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혁! "
반가움 가득 담긴 내 부름에 휴대폰만 보고 있던 김동혁이 이 쪽을 보고는 웃어온다. 왔냐? 하는 물음에 쪼르르 달려가서 그 옆에 섰더니 자연스럽게 내게 제 팔을 걸어왔다. 익숙하게 내 어깨를 내어주면서도 입은 어쭈, 하고 김동혁을 바라보자 김동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이끌었다. 춥다. 빨리 들어가자.
" 이모! 여기 삼겹살로 주세요. "
" 얼마 전에 여기 왔었는데 오늘 또 오네. "
" 얼마 전에? 누구랑? "
" 바비랑. "
내 대답에 김동혁이 내 한 쪽 볼을 잡고는 쭉 늘어트렸다. 아파! 놔! 내 칭얼거림에도 볼을 쭉 잡아 늘린 김동혁이 샐쭉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너, 이 오빠랑 단 둘이 오는 비밀스러운 곳에 그 사람이랑 같이 왔단 말야? 겨우겨우 김동혁의 손을 떼어내곤 아픈 볼을 쓰다듬으며 칭얼거렸다.
" 비밀스러운 곳은 무슨. "
" 야. 여기서 우리 둘의 비밀이 얼마나 많이 오고갔는지 알아? "
그런 김동혁을 향해 혀를 살짝 내밀었다 넣자 김동혁이 피식 웃었다. 몇일 전의 바비처럼, 동혁이는 익숙한 듯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고 나는 또 빈 젓가락만 문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필 테이블도 그 때 그 테이블이네. 자리도 신기하게, 나는 그대로고 동혁이가 바비 자리고.
자꾸만 동혁이와 겹쳐 보이는 바비의 모습에, 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애써 고개를 두어 번 젓곤 앞에 놓인 반찬만 계속 주워먹는데 김동혁이 야, 하고 나를 불러온다.
" 왜. "
" 오빠가 고민이 있어. "
" 뭔데요. "
내 물음에 장난기 많던 표정은 어디가고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김동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빠가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말야….
" 뭐? "
여자 친구?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여자 친구라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마치 내가 알고 있을 거라는 듯 당연하게 말하는 저 모습에 어이 없는 웃음만 나온다. 묘하게 느껴지는 배신감은 덤으로.
" 여자 친구라니! 너 나한테 그런 말 한 마디도 없었잖아. "
" 내가 안 했었나? 뭐. 그럼 미안. 어쨌든 여자친구가 있는데 말야. "
" …진짜 배신감 느껴. 어떻게 나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여자 친구가 생겨? "
" 좀 들어 봐. 여자 친구가 있는데, 한국에서 만난 애야. 그런데 난 좀 있으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야. "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두 번째 망치가 내 머리를 때린 듯 또 머리가 멍하다. 여자친구로 한 번 멍하게 만들더니, 이제는 뭐? 미국? 다시 간다고?
" 미국에 다시 간다는 건 또 뭐야. 너 언제 미국 다시 가는데? "
" 어, 다음 주…? "
" 야! "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김동혁을 보고 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김동혁이 잠깐 멈칫하다가 날 보고 씩 웃어온다. 이것도 말 안 했냐? 하고 저렇게 능글맞게 웃는 모습을 보자마자 속이 부글부글 한다. 뭐야. 오늘 안 만났으면 미국 다시 돌아가는 데도 못 보고 보낼 뻔 했잖아! 속사포로 쏘아대는 내 말에 김동혁은 참 밉지 않게 웃어온다. 저 선한 웃음에 뭐라고 화내려다가도 그냥 한숨만 푹 나왔다.
