하, 전하.
눈 감았다 뜨면, 다시 전하께서 웃어주시길.
하지만 이미 돌아온 모든 것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었어.
정말 허무하게도 이건 꿈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일이고.
도대체 나에게 무엇을 느끼라고 이런 꿈을 꾸게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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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님, 눈설님, 장희빈님, 민슈가님, 이킴님, 권지용님, 꽃잎님, 꾹꾹이님,
비빔면님, 정국전하님, 쿠키몬스터님, 스웩님, 빨강이님, 맑음님, 꽃신님,
귤님, 나무님, 모나미님, 정국아누나가미안해님, 흐헝꾹님 ♡
☞ 스토리 전개가 생각보다 너무 빨라졌네요 =)
사실, 내용을 구상하고 쓰는 것이 아닌 즉흥 연재이기 때문에 글이 조금 뒤틀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아쉬워 마셔요, 설마 8편에서 끝나겠습니까. 네, 제 스포는 여기까지만.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아주 많이 구상 중이니까요, 저를 기억해주세요!
제 필명 DUSK 많이들 기억해주시고, 자주 찾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참, 제가 많이 생각하고 시간을 들인 부분이기도 하고 분량도 나름 많이 넣었다고 생각하여
구독료를 살짝 올렸습니다만, 다음엔 다시 내릴 거니까 이번 한 편만 너그럽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