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은 말이야.”
첨예한 마찰음이 났다.
“앙큼하게 대들지만 않으면 참 예쁜데.”
두 번째의 마찰음엔 나는 정신을 잃었다.
“아니, 그것도 참 예뻐. 로빈이잖아.”
그 로빈은, 아니 대체 나는 누군가?
[알로] Wires
나는 매일 아침밥을 먹었다. 돼지고기로 추정되는 썩은 고무줄 맛이 나는 양념된 식용육 따위를 씹어댔고 갈색의 돌 같은 빵조각을 침과 함께 힘겹게 삼켜냈다. 식사를 마치면 나는 매일같이 낮잠을 잤다. 누렇게 바랜 색의 천장에선 금방이라도 얼룩이 진 부분에서 거대한 구정물이 쏟아질 듯한 환각을 일으켰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고촬했다. 그러다가 워낙 병신 같아야지, 내내 천장만 보는 것도 보통 끈기로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쓸데 없는 관찰력도 나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반복되는 일상에 물꼬를 틀 수 없는 거다. 정말 불쌍하게도.
의미없는 짓들을 반복하며 보육원에서의 하루 일과의 반이 지나면 늘 그렇듯 오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진부한 클래식 음악이 멈췄다. 교양적인 클래식에 맞춰 고여있는 구지렁물에 발장구를 치던 고요한 것들과 상이되는 아이들의 동체는 일시정지가 되어 모두 한 방향, 한 쪽을 응시했다.
모든 아이들의 움직임이 멈춘 시간 동안은 마치 온 세계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의 다물지 못하는 입 속에선 소란스러움이 응어리로 뭉쳐있는 채 침묵되었다. 운동장의 모래 세편들이 타이어의 주름에 맞춰 하나씩 고이 짖밟힐 때마다 불온전한 화음을 만들어 냈고, 나는 그 화음에 맞춰 입가를 미미하게 떨었다. 그러다 경련이 일어난 듯 몸을 으스스 떨어대면 옆에 있던 줄리안이 괜찮냐며 분명 삽시간에 경황할 나를 걱정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눈은 검은색 중형차를 집요하게 좇아갔다.
차는 운동장 말미에 주차되었다. 운전석 쪽의 문이 열리고 발목이 조금 노출되어있는, 정장 바지로 말끔히 감싸고 있는 다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그것에 맞춰 혀가 우스꽝스레 튀어나올 뻔했다. 매일같이 그에 대한 자동 반사가 왜 이런 호구같은 식으로 튀어나오는 것인지, 나는 정말이지 기본적인 컨트롤 할 수 있는 힘도 없는 쓰레기다.
우리는 일렬횡대로 줄을 섰고 저벅저벅 구둣굽에 밟히는 모래 세편들의 마찰음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것들의 하모니는 매우 시들했다. 그러나 그는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며 활짝 웃어보였다. 안녕. 그의 중저음에서 따뜻함은 일절 담겨있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나의 표정은 금세 일그러졌고 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상상할 그의 목소리는 한 층 더 높아졌다. 얘들아 맛있는 거 먹을래?
그가 뱉어낸 ‘얘들’이라는 단어 속에서 나는 소속된 것에 대한 박탈감을 느꼈다. 그는 분명 보통 아이들과 나를 다른 사람, 물체, 어쩌면 그 속에 내재된 본성까지도 그는 ‘얘들’과 날 제외된 하나의 ‘상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리고 내가 이곳에 머무를 때까지도. 아니면, 영원히일지도 모를.
침울한 나. 그리고 아이들이 간식에 시선이 팔린 순간 그가 나의 손을 맞잡았다. 따뜻한 온기조차 오래 머무르지 않은 두 손은 서로의 힘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그를 올려다 본 나의 눈동자를 그는 그림자 가득히 안은 건조한 눈으로 맞추었다. 침을 삼키니 그가 아까와는 다른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정말 확연히도 다른 미소.
“로빈은 따로.”
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섬뜩해서 소름이 돋았다.
* * *
그의 방은 항상 고전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한 눈에 봐도 따뜻해 보이는 단색의 벽지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가득한 벽난로. 삐걱대는 소리를 내는 흔들의자. 장르가 불분명한 단조로운 표지의 책들. 빼곡한 책장. 그리고 투명한 커튼 속에 은은히 들어오는 어두운 햇빛에 의존하는 방. 조화로우면서도 을씨년스럽다.
