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전에 잠깐, 위안 = 토끼 입니다!
[타쿠안] 토끼 키우는 남자 6
*
"타쿠야, 나 치킨 시켜줘."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위안이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는 타쿠야에게 다가가 당당하게 치킨을 요구했다. 시계를 쳐다본 타쿠야는 눈빛 한번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안돼요."
"나 배고파."
위안의 예상대로 타쿠야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한 위안이 아예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타쿠야를 빤히 바라보았다. 위안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면 마음이 동할 것 같아 타쿠야는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렇게 봐도 안돼요. 벌써 10시잖아요."
"진짜 먹고 시포."
말끝을 흐리는 위안에 타쿠야의 마음이 흔들렸다. 타쿠야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넘실거렸다. 먹고 싶다는데 시켜줘야지. 근데 시간이 늦어서 지금 먹으면 살로 갈텐데...
"지금 말고 내일 낮에 시켜줄게요. 응?"
"시러어. 지금 시켜줘."
타쿠야가 부드러운 말투로 위안을 달래봤지만 치킨에 단단히 꽂힌 위안에겐 통하지 않았다. 타쿠야는 몇 주 전 치킨을 먹어 본적 없다는 위안의 말에 놀라서 그 자리에서 당장 치킨을 시켜 위안에게 먹였던 제 자신을 원망했다. 왜 그날 치킨을 시켰을까, 왜 그때 내가 나서서 위안이형에게 손수 닭다리를 건넸을까. 타쿠야는 그저 단지 치킨을 못먹어본 위안에게 치킨이 선사하는 신세계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치킨을 시키던 타쿠야는 예상하지 못했다, 위안이 치킨에 흠뻑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아니, 토끼가 닭을 그렇게 자주 먹어도 되는 거예요?!"
"나 지금 사람이야!"
타쿠야의 말에 위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나 손가락 10개 있고 발가락 10개있는 사람이야! 여기 꼬리도 없자나!"
꼬리가 없다는 말과 함께 위안은 토끼 꼬리가 있어야 할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강력하게 사람임을 주장했다. 그런 위안을 본 타쿠야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도저히 위안은 못 이기겠다고 타쿠야는 생각했다. 결국 타쿠야는 몸을 돌려 위안과 마주앉고서는 위안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으유, 치킨은 어떻게 시킬까요? 저번에 먹었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위안의 표정이 대번 밝아졌다.
"시켜주는 거야? 진자?"
"그 대신 우리 다음부터는 좀 더 일찍 시켜먹어요. 밤에 뭐 먹으면 속도 안 좋고 살쪄요."
위안이 만세를 외치며 두 팔을 쭉 뻗었다. 타쿠야는 토끼가 아니라 아이 한명을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분명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위안이 저보다 훨씬 많은데 저 형은 왜 저렇게 귀여운 걸까, 타쿠야가 생각했다. 요즘들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위안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타쿠야였다.
#
주말 오전,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타쿠야와 위안은 근처 마트로 장을 보러갔다. 마트 안으로 들어선 타쿠야가 카트를 빼자 위안이 쪼르르 달려와 카트 손잡이를 잡았다.
"이거 나, 내가 밀래."
위안이 눈을 빛내며 애절하게 타쿠야를 올려다보았다. 타쿠야는 지난주 마트에서 바로 이 눈빛에 홀려 위안에게 카트를 맡겼던 일을 떠올렸다. 위안은 스피드를 즐기며 마크 구석구석 카트를 끌고 다녔고 타쿠야는 그런 위안을 보며 쉴 새 없이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안ㄷ"
"얌전히 있을 거야."
안된다고 반대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안돼’의 ‘안’자가 나오자마자 위안이 귀신같이 타쿠야의 말을 가로챘다. 카트를 빼앗길 수 없다는 위안의 굳건한 표정에 타쿠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쿠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위안은 신이 나서 바로 뒤통수를 보이며 카트를 밀고 나갔다.
"귀엽다니까, 정말."
혼잣말을 중얼거린 타쿠야가 발걸음을 서둘러 위안을 따라갔다.
"어? 저쪽은 과자가 있는 쪽인데?"
장을 보는 동안, 타쿠야와 위안은 바빴다. 타쿠야는 사달라는 것마다 족족 과자를 가리키는 위안을 제지하기 바빴고, 위안은 타쿠야가 두부(콩을 싫어하는 위안을 위한 타쿠야의 차선책)를 고르러간 사이에 타쿠야에게 제지당한 과자를 카트 안쪽에 숨기기 바빴다.
장을 보는 한동안, 위안이 몰래 카트 안쪽에 숨겨놓은 과자는 용케 들통 나지 않았다. 타쿠야가 집에 없는 동안, 이불에 배를 깔고 누워 과자를 먹는 상상만으로도 위안은 행복했다.