" 진짜 김동혁 짜증나. "
" 그래도 오늘 봤으니까 됐잖아. "
" …그래서. 뭐가 고민인 건데. 그 여자랑 어떻게 해야 하냐고? "
" 엉. 미국 가는데, 기다려 달라고 그럴까. 몇 달 있다가 다시 한국 올 텐데. "
" 그 여자 예뻐? "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김동혁이 말을 하다 말고 날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터져버린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킥킥대며 웃어온다. 왜 웃어. 내 말에도 김동혁은 한참을 웃더니, 내 양쪽 볼을 눌러서 내 입만 쭉 나오게 한 채로 날 바라본다.
" 그럴 리가요. 아가씨가 더 이쁘지. "
" 아, 너까지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라니깐! "
놀리듯 날 아가씨라고 부르는 동혁이에게 칭얼대는데 그래도 싫지 않은 기분이다. 당연히 동혁이 눈에는 여자 친구가 더 예쁘겠지만, 말이라도 늘 내 편이 되어주는 김동혁에 왠지 모를 안심도 되고. 흐, 하고 웃는데 어느새 고기가 다 익은 건지 김동혁이 날 잡은 손을 놓고는 가위와 집게를 각각 손에 잡곤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다.
" 잘 모르겠다. "
" 뭐가? "
" 만약에 내 남자 친구가 나 기다려 달라고 하면 난 못 기다릴 거 같아. "
" 진짜? "
" 응. 몇 달이나 떨어져서 얼굴도 못 보는게 무슨 연애야. "
내 말에 김동혁은 금새 시무룩해진다. 어, 나는 그렇단 거야! 네 여자 친구는 나랑 다를 수도 있잖아. 급하게 동혁이를 달래보기 위해 몇 마디 이어서 말을 하는데 내 노력을 알았는지 김동혁이 시무룩한 걸 풀곤 금새 피식 웃었다.
" 내 생각은 그렇단 거야. 내 생각은. 알지? "
" 알아, 인마. "
김동혁이랑 있으면 이런게 좋다. 내 말의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사람. 오래 본 만큼 무슨 이야기를 하든 편한 사람. 괜히 내가 마음에 걸려할 까봐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내 그릇 위에다 먼저 올려주는 동혁이다. 먹어. 돼지야.
돼지 아니거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앞에 놓인 고기를 보자마자 그대로 내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또 먹어도 또 이렇게나 맛있네.
" 근데 오늘은 그 사람 같이 안 왔어? "
" 그 사람? 누구? "
" 바비. 네 경호원이라며. "
한참을 우물거리며 답하는데 갑작스레 들려온 바비란 이름에 우물거리는 걸 멈추곤 순간 동혁이만 바라보았다. 곧바로 다시 정신이 들어서, 입에서 우물거리던 걸 겨우겨우 삼키곤 답했다. 몰라. 기다리고 있겠대.
" 추운데 같이 들어와서 밥 먹자고 하지. "
" 됐어. 지금 같이 밥 먹었다간 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체했을 거야. "
" 왜? "
" 간접적으로 차였거든. 바비한테. "
차이면 차이는 거지 간접적으로 차이는 건 또 뭐야. 근데, 너 그 사람 좋아하냐? 차이다니?
동혁이의 질문에 음, 하고 잠깐 망설이다가 상추 위에 고기를 하나 올리곤 주위에 있는 반찬을 모조리 다 올렸다. 꽤나 두툼해진 쌈을 입을 크게 벌리곤 그 안에 다 쑤셔넣으니 김동혁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열심히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우물거리던 걸 겨우 꿀꺽 삼켜내자 동혁이가 기다렸다는 듯 물어온다.
" 좋아한다고? "
" 응. 되게 많이. "
" 그 사람도 알아? "
" 아니. 몰라. 되게 눈치 없는 사람이거든. "
무엇보다도 날 여자로 안 봐. 말하면서도 괜히 울적한 기분에 눈꼬리를 축 내리곤 동혁이를 바라보니 동혁이도 덩달아 안쓰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잘 해봐라. 하필 짝사랑이냐. 학창시절 꽤 오랜 시간 누군가를 짝사랑 했었던 동혁이는 그 때의 슬픔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눈빛이 조금은 애잔해졌다.