보육원을 설립한 주최 쪽에서 조금 높은 직을 맡고 있다고 처음 마주했을 때 그는 직접 자신을 칭했다. 그 위세있는 수식어는 나를 복종하게 만들었고 금세 개에게 목줄을 채우는 것처럼 그는 날 세뇌하기 시작했다. 이건 말이야, 아저씨가 다 로빈을 아껴서 그러는 거야. 그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대체 누군가가 알겠는가. 나조차도 그게 진실인 줄 알았다. 항상 입꼬리에 올려져있는 호의 가득한 미소는 남에게 절대적인 신망을 갖게 했다. 그랬다. 그게 다인 줄 알았다.
그가 차가운 공기에 벌겋게 상기된 내 볼을 가득 감쌌다. 입김도 나지 않는데 괜히 눈 앞이 뿌옇게 가려지는 것을 느꼈다. 아찔해지는 정신 잡느라 애를 썼다.
“오늘, 뭐 했어?”
“바,밥도 먹고 낮잠도 자고…….”
“그게 끝?”
“아,아…… 네.”
문득 머릿 속을 매섭게 스치는 줄리안의 낯짝이 눈 앞에 선연했다. 날 걱정하던 그 눈빛과 표정이 갑자기 표독한 한 마리의 짐승의 낯짝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세뇌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순간 어버버댈 것을 다행히도 다문 입술에 묵살되었으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버벅거렸다면 난 그대로 담뱃재를 비벼 끄는 저 손에…….
“정말이지?”
“…….”
“로빈 믿어.”
“……정말이요?”
“응, 물론.”
의외로 상냥한 어투에 숙였던 고개를 살짝 올려 그의 얼굴을 문득문득 쳐다보았다. 입꼬리만 간간이 보이는 것이, 그가 진실을 담아 놓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노릇이었던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고개를 꼿꼿이 폈다.
그의 눈동자가, 미소와 달랐다.
상이되는 그의 극은 정말 확연히도 달랐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바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뒤이어 퍽 차갑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낯설고 익숙한. 익숙할 수 밖에 없는, 낯설고 싶은 그의 목소리가 방 안을 울리는 순간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매우 세게 짓물어 그 자리에 핏물이 고였다.
“근데, 줄리안은 못 믿지.”
그가 반을 넘긴 짧은 담배를 쓰레기 통에 넣었다. 걸치고 있던 정장 마이의 굳게 닫혀있던 단추를 하나씩 풀렀다. 그 손길이 단호하고 다부져서 반항할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잔뜩 겁에 질려있는 내 표정을 읽은 건지 그는 다시 한번 씨익 웃음을 지었다. 절대적인 복종을 바라는 눈치가 확실했다. 질렸다.
“로빈 데이아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로빈은, 대체 나를 원하는 게 맞을까.
철사처럼 나를 날카롭게 찌르는 음성. 그 음성은 나를 찌르다 이내 나에게 깊히 박힌다. 유연하지도 않아서 한번 박힌 음성은 나를 고통스럽게 침범했다. 나는 그저 숙인 고개로 작게 감흥했다.
그가 점차 발소리를 내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아, 시작이구나. 생각이 이미 거기까지 미친 즈음엔 내 머리칼은 그의 손아귀에 잡혀있었다. 악 소리도 못 내고 힘 없이 고개가 따라가니 그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사악한 웃음소리에 악마의 치졸한 본성이 겹쳐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울컥 눈물을 터트렸다.
“내가 줄리안이랑 놀지 말랬지.”
퍼억.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나는 바닥을 기었다.
“요즘, 로빈이 벌을 안 받아서 많이 게을러진 것 같아. 응? 말도 안 듣고.”
그가 곧게 단정한 셔츠 단추를 두세 개 정도 끌렀다. 목젖이 한 번 상하운동을 하고 난 뒤 꿀꺽, 목넘김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악순환은 항상 반복되기 마련이다. 불신은 또 다른 불신을 낳아버리고 만다.
“로빈, 혼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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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바웃 에스 -이하 어밧- 라고 합니다.
글잡은 처음이라 글 올리는 것에 대해 많이 부끄럽네요 8ㅅ8..
아고물 흥하자고 쓴 글이에요 그냥. 예쁘게 봐주시고 알로도 흥하고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다음편은 불맠! 입니다. 총 세 편으로 이루어지는 굉장히 짧은 단편이구요. 항상 한 작품이 끝나면 또 다른 커플링으로 (고로 아고물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