"어? 이 과자는 빼고 계산해주세요."
하지만 서글프게도 위안의 과자는 마지막으로 계산을 하는 과정에서 타쿠야의 매의 눈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리고 곧 위안의 과자(거의 될 뻔함)는 타쿠야에 의해 또다시 제지당했다. 마트 점원의 손에 이끌려 계산대에서 멀어져 가는 과자를 위안이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 과자...
"그 과자, 형이 넣어놓은 거죠?"
장을 보고 마트에서 나온 타쿠야가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위안을 바라보았다. 위안은 뜨끔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아니? 나 그 과자 처음 보는 건데?"
"그거 형이 좋아하는 과자잖아요. 어제도 세 봉지나 먹는 거 내가 다 봤거든요?"
하지만 서글프게도 타쿠야는 위안보다 한수 위였다.
"....."
결국 할 말이 없어진 위안이 타쿠야를 앞질러 걸어 나갔다. 요즘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위안의 간식에 타쿠야의 걱정도 함께 늘어가던 참이었다. 잔뜩 삐진 것 같은 위안의 뒷모습에 타쿠야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위안을 따라잡았다.
"형 걱정된단 말이에요. 형이 간식 조금만 줄인다고 약속하면 다음엔 맛있는 거 많이 사갈게요. 네?"
".....나도 알어. 줄일거야, 간식."
여전히 입을 삐죽 내민 채로 위안이 말했다. 타쿠야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간식을 줄이기 어려웠던 건 다 너무 맛있는 과자를 많이 만들어낸 과자 회사 탓이라고 생각했다.
"진짜요? 진짜 간식 줄일 거예요?"
"진짜."
그 말을 하는 위안의 표정은 굳건했지만, 속은 그동안 정 든 과자친구들을 떠나보내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약속해요, 약속."
타쿠야가 약속을 하자며 위안 앞에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빼쭉 나온 손을 내밀었다. '약속'이라는 단어는 알지만 약속을 할때 사용하는 제스쳐를 모르는 위안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손은 왜?"
"...형, 저처럼 손 이렇게 해봐요."
위안이 서툴지만 열심히 타쿠야의 손모양을 따라해보았다. 타쿠야는 잠시 장거리가 담겨있는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직접 위안의 손을 잡으며 손모양을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주먹 쥔 상태로 엄지손가락이랑 새끼손가락을 빼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게 약속한다는 뜻이야?"
"그 다음에, 이렇게 새끼 손가락을 걸고 엄지를 맞추면..."
타쿠야가 먼저 위안에게 손을 내밀어 위안의 새끼손가락과 제 새끼손가락을 걸고는 서로의 엄지손가락을 맞대었다. 위안이 신기한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하면 약속하는 거야?"
"네. 이제 형 저랑 한 약속 꼭 지켜야해요. 우리 지금 도장 찍은거예요."
타쿠야가 고개를 들어 위안과 눈을 맞췄다. 눈이 마주치자 위안과 타쿠야의 입가에 미소가 천천히 떠올랐다. 타쿠야에게 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 방법을 배우자 위안은 새삼 '약속'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꼭 지켜야 하는 것.
그날 이후로 위안은 타쿠야와 약속대로 성실히 간식을 줄여나갔다. 그런 위안을 타쿠야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며 간간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간식 량과 반비례로 늘어나는 타쿠야의 칭찬을 받으며 위안은 과자친구들과의 이별의 슬픔을 지울 수 있었다.
더불어 타쿠야게 위안에게 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 방법을 알려준 뒤로, 위안은 뭐만 있으면 약속을 하자고 타쿠야를 졸라댔다.
"타쿠야, 나 일주일에 한번은 건사과 사줘."
"...그래요."
"약속해, 약속."
"타쿠야, 나 일주일에 한번 치킨도 시켜줘."
".....일주일에 한번이요?"
"빨리 약속! 손가락 걸고 엄지 꾹 해줘!"
"....알았어요."
카트 이용하는 토순이
사진 출처 pinterest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독자여러분
혹시 아까 신알신이 가서 놀라신 분 있나요?
네, 맞습니다. 제가 바보짓을 했습니다....ㅠㅠ
아직 다 수정하지도 못한 글에서 뭘 눌렀는지 글이 바로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놀란 마음으로 삭제를 누르고 저는 다시 또 한번 똑같은 수정을 했습니다^^ 허허
머리가 나쁘니까 역시 몸이 고생하네요ㅎㅎㅎㅎ
한가지 말씀 드릴게 있는데요
타쿠안 팬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와 놀라셨죠? 저도 처음에 놀랐어요ㅎㅎㅎㅎ
깜빡하고 지금 말씀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