동혁이의 위로를 받고 있으니 왠지 더 울적해진다. 분명 동혁이 연애 상담으로 시작한 이야기였는데, 어쩌다 내 이야기를 하게 된 거지….
술 한 잔 할래?
동혁이의 물음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응.
* * *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이 반짝거린다. 잠깐 바라보는데 '바비'라고 적힌 두 글자에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났다. 흐, 하고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며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다대니 짧은 시간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리운 바비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타고 전해져왔다.
" 여보세여. "
- 아가씨. 아직 친구분이랑 같이 계십니까.
" 네! 응! 동혁이랑 이써요. "
술을 제법 마셔서 그런지 발음이 온전히 나오질 않는다. 자꾸만 새어나가듯 꼬이는 발음에 흐, 하고 또 웃음을 흘렸더니 잠깐의 정적 끝에 전화기 너머로 바비가 물어온다.
- 술 드셨습니까?
" 네. 동혁이랑 쪼옴. "
- 하…. 지금 어디십니까.
" 쩌번에 왔던 거기에요. 그, 고기, 고기…. "
- 알겠습니다. 거기 계세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바비 덕분에 순간 멍하니 휴대폰만 잡고 있다가 천천히 휴대폰을 귓가에서 떼내었다. 그리고는 날 바라보고 있는 동혁이에게 눈꼬리를 축 내리곤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바. 내 전화 이렇게 뚝 뚝 끊어버린다니까.
내가 취한 모습을 아는 동혁이는 그저 그 사람이 나쁘네, 나쁘네 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 아가씨. "
그만 마시라는 동혁이의 말에도 고개를 저으며 굳이 한 잔을 입으로 쭉 들이키려는데, 옆에서 들리는 익숙한 소리에 잔을 들던 손을 멈췄다. 또 바비 목소리가 막 들려…. 베시시 웃곤 그대로 술을 마시려는데 내 손목을 아프지 않게 잡아오는 누군가에 의해서 손이 멈춰졌다.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늘 보던 그 검은 정장의 바비가 날 내려다 보고 있다.
" 바비! "
반가운 마음에 바비를 보고 활짝 웃었더니 바비가 아무런 말 없이 날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목을 잡았던 손으로 내 손에 잡혀져 있던 잔을 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 안녕하세요. 저는 -- 친구 김동혁이에요. "
" 바비입니다. "
" 알아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 얘 제가 이만큼 먹인 거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고. "
" 아가씨 대체 얼마나 드신 겁니까. "
동혁이의 인사에도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어가던 바비가 날 혼내는 듯한 말투로 얼마나 먹었냐고 물어온다. 대답 대신 그냥 베시시 웃으며 바비의 얼굴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동혁이가 대신 답을 해준다. 한 병도 채 안 먹었어요. 원래 술을 좀 못 해서. 동혁이의 대답에 바비는 기가 찬다는 듯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그런 바비를 올려다보는데 이상하게도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다. 술에 취한 탓에 세상이 조금은 흐리게, 불분명하게 보이는 데도 바비의 얼굴만은 선명했다. 저 눈도, 저 코도, 저렇게 올려진 머리도, 단정하게 정리 된 저 옷도, 그리고 또 풍겨오는 이 향기도.
바비가 짐을 챙기려는 듯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바비의 어깨에 곧장 내 고개를 기댔더니 바비가 움직임을 멈추는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던 그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날 잠깐 바라보다가, 흘러 내린 내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넘겨 주었다.
