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꾸었다. 나를 짓이기는 수많은 철사에 숨을 쉬지 못하고 꺽꺽대던 나의 몰골은 말로 이룰 수 없이 처참했다. 보육원에 처음 왔을 때의 나의 첫인상 처럼. 나락되었던 내 모습은, 더럽고 볼 것 없는, 마치 버려진 애완견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지금도 똑같겠지만.
내가 그동안 숨을 겨우 붙여 살아가려던 이유가 뭐였지. 살아가면서 항상 드는 의문점이었다.
내가 그동안 숨을 끊지 않고 죽지않았던 이유가 뭐였지. 오류난 기계처럼 그것들은 이분열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끝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퇴락했다.
지금 내가 숨통이 끊겨 생을 마감한다면 누가 나를 연민해주나. 동정해주나. 눈물을 흘려주나. 꽃처럼 살아가길 바라던 내가 이름 모를 잡초의 삶을 살아가는데 어찌 꽃길을 밟을 수 있을까. 아아, 외로운 나는 위로 받는 것도 사치구나.
나는 그 순간에 눈물을 흘렸다. 꿈 속에서 우는 내가 현실에서도 울고 있을까? 무의식적인 생각에서도 현실에서 어떻게 하고 있을지를 궁금해했다. 난 지금 답답한데, 자고 있을 현실에는 평온한 상태일까. 악몽 속에서 나는 철사에 감겨 숨을 쉬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내 눈 앞엔 그의 모습이 겹쳤다. 꿈 속까지 따라와 날 괴롭힐 사람.
난 언제쯤 당신에게 벗어날 수 있지?
내가 죽으면 벗어날 수 있으려나.
악몽까지 날 따라왔는데, 지옥 한 번 맛 안 볼까.
* * *
익숙한 천장이 보이는 곳에서 나는 눈을 떴다. 눈은 떴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고통을 수반하는 나의 몸상태는 온전할 수 없었다. 기어코 그리 반항했더니 결국……. 누운 상태에서 마른 세수를 하다가 창가를 살피려 왼쪽으로 돌렸다. 혼자 방 안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옆엔 다른 낯선 남자가 누워 있었다. 살짝 텁텁한 유황색의 머리칼을 갖고 있는 남자. 아, 줄리안. 줄리안인 것을 인지한 나는 물기가 없는 마른 입술로 그의 이름을 발음했다. 역시나, 갈기갈기 찢어져있는 나의 목소리는 괴이했다. 울고, 발악했던 내 목소리가 평온할 일이 없었다.
“로빈.”
나의 부름에 그가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 그래, 애정어리게 내 이름을 불리어 본 지가 언제였더라. 너무나도 까마득해서 눈 앞이 새하얘졌다.
“난 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나는 대답할 것을 말았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 약간은 답답한 기색도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자신도 이 고통의 순간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니, 와닿았다. 아니, 와닿았나. 어, 내가 언제쯤 그에게 벗어날 수 있는 확신을 갖고 있던 거지? 콧웃음 쳤다. 난 확신도 없고, 진심도 없고.
“알베르토, 그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고 폭언을 받아내고, 구타를 당하는 너를 볼 수 없어. 아니, 보고싶지 않아.”
줄리안의 당찬 포부가 방 안을 울렸다. 아주 고요히. 난 그의 말에 감동을 받을 뻔했다. 도중에 알베르토의 이름이 나의 고요하던 정신을 헤집어 놓은 것을 줄리안은 모른 눈치였다.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나의 몸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데, 난 여태껏 어떻게 참으며 살아온 걸까. 스스로 대견한 눈치였다.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내가 돌린 고개에 맞춰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밑에서 보아도 아름답다. 나와는 다르다. 확실히 더러운 나와는, 다르다. 본성부터 다른 우리의 사이는 지척이어도 천상과 지상의 차이처럼 확연히 멀었다.
“그러지 않도록 너를 지켜주고 싶어.”
그러기에 너는 나에게 너무 먼 걸.
“로빈.”
나는 너의 음성을 들어주기에는 너무나도 낮은 곳에 있는 걸. 더럽고 음산해서 사람들이 오고 싶지 않아 하는 곳이야. 이곳까지 너의 목소리가 닿을 리 없어.
“좋아해.”
나는 그 음성을 내 속에 담아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줄리안도 대답을 바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너가 그렇게 말을 하고서 나에게 듣고 싶어 했던 건 무엇일까. 진심? 아님 꿀 발린 거짓이라도 원했던 것일까. 나는 조금씩 그의 말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내 세상인데, 내 세상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러워진 머리는 두통을 만들어 냈다. 나는 그대로 다시 눈을 감았다.
창 밖에서는 모래 세편들을 밟아대는 차의 타이어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간다.
어느 곳에도 정처할 수 없는 그들은, 서로의 끈들이 뒤엉켜버렸다. 그리고, 그것들을 풀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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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게나마 써보고 싶었던 알로 팬픽이 끝났습니다. 알로줄 같겠지만 이건 엄연히 알로예여...8ㅅ8... 애초에 줄리안을 많이 넣어서 이야기의 복선 때문에... (변명)
기나긴 텀의 Wires가 끝났네요. 세 편의 아주 작은 규모를 이렇게 길게 늘어뜨릴 사람 있으면 나와보세요. 저 밖에 없으니까여. (진지) 죄송하니까여.
제 글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분들의 작은 성의가 작가의 사기를 높이고 글을 쓸 때의 노력을 알아봐주시는 행동입니다. 감사해서 같이 답글을 달아드리려고 노력하는 거구요.
아, 그리고 Wires = 꼭두각시를 연결할 때에 쓰는 줄, 철사.
이번 편은 매우 짧아요 :^ ) (그럼 이럴 바에 다 통일할 걸 뭘... 오래 늘어뜨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