" 진짜 어떡합니까. 아가씨를. "
잠깐을 그렇게 내 머리를 넘겨주며 쓰다듬던 바비가 집으로 돌아가자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바비의 팔을 잡아 조금 전 바비가 앉아 있던 곳에 다시 앉을 수 있도록 그를 당겼다. 뭐 하십니까. 딱딱하게 물어오는 바비에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 뭐가 안 됩니까. "
" 집에 가면 안 돼요. "
" 왜요. "
" 동혀기 다시 미국 간대요. 오늘 가면 또 못 본단 말야…. "
내 말에 날 바라보던 시선을 잠깐 동혁이에게로 옮기는 바비다. 동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더니 바비가 짧게 한숨을 쉬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바깥 쪽이 아닌 테이블 안 쪽으로 몸을 틀며 작게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저 찡그려진 얼굴은 가게 안이 시끄러워서 겠지…. 바비에게 작게 속삭이듯 시끄러워요? 했더니 바비가 네, 하고 짧게 답을 해온다.
" 그래도 그 때 나 인기 많았었는데. 그치? "
" 너보단 내가 더 인기 많았지. 그 짝사랑만 아니었음 여러 여자 울리고 다녔어, 나는. "
" 어련하시겠어. "
놀리는 듯한 내 말투에 김동혁이 피식 웃었다. 나와 동혁이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는 바비를 힐끔 바라보니, 동혁이의 시선도 나를 따라 바비에게 닿아온다.
" 술 한 잔 하실래요? "
" 아뇨. 괜찮습니다. "
동혁이의 제안을 거절하는 바비를 잠깐 바라보다가 동혁이를 향해 내 잔을 흔들었다. 나 줘! 나 마실래. 나. 그러자 가만히 앉아있던 바비가 내 손에서 내 잔을 뺏어간다.
" 더 취하면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
" 괜찮아요. 줘요, 줘…. "
" 안 됩니다. 그만 드세요. "
" 그치만, 내가 안 마시면 동혁이 혼자 마셔야 하는 걸요. "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비를 바라보며 답을 하자 바비가 잠깐 멈춰선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하, 하는 소리와 함께 목까지 잠궈진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어내곤 내 잔을 동혁이에게 내민다. 동혁이가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묻자 바비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는 듯 하지만 김동혁이 왠지 모르게 씩 웃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기도 혼자 술 마시긴 싫었겠지….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고.
그렇게 쭉 이어질 줄로만 알았는데 바비는 몇 잔 마시지 않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김동혁이 두 잔 마실 때면 바비는 한 잔 마시고. 그 정도의 속도로 동혁이와 술잔을 기울이던 바비와 동혁이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데, 피곤한 건지 나도 모르게 하품이 쩍하니 나온다. 크게 하품을 하곤 입을 우물거리는 나를 발견한 바비가 다시 한 번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겨준다.
" 이제 진짜 가셔야 합니다, 아가씨. "
" 그래. 늦었어, 이제 그만 가. "
" 그치만…. "
" 내가 미국 가서 안 돌아올 것도 아니잖아. 그만 징징대, 돼지야. "
" 돼지 아니라니깐! "
발끈하는 나를 부축해서 천천히 일으킨 바비가 내 겉옷을 들곤 입기 쉽게 잡아준다. 팔을 다 끼워넣고 바비를 향해 다시 돌았더니 내 옷의 지퍼를 목까지 쭉 올린다. 흐, 이런 걸 해주는 것도 좋아. 좋다. 정말 마냥 다 좋아서 어떡해.
옷이 다 잠기고, 나와 바비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동혁이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 목을 양 팔로 점프하듯 안았다. 키가 큰 동혁이에게 매달리다시피 포옹을 하자 동혁이가 피식 웃으면서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다.
" 전화 꼭 해. "
" 알았어. "
" 안 그럼 나 미국 찾아갈 거야. "
" 걱정 말고 집이나 가세요. "
데려다 주겠다는 바비의 말에 동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바로 앞이 저희 집이에요. --이나 잘 데려다 주세요.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바비에게 날 다시 안겨준 동혁이가, 살짝 몸을 숙여 인사를 하곤 우리의 방향과는 반대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새삼스레 코 끝이 찡하다. 동혀기…. 나도 모르게 웅얼거리는 말에 날 잡고 있던 바비가 한숨을 짧게 쉬었다.
" 잠깐 서 계실 수 있겠습니까. "
바비의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날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은 바비가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게 보인다. 짧게 뭐라고 몇 마디 말한 바비의 전화가 금방 끊기고, 바비는 내게 다가와 다시 내 팔을 잡았다.
" 위치 말했으니까 다른 애들이 곧 데리러 올 겁니다. "
딱딱하게 말하는 그 모습도 좋다. 저 말투도 좋고,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저 눈도 좋다. 머리 안 아프십니까, 하고 묻는 바비에게 대답 대신 흐, 하고 바보 같이 또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날 잡은 바비의 팔에 있는 소매를 손가락으로 꼭 쥐었다.
손 잡고 싶었는데, 왠지 손 잡으면 싫어할 거 같아….
자꾸만 웃는 날 보며 바비가 내 코를 제 손가락으로 한 번 톡 친다.
"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어. "
예고 없는 바비의 반말에 웅얼대듯 답했다. 자꾸 왜 반말해서 사람 설레게 해요….
내 칭얼거림에 바비가 순간 멈칫했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올려다보았다. 바비의 걱정에 힐을 안 신은지도 벌써 오래 되었고, 익숙한 듯 신고 나온 바비가 준 운동화 덕분에 키차이는 이만큼이나 더 났다. 조금은 더 멀리 있는 바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꼬여버린 발음으로 바비에게 물었다.
" 연애 안 할 거에요? "
" 네? "
" 연애… 왜 안 해요. "
뭘 묻냐는 듯한 바비의 표정에, 잡고 있던 바비의 소매를 조금 더 꼭 쥐었다. 그리고는 어린 아이가 조르듯 살짝 그 소매를 흔들었다.
말할까. 말까. 잠깐을 망설이는데 내 고민과는 다르게 벌써 입은 쏟아지듯 그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 좋아해요. "
피하지 않고 바라본 바비의 얼굴. 내 말에 순간적으로 굳어버린 바비의 표정.
솔직하게 뱉어낸 내 말에 바비의 표정이 묘하다. 저게 무슨 표정인 거야…. 그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 것도 없는 바닥을 괜히 발로 툭, 툭 치면서, 나는 연애 하고 싶은데… 하고 혼자 웅얼거렸다. 저지르기 전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막상 저지르고 나니까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보겠어, 어떡해….
내 말에 아무런 말 없는 바비를 땅만 바라보고 묵묵히 기다리는데, 순간적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나 취했구나. 뭐라는 거야, 정말….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까 그 표정 그대로, 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바비에게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 아니에요. "
" ……. "
"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
" 하…. "
내가 이래서 술을 안 마시는 건데.
내가 하는 말을 끊은 바비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응? 하고 되묻는데 바비가 갑작스럽게 내 양 볼을 잡아온다. 조금은 차가운 바비의 손이 내 볼에 닿자 나도 모르게 으, 하는 짧은 신음이 새어나왔고, 바비는 살짝 허리를 굽혀 키를 낮추곤 나와 눈 높이를 맞췄다.
갑작스럽게 가까워진 그 갈색 눈동자에 가득 담긴 내 모습이 보인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 그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 이거 꿈이야. "
그리고, 그렇게 바비의 입술이 내게 닿았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uriel입니다
기다리고 계시던 6화가 왔어요, 기다려 주신 거 맞죠 ㅠ_ㅠ? 흐흐
저번 화에 추천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추천이 20개 가까이 되어서 정말 황홀했어요..♡ 저 이러다 추천 성애자 되면 어떡하죠! 추천 빠순이 되어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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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작은 공지가 하나 있다면 아가씨의 암호닉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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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한빈의 암호닉, 새내기의 암호닉은 곧 다음 글로 정리를 하도록 할게요! 오늘은 일단 아가씨의 암호닉!
그럼 다들 좋은 밤 보내요, 제 이쁜이들 ♡